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해외 노동자'의 두번째 순서 '늘어나는 작업장 이탈' 편을 이수경 기자가 보도합니다.
2004년 10월, 러시아 극동 지역에서 일하던 북한 벌목공 45명이 작업장을 이탈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북한 벌목공들은 작업장에서 수백 마일 떨어진 반도인 캄챠카(Kamchatka)에서 외국 어선을 타고 제 3국으로 밀항을 시도하다 체포됐습니다. 이 사건은 러시아 주요 신문들의 1면을 장식하면서 세계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당시 캄챠카에서 밀항을 시도하던 북한 벌목공들은 가혹한 노동과 감시, 그리고 임금 착취를 견디지 못하고 탈출을 시도했다고 알려졌습니다. 이 사건으로 같은 해 11월 러시아 정부는 북한 측과 벌목공 파견을 위한 새 계약을 체결하면서 북한 노동자들의 이탈 방지를 최우선 요구 사항으로 내세웠습니다. 러시아 정부가 사실상 늘어나고 있는 북한 벌목공 출신의 탈북자에 대해 우려를 나타낸 사례입니다.
러시아에서 일하는 북한 벌목공들의 이 같은 작업장 이탈은 북한의 경제난이 시작된 1990년대 초부터 끊이지 않았다고 탈북자들은 증언합니다.
1992년부터 1995년까지 러시아를 전전하다 모스크바의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을 통해 남한에 입국한 탈북자 이민복 씨는 당시 모스크바에는 수십 명에 이르는 북한 벌목공들이 거쳐를 옮겨가며 숨어 살고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이민복: 월급 받는 게 없으니까, 국가가 다 가져가고 본인들에게 들어오는 돈이 없으니까 장사를 몰래 하게 됩니다. 초기에는 러시아 사람들의 일을 해주고 돈이 생기면 장사를 합니다. 장사를 하다가 들키고 약속했던 날짜에 작업소에 안 들어가면 위험을 느껴서 탈출하고 어떤 경우에는 러시아에서 의식이 깨어서 의도적으로 탈출하기도 합니다.
탈북자 한창권 씨도 90년대 초 러시아 벌목소를 이탈해 수년 동안 러시아 곳곳을 전전하다 남한행에 성공한 북한 벌목공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한 씨는 1992년 북한을 떠난 직후부터 탈출을 결심했다고 말합니다.
한창권: 북한에서 두만강을 넘어 기차를 타고 40분만 가면 러시아 땅입니다. 러시아 땅으로 들어서자 저는 제가 32년 동안 북한에서 살았던 게 다 거짓이었다는 걸 알았습니다. 러시아 사람들이 입은 옷이며 발전된 시설을 보면서 말입니다.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다 알지요. 말을 못할 뿐입니다.
한 씨는 러시아 벌목소에서 고된 노동과 심한 감시가 계속됐지만 이탈하는 일은 생각보다 쉬웠다고 말합니다. 그곳에서도 뇌물은 통했기 때문입니다.
한창권: 뇌물을 준 뒤 일을 하지 않고 장사하러 돌아다녔습니다. 간부들에게 원하는 물건도 사다 주고 담배나 희귀한 물건도 주고 그랬지요. 그러다 보위부 요원에게 발각돼서 아주 탈출을 결심했습니다.
러시아에서 북한 노동자들이 작업장을 이탈하는 가장 큰 이유는 돈을 벌기 위해서라고 벌목공 출신 탈북자들은 입을 모읍니다. 작업장에서 고된 노동에 시달리고 악착같이 아껴도 북한 당국에 다 바치고 나면 정작 북한 노동자들의 손에 쥐어지는 돈은 얼마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숨어살지언정 작업장 밖에서 막노동을 하거나 다른 장사를 하면 진짜 자신의 돈이 된다는 게 탈북자 한 씨의 설명입니다.
현재 러시아에 얼마나 많은 북한 벌목공들이 작업소를 이탈해 유랑하고 있는지 정확한 통계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다만 벌목소들이 밀집해 있는 연해주에만 2,000여 명의 북한 벌목공이 작업장을 이탈해 숨어 살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한 씨는 전했습니다.
북한과 체코의 합작 신발 공장에서 사장을 하다 2003년 남한에 입국한 탈북자 김태산 씨는 체코에서 일하는 북한 여성 노동자들도 러시아 벌목공들의 처지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합니다. 김 씨는 북한의 여성 노동자들이 체코의 발전상을 직접 본 후 북한의 현실에 대해 의심하지만 고향에 두고 온 가족들 때문에 이탈이 쉽지 않다고 말합니다.
김태산 : 북한의 여성 노동자들은 체코에서도 가슴에 김일성 배지를 달고 일합니다. 시간이 좀 지나면 체코 사람들이 북한에 대해 나쁘게 얘기하는 걸 듣고 의심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가족을 생각해서 다른 생각 하지 말라고 말해 줍니다.
이처럼 해외에서 일하는 북한 노동자들의 이탈이 늘고 있는 가운데 해외에서 일하는 북한의 노동자들의 입지도 점점 좁아지고 있습니다. 북한이 해외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임금을 착취하고 인권을 침해하는 실상이 알려지자 국제사회가 이를 비난하며 주목하고 나섰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체코 당국은 체코에서 일하는 북한 여성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 환경을 우려해 2006년부터 북한 노동자들에 대한 비자 발급을 중단했습니다.
폴란드의 조선소에서 일하던 북한 노동자들도 폴란드 언론이 2006년 이들이 최저 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임금을 받으며 관리자의 감시 속에서 노동 착취를 당하고 있다고 보도하자 폴란드 현지 경찰의 조사까지 받았습니다. 또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중동 국가에서 건설 노동자로 일하는 북한 노동자들의 실상이 2006년 카타르의 수도 도하에서 아시안 게임이 열리면서 드러났습니다. 카타르에서 일하는 북한 노동자들은 낮에는 북한 당국이 계약한 건설 현장에서 일을 마친 후 저녁에는 현지 고용주 밑에서 밤을 세워 일한다는 사실이 공개되기도 했습니다.
북한이 현재 해외에 파견한 노동자는 중국을 비롯해 중동, 아프리카, 동남 아시아 등지에 있는 45개국에서 최소 1만에서 7만 명에 이르고 있다고 알려졌습니다. 한국의 대외경제연구소는 2007년 발표한 자료에서 북한이 해외에 나가 있는 노동자의 임금을 착취해 벌어들이는 돈은 일년에 약 4,000- 6,000만 달러에 달한다고 추정했습니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샌디에이고 캠퍼스(UCSD)의 한국-태평양 프로그램 소장인 스티븐 해거드(Stephan M. Haggard) 교수는 경제난에 직면한 북한이 외화 벌이를 목적으로 해외 노동자의 파견을 확대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Stephan M. Haggard: 북한이 해외 노동자를 통해 버는 외화는 북한의 총 수출액의 5 % 미만으로 적습니다. 하지만 북한에는 흥미로운 외화 벌이의 수단입니다. 북한의 값싸고 수준 높은 노동력은 잠재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해거드 교수는 북한의 값싼 노동력은 큰 잠재력을 가지고 있지만 북한 당국의 인권 침해와 임금 착취가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따라서 북한이 해외 노동자들에 대한 감시를 계속하고 잘못된 임금 계약을 개선하지 않는다면 해외 노동자들을 통한 북한의 외화 벌이도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고 해거드 교수는 덧붙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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