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
북한의 무모한 핵개발로 유엔 대북제재가 실시되면서 북한은 심대한 경제적 손실을 입고 있습니다. 중국도 유엔제재에 동참하면서 북-중 교역은 평소보다 크게 줄어들었지만, 대신 국경지역에서는 비공식 무역, 즉 밀수가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저희 자유아시아방송(RFA)은 최근 1,400km 북-중 국경 지역에 대한 현지 취재를 통해 북-중 교역의 실상을 알아보았습니다. 앞으로 다섯 차례에 거쳐 생생한 현장소식을 전해드립니다. 오늘은 그 첫 순서로 북-중 밀수실태를 보내드립니다.
<뱃고동 소리, 파도소리>
중국 단동시(丹東市)에서 동강(東港) 방향으로 약 6km 정도 떨어진 랑두(浪頭). 단동은 10월 중순인데도 해가 지면서, 쌀쌀한 바닷바람이 옷깃을 파고듭니다.
밀물이 들어오기 시작하자, 썰물에 누웠던 풀대들이 고개를 쳐듭니다. 이윽고 조용하던 바다에서 배의 발동소리가 적막을 깨트립니다.
<배의 발동소리>
10여 년간 단동에서 밀수를 하고 있다는 김상민(가명)씨는 이곳에 북한 배들이 자주 출몰한 다고 귀띔합니다. 근 60여만 명의 인구가 사는 단동을 중심으로 북중 교역의 80%가 이뤄지고 있는 동시에 이 지역은 대표적인 밀수거점으로 유명합니다.
시계가 10시를 가리키자, 바다 쪽에서 퉁퉁거리며 소형 배 1척이 중국쪽 대안(對岸)에 붙습니다. 소형배의 깃대위에는 공화국기(인공기)가 나부낍니다. 개털 외투를 걸친 30대 중반의 군관(장교)으로 보이는 지휘관 한 사람과 기관장으로 보이는 주민 1명, 그리고 머리를 빡빡 깎은 병사 3명의 모습이 나타납니다. 이때 가로등이 훤하게 켜진 중국 쪽 도로에 2.5t 트럭 한대가 다가오더니 거기서 10여명의 중국인 인부들이 내립니다.
<중국인의 말소리…>
기자가 밀수 현장에 다가서자, 우두머리로 보이는 중국인이 다짜고짜로 무슨 일 때문이냐고 묻습니다. 김 모 씨가 나서 성이 왕가인 밀수계의 우두머리 이름을 대면서 그와 친구라고 밝히자, 그제야 이 중국인은 말투가 수그러듭니다.
김상민:
성이 무엇인가?
중국인:
조(曺)씨요.
이윽고 트럭에서 가로, 세로, 높이가 1m가 넘는 짐짝들이 떨어집니다. 중국인부들은 짐짝들을 굴려 북한 배에 싣습니다.
기자:
무슨 짐인가요?
중국인:
옷이요.
중국인이 옷이라고 대꾸하지만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확인할 수 없습니다. 북한 군인들은 배를 도로 안전 방호책에 밧줄로 비끄러매고, 중국인들이 굴려온 짐짝들을 배에 싣습니다.
<중국인들의 말소리, 북한 군인들의 말소리 >
중국인:
빨리 빨리 배에 실어.
북한군인:
야. 야. 거기에 놓으면 떨어져. 안에다 쌓아.
기자:
밀수를 몇 년 동안 했어요?
중국인:
난 18년 동안 했소.
기자:
북한에서 어떤 물건을 요구합니까,
중국인:
어떤 물건이든 돈이 되는 것이면 다 해요. 그들이 뭘 요구하면 뭐든지 가져다주고…
이때 갑자기 굴러 내려오던 짐짝 하나가 배와 부두사이에 빠집니다.
북한군인:
야, 야 짐이 빠진다.
중국인:
야, 000들, 일을 바로 안 해, 빠지지 않게 당겨라!
바빠 맞은 중국인부 3명이 짐짝이 바닷물에 빠지지 않게 붙들고, 배에 탔던 북한 군관은 밧줄을 잘못 맨 군인에게 욕을 퍼붓습니다. 짐이 얼마나 무거운지 여섯 명이 겨우 들어 올립니다.
자동차에서 짐이 거의 부려질 무렵. 또 다른 차가 그 장소에 도착합니다. 차에서는 40대 중반의 조선말을 유창하게 하는 여성이 내립니다. 그 차에 실려 온 짐짝도 북한 배에 실려집니다.
중국 쪽에서 짐을 다 실어주자, 이번에는 북한 배에서 동과 잣, 산나물 등이 중국차에 옮겨집니다. 불과 10분 사이에 벌어진 광경입니다. 순식간에 물건을 옮겨 실은 북-중 밀수꾼들은 떠날 차비를 합니다. 통역으로 보이는 이 여성은 북한쪽 군관과 이야기를 나눕니다.
북한 군관:
모두 몇 개요?
여성:
30개.
북한군관:
그럼 좀 모자라잖아요.
여성:
이제 조금 있다가 또 나올게요. 가져온 물건은 틀림없지요?
북한 군관:
걱정 마시오.
일을 마친 북한 배가 현장을 떠나기 위해 발동을 겁니다.
<배의 발동소리…>
이때 북한쪽 군관이 중국인들을 향해 소리칩니다.
북한 군관: 아주머니, 전화비 좀 넣으라고 하세요.
중국인:
알았서 됐어. 가라.
중국인이 서툰 조선말로 배 쪽을 향해 소리칩니다.
<배의 발동소리>
중국이 옷, 잡화 등 공산품을 보내면 북한은 동이나 잣, 산나물 등을 줍니다. 때에 따라서는 북한 밀수꾼들이 미국 달러를 보내기도 한다고 95년 북한에 있을 때 중국과 밀수한 경험을 가지고 있는 탈북자 박금철 씨의 말입니다.
“내가 밀수할 때는 거의 동만 했고요. 잣이나 농토산물, 누에고치 같은 것은 배에 싣고 바다로 나가서 했고요.”
밀수가 성행하는 신의주 지역에는 강냉이밥을 먹는 사람들이 극히 적을 정도로 경제 상황이 다른 지역보다 훨씬 낫다고 안내에 나선 김상민 씨는 말합니다.
북한과 중국 간 밀수는 중국 손 전화로 진행됩니다. 손전화가 나오기 전에는 사람들이 전짓불을 이용해 깜박거리면서 위치를 알리고 밀수했지만, 지금은 중국 쪽에서 손전화를 북한에 보내 서로 연락합니다.
북한당국이 손전화 단속을 심하게 하기 때문에 대부분 북한 밀수꾼들은 전화기를 끄고 있다가 중국 대방과 연락할 일이 있을 때만 켜놓습니다. 전화비용은 일체 중국에서 대주고 있습니다.
18년 동안 북한과 밀수를 해온 조 씨는 단동시에 중국 돈 50만 원(미화 8만 달러)짜리 집을 덩실하게 사놓았다고 주변 밀수업자들은 말합니다. 중국 쪽 밀수꾼들은 한탕에 보통 중국 돈 수 천원, 많게는 1만원을 법니다.
기자:
저렇게 밀수하면 하루 저녁에 얼마나 법니까?
김상민:
몇 천원은 벌지요. 잘하면 만원은 벌고요.
압록강에서 중국과의 밀수는 북한 국경경비대 군인들이 도맡아 합니다. 국경경비대 군인들은 중국인들이 요구하는 물건을 북한 주민들로부터 모집한 다음 밤에 배를 이용해 중국에 보냅니다. 이곳에 근무하는 군인들은 제대할 때 미화 1만 달러 이상 버는 것이 목표라고 합니다.
중국의 밀수꾼들은 대부분 북한에 건너가지 않고 북한 군인들을 중국 쪽에 불러들입니다. 왜냐면 북한 군인들이 총을 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2008년 4월에도 중국 동강에서 평안북도 용천군에 건너갔던 중국인 3명이 북한 군인들의 총에 맞아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래서 중국인들은 북한에 가기를 꺼려합니다. 북한 군인들이 국경침범을 했다고 총을 쏘는 일이 다반사라고 조선족 사업가 박상천(가명)씨는 말합니다.
“무슨 일이 있으면 (북한 사람들에게)건너오라고 한다. 그러면 자기 목숨은 잃어버릴 우려는 없지 않아요.”
중국 밀수꾼들은 변방부대에 뇌물을 먹이고 진행하기 때문에 중국정부도 밀수행위를 막을 방법이 없습니다. 북-중 국경지역은 살길을 찾아 탈북하는 사람들에게 유일한 탈출구로 되는 동시에 경제적으로 피폐해진 북한의 수명을 연장시켜 주는 생명선으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정광민 박사의 말입니다.
“대북제재 이후에 북한이 외화사정이나 이런 것들이 원활하게 돌지 못하면서 밀수 같은 것으로 나갈 수밖에 없지 않는가하는 생각이 듭니다.”
국제사회의 경제봉쇄 속에서 구멍이 뚫려버린 북-중 국경. 미국 등 서방국가가 경제봉쇄를 소리높이 외쳐도 북한이 살아남을 수 있는 생명줄이 단동지역의 밀무역에 있다고 무역관계자들은 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