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수도 워싱턴 디씨에서 차로 10분 남짓 가면 도달하는 알링턴 국립묘지(Arlington National Cemetery) 아침부터 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에도 알링턴 국립묘지는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로 분주했습니다.
기자 : 여기가 알링턴 국립묘지입니다. 이곳이 입구인데요.
김태산: 새 소리도 처량하네요.
기자 : 이곳은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유해들만 따로 모아놓고 있구요.
한국전쟁에 참전한 미군들의 묘지도 이곳에 있습니다. 케네디 전 대통령의 묘지도 있습니다.
기자 : 북한에는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인민군들이 어디에 묻혀 있나요?
김태산: 창광산 해방탑 인민군 묘지라고 있는데 개별적으로 묻혀 있지 않고 여러군데 합장이 되어 있습니다.
기자: 인민군 묘지도 이곳 알링턴 국립묘지처럼 많은 사람들이 와서 참배를 하고 견학을 합니까?
김태산 : 평일날에는 절대 사람들이 찾아가지 않습니다. 우상화된 사회이기 때문에 김일성이나 국가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묻힌 대성산 열사능에는 평일에도 사람들이 찾아가지만 인민군 묘지에 사람들이 찾아가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입구에 들어서자 가장 숭고한 영혼들이 잠들어 있는 알링턴 국립묘지에 온 것을 환영한다며 엄숙한 존경의 자세로 임해 달라(Welcome to Arlington National Cemetery our nation’s most sacred shrine. Please conduct yourselves with dignity and respect at all times) 는 방문자 안내소의 문구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습니다. 입구에서 조금 더 걸어 들어가자 전사자들의 희생을 기리는 하얀 묘비들이 푸른 잔디 위에 끝없이 펼쳐졌습니다. 미국의 모든 전쟁에서 희생된 30만 명이 넘는 전사자와 그 가족들의 유해가 안장된 후 세워진 묘비들이었습니다. 묘비들 가운데는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미군들의 이름도 포함돼 있었습니다.
김태산 : 조선전쟁 ! 찾았습니다.
기자: KOREA, 맞아요. 이분 성함이 레이몬드 핸디(Raymond Handy). 고향이 워싱턴 디씨라고 쓰여 있네요. 한국 전쟁에 참전한 용사입니다.
여기 또 있어요 . 이분 성함은 리언 쿡(Leon Cook) 씹니다.
고향은 메릴랜드이고 1952년 7월 5일 사망했네요. 1931년생이네요.
김태산: 21살 때 한국전쟁에서 사망했군요. 한창 젊은 나이에 안타깝게 갔네요. 그러니까 정전 1년을 앞두고 희생됐네요. 아까운 청춘을 바친 분이군요.
6.25 전쟁 동안 한반도 땅을 밟은 미군은 총 178만여 명 그들 중 사망했거나 실종된 군인은 45,000여 명 온전한 몸으로 돌아오지 못한 상이 군인이 92,000 여 명에 이릅니다. 다행히 유해를 찾아 고국으로 돌아온 군인들 가운데 일부가 이곳 알링턴 국립묘지에 묻혀 있습니다. 영문으로 KOREA라고 새겨진 이곳의 묘비들이 수많은 인명을 앗아간 6.25 전쟁의 참상을 침묵으로 증언하고 있습니다.
기자: 한국 전쟁에 참전한 미군들의 묘비를 보니까 소감이 어떠십니까 ?
김태산: 말하기 힘듭니다. 자기 나라를 위해서 싸운 것도 아니고 남의 나라를 위해서 싸웠는데, 남의 나라 전쟁에 자신의 사랑하는 아들을 서슴없이 내어 준 미국의 어머니들에게 감사합니다. 그때 미국이 없었다면 아마 지금의 남조선이 없고 공산화된 남조선이 있었을텐데 말입니다. 그들이 흘린 피가 얼마나 값진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기자: 그들에게 한국전쟁은 어떤 의미였을까 궁금하단 생각이 드네요.
김태산: 북한에서 선전하는 바에 따르면 미국은 이기주의와 개인주의가 가득한 자본주의 사회요, 돈 한푼 아까와서 남에게 절대 주지 않는 나라입니다. 그러나 하물며 자기 목숨을 다른 나라 사람을 위해서 바치는 것을 보니 북한의 선전이 거짓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미국은 지금도 전쟁에서 실종된 미군의 유해를 찾고 있습니다. 나라를 위해 희생한 병사를 잊지 않는다는 미국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이날도 어디선가 들리는 조총소리가 수십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오는 어느 미군 병사를 숙연하게 맞았습니다.
김태산 : 깃발도 조기를 올리네요.
기자 : 세 발의 조총을 쏘고 군악대가 나팔을 울리네요.
김태산 : 저렇게 조국을 위해서 희생한 사람의 마지막 가는 길까지 책임져 주는 것을 가족들 앞에서 보여주네요. 다음에 저 가족들이 자기 자식들을 전쟁터에 보낼 때 섭섭하지는 않겠네요.
기자 : 저 멀리서 시민들, 학생들이 이 안장식을 보고 있는데요, 다시 한번 역사를 되새기고 조국을 생각하는 마음이 들 것 같습니다.
고인의 명복을 비는 나팔 소리가 끝나자 단정한 제복을 입은 여섯 병사들이 은빛 관 위에 덮인 성조기를 삼각형으로 가지런히 접어 가족들에게 전달합니다. 가족들 앞에 무릎을 꿇은 어느 장교의 손에서 성조기를 받아든 가족들은 따뜻한 포옹으로 서로 위로했습니다. 안장식을 멀리서 지켜보던 시민들 가운데서 눈물을 훔치는 이가 보이기도 했습니다. 김태산 씨는 이게 바로 국가의 책임이라고 말합니다.
김태산 : 죽은 사람을 기린다는 것은 다 쓸쓸합니다. 북한 같으면 어디서 죽었던 죽은 사람에 대한 책임을 져주지 않는데 미국이라는 나라는 수십년 전에 죽은 사람의 뼈를 찾아다가 DNA 검사를 다해서 가족들을 찾아서 넘겨주는 장면을 보면서 생각이 많습니다. 북한은 나라를 위해서 자식들을 바쳤던 부모들이 저런 대우를 받지 못하고 아무런 보답도 받지 못합니다. 그러나 이름없는 인간에 대해 마지막까지 책임져 주는 국가가 있으면 참 좋겠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미국이 한국전쟁 때 실종된 미군의 유해를 찾기 위한 노력은 북한에서도 진행됐습니다. 미국 국방부는 1996년부터 2005년까지 북한과 모두 33차례에 걸쳐 공동으로 유해 발굴에 나서 한국 전쟁에서 사망한 미군 유해 2백 29구를 발굴했고 지금까지 모두 68구의 신원을 확인해 가족들에게 전달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북한 내에서 진행되는 미군 유해의 발굴은2005년 북한의 핵문제가 발생하면서 현재까지 중단된 상태입니다.
김태산 씨는 전 세계 곳곳을 찾아가 유해를 발굴하는 이 같은 노력과 비교할 때 북한 땅에 묻혀 있는 인민군들의 유해는 아직도 방치돼 있다며 탄식합니다.
기자: 북한은 유해 발굴을 하나요?
김태산: 안합니다. 인민군 유해는 발굴 안하고 미군 유해는 발굴해서 그것을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조선 인민군들이 6.25 전쟁 때 희생된 유해를 찾는 사업은 전혀 진행하지 않습니다.
김태산 씨는 지난해 남한에서 발굴한 북한군들의 유해가 묻혀 있는 적군묘지를 방문했던 적이 있었다며 아직도 돌아오지 않은 인민군들을 기다리는 북한의 가족들이 있어 가슴이 아프다고 말합니다.
김태산 : 6.25 전쟁 때 남한에 와서 죽은 인민군들의 시체가 서울시 외각에 안치돼 있습니다. 북한은 그것을 뻔히 알면서 그 유해를 찾아가지 않는 게 수천구가 됩니다. 지난해 제가 그 적군묘지를 갔었는데 참 쓸쓸하게 묻혀 있더군요. 남한 사람들은 인민군들이 죽어서도 고향을 그리워할 거라고 하면서 묘지들을 모두 북쪽을 향하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것을 보면서 북한은 민족의 젊은이들을 써먹을 뿐이고 .. 그런 생각에 착잡합니다.
홀로 우산을 쓰고 어느 묘비 앞에서 묵념을 하던 버지니아주에 거주하는 제프 해밀턴(Jeff Hamilton)(53) 씨는 우리 일행이 한국에서 왔다는 말에 이렇게 말합니다.
Jeff Hamilton: (Korean War is parcel of our history and a lot of people here gave up their ultimate sacrifice.) ‘한국전쟁은 미국의 역사 가운에 한부분입니다. 이곳에 묻혀 있는 많은 군인들이 한국에서 가장 소중한 생명을 바쳤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해서 그리고 동시에 그들 자신의 자유를 위해서 말입니다. 거짓말이 아니라 제가 당시 미국의 젊은이였다면 저 역시 군대에 자원했을 거고 한국전 파병을 매우 기뻐했을 겁니다.
해밀턴 씨는 부디 기억해 달라고 당부합니다. 자유와 인간의 고귀함을 지키기 위해 뿌려진 수많은 피가 있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 희생을 잊지 말고 미래를 위해 옳은 세상을 위해 나아가기를 바란다고 우리에게 부탁했습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의 특집방송 ‘6.25 한국전쟁’ 오늘은 세번 째 마지막 순서로 미국의 알링턴 국립묘지에서 본 ‘전쟁, 독재, 그리고 자유’ 편을 보내드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