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씨 일가의 실체] 노래 속에 드러나는 북한의 붕괴과정

장진성∙탈북 작가
2012-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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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ght_econ_era_song-305.jpg 지난 1월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신년 공동사설과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결정서, 당 중앙위·당중앙군사위 공동구호를 관철하기 위한 군중대회가 열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북한 노동당선전선동부의 교과서라고 볼 수 있는 주체문학이론을 보면 “명곡은 그 시대를 반영한다.”라고 기술돼 있습니다. 물론 주체문학이론이 말하는 명곡은 한국의 유행가와 다릅니다. 주민들 스스로 부르는 노래가 아니라 정권이 일방적으로 정하고 부르도록 강요하는 세뇌 곡인 것입니다. 그렇다 할지라도 북한의 시대별 대표가요들을 보면 부흥하는 북한이 아니라 나날이 쇠퇴하는 북한을 고발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북한이 남한보다 잘 살았던 1960년대의 대표 곡인 “천리마기수의 노래” 3절 가사를 보면 “공산주의 언덕이 저기 보이네”라는 대목이 있습니다. 당시의 사회주의 자신감을 과감하게 드러낸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은 최종목표인 공산주의가 아니라 현재의 사회주의도 불안한지 “사회주의 지키세”라는 노래가 대표 명곡으로 돼 있는 실정입니다. 제가 북한에 있을 때 친분 있던 조선작가동맹중앙위원회 시 분과위원회 시인들과 모여 앉아 이런 부분을 지적하며 서로 웃었던 기억이 납니다. 체제충성만이 아니라 김 씨 일가에게 충성을 강요하는 가요들도 사정은 마찬가지입니다. 1980년대 김일성 신격화의 대표 곡 중에는 “수령님 밤이 퍽 깊었습니다.”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인민을 위해 자지 않는 김일성의 노고의 밤을 노래했는데요. 그때는 “밤늦도록 불 켜진 창문”이라는 그 설정만으로도 주민들에게 노래를 부르도록 정서의 근거를 조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김정일 정권 때에는 그러한 감성의 호소가 아니라 아예 직설적으로 “장군님을 목숨 바쳐 지키자”는 광기를 만들어낼 수밖에 없는 형편이었습니다. 주민들에게 열악한 삶을 제공한 김정일의 정치는 그만큼 감동이 되지 못한다는 반증인 셈인 것입니다. 주민들과 배고픔을 함께 나누는 지도자의 고난을 주입시키기 위해 “장군님의 줴기밥”이란 노래를 강요했는데요, 오히려 주민들에게 거부감과 반발만 조장하는, 이를테면 반역의 노래가 된 것입니다.

북한의 당 선전선동 정책을 보면 체제의 시대별 특징을 7 단계로 구분하고, 그 범위 안에서 주민들에게 김 씨일 가의 역사의식을 주입시키고 있습니다. 해방 전시대, 항일무장투쟁시대, 해방 후시대, 조국전쟁승리시대, 천리마 대고조시대, 고난의 행군시대, 선군 시대로 말입니다. 한 때 당선전선동부에서는 일제강점기 시대를 행방 전시대, 김일성이 조선인민혁명군을 창건했다는 1932년부터 1945년까지는 항일무장투쟁시대, 1945년부터 1950년까지는 김일성이 공화국 창건을 주도한 해방 후 시대, 1950년부터 1953년까지는 김일성의 영군 술로 이룩했다는 조국전쟁승리시대, 1953년 이후 전후 복구부터 1960년대 중반까지는 천리마대고조시대로 정했지만 그 이후 시대특징에 대한 명백한 규정이 없어 그 공백을 어떻게 메울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있었습니다. 잠정적으로 사회주의 건설시대로 규정을 했지만 그 성과가 미미하여 결국 그 기간을 김정일 시대로 대체하고 말았습니다.

이를테면 김정일이 당 선전 선동 부 지도를 맡았던 1960년대 중반부터 1970년대까지는 문화예술혁명시대, 당 조직 부를 지도하면서부터는 3대혁명소조시대, 당 권력을 장악한 이후부터는 당 유일지도사상체제 확립 시대로 말입니다. 북한 주민의 역사는 실종되고 김 씨 일가의 개인주의 역사왜곡으로 채우게 됐던 것입니다. 때문에 북한의 모든 문학예술과 음악들은 그 7개의 시대구분 영역 안에서 주제를 찾습니다. 계급교양주제, 반 미 반 남 조선주제, 천리마혁신주제, 사회주의애국주의주제, 충성주제, 수령형상주제 등으로 말입니다. 시대의 주인공은 주민이 아니라 항상 수령이었고, 그래서 유행가가 아닌 정치의 명곡으로 주체음악의 명맥이 이어져왔습니다.

북한이 체제 확신을 갖고 있던 1960년대까지만 해도 “방직공의 노래,” “벌목공의 노래,” “즐거운 아침”등 사회 매 구성원의 구체적 자부심을 드러낸 노래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사회주의 동구권이 붕괴되고, 북한도 체제 위기감을 느끼던 1980년대 말부터는 북한 노래들이 개인정서를 배제하고 철저히 전체주의로 바뀌게 됩니다. 심지어는 “수령을 따라 천만리, 당을 따라 천만리”라는 노래까지 등장하게 됩니다. 당시 북한 선전선동부가 그 노래의 창작을 지시했을 때 일부 작가들은 “우리가 언제 당을 따라 안 가겠다고 했느냐? 지금 당장 수령을 배신하겠다고 했느냐?”라는 은밀한 말로 당국의 선동정책을 우회적으로 비웃기도 했었습니다.

그러던 북한 당 선전선동부가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던 1994년부터는 관행적인 체제명분과 이념의 형식을 더 이상 지키지 못하고 수령과 사회주의를 목숨 바쳐 지키자는 내용의 가요들을 창작하여 배포할 것을 지시하기에 이릅니다. 이는 북한 정권이 체제위기를 스스로 인정한 역사적인 계기였으며 동시에 북한주민들에게도 체제홍보가 더는 감성의 자극이 될 수 없는 소재로 되었습니다. 결국 주민들의 정서가 아니라 신념에 호소할 수밖에 없게 된 북한 정권의 가요들은 비장하고, 전투적이고, 광기적인 주제와 양상으로 일관할 수밖에 없게 됐습니다. 주 적이라는 미국, 한국은 대북식량까지 지원하는데 그 쌀들이 마치 포 알이나 되는 듯 장군님과 사회주의를 결사옹위하자는 자폭정신의 노래들을 쏟아내는 수준입니다. 이는 북한 주민들에게 현실과 선전의 격차를 더 깊이 체험하게 만들 뿐입니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를 의식하듯 북한 정권은 오늘날 선군 시대에 맞춘다며 무대음악의 형식마저 군대식으로 바꾸는 마지막 선전수단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전에는 가수 혼자서 독창으로 불러도 될 노래들을 대합창의 규모로 무대 위에 올려놓고 김정일의 말처럼 방사 포와도 같은 굉음을 연출합니다. 정서의 노래가 되어야 할 텐데 정치의 노래가 만들어 내는 잡음인 것입니다. 제가 전에도 말씀 드렸듯이 북한에는 두 개의 권력, 권력 독재와 감성 독재가 있습니다. 그 두 개의 독재 중 감성 독재는 이미 죽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만약 앞으로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부를 수 있는 명곡이 있다면 그 노래는 자유와 해방의 노래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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