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
이미 100명이 넘는 탈북자들이 난민 지위를 얻어 정착한 캐나다. 희망을 찾기위한 탈북자들의 긴 여정엔 민간 인권단체와 캐나다 의회가 함께했습니다. 희망을 찾은 탈북자와 희망을 함께 나누는 인권단체, 그리고 희망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려는 캐나다 의회, 여기다 찾은 희망을 캐나다 사회에 되갚으려는 탈북자, 이 네 바퀴가 함께 희망을 굴리고 있습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특별기획 ‘탈북자 2만 명 시대- 희망을 찾은 사람들’ 오늘은 아홉 번째 순서로 ‘캐나다의 탈북자-희망을 굴리는 네 바퀴’ 편입니다.
진행에 박정우 기자입니다.
<첫 번째 바퀴-희망을 찾다.>
지난 8월 중순 캐나다 토론토 교외의 한 한식당. 캐나다에 정착한 지 3년째인 이영희(가명, 여, 40세) 씨의 희망이 영글고 있는 곳입니다. 점심 시간이 막 지나 한가하리란 짐작과 달리 이 씨는 손님들의 저녁상에 오를 밑반찬을 만드느라 여념이 없습니다.
잠시 짬을 내 마주 앉은 이 씨는 힘든 식당 일에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지만, 얼굴엔 미소가 가득합니다.
이영희: 사실 북한에서는 희망을 꽃피울 여유가 없었죠. 나로서는 최상의 삶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얘기하는 그 자유를 누리고 있습니다. 북한에서 살았다면 상상도 못할 일이죠.
함경도가 고향인 이 씨. 2004년 북한을 탈출해 중국을 거쳐 2007년 캐나다에 정착했습니다.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두만강을 건너 중국을 드나들던 남편이 정치범 수용소에 수감된 뒤 ’살아야겠다’는 일념으로 무작정 북한을 떠났습니다. 생사를 알길 없는 남편의 얼굴이 문득문득 떠오를 때도 있지만 함께 데리고 나온 아이들을 잘 키워 남편에 대한 미안함을 대신하리라 다짐하곤 합니다.
지난해 캐나다 정부로부터 정식 난민 인정을 받아 한결 이곳 생활에 안정을 찾은 이 씨. 북한에 남은 가족도 희망을 잃지 않길 비는 마음 간절합니다.
이영희: 아직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형제들이 이북에 남아 있습니다. 1년에 한 번씩 생활비에 보태쓰시라고 1,000~2,000달러씩 보내고 있습니다.
올 1월에도 인편으로 1천 달러를 보낸 이 씨. 지난해 화폐개혁 이후 돈 가치가 많이 떨어졌다는 말에 올가을 생활비를 좀 더 보내드릴까 생각 중입니다. 먼 이국 땅 캐나다에서 혼자 찾은 희망을 북한에 남아 있는 가족과 함께 나누고 싶은 소망에서입니다.
<두 번째 바퀴-희망을 나누다.>
(음악 공연 사운드)
지난 8월 19일 저녁, 캐나다 토론토 시내의 영-던데스 광장. 캐나다에서도 손꼽히는 ’젊음의 광장’이 ’북한 인권과 탈북자의 광장’으로 탈바꿈했습니다. 북한인권과 난민문제에 관한 국제회의의 개막에 맞춰 마련된 이날 공연에 캐나다 시민들은 넓은 광장을 꽉 메워 깊은 관심을 나타냈습니다. 행사는 캐나다의 명문 토론토 대학의 젊은 학생들이 주축이 된 북한인권단체인 ‘한보이스’가 기획했습니다. ‘한보이스’의 랜달 바랜-청 회장입니다.
랜달 바랜-청: 사실 북한의 심각한 인권 문제를 알고 있는 캐나다 시민들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더 많은 시민들이 북한 인권운동에 동참해야 하는 데 말이죠. 고민 끝에 언어와 문화가 달라도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음악을 통해 북한 인권을 얘기하자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밤 늦게까지 계속된 공연 내내 수백 명의 관객이 자리를 뜨지 않고 영-던데스 광장을 지켰습니다.
[공연 사운드]
3시간 가까이 계속된 공연 내내 ‘북한인권과 탈북자’ 두 글자가 아름다운 선율에 하나하나 실려 캐나다 시민들의 가슴 속에 또렷이 새겨졌습니다.
하지만, 젊은 세대만 북한인권 문제에 관심을 두고 캐나다에 정착한 탈북자를 향해 도움의 손길을 내민 것은 아닙니다.
2008년 캐나다의 한인사회의 북한 인권 관련 단체가 통합돼 출범한 북한인권협의회. 캐나다에 정착한 탈북자를 돕는 일부터 북한 인권문제에 대한 캐나다 정부와 의회의 관심을 촉구하는 데 누구보다 앞장서 왔습니다. 출범 때부터 이 단체를 이끌고 있는 올해 65세의 이경복 회장입니다.
이경복: 수년 전만 해도 영국이 탈북자 40명을 받아들일 때 캐나다에 정착한 탈북자가 4명이었습니다. 그래서 캐나다 정부에 청원했습니다. 어떻게 인권의 나라라는 캐나다가 탈북자를 난민으로 받아들이는 데 이렇게 인색할 수가 있느냐 이런 지적을 했죠.
물론 북한인권협의회의 청원 때문만은 아니지만 이런 노력이 탈북자들의 캐나다 정착 확대에 크게 이바지한 점은 분명해 보입니다. 2007년까지 4명에 그쳤던, 난민 인정을 받은 탈북자 수가 2009년에만 66명으로 수직으로 상승했고 2010년 상반기에만 25명이 추가로 난민 인정을 받아 캐나다에 정착했기 때문입니다.
한보이스나 북한인권협의회의 이 같은 ‘희망 나누기’는 캐나다 정부와 의회가 정책과 제도를 통해 탈북자들의 희망을 뒷받침하는 데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세 번째 바퀴-희망을 뒷받침하다.>
(의원연맹 총회 사운드)
지난 8월24일 캐나다의 수도 오타와. 캐나다 연방 의회 의사당에서 ‘북한자유이주민 인권을 위한 국제의원연맹’의 제7차 총회가 열렸습니다. 이번 행사에는 미국, 한국, 일본과 주최국인 캐나다는 물론 폴란드, 모로코, 카메룬, 엘살바도르 등 전 세계 11개국 의회에서 25명의 의회 대표단이 참석했습니다. 탈북자 인권문제에 관한 전 세계 의회 의원들의 깊은 관심 때문입니다.
의원들은 이날 총회 뒤 공동선언문을 만장일치로 채택했습니다. 선언문은 유엔이 북한의 반인륜적 인권 탄압을 조사할 반인도적 범죄 조사 위원회를 설치하도록 촉구했습니다. 위원회의 조사 활동은 반인륜적 인권탄압 혐의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회부하고 국제형사재판소(ICC)에 제소하는 주요 근거로 활용됩니다.
이런 구체적 성과 외에도 이번 국제의원연맹 총회는 캐나다 의회와 정부의 탈북자 문제에 대한 관심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계기가 될 전망입니다. 캐나다 연방 의회에서 캐나다와 한국 간 의원친선협회 회장을 맡은 베리 데볼린 하원의원은 탈북자의 캐나다 정착을 확충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베리 데볼린: 1970년 대 베트남 난민을 다뤘던 방식으로 탈북자 문제를 다뤄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캐나다를 포함해 국제사회가 함께 나서 탈북자를 수백 명씩 난민으로 받아들이는 거죠.
데볼린 의원은 캐나다가 그동안 인권을 중시하는 국가로, 국제사회에서 큰 명성을 쌓아왔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그는 탈북자 문제의 해결에 캐나다가 앞장설 자격과 의지가 충분하다고 덧붙였습니다.
캐나다 의회의 탈북자 정착 확충 노력은 탈북자들의 희망 찾기를 든든히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이미 그 속에서 캐나다에서 찾은 희망을 캐나다 사회에 되갚고 있는 탈북자도 생겨났습니다.
<네 번째 바퀴-희망을 되갚다.>
올해 고등학교에 진학하는15살의 이 현(가명) 군. 지난 3월 캐나다 남동부의 온타리오 주 대표로 당당히 뽑힌 유도 유망주입니다. 9살 나이에 영문도 모른 채 엄마 손에 끌려 북한을 떠나온 탈북 소년이 캐나다의 한 주를 대표하는 선수로 성장했습니다.
하지만 이 군은 주 대표 선수에 오른 성취감을 잠시 뒤로 한 채 국가대표를 목표로 구슬땀을 흘리고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한국과 일본이 강세인 올림픽 유도 종목에 캐나다 대표로 출전해 자신과 어머니에게 희망을 준 고마운 나라 캐나다의 국위를 떨치고 싶기 때문입니다.
이 현: 2016년 올림픽에 한번 도전해 보고 싶어요…. 금메달을 따는 것은 진짜 하늘에 별 따기쟎아요. 그런데 할 수 있다면 최대한 할 수 있는 데까지 노력해서 딸 수 있다면 따보고 싶습니다.
항상 곁에서 충분한 뒷바라지를 못 해줘 마음이 안쓰럽다는 이 군의 어머니 이영희 씨. 아들 얘기가 나오자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고 얼굴이 확 펴집니다.
이영희: (아들 녀석은) 올림픽에 출전해야 한다는 희망 하나로 삽니다. 경기에서 따온 메달만 해도 15개 이상 집에 쌓여 있습니다. 경기만 나갔다 하면 메달을 따 옵니다. 빈손으로 돌아온 때가 없었습니다.
이 씨는 유도 국가대표가 돼 캐나다 사회에 희망을 되갚으려는 아들이 마냥 기특합니다. 북한을 떠나 먼 캐나다 땅에서 희망을 찾은 이 씨 모자의 길고 험난했던 여정. 이제 그 반환점을 돌아 더 큰 희망을 캐나다 사회에 되갚기 위한 ‘희망 전도사’의 길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MC: RFA 자유아시아방송 특별기획 ‘탈북자 2만 명 시대-희망을 찾은 사람들’ 오늘은 아홉 번째 순서로 ‘캐나다…희망을 굴리는 네 바퀴’였습니다. 진행에 박정우 기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