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탈북자 2만 명 시대 ①] '가족이 가족을 부른다'
워싱턴-노정민, 차은지 nohj@rfa.org
2010.09.06
2010.09.06
사진-연합뉴스 제공
MC: 남한에 정착한 탈북자들은 자신이 누리는 자유와 풍요로운 삶을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누리기를 원합니다. 남한 내 탈북자 2만 명 시대가 되기까지는 북한에서 고통받는 가족의 탈북을 도와 남한에 정착하게 한 탈북자의 역할이 컸습니다. 이들이 사랑하는 가족을 남한까지 데리고 온 이유는 무엇일까요?
오늘 첫 순서인 '가족이 가족을 부른다' 편에서 요즘의 탈북 형태가 주는 메시지를 알아봅니다. 노정민 기자입니다.
한국 생활 4년 차에 접어든 탈북 여성 지영선(가명) 씨는 지난 7월 한국에 도착한 동생, 현석 씨를 곧 만날 생각에 가슴이 부풀어 있습니다. 현석 씨는 몇 달에 걸쳐 중국과 태국을 경유해 한국에 입국했고 현재 한국 국정원에서 신원 조사를 받고 있습니다.
영선 씨가 위험을 무릅쓰고 동생을 한국에 데려온 이유는 여느 탈북자들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자신이 한국에서 누리고 있는 자유와 풍요로운 삶을 사랑하는 동생도 누리게 하고 싶어서였습니다.
지영선 씨: 내가 북한에서 경험한 것처럼 내 가족들이 그 험악한 세상에서 사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에 자유가 있는 이 남한 땅에서 함께 살려고 여기까지 데려오는 거지요. 거기에 대한 대답은 어느 탈북자에게 물어봐도 마찬가지죠.
동생의 신원을 확인하기 위해 얼마 전 국정원을 방문한 영선 씨는 현석 씨와 만나 짧은 대화를 나눴습니다. 이 때 현석 씨는 탈북 과정에서 처음으로 중국을 경험했고, 한국 정착을 통해 자신이 그동안 속고 살아왔으며 어리석게 행동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고 고백했습니다.
13년이라는 긴 세월 끝에 동생과 다시 만난 영선 씨는 앞으로 돈이 얼마가 더 들더라도 북한에 남은 가족을 남한에 데리고 올 생각입니다.
남한 생활 6년 차인 탈북자 박금희(가명) 씨도 최근 가족의 한국행을 이끌었습니다. 10년 만에 자신의 딸을 한국에 데려온 데 이어 친동생과 외숙모, 조카의 탈북을 도왔습니다. 금희 씨가 한국에서 홀로 행복을 누릴 때마다 가장 사랑하는 가족이 생각났고, 가족들이 함께 행복을 누렸으면 좋겠다는 마음뿐이었습니다.
박금희 씨: 이전에 몰랐던 이 행복을 나 혼자 누리니까 제일 가까운 내 가족이 생각나는 거죠. 북한에서 아무것도 모르고, 먹지도 못하고, 얼마나 불쌍하게 살까... 차라리 데려와서 나처럼 이렇게 행복하게 살았으면 얼마나 좋을까,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고 그럴 바엔 살기 좋은 곳에서 같이 나누어 먹으면서 외로운 마음도 달래며 살고 싶어 데려오는 거죠.
금희 씨 주변의 탈북자들도 대부분 북한에 있던 가족을 데려왔습니다. 처음에 혼자 정착한 탈북자가 자신과 같은 이유로 부모와 형제, 사촌 등 가족 대부분을 한국까지 인도한 것입니다.
박금희 씨: 한 가족이 한꺼번에 온 사람들도 많지만 여기 한 분이 왔다면 사촌부터 삼촌, 고모까지 한 명, 두 명씩 거의 다 데리고 왔더라고요. 빨리 데리고 와서 정말 행복하게 이 좋은 데서 편하게 살게 해주고 싶다는 마음에 우리 주변에는 거의 다 가족을 데려왔어요.
지금은 미국 동부 지방에 정착한 탈북자 이성철(가명) 씨도 조만간 북한의 가족을 데리고 올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성철 씨는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늘 고생만 하는 가족을 생각하면 가슴이 메어집니다. 도움이 될까 싶어 정기적으로 돈을 보내주지만 이제는 차라리 한국으로 데려오는 것이 낫겠다고 판단했습니다.
이처럼 남한에 먼저 정착한 탈북자가 북한에 있는 가족과 전화통화를 하고 가족의 탈북을 이끌어내는 것이 일반화되면서 남한 사회에 정착한 탈북자는 2만 시대에 접어들었습니다. 또 가족이 가족을 부르는 탈북 형태는 북한에 보내는 강력한 메시지일 수밖에 없다는 게 남한에 정착한 대다수 탈북자의 설명입니다. 탈북자 단체인 '숭의동지회'의 최청하 사무국장입니다.
최청하 사무국장: 지금 남한 내 탈북자가 2만 명 시대에 들어서면서 북한에 강력한 메시지를 줬다는 거죠. 탈북자들이 자유사회를 찾으면 살 수 있고, 자유를 누리면서 독재체제에 살지 않아도 충분히 삶을 누릴 수 있다는 생각, 이런 흐름이 북한 주민 속에 흐르기 때문에 많이 탈북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특히 최청하 사무국장은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이 없는 중산층과 고위층의 탈북이 증가하는 현상에서도 이같은 흐름을 읽을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미 탈북했던 가족과 지인들을 통해 남한은 자유세계라는 것을 인식했기 때문에 이런 움직임이 있지 않겠느냐는 설명입니다.
최청하 사무국장: 북한 사회에서는 남한에 대해 몰랐어요. 탈북자들이 시련을 겪으면서 한국에 와 생활해 보니까 '우리가 살 수 있는 땅이구나, 이런 자유세계가 있구나' 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가족을 데리고 오는 거고 이런 인식이 북한 주민에게 강력한 메시지를 주기 때문에 북한 주민이 남한에 많이 오는 것 같습니다. 탈북자들이 북한 주민에게 주는 영향은 정말 지대합니다.
지영선 씨: 한 사람이 와서 2만 명까지 오게 됐다는 것은 이제는 북한 사람들의 생각이 많이 변했다는 것을 의미하죠. 한국에 대한 이미지를 북한에서 배운 것 하고 완전히 틀리게 받아들인다는 거죠.
남한 내 탈북자 2만 명에 관한 통계 수치는 한국 전쟁이 끝난 1953년 정전 기념일을 시작으로 합니다. 한국 통일부의 자료를 보면 1989년까지는 약 600명 정도의 탈북자가 남한에 정착했습니다. 이후 꾸준히 증가해 1998년 한 해에는 300여 명의 탈북자가 남한에 입국했고 2000년도에 들어서면서 한 해 입국한 탈북자 수는 1천 명 이상으로 늘어났습니다.
그리고 2006년에는 처음으로 2천 명이 넘었고 2008년에는 약 3천 명에 가까운 탈북자가 남한에 정착하면서 탈북자 사회는 이제 2만 명 시대가 될 정도로 성장했습니다.
90년 대 이전에는 주로 북한 체제에 반대하는 사상적 이념의 차이로 탈북했다면 90년 대 중반 이후로는 북한의 경제난이 주요 탈북 원인입니다. 한국 통일부 정착지원과의 정강규 서기관은 이처럼 탈북 행렬이 많이 늘어난 이유에 관해 북한 내부의 경제 상황이나 식량난이 심각하기 때문에 굶주림을 피하기 위한 탈출이 주를 이룬다고 자유아시아방송(RFA)에 설명했습니다.
물론 최근에는 비디오와 DVD를 통해 북한 사회에 스며든 남한 드라마와 영화, 음악 등의 영향으로 중산층과 상류층의 탈북도 늘고 있습니다.
정강규 서기관: 지금 현재 2만 명이라는 숫자가 작다면 작고 크다면 크다고 볼 수 있는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향후의 통일 한국의 모습을 생각하면 2만 명에 대해서 한국 정부가 얼마나 2만 명에 대한 정착 지원을 잘해서 온전한 대한민국 국민의 일원으로 정상적으로 잘 생활해 나가고 잘 키워낼 것인지, 앞으로 미래에 관한 시금석이 될 수 있는 중요한 의미의 숫자라고 보입니다.
이처럼 남한에 정착한 탈북자가 급격히 증가함에 따라 탈북자가 남한과 북한 사회에 미치는 영향도 함께 커졌습니다. 때문에 탈북자 2만 명 시대를 맞은 탈북자들의 마음도 새로울 수밖에 없습니다.
올해 남한 생활 16년 차인 탈북자 동지회의 이해영 사무국장은 북한의 변화와 민주화를 위해 앞으로 더 많은 탈북자가 남한에 정착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또 남한에 정착한 탈북자 2만 명 시대를 축하하기 이전에 탈북 과정에서 숨지거나 인권 유린을 당하고 심지어 강제 북송된 주민도 함께 기억해야 한다고 이 사무국장은 덧붙였습니다.
이해영 사무국장: 가장 중요한 것은 2만 명 시대에 안주하고, 많이 왔다고 만족하면 안 될 것 같고요, 이 사람들이 정착을 잘할 때 북한의 민주화가 앞당겨진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떤 경로를 통해서도 북한의 형제들과 연계가 되어 있기 때문에 대한민국에 적응을 잘해서 '대한민국은 좋은 사회다, 자유민주국가다" 이런 이미지를 확실히 북한에 던져줘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이런 메시지를 항상 북한에 들어가게끔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박금희 씨: 어찌 보면 비참하죠. 북한 사람들이 고향이 싫어서 온 것이겠어요? 못 먹고 못살게 구니까 헤어져서 모이다 보니 한국에서 2만 명이 됐다는 것이 어찌 보면 비극이죠. 하지만, 북한 땅에서 살다 왔으니까 북한 땅을 무시할 수가 없어요. 이 땅에 와서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그 사람들이 통일이 되면 여기서 기반을 닦아서 여기에서 이룬 경제를 북한에서 함께 나눌 수 있는 밑거름이 될 수 있지 않겠는가 생각합니다.
탈북자 2만 명 시대. 지금도 남한 내 탈북자들은 북한에 남아 있는 가족에게 새로운 희망과 자유의 세계를 전하고 있습니다. 또 중국과 제 3국을 떠도는 탈북자들은 지금보다 나은 삶과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남한행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한편, 2만 명 시대를 맞았지만 남한에 정착한 탈북자에게 교육과 문화, 언어의 차이에서 겪는 어려움과 남한 사회가 탈북자를 바라보는 편견의 시선은 꼭 넘어야 할 산입니다.
탈북자 2만 명 시대에 대한 긍지를 느끼면서도 성공적인 남한 정착으로 당당히 대한민국 국민으로 성장해 북한의 민주화를 앞당기는 역할을 담당하는 것은 앞으로 탈북자 사회가 풀어야 할 숙제로 남아 있습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노정민입니다.
MC: 탈북자 2만 명 시대 특집 ‘희망을 찾은 사람들’. 오늘 첫 순서로 ‘가족이 가족을 부른다’ 편을 들으셨습니다. 내일은 두 번째 순서로 ‘꿈은 이루어진다.’ 편이 방송됩니다.
오늘 첫 순서인 '가족이 가족을 부른다' 편에서 요즘의 탈북 형태가 주는 메시지를 알아봅니다. 노정민 기자입니다.
한국 생활 4년 차에 접어든 탈북 여성 지영선(가명) 씨는 지난 7월 한국에 도착한 동생, 현석 씨를 곧 만날 생각에 가슴이 부풀어 있습니다. 현석 씨는 몇 달에 걸쳐 중국과 태국을 경유해 한국에 입국했고 현재 한국 국정원에서 신원 조사를 받고 있습니다.
영선 씨가 위험을 무릅쓰고 동생을 한국에 데려온 이유는 여느 탈북자들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자신이 한국에서 누리고 있는 자유와 풍요로운 삶을 사랑하는 동생도 누리게 하고 싶어서였습니다.
지영선 씨: 내가 북한에서 경험한 것처럼 내 가족들이 그 험악한 세상에서 사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에 자유가 있는 이 남한 땅에서 함께 살려고 여기까지 데려오는 거지요. 거기에 대한 대답은 어느 탈북자에게 물어봐도 마찬가지죠.
동생의 신원을 확인하기 위해 얼마 전 국정원을 방문한 영선 씨는 현석 씨와 만나 짧은 대화를 나눴습니다. 이 때 현석 씨는 탈북 과정에서 처음으로 중국을 경험했고, 한국 정착을 통해 자신이 그동안 속고 살아왔으며 어리석게 행동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고 고백했습니다.
13년이라는 긴 세월 끝에 동생과 다시 만난 영선 씨는 앞으로 돈이 얼마가 더 들더라도 북한에 남은 가족을 남한에 데리고 올 생각입니다.
남한 생활 6년 차인 탈북자 박금희(가명) 씨도 최근 가족의 한국행을 이끌었습니다. 10년 만에 자신의 딸을 한국에 데려온 데 이어 친동생과 외숙모, 조카의 탈북을 도왔습니다. 금희 씨가 한국에서 홀로 행복을 누릴 때마다 가장 사랑하는 가족이 생각났고, 가족들이 함께 행복을 누렸으면 좋겠다는 마음뿐이었습니다.
박금희 씨: 이전에 몰랐던 이 행복을 나 혼자 누리니까 제일 가까운 내 가족이 생각나는 거죠. 북한에서 아무것도 모르고, 먹지도 못하고, 얼마나 불쌍하게 살까... 차라리 데려와서 나처럼 이렇게 행복하게 살았으면 얼마나 좋을까,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고 그럴 바엔 살기 좋은 곳에서 같이 나누어 먹으면서 외로운 마음도 달래며 살고 싶어 데려오는 거죠.
금희 씨 주변의 탈북자들도 대부분 북한에 있던 가족을 데려왔습니다. 처음에 혼자 정착한 탈북자가 자신과 같은 이유로 부모와 형제, 사촌 등 가족 대부분을 한국까지 인도한 것입니다.
박금희 씨: 한 가족이 한꺼번에 온 사람들도 많지만 여기 한 분이 왔다면 사촌부터 삼촌, 고모까지 한 명, 두 명씩 거의 다 데리고 왔더라고요. 빨리 데리고 와서 정말 행복하게 이 좋은 데서 편하게 살게 해주고 싶다는 마음에 우리 주변에는 거의 다 가족을 데려왔어요.
지금은 미국 동부 지방에 정착한 탈북자 이성철(가명) 씨도 조만간 북한의 가족을 데리고 올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성철 씨는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늘 고생만 하는 가족을 생각하면 가슴이 메어집니다. 도움이 될까 싶어 정기적으로 돈을 보내주지만 이제는 차라리 한국으로 데려오는 것이 낫겠다고 판단했습니다.
이처럼 남한에 먼저 정착한 탈북자가 북한에 있는 가족과 전화통화를 하고 가족의 탈북을 이끌어내는 것이 일반화되면서 남한 사회에 정착한 탈북자는 2만 시대에 접어들었습니다. 또 가족이 가족을 부르는 탈북 형태는 북한에 보내는 강력한 메시지일 수밖에 없다는 게 남한에 정착한 대다수 탈북자의 설명입니다. 탈북자 단체인 '숭의동지회'의 최청하 사무국장입니다.
최청하 사무국장: 지금 남한 내 탈북자가 2만 명 시대에 들어서면서 북한에 강력한 메시지를 줬다는 거죠. 탈북자들이 자유사회를 찾으면 살 수 있고, 자유를 누리면서 독재체제에 살지 않아도 충분히 삶을 누릴 수 있다는 생각, 이런 흐름이 북한 주민 속에 흐르기 때문에 많이 탈북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특히 최청하 사무국장은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이 없는 중산층과 고위층의 탈북이 증가하는 현상에서도 이같은 흐름을 읽을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미 탈북했던 가족과 지인들을 통해 남한은 자유세계라는 것을 인식했기 때문에 이런 움직임이 있지 않겠느냐는 설명입니다.
최청하 사무국장: 북한 사회에서는 남한에 대해 몰랐어요. 탈북자들이 시련을 겪으면서 한국에 와 생활해 보니까 '우리가 살 수 있는 땅이구나, 이런 자유세계가 있구나' 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가족을 데리고 오는 거고 이런 인식이 북한 주민에게 강력한 메시지를 주기 때문에 북한 주민이 남한에 많이 오는 것 같습니다. 탈북자들이 북한 주민에게 주는 영향은 정말 지대합니다.
지영선 씨: 한 사람이 와서 2만 명까지 오게 됐다는 것은 이제는 북한 사람들의 생각이 많이 변했다는 것을 의미하죠. 한국에 대한 이미지를 북한에서 배운 것 하고 완전히 틀리게 받아들인다는 거죠.
남한 내 탈북자 2만 명에 관한 통계 수치는 한국 전쟁이 끝난 1953년 정전 기념일을 시작으로 합니다. 한국 통일부의 자료를 보면 1989년까지는 약 600명 정도의 탈북자가 남한에 정착했습니다. 이후 꾸준히 증가해 1998년 한 해에는 300여 명의 탈북자가 남한에 입국했고 2000년도에 들어서면서 한 해 입국한 탈북자 수는 1천 명 이상으로 늘어났습니다.
그리고 2006년에는 처음으로 2천 명이 넘었고 2008년에는 약 3천 명에 가까운 탈북자가 남한에 정착하면서 탈북자 사회는 이제 2만 명 시대가 될 정도로 성장했습니다.
90년 대 이전에는 주로 북한 체제에 반대하는 사상적 이념의 차이로 탈북했다면 90년 대 중반 이후로는 북한의 경제난이 주요 탈북 원인입니다. 한국 통일부 정착지원과의 정강규 서기관은 이처럼 탈북 행렬이 많이 늘어난 이유에 관해 북한 내부의 경제 상황이나 식량난이 심각하기 때문에 굶주림을 피하기 위한 탈출이 주를 이룬다고 자유아시아방송(RFA)에 설명했습니다.
물론 최근에는 비디오와 DVD를 통해 북한 사회에 스며든 남한 드라마와 영화, 음악 등의 영향으로 중산층과 상류층의 탈북도 늘고 있습니다.
정강규 서기관: 지금 현재 2만 명이라는 숫자가 작다면 작고 크다면 크다고 볼 수 있는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향후의 통일 한국의 모습을 생각하면 2만 명에 대해서 한국 정부가 얼마나 2만 명에 대한 정착 지원을 잘해서 온전한 대한민국 국민의 일원으로 정상적으로 잘 생활해 나가고 잘 키워낼 것인지, 앞으로 미래에 관한 시금석이 될 수 있는 중요한 의미의 숫자라고 보입니다.
이처럼 남한에 정착한 탈북자가 급격히 증가함에 따라 탈북자가 남한과 북한 사회에 미치는 영향도 함께 커졌습니다. 때문에 탈북자 2만 명 시대를 맞은 탈북자들의 마음도 새로울 수밖에 없습니다.
올해 남한 생활 16년 차인 탈북자 동지회의 이해영 사무국장은 북한의 변화와 민주화를 위해 앞으로 더 많은 탈북자가 남한에 정착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또 남한에 정착한 탈북자 2만 명 시대를 축하하기 이전에 탈북 과정에서 숨지거나 인권 유린을 당하고 심지어 강제 북송된 주민도 함께 기억해야 한다고 이 사무국장은 덧붙였습니다.
이해영 사무국장: 가장 중요한 것은 2만 명 시대에 안주하고, 많이 왔다고 만족하면 안 될 것 같고요, 이 사람들이 정착을 잘할 때 북한의 민주화가 앞당겨진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떤 경로를 통해서도 북한의 형제들과 연계가 되어 있기 때문에 대한민국에 적응을 잘해서 '대한민국은 좋은 사회다, 자유민주국가다" 이런 이미지를 확실히 북한에 던져줘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이런 메시지를 항상 북한에 들어가게끔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박금희 씨: 어찌 보면 비참하죠. 북한 사람들이 고향이 싫어서 온 것이겠어요? 못 먹고 못살게 구니까 헤어져서 모이다 보니 한국에서 2만 명이 됐다는 것이 어찌 보면 비극이죠. 하지만, 북한 땅에서 살다 왔으니까 북한 땅을 무시할 수가 없어요. 이 땅에 와서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그 사람들이 통일이 되면 여기서 기반을 닦아서 여기에서 이룬 경제를 북한에서 함께 나눌 수 있는 밑거름이 될 수 있지 않겠는가 생각합니다.
탈북자 2만 명 시대. 지금도 남한 내 탈북자들은 북한에 남아 있는 가족에게 새로운 희망과 자유의 세계를 전하고 있습니다. 또 중국과 제 3국을 떠도는 탈북자들은 지금보다 나은 삶과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남한행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한편, 2만 명 시대를 맞았지만 남한에 정착한 탈북자에게 교육과 문화, 언어의 차이에서 겪는 어려움과 남한 사회가 탈북자를 바라보는 편견의 시선은 꼭 넘어야 할 산입니다.
탈북자 2만 명 시대에 대한 긍지를 느끼면서도 성공적인 남한 정착으로 당당히 대한민국 국민으로 성장해 북한의 민주화를 앞당기는 역할을 담당하는 것은 앞으로 탈북자 사회가 풀어야 할 숙제로 남아 있습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노정민입니다.
MC: 탈북자 2만 명 시대 특집 ‘희망을 찾은 사람들’. 오늘 첫 순서로 ‘가족이 가족을 부른다’ 편을 들으셨습니다. 내일은 두 번째 순서로 ‘꿈은 이루어진다.’ 편이 방송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