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 생활이 한국 정부 차원에서 처음으로 조사돼 발표되었습니다. 한국의 국가인권위원회가 20일 공개한 결과에 따르면, 20만 명에 달하는 북한 내 정치범 수용소 수감자들이 공개 처형과 고문, 성폭행 등 비인간적인 처사에 희생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번 조사결과는 북한의 수용소가 세계에서 보기 드문 인권사각지대가 되고 있음을 반증해주고 있습니다. 북한에서 9년 동안 수용소 생활을 경험한 탈북자 김영순 씨를 정태은 기자가 전화로 만나보았습니다. 지금부터 들어보시겠습니다.
기자: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생님께서도 수용소에서 수감된 경험이 있으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김용순: 네 저도 9년 동안 있었죠.
기자:
무슨 죄목으로 수감되셨습니까?
김용순:
김정일이 사생활을 잘 알고 있는 것이 죄가 돼서, 그것도 모르고 갔잖아요. 나와서 89년도에 보위부가 다시 불러서 저한테 확인했기 때문에, ‘아 내가 성혜림이 때문에 갔구나’ 이렇게 안거죠. 그러니까 정치범이라는 건요. 거기 간 사람이 뭣 때문에 간지도 몰라요.
기자:
선생님은 어디에 수감돼 계셨습니까?
김용순:
요덕에, 요덕 수용소 혁명화 구역에 3작업반에 5년. 그 다음에 용평리, 평전리 못 나오는 구역에 4년. 그렇게 있었습니다.
기자:
그 안에서 수감생활은 어떻습니까?
김용순:
날아다니는거 다 잡아 먹고, 기어다니는 거 다 잡아먹고, 돋아나는 거 다 뜯어 먹는 수용소. 비타민 결핍증으로 매일 죽어 나가는, 정말 죽음의 시체로 길을 메워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그런,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새까말 때부터 새까말 때까지가 노동시간이거든요. 매일 통강냉이를 질근질근 씹으면서 국물 먹으면서 매일 똑같은 작업을 했다고 생각할 때 사람을 전율케 만드는 거예요. 정신병자가 저절로 되는 거예요.
기자:
그러면, 선생님 수용되시기 전에 재판은 받으셨습니까?
김용순:
재판이라는 거 없이 간다고 그러지 않아요. 정치범이라는 건 그야말로 재판도 없이, 정말 날짜도 없이 기약 없는 길을 가며, 죄명도 모르고 가는 거예요. 정치범 수감소 문전에 갈 때까지 정치범 수용소에 간다는 건 모르고 가요. 그거 절대 알려주지 않습니다. 사회가 알면 어떻게 하겠어요? 그리고 도망쳐 나올 수가 없어요. 3년, 무슨 몇 년 이렇게 기한이 되어있다는 거는 정치범이 아니예요.
기자:
요덕에는 그러면 가족들하고 같이 갑니까?
김용순:
네.
기자:
그럼 부모님은 선생님하고 같이 수용소에 가신거예요?
김용순:
예 일곱 식구가 갔어요.
기자:
선생님께서 부모님을 수용소에서 잃으셨다고 들었습니다. 말씀하시기 어려우시겠지만 그 얘기 잠깐 해주셔도 괜찮으실까요?
김용순:
(웃음) 어머니, 아버지 들어가서 아버지는 1년도 못되어가지고 한 열 달 되었을 땐가 영양실조로 돌아가셨어요. 굶어서 돌아갔죠.
기자:
수용소에서요?
김용순:
네, 수용소에서. 그 다음에 어머니 3년 있다가 돌아가시고.
기자:
영양실조로 부모님을 잃으셨는데, 그러면 그 안에서 음식 제공이 전혀 안되나요?
김용순:
음식제공이라는 건 자급자족이고 노력한 거 만큼 먹는거거든요. 그런데 뭐 평야에서 금방 정말 이밥에 고깃국먹다가 들어가서 통강냉이밥을 70이 넘는 늙은이들이 그것도 차례안지죠. 소화도 못시키고, 그나마도 많이 먹습니까. 뭐 조금 배가 고프니까 점점 뼈만 남아 영양실조로 다 죽었죠.
기자:
수용소에서 임산부에게 폭력이 가해지고, 영아를 살해하는 일도 있다고 하던데요.
김용순:
우리 수용소에서는 아이 낳는거 못봤어요. 그런 임신부도 없어요. 거기 무슨 생활이 있기에 남녀 간에 교제가 이루어져요?
기자:
수감자가 건강에 문제가 있다든지 전염병에 걸렸다든가 다쳤을 때는 약이나 수술을 제공하나요?
김용순:
수술같은거 못하죠. 거기서 벌목, 임산 중대에서 나무를 톱으로 썰잖아요. 써는데 방향감각이 떨어져서 다치잖아요. 그러면 골절이 되었다고 하면 마키롬, 옥도정이나 이런거 바르고 그렇죠. 그걸 뭐 꿰메고 할게 어디있어요. 죽어 마땅한데, 뭐라고 하는지 알아요? 당신네들은 죽어 마땅한데, 위대한 수령님께서 크나큰 배려로 여기와 살게 해주는 것만해도 감사하게 생각하라는 곳인데, 거기다가 대고 다른 발언이 있습니까.
기자:
수용소 안에서 공개처형을 보신적이 있습니까?
김용순:
있어요. 두 명 도망치다가, 청년인데 25세 미만 두 명이 도망치다가 붙들렸는데 가시철조망으로 휘둘러진 수용소에서 도망친다는 것은 그야말로 어리석은 짓이지요. 그러나 오죽했으면 도망을 시도했겠어요? 3작업반하고 4작업반 사이에서 공개처형했어요. 인민의 이름으로 처단한다고.
기자:
정치범으로 수용되었다가 석방되는 경우도 있습니까?
김용순:
제가 9년 동안 석방된 사람을 본 것은 20-30명에 불과해요.
기자:
형을 다 살고 나와서 석방이 되는 건가요?
김용순:
아니, 뭐 형을 알고 갑니까? 나올 때 보면 ‘아 내가 5년 있다가 나왔으니까, 내 죄가 5년인거구나’ 또 ‘9년 있다가 나오니까 내 죄가 9년인 거구나’ 이렇게 자신이 생각하는거죠.
기자:
네, 재판이 없으니까요.
김용순:
네.
지금까지 선생님께서 북한 인권을 위해서 활동하고 계시다고 들었는데, 어려운 말씀 감사합니다. 활발한 활동 부탁드릴게요.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