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당국이 선전매체를 통해 소개하는 북한의 모습에는 웅장함과 화려함만이 가득합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감추고 싶은 북한의 참모습이 있습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은 '2분 영상, 북한을 보다'시간에서 실제로 북한에서 촬영한 동영상을 통해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오늘날 북한의 실상을 꼬집어봅니다.
<북한 서민경제의 상징, '리어카'>
- 역전․시장 등에서 리어카로 돈 버는 북한 주민
- '손수레꾼'․'딸딸이꾼․'구루마꾼' 등으로 불려
- 손수레 하나로 돈벌이 가능, 남녀노소 뛰어들어
- 짐의 양․거리 따라 가격 흥정하고 서비스도 제공
- 수요 늘어나면서 오늘날 당국의 단속에도 손수레꾼 많아
일본의 언론매체인 '아시아프레스'가 2013년 3월에 촬영한 평안남도 평성시의 평성역 앞.
짐을 내려놓고 기다리는 사람들, 역을 드나드는 사람들, 또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로 역 앞은 매우 붐비는데요, 그런데 리어카, 즉 손수레를 놓고 서 있는 북한 주민이 눈에 띕니다.
한두 명이 아닌 여러 명의 북한 주민이 손수레를 옆에 놓고 역 출구에서 승객을 기다리고 있는데요, 마치 서방국가의 공항이나 기차역 앞에서 승객을 기다리는 택시와 흡사한 풍경입니다.
이들은 승객의 짐을 날라주는 수레꾼들인데요, 수레로 짐을 대신 옮겨주고 돈을 법니다. 북한에서는 딸딸이꾼, 또는 구루마꾼이라고 불리는데요,
마침 청진행 열차가 도착했습니다. 일부 승객이 짐을 수레에 싣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손수레에 짐을 한가득 실은 주민이 서둘러 떠날 채비를 하는가 하면 아직 손님을 찾지 못한 손수레꾼도 마음은 급해졌습니다.
이렇게 손수레는 북한 주민에게 매우 중요한 생계수단이 됐는데요, '아시아프레스' 오사카 사무소의 이시마루 지로 대표의 설명입니다.
[Ishimaru Jiro] 북한 당국에서 리어카 일을 하는 사람, 즉 짐꾼을 손수레꾼이라 부르지 않습니까? 원래 손수레 짐꾼은 협동으로 일했습니다. 사회주의 경제가 살아있었을 때 조금 큰 역 앞에는 허가를 받은 짐꾼이 리어카 앞에 번호를 달고 운영했죠. 그 허가증이 없으면 운영하지 못했고요, 이것도 사회주의 협동조합 식으로 운영되고, 그 사이에 이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시장 경제가 발달하고 짐을 운반하는 수요가 폭발적으로 많아지면서 여기에 진입한 새로운 사람이 많았습니다. 단순 운수시장이죠.
'아시아프레스'에 따르면 북한에서 손수레의 역사는 짧지 않습니다. 1998년 강원도 원산에서 촬영한 동영상에서도 장마당에서 손님을 기다리는 손수레를 많이 볼 수 있는데요, '고난의 행군'이라 불릴 만큼 경제 상황이 매우 나빠지면서 개인이 수레를 끌고 경제활동에 나서기 시작한 겁니다.
당시 동영상에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손수레꾼으로 나선 북한 주민을 볼 수 있는데요, 아예 수레 안에 앉거나 누워 하염없이 손님을 기다립니다.
2005년에 촬영한 함경북도 청진시. 네 명의 여성이 땔감을 실은 손수레를 끌고 갑니다. 한쪽에서도 두 명의 북한 주민이 손수레로 땔감을 옮기고요,
2008년 황해북도 청진시에서 촬영한 동영상에는 가격을 놓고 손님과 손수레꾼이 흥정을 벌이고 있습니다.
[손수레꾼] 2천500원에 해 달라요. 시원하게. 2천500원이면 편안한 가격이에요.
손님이 2천 원에 하자니 손수레꾼은 '그럼 가방을 도로 빼라'며 물러서지 않는데요,
[손님] 2천 원에 하자요.
[손수레꾼] 그럼 가방 다 빼라.
그런데 자세히 보니 흥정은 어른 남성이 하고 손수레는 어린 소년이 끌고 있습니다.
이처럼 북한에서는 오늘날에도 손수레꾼이 적지 않은데요, 열차 이용객의 짐, 시장의 물건, 석탄․땔감 운반 등 수요가 넘치면서 많은 북한 주민이 손수레로 돈을 벌고 있습니다.
[Ishimaru Jiro] 지금도 대단히 많죠. 역 앞은 물론 석탄도 날라주고, 시장 등에는 수요와 공급이 있으니까 (손수레꾼을) 없앨 수가 없을 겁니다.
물론 운송비의 가격은 짐의 양이나 거리에 따라 다릅니다.
2013년에 촬영한 평안북도 신의주시. 부부로 보이는 남녀가 커다란 리어카를 끌고 철길을 건넙니다. 촬영자가 다가가 운송비를 물어보는데요,
- 구루마로 실어주는 것 얼마에요?
[손수레꾼] 어디까지?
- 저 아파트까지
[손수레꾼] 6천 원. (올려다 줘요?) 응.
- 아니 어떻게 올라가나?
[손수레꾼] 마대에 담아서 올라가지.
아파트까지 짐을 날라주는 것 외에도 집까지 짐을 올려다 준다는 손수레꾼의 말에서 운송과 서비스를 함께 제공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손수레꾼도 당국의 단속을 피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대부분 허가를 받지 않고 개인이 자유롭게 운영하기 때문에 이를 용납하지 않는 북한 당국이 수레를 압수하기도 하는데요,
2008년 황해남도 동해주에서 촬영한 동영상에는 북한 당국이 주민의 리어카를 압수하고 있습니다. 한두 대가 아닌 여러 대를 강제로 회수하는데요,
한 여성이 수레를 뺏기지 않으려 애써보지만, 힘 있는 남성은 막무가내로 끌고 갑니다. 손수레를 빼앗긴 여성은 속상함과 답답함에 푸념을 늘어놓는데요,
[북한 여성] 신나겠다. 다 가져가서. 굶어 죽으라는 거지.
- 저거 찾으러 오라는 건가?
[북한 여성] 안 주겠다는 거지. 무슨...
[Ishimaru Jiro] 무허가로 하는 것에 대한 통제라고 말할 수 있죠. (손수레꾼은) '고난의 행군' 이후 많아졌는데, 무허가 손수레꾼은 자유노동자거든요. 국가가 통제 못하는 노동은 있을 수 없어요. 또 노동당에서 관리하지 못 하는 현장은 있을 수 없는데, 그런 것을 직업으로 해서 먹고 사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이것도 비사회주의란 의미에서도 통제를 많이 했는데, 시장의 힘을 이길 수 없었죠. 시장의 요구가 있으니까 계속해서 노동 시장에 참여하는데, 결국 이것을 막지 못하는 것이 현재 상황입니다.
이 밖에도 '아시아프레스'가 북한 곳곳에서 촬영한 동영상을 보면 손수레를 끌고 길거리를 누비는 북한 주민의 모습을 너무나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당국의 단속에도 손수레는 서민 생활의 필수품으로 자리 잡았는데요,
[Ishimaru Jiro] 손수레도 작은 것이 있고, 큰 것이 있습니다. 큰 것은 바퀴가 타이어입니다. 이것은 고급이니까 만들어주는 전문가가 있다고 합니다. 단순한 작은 것은 기술만 있으면 집에서도 만들 수 있죠. 또 만들어 팔기도 하고요. 손수레 자체가 생산수단이니까 이것을 구매한다는 것은 사업에 대한 투자라 할 수 있습니다. 원시적이지만, 아주 자연스럽게 일하기 좋은 시장경제라 볼 수 있습니다.
북한 주민의 일상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손수레. 단순히 짐을 나르는 수단에서 벗어나 이를 이용해 돈을 벌고 생계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는데요,
짐의 양과 거리에 따라 가격이 정해지고, 가격 흥정이 이뤄지며 서비스가 제공되는 등 손수레는 북한 주민의 생활 깊숙이 파고든 시장경제의 또 다른 상징이 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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