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FA 미북 이산가족 특집] ① 70년만에 보내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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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레이션) :미국에 사는 한인 이산가족은 고국을 떠나 이국에 정착해 살면서 북한에 둔 가족과 상봉하는 꿈을 70년 넘게 감춰야 했습니다. 이제 여든이 넘고 아흔을 넘겨가는 이산가족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가족을 찾을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남지 않았음을 호소합니다. 가을 나무에 매달린 낙엽 같은 심정이라는 한인 이산가족들은 생애 마지막 간절한 소원이라며 북한에 있는 가족의 생사라도 확인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배경 음악>

“보고싶다 누이야” 미국이산가족 이야기 “보고싶다 누이야” 미국이산가족 이야기

(나레이션) RFA 미북 이산가족 특집, "보고싶다. 누이야" 오늘은첫 번째 순서로 '70년만에 보내는 편지'입니다. 제작, 진행에 김진국 기자입니다.

<배경 음악>

(이현준)미국에서 산 지 40년이 넘었습니다. 20대에 가족과 헤어져서 평생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습니다. (북한에) 부모와 처, 자식을 버리고 와서 제가 무슨 복을 받겠다고 즐겁게 살았겠습니까. 제발 저를 도와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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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통령에게 북한의 가족을 만나게 도와달라는 요청을 하는 고 이현준 할아버지, 당시 92세. /사진제공: 재미이산가족상봉추진위원회

(김진국) 지금은 고인이 됐지만 당시 92세의 이현준 할아버지가 북한에 있는 가족과의 만남을 열어달라고 미국 대통령에게 간곡하게 요청했던 동영상은 많은 이들의 마음을 울렸습니다. 할아버지는 이제 하늘나라에서 그토록 간절히 원했던 가족을 만났을까요?

(김진국) 미국에 있는 한인 이산가족 규모는 한때 10만명에 이른다고 알려졌지만, 현재 국무부에 등록한 북한 가족 상봉을 희망하고 있는 생존자는 97명. 이들 중 연락이 되는 사람이 10명도 되지 않습니다.

<배경 음악>

(김진국) 기자는 미국에 사는 한인 이산가족을 만나기 위해서 애틀랜타로 향했습니다. 비행기를 타라는 승무원의 안내 방송이 있었습니다.

<배경 음악> + 도착 안내방송

(김진국) 1시간 40분 정도 비행기를 타고 애틀랜타에 도착했습니다. 공항에서 자동차로 40분 정도 이동해서 한인이 많이 사는 둘루스(Duluth)에 왔습니다.

(김진국) 북한이 고향인 이북5도민회 정광일 대표와 만났습니다.

(정광일)반갑습니다. 먼길 오시느라 수고 많았습니다.

(김진국) 인터뷰를 허락한 김도극 할아버지 댁에 도착하니 비가 내렸습니다.

(김진국) 애틀랜타에 사는 김도극 할어버지. (초인종 소리)

(김도극)어서오세요. 수고가 많으십니다.

(김진국) 안녕하세요.

전쟁 피해 일주일이면 될 줄 알았던 이별이 70년을 넘었다

(김진국) 황해도 해주와 평양이 고향인 김도극, 허문정 부부는 어떤 사연이 있는 것일까?

(김도극) 82세입니다. 해주에서 태어났는데 사리원에서 자랐습니다. 9살이었던 1950년 12월 (1·4 후퇴) 고향을 떠났습니다. 조카를 둔 형님은 인민 군대가서 못오시고 아버님은 집을 지킬테니 일주일만 갔다오면 된다며 북한에 남으셨어요. 그렇게 어머님과 함께 내려왔는데 어느새 70년입니다.

(허문정)허문정이고 나이는 79세입니다. 1·4 후퇴 때 가족이 다 함께 남으로 내려왔습니다. 저는 5살이라 어려서 업혔는데 어떤 여자가 애기를 업고 얼어 죽은 모습도 봤습니다. 평양에 다시 가보고 싶어요. 집 앞 모란봉을 보면 봄이 되면 벚꽃이 아주 예쁘게 피어요.

(김도극)한국전쟁이 끝날 무렵 포로 교환 때 인민군이었던 형님은 포로로 잡혀 거제 수용소에 있었지만 가족이 모두 북한에 있는 줄 알고 북으로 돌아갔다는 이야기를 함께 군에 있다가 남한에 남기를 선택한 형님 친구분께 들었습니다. 그 이후 형님 소식과 북한에 남은 아버님 소식을 듣지 못했습니다. 한국 KBS의 이산가족찾기 방송을 봤습니다. 그때 미국에 살고 있어서 직접 가볼 수는 없었습니다. 형님을 다시 만날 수만 있다면 "형님, 여기서 같이 살아" 그렇게 말하고 싶은 아직 못만났어요.

(김진국) 미국에서 5남매를 두고 살았지만 아버지와 형님, 조카들에 대한 70년 넘은 그리움을 자식들에게도 터놓고 말하지 못했습니다.

(김도극)입에 떠 올리기 싫었어요. 자랑스런 일도 아니고 부모와 자식의 연을 갈라놨잖아요, 기억을 되살리고 싶지 않았어요. 하지만 이제는 고향에 가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가족이니까, 미국 정부가 관심을 가진다면 못할게 뭐 있겠습니까. 우리의 간절한 바람이 정부에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서 라고 생각합니다.

(김진국) 김도극 할아버지는 고향 생각이 날때 악기를 연주하며 마음을 달랜다면서 즉석에서 한 부탁을 받아들여 섹소폰 연주도 했습니다. 그리고 북한 고향 땅에 전해지기를 바라며 헤어지고 72년만에 형님에게 쓴 편지를 읽었습니다.

(김도극)고향 생각 날 때마다 연주를 하기도 합니다. 잘 못하지만 해보겠습니다. (뉴월드 심포니95악장 라르고 (Dvorak - Symphony No.9 in E Minor, Op.95 'from the New World', 2. Lar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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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동남부 조지아주 애틀랜타에 사는 김도극 할아버지가 섹소폰 연주를 하고 있다. /RFA Photo

(김도극)"살아 계신지도 모를 김리극 둘째 형님과 조카들에게 보냅니다."

특별한 오늘 , 내가 태어나고 (울먹) 뛰어놀던 고향 북녘 땅으로 보내는 절규의 내 목소리가 전달될 가능성이 높은 기회의 날인가!

일주일 후에 돌아오라며 아버님과 둘째 형님과 형수님의 이별을 고하며 어머님과 두 형님 가족 , 두 누님의 가족이 함께 1.4 후퇴로 인한 피난길에 올랐던 그때가 어언 72년이 흘렀건만 일주일이라는 7일이 이렇게 길어야만 했던가!

아직도 기약없는 기대 속에서 소리쳐 외쳐 봄은 행여 조카들의 자식들에게서나마 응답이 있으려나 하는 가냘픈 기대를 가져봄이 과한 욕심이려나 !

언제 떨어질 줄 모르는 피난민 이산가족들의 바람이 헛되지 아니하도록 미국 정부와 이북정부가 협력하여 천륜으로 맺어진 인연의 소원인 이산가족의 재회와 우리가 태어난 고국 산천을 살아 생전 한번 밟아보게 이루어 달라고 애타게 부탁하여 봅니다 . 나의 외침이 황해도 사리원 정방산에서 메아리쳐 돌아올 것을 기대하며 2023년 2월 미국 땅에서 북녘하늘을 바라보며 멀리보냅니다.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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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형님에게 72년만에 쓴 편지. /사진제공: 김도극 할아버지, 82세.

(배경음악)

(나레이터) 지금까지 << RFA 자유아시아방송 미북 이산가족 특집 “보고싶다 누이야”>> 제1편, ‘70년만에 보내는 편지’를 보내드렸습니다. 내일 이시간에는 제2편 ‘나의 살던 고향은’ 을 전해 드립니다. 제작, 진행에 RFA 자유아시아방송 김진국 기자입니다.

기사 작성 김진국, 에디터 이진서,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