MC:
목숨을 걸고 탈북한 사람들은 남한 땅을 밟는 순간, 또 다른 두려움에 휩싸입니다. 낯선 이국땅에 버려진 느낌, 이럴 때 유일하게 의지가 되는 사람들이 바로 같은 아픔, 같은 경험을 가진 고향 사람들입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특별기획 ‘탈북자 2만 명 시대 희망을 찾은 사람들’, 여섯 번째 이야기는 “탈북자들의 인권을 위해 뛰는 탈북자들”입니다. 그들의 활약, 서울에서 이예진 기자가 보도합니다.

유관희 기자: 북한에서 몹시 앓았어요. 성한 사람도 살기 어려운 때인데, 몸이 안 좋아서 살기 어렵더라고요. 생각지 않게 견딜 수 없어서 탈북해야겠다 했죠. 지금 보면 성한 사람도 살기 굉장히 어려워서 저 같은 사람은 살기 어렵죠. 중국에서 3년 반 정도 있었는데 굉장히 고생했어요.
[남한에 정착한 지 이제 2년째인 유관희 기자는 북한전문 인터넷 뉴스인 데일리NK에서 북한주민들의 실생활을 남한에 알리기 위해 매일 발로 뛰고 있습니다. 탈북과정이 쉬운 사람은 거의 없는데요. 북한을 벗어나 중국에 도착했던 유 기자도 마찬가지였죠.]
유관희: (중국에) 오자마자 속아서 왔구나. 탈북여성들의 상황이 한심하더라고요. 북한에선 선전을 어떻게 하냐면 일반 인신매매꾼들과 주민들은 잘 먹고 살 수 있다, 좋은 남자를 만나 행복하다고 들었는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그나마 위로는 밥은 먹을 수 있지 않냐, 이것뿐 이었어요. 3년 반 동안 그게 너무 뼈에 사무치게 힘들었죠. 직장에서 일하려고 하면 성 요구를 해서 신고하기 전에 바로 떠나야 해요. 그러다 보니 일자리를 잡지 못해서 너무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한국에 오게 됐죠. 한국에 오자마자 좋다는 것과 탈북자들을 받아준다는 걸 알았지만, 오기 전엔 북한에서 배웠던 부정적인 교양, 약한 몸으로 견딜 수 있을까, 그래서 많이 주저하다가 3년 반 만에 입국했죠.
[북한에서 인텔리 출신이었던 유 기자는 뼈에 사무치는 중국에서의 경험을 잊지 않고, 남보다 더 남한정착에 힘을 쏟았습니다. 탈북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오랫동안 고수해온 생활방식을 버리는 일이 무척 어렵다고 하는데요. 유 기자는 2년 만에 동료 탈북자들을 위해 앞장설 수 있었던 비결이 있을까요?]
유관희: 엄청 힘들더라고요. 북한식 문법부터 시작해서 다 달라요. 여기 와서 한 살 난 아기라고 생각하고 일해야 하나부터 백까지 배운다고 생각하고 시작했어요. 탈북자들이 머릿속에 피해의식이 많아요. 탈북자들은 북한에서 어려웠기 때문에, 나만 잘 살면 된다, 건드리면 무섭게 싸우죠. 그런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걸 버리지 않으면 정착이 어려워요. 한국에서 인내하고 양보할 줄 아는 마음이 부족하죠. 어렵게 살아서 응당 받으려고 하는 마음을 가진 일부 탈북자들이 있는데, 자립의지를 키울 수 있는 능력을 차곡차곡 쌓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탈북자 1호박사인 박수현 원장이나 이애란 박사도 성공하는 데 10년이라는 오랜 시간이 걸렸잖아요.
[탈북자 후배들을 위해 앞장서는 건 성공적으로 정착한 탈북자의 의무일지도 모릅니다.]
유관희: 그동안 저는 취업문제에 관심을 많이 돌렸어요. 앞으로도 탈북자들의 취업문제에 신경을 쓸 거예요. 다가오는 통일을 위해서 꼭 필요한 부분이거든요. 탈북자 지원문제 중에서도 정말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긍정적으로 살아가는 분들의 이야기를 쓰려고요. 자영업을 해서 멋지게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도 소개해서 탈북자들이 잘 배울 수 있도록 하고 싶어요.
[유 기자는 북한 내 인권문제에 대해서도 희망을 보고 있었습니다.]
유관희: 북한 인권을 개선하는 일이 북한이 달라지는 길이라고 봐요. 예를 들면 북한에서 바지 문제, 억지로 못 입게 하는데 그건 아니잖아요. 계속 그 문제를 세계에서 기사를 쓰고 하니까 북한에서도 달라지기 시작했죠. 이것처럼 북한이 서서히 달라지게끔 압박보다 긍정적으로 달라지게 도와주고, 이런 의미에서 저도 여기에 동참할 거예요.
[어제 서울에서는 북한인권단체연합회 등 140여개 시민단체가 모여 '북한인권법 제정을 위한 국민운동본부'를 출범시켰습니다. 특히 북한주민과 탈북자들의 권익을 위해 만들어진 북한관련 단체는 40여개 이상. 이 중에서도 탈북자들이 주축이 되어 활동하는 단체는 30여개가 넘습니다. 이들 단체는 탈북자들의 올바른 남한정착을 도울 수 있는 다양한 방안을 마련할 뿐 아니라,통일 후 합동정책 개발 등에도 앞장서고 있습니다. 탈북단체 가운데 북한전략센터의 최윤철 조사연구실장을 만나봤는데요.]
최윤철: 제가 사실 예전에는 탈북자 출신이지만 북한과 탈북자 문제에 관심을 안 가졌어요. 그 때, 제 생각으론 북한과 탈북자 문제보다 내가 먼저 남한에 잘 정착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생각했고, 어느 정도 정착하고 남한에 대해 알게 되니까 나만이 아니라 좀 더 큰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에서 북한과 관련한 공부도 하고, 북한에 대해 많은 일을 하고 있는 전략센터에서 일을 하게 됐습니다.
[북한전략센터는 북한의 민주화와 인권개선 같은 북한 문제를 연구하고 토의하는 단체로, 탈북청소년들의 남한정착을 위해서도 다양한 활동을 펴고 있습니다. 최 실장은 전략센터에서 각종 행사를 준비하고 연구하는 일을 하고 있죠. 전략센터에서 좀 더 큰 뜻을 갖게 된 최 실장은 북한의 개혁, 개방이나 통일 후 북한의 경제개발을 위해 현재 대학원에서 경제학 공부도 하고 있답니다.]
최윤철: 통일됐을 때, 서로에게 좋은 통일이 되도록 경제적인 부분에서 물꼬를 틀고 싶고, 그런 것을 해결하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많은 탈북자들이 있는데 각각 할 일이 많을 거예요. 정치나 문화, 인권을 위해 일하는 분들이 있는데 나름의 역할을 충실히 했을 때, 먼저 온 탈북자들이 헛된 노력이 되지 않게 값진 귀중한 사람들로 거듭날 수 있지 않을까.
[탈북자 2만 명. 이제 탈북자들은 정착금을 지원하고 있는 남한정부에 기대지 않고 스스로 할 일을 찾아 나서고 있습니다.]
박상학: 2만 명은 많은 숫자는 아니지만 숫자보다 북에서 오신 분들이 경제정착을 잘 해서 이 분들이 북한에 탈북자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서 국제사회에 북한의 참상을 알리는 역할을 하는 게 숫자가 많아질수록 빛나는 거거든요. 솔직히 그런 역할을 많이 못하고 있습니다. 금방 들어온 분들이 경제정착이 힘듭니다. 북한인권활동에 적극 나서지 못하고 있죠.
[7년간 북한에 대북 전단을 보내는 한편, 탈북자들을 대한민국에 입국시키는 일을 해온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는 탈북자들이 한국에서 정착하는 일은 더 이상 문제가 아니라고 합니다.]
박상학: 북한에 있을 때나 중국에 있을 때 비하면 백배, 천 배 낫죠. 대한민국은 열심히만 하면 사회적응을 할 수 있는 환경이거든요. 힘들긴 하지만, 두만강, 압록강 건넜을 때의 초심대로 대한민국에서 산다면 못할 일이 없죠. 중국에 10여만 명의 탈북자가 있습니다. 오늘, 내일 중국 공안에 붙잡힐 위험과 불안에 있습니다. 살기를 갈망하고 있는데, 이 분들을 대한민국을 비롯한 자유세계에서 구출하는 것이 중요하고, 북한에서 인간의 모든 권리와 삶을 빼앗긴, 생존권을 우리가 노력해서 어떻게 도움이 될 것인가 하는 활동이 중요한 거죠.
[한 사람의 탈북자라도 더 자유세계에 진입시켜야 한다는 박상학 대표. 고향 땅에 날리는 풍선 하나하나에 희망을 실어 보냅니다.]
박상학: 제가 7년 전 부터 사랑하는 북녘동포들에게라는 대북전단을 보내고 있습니다. 북한 동포들의 수령의 폭정에서 인간의 삶과 권리, 생존권마저 빼앗긴 동포들에게 또 다른 희망을 잃지 말고 살면 우리와 같은 희망이 오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용기를 주기 위해 보내고 있습니다. 생명의 끈 놓지 마시고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이 순간에도 남한에 있는 탈북자들은 하나의 뜻을 마음에 품고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 것이 바로 통일을 준비하는 선배들의 자세입니다. 서울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예진입니다.]
MC: 지금까지 RFA 기획특집, 희망을 찾은 사람들. 그 6번째 이야기, “탈북자들의 인권을 위해 뛰는 탈북자들” 편을 함께 하셨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9월 14일과 15일, 이틀 동안 영국에서 살아가는 탈북자들의 모습을 생생한 현지 취재로 전해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