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정착 탈북자 일가족 특별 대담 ③ 미국, 기회의 나라로
워싱턴-이수경 lees@rfa.org
2009.09.28
2009.09.28
사진- 318 파트너즈 제공
자유아시아방송은 지난 23일 저희 방송국을 방문한 서씨 가족과의 특별 대담을 모두 세차례에 걸쳐 보내드리고 있습니다. 앞서 방송된 1부와 2부에서는 서씨 가족이 북한을 떠나야 했던 이유와 3국까지 목숨을 건 탈북 과정을 전해드렸습니다.
오늘은 서씨 가족이 미국 생활에서 겪은 경험들을 얘기해 보는 마지막 순서로, 제 3부 ‘미국, 기회의 나라로’를 보내드립니다.
진행에 이원희 이수경 기자입니다.
이수경: 네 지난 시간에는 북한을 떠나 중국으로 중국에서 다시 남방 경로를 거쳐 라오스로 탈출한 과정에 대해 자세한 얘기를 나눠봤는데요, 지난 6월 드디어 난민의 자격으로 미국에 도착하지 않았습니까? 북한에서는 미국을 적대국으로 교육하고 있는데요, 실제로 미국에 도착했을 때 첫인상이 어떠셨나요?
서원경: 저는 미국이 강대국이란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북한에서는 미국을 철천지 원수 미제 침략자, 제국주의라고 떠들지만 저는 중국에서 외부 방송을 들으면서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미국에 도착했을 때는 내 꿈과 환상이 현실로 이뤄지니까 어찌나 좋은지 날아갈 것 같았습니다. 제 나이가 50이 넘었는데 이제 꿈이 이뤄지니까 참 좋습니다. 제가 젊은 시절에는 공부도 잘했는데 아버지가 남한에서 왔고 삼촌이 일본에 살았다는 이유로 대학도 못가고 군대도 못갔단 말입니다. 그래서 김정일과 김일성에게 원한이 많았습니다. 미국에 오니까 그들이 보란듯이 잘 살고 싶은 생각이 있습니다.
이원희: 어머니 김연화 씨는 미국에 대한 첫인상이 어떠셨나요?
김연화: 저는 북한에 살면서 북한만 좋은줄 알았는데 미국에 오니까 미국 사람들 인상이 다 좋고 도덕이 참 밝습니다. 북한 사람들은 먹고 살기 바빠서 서로 쳐다봐도 인사도 안 하는데, 미국은 아침에 마주치면 서로 모르는 사람하고도 인사를 하니까 같이 기분이 좋습니다. 북한에서 교육을 받기로는 미국은 제국주의이고 한국은 못살아서 빌어 먹는 사람도 많다고 해서 그런 줄만 알았습니다. 지금 현실에 와 보니까 완전히 다릅니다.
서철: 저는 텔레비전에서 미국에 대해 본 적이 있었습니다. 북한에서 한국 텔레비전은 못 보게 막는데 미국 텔레비전은 조금 볼 기회가 있습니다. 물론 보면 안되지만 말입니다. 중국에 와서 또 한국 텔레비전을 많이 봐서 미국에 대해서 많이 알고 있었습니다. 북한 사람들이 대체로 미국이 철천지 원수라고 말은 그렇게 하지만 실제 사람들 생각은 그렇지 않습니다.
서철용: 제가 처음에 미국에 가고 싶다고 생각한 게 10살 때였습니다. 당시 저희 어머니를 정부에서 없는 죄를 만들어서 감옥에 가게 했습니다. 북한이 제일 미워하는 나라가 미국이 아닙니까? 그래서 내가 미국에 가서 꼭 복수하겠다는 생각을 그 때부터 했습니다. 북한에서는 미국을 사람 죽이는 나라로 선전합니다. 어린 생각에 내가 사람 죽이는 나라에 가서 우리 엄마를 그렇게 한 너희들을 가만히 안 놔두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이후에 아버지가 두번째 중국에 가셨을 때 저도 제 친구와 같이 중국에 가려고 압록강을 건너려고 했습니다. 근데 강에 들어서자 물살이 너무 강해서 꼭 죽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체력을 보강해서 다시 건너가자 하고 포기한 적이 있었습니다. 나중에 아버지하고 같이 중국에 갈 수 있었고 이렇게 미국에 오게 되서 너무 좋습니다.
이수경: 구체적으로 어떤 점이 가장 좋나요?
서철용: 가장 충격적으로 마음에 들었던 점은 저희 집 앞에 상점에 갔을 때였습니다. 껌을 사려고 했는데 주머니에 돈이 없었어요. 그래서 그냥 안사고 나가려고 했는데 어떤 알지도 못하는 미국분이 돈을 2달러를 내 놓으시면서 사주시더라구요. 그 때 아! 내가 지금까지 생각했던 미국이 잘못됐구나. 미국은 이런 나라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수경: 미국인들의 관대함과 친절함이 인상 깊었다는 얘기군요. 하지만 미국은 말도 틀리고 문화도 완전히 달라서 적응하는 데 힘들었던 점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3개월 동안 미국에서 생활하면서 다른 문화 때문에 겪은 일화가 있나요?
서철용: 저는 어머니와 마찬가지로 미국 사람들이 아침에 서로 인사를 하는 문화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이수경: 철용 씨도 같이 하시나요?
서철용: 네
이수경: 저희 청취자 분들에게도 미국식으로 인사 한번 해 주시죠.
서철용: 네 미국 사람들은 아침에 만나면 굿모닝? 이라고 말합니다. 그럼 같이 하이! 굿모닝! 이라고 말하는데 아주 즐겁습니다.
이수경: 아버님께서는 새로운 생활에 적응하는 데 어려운 점은 없으신가요?
서원경: 지금도 어렵고 앞으로도 쉽지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중국에서 공안에 피해다니며 살던 때와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 때를 생각하면서 여러워도 참고 견디면서 잘 정착해야 한다는 각오입니다.
이원희 : 어머니께서는 요즘 하루를 어떻게 보내시나요? 가족들 뒷바라지 하시느라 바쁘시지요?
김연화: 가족들이 서로 집에서 네가 할일 내가 할일 없이 가정에서 함께 청소도 하고 아침에 일어나면 음식하는 일도 도와주고 그럽니다. 참 재밌습니다. 아침에는 밥도 하고 떡 지짐도 하고, 음식이 다양하고 많으니까 이것도 해먹고 저것도 해먹고 매일 다르게 먹습니다. 북한에서는 한가지만 고정으로 먹었는데 여기서는 아이들에게 음식을 해주는 재미도 있습니다.
이수경: 아버님의 하루 일과도 궁금한데요, 일자리는 구하셨나요?
서원경: 주변에 같이 일하자는 한국 분이 있는데 지금은 아들 둘과 내가 일주일에 토요일 하루만 같이 나가서 일합니다. 나머지 닷새는 무상으로 영어 교육을 제공하는 곳에서 공부를 합니다. 일요일에는 교회에 갑니다. 이 생활이 아주 마음에 듭니다.
이원희: 영어 공부가 어렵지는 않나요?
서원경: 내 나이에 힘이 듭니다. 그런데 학교에 공부하러 다니다 보니까 머리에 영어가 들어오긴 합니다. 우리 아들들은 대단히 빠릅니다.
서철용: 저는 학교 다녀와서는 컴퓨터로 영어 공부도 하고 그 외의 시간에는 동네에서 자전거 타면서 운동을 합니다.
이원희: 아직까지는 정부의 지원을 받고 있는 상태인가요?
서원경: 네 아직은 정부의 지원을 받고 있고, 앞으로 자립해야할 시기가 옵니다. 자립의 계획은 특별히 없지만 나가서 일자리를 찾아서 일하고 싶습니다.
이원희: 정부에서 일자리를 소개해 주나요?
서원경: 네 소개해 줍니다. 우리를 도와주는 난민 단체에서 직업을 소개해 줍니다.
이수경: 앞으로 미국에서 일자리도 구해야 하고 공부도 해야 하는데, 미국에서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서원경: 여기에 온 것 자체가 저에게는 성공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돈을 벌어서 아이들을 공부시키는 것이 제 큰 꿈입니다. 그 꿈을 위해서 앞으로 일을 할 것이고 미국에서 일하는 것이 제게는 즐거움입니다. 아이들이 커서 미국에서 어떤 일을 했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도 해보긴 했는데 내 뜻대로 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
김연화: 저도 여기서 적응해서 장사를 시작해서 자식들이 생활하는 데 도움을 많이 주고 우리가 남한테 손 내밀지 않고 떳떳하게 살고 싶습니다. 북한에서 사는 정치가들보다 우리가 더 좋은 곳에서 산다고 자랑하고 싶습니다.
서철용: 저는 미국 군대에 가고 싶습니다. 군대를 마치고 경제학을 공부하고 싶습니다.
서철: 저는 돈을 많이 벌고 싶습니다. 돈을 많이 벌어서 저한테 못되게 굴던 북한의 간부들을 혼내주고 싶습니다.
이원희: 엄마, 아버지, 큰아들이 모두 돈을 벌겠다는 꿈을 가지고 계신데요, 머지않아 큰 부자가 나올 것 같습니다. 저희 방송을 듣는 청취자 가운데 제 3국에서 고생을 하고 계신 탈북자들이 있습니다. 그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특히 그 가운데서도 미국에 오고 싶어하는 탈북자들에게 조언을 해 주신다면?
김연화: 탈북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한국에서는 정착 비용으로 돈을 주지만 미국에서는 푸드 스탬프, (식품권)을 주면서 생활을 조절해 줍니다. 식품권도 빠듯하게 주는 것이 아니라 풍족하게 줍니다.
서원경: 한마디로 요약해서 말하면 어떤 탈북자들은 미국이 한국보다 부유하니까 한국보다 돈을 많이 주는가 하는 탈북자도 있습니다. 돈을 바라고 여기 미국에 오지 마시길 바랍니다. 돈 바라고 미국에 오는 사람은 살지 못합니다. 자기 스스로 돈 벌어서 살고자 하는 사람들이 여기 미국에 오면 잘 될 것입니다. 나도 그런 생각을 하고 왔고 앞으로 공짜 돈을 바라지 않고 스스로 일하려고 합니다.
이수경: 서철용 씨의 경우 또래의 북한 친구들에게 해주고 싶은 얘기 없으신가요?
서철용: 우선 중국에 있는 친구들은 마음을 굳게 먹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미국이나 한국에서는 8살짜리 아이들도 컴퓨터 다 할 줄 압니다. 그러니까 중국에서 컴퓨터도 배우고 산수도 혼자 공부하고 영어도 공부해야 합니다. 중국 생활이 힘들다고 해서 실망하지 말고 그 생활을 앞으로 살아가야 할 날들의 실험장이라고 생각하고 이겨내야 합니다. 그렇게 이겨내면 성공하리라 생각합니다.
이수경: 늘 미래를 준비하는 자세로 생활해야 한다. 참 좋은 조언입니다. 형인 서철 씨도 하시고 싶은 말이 있을 것 같아요.
서철: 아마 지금도 북한에서 라디오를 듣는 분들이 있을 것이라고 짐작합니다. 지금 듣고 계시는 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꼭 자식들 공부시키고 본인 스스로 꼭 공부를 하기를 바랍니다. 제가 북한에 있을 때는 공부가 별로 소용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때는 제가 탈북해서 미국까지 오리라 생각을 못했기 때문입니다. 지금 생각하면 후회가 되는데요, 꼭 공부를 하시라고 당부하고 싶습니다.
이원희: 네 오늘 서원경 씨 댁의 온 가족과 함께 얘기 나누다 보니까 시간이 벌써 다 되었습니다. 앞으로 건강하시고 미국에서 잘 정착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MC: 네 지금까지 지난 6월 동남아 국가 라오스에서 난민 인정을 받고 미국에 정착한 탈북자 서원경 씨 가족과 탈북과정과 미국에서의 생활에 대해 얘기 나눠보는 특별 대담 시간, 그 마지막 순서로‘미국, 기회의 나라로’편을 보내드렸습니다.
진행에 이수경 이원희 기자였습니다.
진행에 이원희 이수경 기자입니다.
이수경: 네 지난 시간에는 북한을 떠나 중국으로 중국에서 다시 남방 경로를 거쳐 라오스로 탈출한 과정에 대해 자세한 얘기를 나눠봤는데요, 지난 6월 드디어 난민의 자격으로 미국에 도착하지 않았습니까? 북한에서는 미국을 적대국으로 교육하고 있는데요, 실제로 미국에 도착했을 때 첫인상이 어떠셨나요?
서원경: 저는 미국이 강대국이란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북한에서는 미국을 철천지 원수 미제 침략자, 제국주의라고 떠들지만 저는 중국에서 외부 방송을 들으면서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미국에 도착했을 때는 내 꿈과 환상이 현실로 이뤄지니까 어찌나 좋은지 날아갈 것 같았습니다. 제 나이가 50이 넘었는데 이제 꿈이 이뤄지니까 참 좋습니다. 제가 젊은 시절에는 공부도 잘했는데 아버지가 남한에서 왔고 삼촌이 일본에 살았다는 이유로 대학도 못가고 군대도 못갔단 말입니다. 그래서 김정일과 김일성에게 원한이 많았습니다. 미국에 오니까 그들이 보란듯이 잘 살고 싶은 생각이 있습니다.
이원희: 어머니 김연화 씨는 미국에 대한 첫인상이 어떠셨나요?
김연화: 저는 북한에 살면서 북한만 좋은줄 알았는데 미국에 오니까 미국 사람들 인상이 다 좋고 도덕이 참 밝습니다. 북한 사람들은 먹고 살기 바빠서 서로 쳐다봐도 인사도 안 하는데, 미국은 아침에 마주치면 서로 모르는 사람하고도 인사를 하니까 같이 기분이 좋습니다. 북한에서 교육을 받기로는 미국은 제국주의이고 한국은 못살아서 빌어 먹는 사람도 많다고 해서 그런 줄만 알았습니다. 지금 현실에 와 보니까 완전히 다릅니다.
서철: 저는 텔레비전에서 미국에 대해 본 적이 있었습니다. 북한에서 한국 텔레비전은 못 보게 막는데 미국 텔레비전은 조금 볼 기회가 있습니다. 물론 보면 안되지만 말입니다. 중국에 와서 또 한국 텔레비전을 많이 봐서 미국에 대해서 많이 알고 있었습니다. 북한 사람들이 대체로 미국이 철천지 원수라고 말은 그렇게 하지만 실제 사람들 생각은 그렇지 않습니다.
서철용: 제가 처음에 미국에 가고 싶다고 생각한 게 10살 때였습니다. 당시 저희 어머니를 정부에서 없는 죄를 만들어서 감옥에 가게 했습니다. 북한이 제일 미워하는 나라가 미국이 아닙니까? 그래서 내가 미국에 가서 꼭 복수하겠다는 생각을 그 때부터 했습니다. 북한에서는 미국을 사람 죽이는 나라로 선전합니다. 어린 생각에 내가 사람 죽이는 나라에 가서 우리 엄마를 그렇게 한 너희들을 가만히 안 놔두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이후에 아버지가 두번째 중국에 가셨을 때 저도 제 친구와 같이 중국에 가려고 압록강을 건너려고 했습니다. 근데 강에 들어서자 물살이 너무 강해서 꼭 죽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체력을 보강해서 다시 건너가자 하고 포기한 적이 있었습니다. 나중에 아버지하고 같이 중국에 갈 수 있었고 이렇게 미국에 오게 되서 너무 좋습니다.
이수경: 구체적으로 어떤 점이 가장 좋나요?
서철용: 가장 충격적으로 마음에 들었던 점은 저희 집 앞에 상점에 갔을 때였습니다. 껌을 사려고 했는데 주머니에 돈이 없었어요. 그래서 그냥 안사고 나가려고 했는데 어떤 알지도 못하는 미국분이 돈을 2달러를 내 놓으시면서 사주시더라구요. 그 때 아! 내가 지금까지 생각했던 미국이 잘못됐구나. 미국은 이런 나라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수경: 미국인들의 관대함과 친절함이 인상 깊었다는 얘기군요. 하지만 미국은 말도 틀리고 문화도 완전히 달라서 적응하는 데 힘들었던 점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3개월 동안 미국에서 생활하면서 다른 문화 때문에 겪은 일화가 있나요?
서철용: 저는 어머니와 마찬가지로 미국 사람들이 아침에 서로 인사를 하는 문화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이수경: 철용 씨도 같이 하시나요?
서철용: 네
이수경: 저희 청취자 분들에게도 미국식으로 인사 한번 해 주시죠.
서철용: 네 미국 사람들은 아침에 만나면 굿모닝? 이라고 말합니다. 그럼 같이 하이! 굿모닝! 이라고 말하는데 아주 즐겁습니다.
이수경: 아버님께서는 새로운 생활에 적응하는 데 어려운 점은 없으신가요?
서원경: 지금도 어렵고 앞으로도 쉽지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중국에서 공안에 피해다니며 살던 때와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 때를 생각하면서 여러워도 참고 견디면서 잘 정착해야 한다는 각오입니다.
이원희 : 어머니께서는 요즘 하루를 어떻게 보내시나요? 가족들 뒷바라지 하시느라 바쁘시지요?
김연화: 가족들이 서로 집에서 네가 할일 내가 할일 없이 가정에서 함께 청소도 하고 아침에 일어나면 음식하는 일도 도와주고 그럽니다. 참 재밌습니다. 아침에는 밥도 하고 떡 지짐도 하고, 음식이 다양하고 많으니까 이것도 해먹고 저것도 해먹고 매일 다르게 먹습니다. 북한에서는 한가지만 고정으로 먹었는데 여기서는 아이들에게 음식을 해주는 재미도 있습니다.
이수경: 아버님의 하루 일과도 궁금한데요, 일자리는 구하셨나요?
서원경: 주변에 같이 일하자는 한국 분이 있는데 지금은 아들 둘과 내가 일주일에 토요일 하루만 같이 나가서 일합니다. 나머지 닷새는 무상으로 영어 교육을 제공하는 곳에서 공부를 합니다. 일요일에는 교회에 갑니다. 이 생활이 아주 마음에 듭니다.
이원희: 영어 공부가 어렵지는 않나요?
서원경: 내 나이에 힘이 듭니다. 그런데 학교에 공부하러 다니다 보니까 머리에 영어가 들어오긴 합니다. 우리 아들들은 대단히 빠릅니다.
서철용: 저는 학교 다녀와서는 컴퓨터로 영어 공부도 하고 그 외의 시간에는 동네에서 자전거 타면서 운동을 합니다.
이원희: 아직까지는 정부의 지원을 받고 있는 상태인가요?
서원경: 네 아직은 정부의 지원을 받고 있고, 앞으로 자립해야할 시기가 옵니다. 자립의 계획은 특별히 없지만 나가서 일자리를 찾아서 일하고 싶습니다.
이원희: 정부에서 일자리를 소개해 주나요?
서원경: 네 소개해 줍니다. 우리를 도와주는 난민 단체에서 직업을 소개해 줍니다.
이수경: 앞으로 미국에서 일자리도 구해야 하고 공부도 해야 하는데, 미국에서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서원경: 여기에 온 것 자체가 저에게는 성공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돈을 벌어서 아이들을 공부시키는 것이 제 큰 꿈입니다. 그 꿈을 위해서 앞으로 일을 할 것이고 미국에서 일하는 것이 제게는 즐거움입니다. 아이들이 커서 미국에서 어떤 일을 했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도 해보긴 했는데 내 뜻대로 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
김연화: 저도 여기서 적응해서 장사를 시작해서 자식들이 생활하는 데 도움을 많이 주고 우리가 남한테 손 내밀지 않고 떳떳하게 살고 싶습니다. 북한에서 사는 정치가들보다 우리가 더 좋은 곳에서 산다고 자랑하고 싶습니다.
서철용: 저는 미국 군대에 가고 싶습니다. 군대를 마치고 경제학을 공부하고 싶습니다.
서철: 저는 돈을 많이 벌고 싶습니다. 돈을 많이 벌어서 저한테 못되게 굴던 북한의 간부들을 혼내주고 싶습니다.
이원희: 엄마, 아버지, 큰아들이 모두 돈을 벌겠다는 꿈을 가지고 계신데요, 머지않아 큰 부자가 나올 것 같습니다. 저희 방송을 듣는 청취자 가운데 제 3국에서 고생을 하고 계신 탈북자들이 있습니다. 그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특히 그 가운데서도 미국에 오고 싶어하는 탈북자들에게 조언을 해 주신다면?
김연화: 탈북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한국에서는 정착 비용으로 돈을 주지만 미국에서는 푸드 스탬프, (식품권)을 주면서 생활을 조절해 줍니다. 식품권도 빠듯하게 주는 것이 아니라 풍족하게 줍니다.
서원경: 한마디로 요약해서 말하면 어떤 탈북자들은 미국이 한국보다 부유하니까 한국보다 돈을 많이 주는가 하는 탈북자도 있습니다. 돈을 바라고 여기 미국에 오지 마시길 바랍니다. 돈 바라고 미국에 오는 사람은 살지 못합니다. 자기 스스로 돈 벌어서 살고자 하는 사람들이 여기 미국에 오면 잘 될 것입니다. 나도 그런 생각을 하고 왔고 앞으로 공짜 돈을 바라지 않고 스스로 일하려고 합니다.
이수경: 서철용 씨의 경우 또래의 북한 친구들에게 해주고 싶은 얘기 없으신가요?
서철용: 우선 중국에 있는 친구들은 마음을 굳게 먹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미국이나 한국에서는 8살짜리 아이들도 컴퓨터 다 할 줄 압니다. 그러니까 중국에서 컴퓨터도 배우고 산수도 혼자 공부하고 영어도 공부해야 합니다. 중국 생활이 힘들다고 해서 실망하지 말고 그 생활을 앞으로 살아가야 할 날들의 실험장이라고 생각하고 이겨내야 합니다. 그렇게 이겨내면 성공하리라 생각합니다.
이수경: 늘 미래를 준비하는 자세로 생활해야 한다. 참 좋은 조언입니다. 형인 서철 씨도 하시고 싶은 말이 있을 것 같아요.
서철: 아마 지금도 북한에서 라디오를 듣는 분들이 있을 것이라고 짐작합니다. 지금 듣고 계시는 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꼭 자식들 공부시키고 본인 스스로 꼭 공부를 하기를 바랍니다. 제가 북한에 있을 때는 공부가 별로 소용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때는 제가 탈북해서 미국까지 오리라 생각을 못했기 때문입니다. 지금 생각하면 후회가 되는데요, 꼭 공부를 하시라고 당부하고 싶습니다.
이원희: 네 오늘 서원경 씨 댁의 온 가족과 함께 얘기 나누다 보니까 시간이 벌써 다 되었습니다. 앞으로 건강하시고 미국에서 잘 정착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MC: 네 지금까지 지난 6월 동남아 국가 라오스에서 난민 인정을 받고 미국에 정착한 탈북자 서원경 씨 가족과 탈북과정과 미국에서의 생활에 대해 얘기 나눠보는 특별 대담 시간, 그 마지막 순서로‘미국, 기회의 나라로’편을 보내드렸습니다.
진행에 이수경 이원희 기자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