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연평도 선착장.
기온이 뚝 떨어진데다 진눈깨비까지 흩날리면서 한낮에도 손발이 꽁꽁 얼어듭니다.
오늘도 여객선이 도착했지만 손님은 절반도 못 채웠고 그나마 대부분은 연평도 복구를 도우러 온 지원자들과 군인들입니다.
부두에선 군용 차량이 분주하게 오갑니다.
한국 국방부가 오는 18일부터 21일 사이에 북한군의 도발로 중단되었던 연평도 해상사격훈련을 다시 시작하기로 결정하면서 이곳 섬에는 숨 막힐 것 같은 긴장감이 감돌고 있습니다.
급격히 떨어진 날씨 때문에 보일러를 켜기 위해 돌아왔다는 몇 명 안 되는 주민들은 손사래를 치며 몰려든 취재진을 피해갑니다. 일단 취재진에 발만 잡히면 쏟아지는 질문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해안경찰청의 한 간부가 살짝 귀띔을 합니다.
선착장에서 시작된 긴 다리를 건너면 천여 명의 주민들이 모여 살던 오붓한 연평면 마을이 나타나는데 한낮인데도 주민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습니다.
길바닥에 날리는 가벼운 쓰레기들, 부서진 가전제품들과 타다 남은 옷가지들이 되는대로 쌓여있는 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멎어버린 시간 속에서 신음하는 연평도의 상처들이 줄줄이 드러납니다.
낚시꾼들과 관광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는 연평도 민박집 아낙네들의 웃음소리는 간곳없고 잃어버린 주인을 찾아 헤매는 까칠한 고양이 한 마리만 어느 골목길에서 뛰어나오더니 바닷가 덤불속으로 자취를 감춥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철근이 드러나도록 깊숙이 구멍이 팬 콘크리트 방조제와 마주칩니다. 북한군 포탄의 흔적이 그대로 안겨오는 방조제에 올라서니 연평도의 상처를 보는 것만 같아 숙연해 집니다. 북한의 도발 이후 너도나도 없이 해병대에 지원하겠다는 대한민국 젊은이들의 분노가 숭엄한 감동으로 느껴지는 순간입니다.
우리와 만난 연평면 사무소 신성만 면장은 지난 11월 23일에 있었던 북한군의 연평도 포격만행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신성만 면장 :
주민들이 상당히 이번에 충격이 컸어요. 6.25전쟁 때나 서해교전, 1, 2차 연평해전 때도 그런 게 없었는데 이번엔 크게 놀랐어요. 마을에 직접적으로 떨어진 포탄만 30여발이에요. 30여발…
그날의 충격을 말해 주듯 연평초등학교 앞에서 조금 떨어진 골목길에 들어서니 처참하게 부서진 여러 채의 집들이 보였습니다.
지붕이 날아가고 불길에 휩쓸린 채 반쯤 허물어진 집안에 들어 가보니 엿가락처럼 녹아버린 자전거 잔해만 앙상하게 남아 당시의 상황이 얼마나 처참했던 지를 가늠케 했습니다. 이곳을 중심으로 마을 좌측으로는 연평도 수산은행(수협)건물과 경찰 파출소 건물이 유리창 하나 성한 것이 없이 부서졌고 우측 도로를 따라 조금 올라가면 포격에 불탄 몇 채의 살림집이 또 나타납니다.
지난 11월 23일 오후 2시 30분, 북한군은 불의에 연평도를 향해 수십 발의 해안포와 곡사포를 발사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오후 3시 10분부터 약 30분간에 걸쳐 북한은 백여 발이 넘는 방사포를 다시 발사했으며 이로 인해 연평도를 지키던 군인 2명과 민간인 2명이 희생되는 참사가 발생했습니다.
이날 북한이 쏜 포탄은 무려 170여발에 달했고 그 중 연평도에 떨어진 포탄은 80발, 주민들이 사는 마을에만 30여발의 포탄이 떨어졌습니다.
북한은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남한이 먼저 도발을 일으켰고 자신들은 ‘남한군 기지를 정확히 조준해 불벼락을 안겼다’고 주장했지만 이러한 북한 당국의 주장은 이미 미국과 영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들의 위성에 찍힌 사진들에 의해 새빨간 거짓말로 판명 났습니다.
급해 맞은 북한당국은 남한 군이 주민들을 인간방패로 내세워 일부러 민간인 희생을 유도했다는 궤변을 늘여 놓았습니다. 그러나 연평도주민들은 어느 날 갑자기 이곳에 강제로 이주된 사람들이 아닙니다. 대부분의 주민들은 해방 전부터 이곳에 태를 묻고 살아왔습니다.
오히려 연평도 주민들은 북한군의 이번 포격사건이 민간인들을 학살하기 위한 계획적인 도발이라고 증언했습니다.
연평도 주민:
마을 쪽 큰길 매립지, 그쪽으로 무수히 떨어졌어요. 아, 저기 두 사람이 죽은 것도 몰랐어요 첫날은. 그 다음 날 알은 거지…
마을주민들을 살상하기 위해 1차 공격 때에는 곡사포와 해안포를 이용해 파편탄을 발사했고 2차 때에는 대피한 주민들을 상대로 엄폐물을 파괴하고 화재를 일으킬 수 있는 방사포를 발사했다는 것입니다.
북한의 방사포 사격으로 21채의 민가가 처참히 파괴되고 포탄이 떨어진 장소에서 멀리 떨어진 집들까지 유리창이 부서졌으며 건물에 균열이 갔습니다. 전기와 통신시설들도 대부분 파손되었고 소나무가 꽉 들어찬 숲은 절반이상 불타버렸습니다.
북한이 이렇게 민간인들을 상대로 만행을 저지른 것은 분쟁지역일 경우라도 그곳에 살고 있는 주민들의 국적에 따라 실제적 지배를 인정하는 국제법 때문입니다. 연평도에 남한 주민들이 살고 있는 한 북방한계선을 분쟁지역으로 만들기 어렵기 때문에 이곳에서 남한 주민들을 내쫒기 위한 민간인 살육 작전이었다는 것입니다.
전문가들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후계자로 지목된 김정은이 북한 주민들 속에서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는 사정도 이번 사건의 배후에 있다고 지목합니다. 남북정세를 긴장시켜 주민결속을 노리던 기존의 방식을 되풀이했다는 주장입니다.
섬을 이렇게 파괴해 연평도 주민들을 내 쫒으려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타산은 큰 오산이었습니다. 북한의 도발로 인해 대한민국은 오히려 더 크게 뭉쳤고 연평도를 사랑하는 마음들은 끝없는 지원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한국 정부는 연평도 복구를 위해 450억원, 미화로 4천만 달러가 넘는 긴급 자금을 지원했고 사회 각계의 지원으로 주민들을 위한 임시 주택들이 벌써 다 완공되었습니다.
섬 여기저기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우리가 지킨다’, ‘분하고 원통하다 기어이 보복하자’는 구호들이 나부끼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이제 다시 북한이 도발을 하면 모조리 재 가루로 만들어 버리겠다는 비장한 각오를 담은 연평도 군인들의 수기들도 공개됐습니다.
처녀의 아름다움처럼 빨간 단풍을 자랑하던 숲은 섬뜩한 재 가루 속에 묻혔지만 그 잿더미 속에서도 거연히 살아남은 소나무들이 푸른빛을 잃지 않고 꿋꿋이 버티고 있습니다.
다시 살아나는 섬, 아직 주민들이 돌아오지 않아 연평도엔 무거운 침묵이 감돌고 있지만 밤을 밝히는 면사무소의 불빛은 희망찬 내일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더 크고 튼튼한 대한민국의 땅, 아름다운 연평도를 꿈꾸게 합니다.
지금까지 연평도에서 RFA 문성휘입니다.
<시리즈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