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끝나지 않은 전쟁] “전우들 위해 매일 밤 기도”

워싱턴, 서울, 타이페이 - 특별취재팀 nohj@rfa.org
2022.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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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끝나지 않은 전쟁] “전우들 위해 매일 밤 기도” ‘3.26 기관총’ 기증식에서 총신을 부여잡고 눈물을 흘리는 윤청자 여사
/ 연합뉴스

망각’, 한자로 잊을 망()’물리칠 각()’으로 그 뜻은 어떤 사실을 잊어버리는 것이라 합니다.

 

아픈 기억을 안고 사는 것이 힘든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누구나 마음의 상처로부터 자유롭고 싶어합니다

 

12년 전 북한의 포격을 받았던 연평도 주민들은 오늘도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가거나 부둣가에서 그물을 정리합니다. 선착장에는 하루에 두 번 여객선이 오가고, 섬에 있는 식당과 카페, 민박집도 분주합니다. 당시 기억을 묻어두고 싶은 것이 연평도 주민들의 마음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그때를 떠올리면 눈물부터 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명재] 지금은 많이 치유됐죠. 하지만 북한의 상황을 우리가 모르고, 북한이 어떤 행동을 할지 모르기 때문에, 또 쏘면 어떡하나. (포격 당시의 상황을) 알고 있기 때문에 더 두려운 것 같아요.

 

[정창권] 실질적으로 두려움이 있지만, 그래도 큰 두려움은 없어요. 그런 두려움이 있다면 여기서 못 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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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안 거실로 북한의 포탄이 떨어졌던 연평도 주민 정창권 씨. 여전히 한반도 상황이 불안정하지만, 늘 두려움은 안고 살 수만은 없다고 말한다. / RFA photo  

 

민가가 몰려 있는 도로변과 골목길에 ‘대피소라고 쓴 표지판이 여럿 있습니다. 어디론가 급히 뛰어가는 사람 모양의 그림이 그날의 포격을 다시 떠올리게 합니다.  

 

[이명재] 이곳을 벗어나 있는 분들은 많이 치유됐지만, 이렇게 회상하면서 얘기할 때는 감정이 복받쳐서 울컥하시는 분들도 여럿 계세요. 또 시간이 많이 지났고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계속 떠올리고만 살 수는 없어요.

 

망각의 문 앞에서 옛 기억의 고통을 잊기보다 많은 사람에게 이를 알리고 싶은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국군포로 출신 김성태 씨는 그 문을 통과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김성태] 내가 할 수 있으면 북한에서 체험한 것, 내가 살았고 고생한 것, 말로라도 다 알려야지. 전 세계 사람들에게. 난 그러고 싶어. 내가 정말 인간 대접도 못 받고, 포로 딱지가 붙어가지고. 내가 알고 있고 북한에서 체험한 것을 세계만방에 다 폭로하고 싶어.

 

미국 정찰함 푸에블로호와 함께 북한에 납치됐던 제임스 켈 씨도 포로 시절을 떠올리자 미간 사이 주름이 더 깊어집니다.  

 

[제임스 켈] 용서하기가 정말 힘들고, 절대 잊지 못할 시간입니다. 제가 그들을 용서한다면 단 하나, 일반 사람들은 이 일과 아무 관련이 없다는 겁니다. 어떤 분이 저에게 만약 그들이 당신에게 백만 달러를 준다면요?”라고 묻더군요. 저는 받겠다고 했어요. 저는 일을 결코 다시 겪고 싶지 않습니다.

 

당시 기억의 고통을 종교의 힘에 의지하기도 합니다.  

한국 전쟁 당시 미군 포로였던 마이크 다우 씨는 7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포로수용소에 같이 있었던 에밀 카폰 신부를 떠올립니다.

 

[마이크 다우] 카폰 신부는 어디든 들르는 곳마다 서로 협력하고 보살피는 정신을 모두에게 보여줬고, 음식을 나눠줬습니다. 카폰 신부는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줬고, 사람들의 삶을 이끌고 유지하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포로수용소 중 가장 악명이 높았던 ‘죽음의 계곡은 카폰 신부 덕분에 행복한 계곡으로 불렸다고 합니다.

 

다우 씨는 잠시 눈을 감습니다. 그에게 기도는 기억을 지속하는 통로입니다.

 

[마이크 다우] 저는 아직도 매일 밤 저와 함께 전투를 벌이던 전우들과 군대, 그리고 육군 병사를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들을 위해 매일 밤 기도합니다.

 

그는 오늘도 누군가를 위해 기도하며 두 손을 모으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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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의 장소에 있는 한 어린이가 문을 열고 그곳을 나서는 모습의 그림 / Stock Image

 

민평기 상사의 어머니는 시골집에서 혼자 살고 있습니다.

이따금 지나는 오토바이 소리, TV에서 나오는 뉴스 소리만이 집안을 채웁니다.

 

집 현관에 신발 한 켤레와 슬리퍼만이 놓여 있지만, 아직도 어머니의 생활 곳곳에 아들에 대한 기억이 스며 있습니다.

 

[윤청자] 그 애가 고추장에 비벼서 국수를 잘 삶아 먹었어요. 자기가 국수 먹고 싶으면 알아서 삶아 먹고 가요. 그러니까 국수를 봐도 (마음에) 걸리고. 그리고 느닷없이 보고 싶을 때가 있어요. 그러면 그때는 통곡하고 그냥 앉아서 우는 거예요. 눈물이 어디서 그렇게 나오는지, 한도 끝도 없이 나오더니 지금은 눈물도 말랐어요.

 

어머니는 이제 눈물이 말랐다지만, 아들이 좋아하는 국수 이야기에 또 울먹입니다.  

 

아들을 잃은 어머니는 망각의 문으로 아예 들어갈 생각이 없나 봅니다.  

아픔을 잊기보다 아들에 대한 기억을 오래 남기기 위해 1억 원을 내놨고, 그 돈은 ‘3.26 기관총’ 18정의 씨앗이 됐습니다.

 

[윤청자] 자손도 없이 피워보지도 못하고, 그 꽃봉오리같이 져가지고. 꽃도 피어보지도 못하고 보낸 애들, 역사에 남게 해줘야죠.

 

‘3.26 기관총 기증식’. 그 행사 내내 당당했던 어머니는 끝내 총을 부여잡고 오열했습니다

마치 기관총으로 다시 태어난 아들을 마주하듯 두 손으로 총신을 부여잡고 이마를 댄 채 한참을 그렇게 있었습니다.  

 

[윤청자] 기관총을민평기이름으로 하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싫다고 그랬어요. 내 아들이 왜 사람 죽이는 일을 하느냐고. 그냥 기관총 달면 다는 거고, 나는 우리 평기 이름은 붙이기 싫다고 그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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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청자 여사가 천안함 기념관에 전시된 3.26 기관총을 쓰다듬고 있다. / RFA photo

 

천안함 기념관에 전시된 ‘3.26 기관총도 가림막 사이로 긴 총구가 쭉 뻗어있습니다.

부드럽게 기관총을 쓰다듬는 어머니는 마치 아들이 굳건히 지켜주는 것 같다고 합니다.   

 

[윤청자] 내가 총을 더 크게 기증했으면 좋을 텐데, 너무 미약해서 미안한 마음이고, 그래도 고장 나지 말고 열심히 힘을 발휘해 주길 바래. 조금이나마 내 마음이 풀리게. 고장 나지 말아줘. 고마워.

 

그렇게 어머니는 몇 번이고 아들을 가슴에 묻고 있습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뒤 현지를 취재한 일본인 와타이 타케하루 씨는 가장 인상 깊은 장면으로 파괴된 도시에서 꽃을 파는 상인을 꼽았습니다.  

 

그는 이를 ‘희망이라고 표현합니다.  

 

전쟁을 피해 한국에 온 우크라이나 난민들도 웃음을 되찾을지 모르겠습니다. 이들은 한국을 새로운 고향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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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전라남도 광주에 있는 새날학교에서 한국어를 배우는 우크라이나 난민 학생들 / RFA photo

 

 

교실 칠판에 적혀 있는 ‘라면’, ‘떡볶이’, ‘불고기’, ‘삼겹살’, ‘된장찌개’.

학생들은 선생님의 발음을 듣고 따라 읽습니다.

 

오늘 배운 삼겹살이 먹고 싶냐는 선생님의 질문에 학생들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기도 합니다

 

[박 빅토리아] 처음 왔을 때는 웃지도 않았어요. 지금은 조금 적응도 됐고, 음식도 입에 잘 맞아서 괜찮아졌어요.

 

광주 고려인 마을 청소년문화센터의 합창 시간.

30명 정도 어린이들이 피아노 반주에 맞춰 홀로 아리랑을 불러 봅니다.

 

[김혜숙] ‘홀로아리랑같은 노래는 한국 노래잖아요. 그 음악 속에 슬픔이 담겨있기 때문에 가끔 눈물도 흘리기도 하고요. 처음에는 잘 따라 하지도 못했어요. 그런데 그 아이들이 점점 배워가면서 회복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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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창 시간에 율동과 함께 ‘홀로아리랑’을 부르는 우크라이나 난민 어린이들 / RFA photo

 

아리랑(我離娘)’에는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또 떠나보내지 못한 이야기’의 뜻이 있다 합니다.

 

아이들은 서로 옆 사람의 손을 잡았습니다. 노래에 맞춰 어깨를 들썩이기도 하고, 원을 그리며 돌아보기도 합니다.   

 

[박 빅토리아] 어떤 학생들은 (고향이) 그립죠. 그리워서 가고 싶죠. 왜냐하면 친구들도 그쪽에 있고, 다니던 학교도 모두 러시아어처럼 자기가 알고 있는 언어로 돼 있으니까 그리워해요.

 

[김혜숙] 전쟁은 우리 마음에 여러 가지 분열과 헤어짐과 슬픔이 가득한 그런 단어이기도 하죠. 그래서 정말 평화가 넘치기를 원하고 우리 아이들에게 자유와 행복과 기쁨이 넘치는 그런 착한 아이들로, 기쁜 아이들로 자라났으면 참 좋겠습니다.

 

원치 않는 아픔의 기억을 가진 사람들은 망각의 문을 통과하는 것조차 맘처럼 쉽지 않은가 봅니다.

 

하지만 기억의 지속을 통해 나의 아픔이 반복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은 똑같습니다.

 

 
1950년 한국전쟁과 1968년 푸에블로호 나포, 2010년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그리고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까지 분쟁의 피해자들은 오랜 시간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RFA는 망각(忘却) 대신 ‘기억의 지속’을 통해 이들이 전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기록했습니다.

 

취재: 노정민, 천소람, 박수영, Monique Mai, Lauren Kim

촬영: 이은규, Lauren Kim, Paul Lee

에디터: Nadia Tsao, 박봉현, H. Léo Kim, 박정우, Beryl Huang, Tina Hsu, Brian Tian

그래픽, 웹페이지 제작: 김태이

내레이션: 양윤정

더빙: 이진서, 홍알벗

번역: 뢰소영

참고 자료: KBS, SBS, YTN, AP

제작: RFA 

 

  • 그 동안 RFA 특별기획 [기억의 지속] 취재에 응해주시고, 협조해주신 모든 분들께 특별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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