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정치범수용소 특집] 5부: ‘정치범 수용소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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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 RFA 특집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

아무런 재판도 없이 당사자와 그의 부모 그리고 자녀까지 3대가 끌려가는 정치범 수용소에서는 죽을 때까지 강제노동을 해야 합니다. 죽어서도 나올 수 없다는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 오늘은 ‘정치범 수용소의 비밀’ 편입니다. 진행에는 이진서 기잡니다.

김혜숙: 노동 과제가 있어요. 작업반이 18명 정도 되는데 오늘 정해진 석탄을 몇 톤 해야 한다는 그 양이 있어요...(김혜숙, 18호 관리소 봉창지구 1975-2001 수감)

18호 관리소 체험자 김혜숙 씨는 16살 때부터 채탄공으로 탄광에서 하루 16시간 이상 강제노동을 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15호 요덕 수용소 체험자 강철환 씨는 정치범 수용소에서의 강제노동은 초등학교 들어가면서부터 시작된다며 수용소에서의 인간은 생산도구일 뿐이라고 말합니다. (강철환, 15호 관리소 구읍리, 1977-1987년 수감)

강철환: 죄를 진 장본인을 포함해 그 가족까지 연좌제로 처벌하기 때문에 많은 인원을 수용하는 구역을 필요로 했고 그것이 거대한 수용소가 된 것인데 그 많은 인력을 동원해서 북한 체제를 위해 돈을 벌게 하거나 석탄이나 나무를 만들게 해서 북한 경제에 도움이 되는 즉 싼 인력을 강제노역을 통해서 얻는 거죠. 개천에는 탄광이 있고 요덕에는 광산과 목재가 있고 일해서 돈을 벌 수 있는 것이 풍부해요. 회령에도 석탄이 풍부하고요. 정치범을 이용해 북한 정권이 돈 벌이를 하는 그런 지역에 수용소를 만들어 놨다고 봐야죠. 그냥 죽는 것이 아니라 마지막 피 한 방울까지 다 국가를 위해 받치고 죽어라!

북한당국은 정치범을 사회와 완전 격리된 시설에 보내 북한 주민들에게 공포감을 주려는 목적 외에 강제노동을 통해 수용소 내 자체 수요는 물론 국내 물자수요에도 대응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요덕 수용소 체험자 김영순 씨입니다. (김영순, 15호 관리소 구읍리, 용평리(완전통제구역), 1970-1979년 수감)

김영순: 거기 농사지은 것은 평양이나 안전부로 가요. 인민보안부로 가고요. 수용소 안에 피나무, 옻나무 그런 좋은 나무는 생필직장에서 자재를 만들어서 고급가구를 생산해요. 그곳에서 생산된 모든

좋은 알곡과 생산품은 인민보안부 평양으로 올라갑니다. 그리고 산삼이라도 발견이 되면 선생들(경비대)에게 받쳐야 해요. 또 산돼지, 멧돼지가 내려오면 잡아서 선생들에게 받쳐요.

정치범 수용소에서 가족세대는 식량과 부식을 배급 받고 독신자가 있는 합숙소에서는 규정된 식량을 배식합니다. 식량은 모두 옥수수나 옥수수를 빻은 강냉이쌀로 정해진 배급량을 받기 위해 수감자들은 주어진 노동량을 완수해야합니다. 정광일 씨입니다. (정광일, 15호 관리소 서림천, 2000-2003년 수감)

정광일: 식량은 하루 과제를 줘서 과제를 수행하지 못하면 배급을 안줍니다. 그래서 대부분 사람들이 영양실조로 죽었어요. 약육강식의 법칙이 가장 심한 곳이 북한에선 정치범 수용소라고 봐야겠죠. 내가 일을 조금이라도 더 많이 하면 일을 못한 사람의 밥을 빼앗아 먹거든요. 그러면 빼앗기는 심정을 말할 수 없죠.

북한 정치범 수용소에서는 다양한 물품이 생산됩니다. 농작물은 대표적인 것이 옥수수, 쌀, 채소 등이고 석탄과 철광 등의 광산물 그리고 의류나 자전거, 농기구 등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많습니다. 특히 이러한 생산품은 엄격한 관리 하에 오랫동안 숙련된 노동자들에 의해 만들어지기 때문에 당연히 그 질이 좋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생산품은 평양에 있는 고위간부들에게 공급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런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는 외부에서 볼 때 일반 마을과 식별이 어렵다고 정치범 수용소 경비병 출신 안명철 씨는 말합니다. (안명철 11호(경성).13호(온성).22호(회령)관리소, 1987-1994년 경비대 근무 경험)

안명철: 이제 관리소라고 했을 때는 항공 위성사진으로 내리 찍으면 일반 마을처럼 생겼어요. 그런데 주변을 쭉 보면 철책으로 둘러막혀 있거든요. 면적이 굉장히 넓어요. 22호 수용소 같은 경우는 서울시 3분의 1 크기예요. 그리고 13호는 계곡을 따라 만들어서 22호 보다는 좀 작았어요. 크기에 따라 수용 인원도 틀린데...

미국의 북한인권위원회 그레그 스칼라튜 사무총장은 구금시설에서 수감자들을 강제노동에 동원하는 일은 그 예는 있지만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처럼 혹독한 곳은 없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스칼라튜: 루마니아도 그런 형태가 있었습니다. 다뉴브 강과 흑해 바닷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그런 마을을 두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뉴브 강과 흑해를 연결하는 운하를 만들라고 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소련의 지도자이던 스탈린의 아이디어였습니다. 거기서 일하던 사람들은 주로 정치범들이었습니다. 그 프로젝트의 목적은 완전히 루마니아의 엘리트들을 전멸 시키려는 것이었습니다. 북한 정치범 관리소에는 12만 명 이상이 수용돼 있고 연좌제에 의해 한 가족의 3대가 수감됩니다. 이러한 일은 지구촌 21세기에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재판 없이 보내지는 정치범 수용소지만 수감 대상자에 대한 조사는 철저하게 이뤄집니다. 그리고 수감자의 신상 정보에 대해서는 담당 조사관끼리도 그 내용을 공유하지 못하도록 비밀스럽게 진행됩니다. 10년간 김정일 위원장의 경호원으로 복무하고 제대 후 요덕 수용소에 수감됐던 이영국 씨입니다.

이영국: 내 경력을 보면 경호원 10년 했고 제대해서 무산군당 지도원을 하고, 시가 되면서 대학을 졸업하고 시부부장을 하고 김일성 고급당 학교에서 3년 공부한 걸 알았죠. 나는 중국이 텔레비전에 자꾸 나오고 하니까 호기심에 중국에 갔다가 정치범이 된 거고. 처벌이 무서워서 못 나오고 있으니까 북한이 중국에서 날 체포를 해서 비행기로 실어와 평양에 있는 국가보위부 예심국에 보낸 거예요. 조사 문건을 보면 김정일 별장에 대한 말 그리고 김일성, 김정일 독재자라고 한 말, 남한에 간다고 한 것이 다 나오는 거죠. 그래서 심문을 할 때는 그것을 다룬 사람이 다 알지 못하게 남한에 온다고 한 것은 국가보위부에서 조사하고 경호에 대한 것은 당중앙위원회 호위부 6처 보위부에서 나와서 조사하고 김정일 나쁘다고 한 것은 당중앙위원회 10호에서 나와서 세 분야로 조사했어요. 왜 그렇게 하냐하면 조사하는 사람이 전체를 알면 신격화가 무너지니까 부류별로 나눠서 조사를 하는 겁니다.

북한 정치범 수용소 안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운운한다면 아마도 외계인 취급을 받을지 모릅니다. 그저 수감자는 짐승처럼 생존본능에 따라 움직여야 살 수 있는 힘없는 존재일 뿐입니다.

이영국: 내가 대승리에 있는데 용평, 입석은 완전통제 구역이에요. 거기는 옛날 본인들이 잘못해서 자식까지 전부 들어온 거예요. 당사자는 죽었어도 후대가 거기서 살아요. 3대가 연좌제를 받아와서 그냥 사는데 노동 강도도 심하고 먹는 것도 적게 주고요. 인성을 잃어서 사람 죽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게 된 거죠. 나도 한 300구 묻었어요. 달구지에 싣고 꽃동산에 가는 거예요. 종과 횡을 맞춰서 묻는 거예요. 메고 올라갈 때는 시체에서 물이 줄줄 흘러서 등골에서 꼬리뼈까지 흐르는데 한 열구만 메면 아무 생각이 없어요. 우리도 악마가 되는 거예요. 살아 나가야겠다는 생각밖에는 없고 그러니까 모든 행동이 사람의 행동을 못하는 거죠.

정치범 수용소 관리는 국가안전보위부 제 7국이 전담하지만 법에 기반을 둔 구금시설이 아니기 때문에 그 존재에 대해서는 북한주민들에게 조차 비밀입니다. 대상자를 잡아갈 때도 모두가 잠든 이른 새벽 집을 방문해 잠시 동행 합시다 이런 식이고 호송할 때도 해가 떨어진 밤에 이뤄졌다고 정치범 수용소 체험자들은 말합니다. 현실이 이러하기에 같은 탈북자 조차 정치범 수용소의 실태를 알았을 때 받는 충격은 큽니다. 자유북한방송 김성민 대표입니다.

김성민: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는 사실 북한에서 장교로 또 작가로 있었던 저도 실체를 몰랐을 정도로 북한 주민에게도 철저히 베일에 쌓여있는 곳이었죠. 처음에 사실 저들의 이야기가 사실일까 할 만큼 믿기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강철환 대표나 김영순 여사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 북한 사람들끼리 통하는 ‘마음속의 선’이 있거든요. 금선이 있거든요. 이들이 거짓말을 하지 않는 구나 분명 그곳에서 북한 당국이 이들의 자식과 부모와 형제를 죽였구나 하는 것을 믿게 됐어요. 그러면서 저렇게 험한 곳이 내가 살던 북한에 있었구나 하는 것을 확인하게 됐습니다.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는 체제를 위협하는 사람과 정치적 반대세력을 축출해 사회로부터 격리시킴으로써 체제안정을 유지하는 목적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게다가 정치범 수용소는 경제적 생산시설로 수용소 내의 생산물이 북한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율도 높아져 다방면에서 북한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큰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화여자대학교 김석향 교수입니다.

김석향: 대개 슬픈 예측이긴 한데 북한 정권이 무너지기 전에 정치범 수용소가 없어질 가능성이 굉장히 희박하다고 저는 봅니다. 이유는 북한 내부에서 지금처럼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가게를 최고 존엄으로 인정하고 다른 사람들은 이 사람들의 영광을 위해 복무해야 되는 사람으로 존재해야 하는 한, 사람이 생각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누군가 항상 거기에 반발하는 사람은 있을 것이고 그 사람들을 어딘가 처리를 해야 하거든요. 아예 죽여 버리든지 아니면 어딘가 가둬놔서 일반 사회하고 격리를 해야 하는데 북한에서 말하는 교화소 정도로는 안 되고 완벽하게 격리된 곳이 있어야 하는데 정치범 수용소가 없어질 때 쯤 되면 북한 정권이 무너지거나 근본적인 변화가 와서 개방이 이뤄지거나 그렇게 될 것 같은데 이 얘기를 뒤집으면 북한정권이 존재하는 한 정치범 수용소가 없어질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MC: RFA 특집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 오늘은 ‘정치범 수용소의 비밀’ 편을 전해드렸습니다. 내일은 ‘북한 정치범 수용소 해체돼야 한다’편입니다. 진행에는 이진서 기잡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