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자유도 없는 북한 주민

장진성∙탈북 작가
2013.07.09
bowing_nk_stone-305.jpg 북한의 각계층 근로자와 유가족들이 인민군 영웅열사묘를 찾아 성묘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북한 인민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김씨 일가의 억압정치가 북한 주민들의 삶은 물론 죽음의 자유까지도 어떻게 빼앗는가에 대해 말씀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탈북자들이 남한에 와서 놀란 것 중 하나가 바로 비석입니다. 남한은 묘비라고 하는데요, 그 이유가 묘비의 웅장함 때문입니다. 남한에선 산 자의 예의 차원에서 고인에 대한 효도와 애정을 비석에서나마 마음껏 표현합니다. 인간은 죽으면 한 줌의 재로 사라지지만, 묘비는 무덤 곁을 지키면서 그의 경력이나 일생을 보여주는 상징이 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묘비명에 평생의 노고를 함축적으로 담아내는 글귀를 적어 고인이 어떠한 삶을 살아왔는지에 대해 나타내주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묘비는 죽은 자나 산 자가 모두 하고 싶은 말을 대신하는 것이어서 돌의 무게와 크기는 물론 거기에 새겨지는 문구에 대한 성의도 대단합니다. 그렇다 나니 봉분의 크기나 주변 환경도 많은 품을 들여 가꾸고 있습니다.

이런 묘를 보며 탈북자들은 하나같이 이런 말을 합니다. “남한에 웬 애국열사들이 이렇게 많은가.”고 말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북한에선 묘비에도 등급이 있어 개인이 함부로 화강암이나 대리석 묘비를 세울 수 없고, 글도 자유롭게 쓸 수 없기 때문입니다. 보다 정확히 설명한다면 묘비도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공개 문구로 분류되기 때문입니다. 북한에선 두, 세 사람 이상이 볼 수 있는 글들은 반드시 허가를 받도록 통제가 돼 있습니다. 여기에는 묘비라고 제외가 될 수 없습니다.

청진 출신의 탈북자 장용성씨는 북한전문매체인 뉴포커스와의 인터뷰에서 “일반 주민이 만일 당의 지시를 어기고 자기 마음대로 묘비명을 썼다가 발각되면 처벌받음은 물론이고 묘비까지도 망치로 깨 부신다”고 증언했습니다. 죽어서까지도 벙어리가 되어야만 하는 북한 주민의 실상을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일반 주민들 같은 경우 나무로 된 묘비에 고인의 출생일과 사망일, 장남을 뜻하는 묘주, 즉 묘지 주인의 이름만을 적어 넣을 수 있습니다.

결국 묘비에 허용된 합법적 글자는 오직 한 글자로서 이미 죽었다는 의미에서 이름 석자 앞에 죽을 ‘고’만을 적어 넣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묘비가 서있는 무덤인 경우는 그래도 좀 행복한 죽음입니다. 2010년에 탈 북 한 회령 출신 이점옥 씨는 "북한 묘소에는 묘비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점옥 씨는 "일반적으로 나무로 묘비를 세우지만 땔감이 부족한 주민들이 묘비를 뽑아다가 땔감으로 사용한다.” 면 서 그래서 북한 가정들에는 묘비라도 건사하자는 심정으로 집에 보관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습니다.

무덤의 고난은 단지 이 뿐만이 아닙니다. “홍수나 산사태가 나면 묘소가 쉽게 떠내려가는데, 시간이 흐른 후 같은 자리에 다른 묘소가 들어서기도 한다"고 탈북자들은 증언했습니다. 묘 분실은 북한체제의 문제점과도 연관이 있습니다. 북한은 반드시 통행증이 있어야 타 지역 이동이 가능합니다. 통행증 발급이 어렵다 나니 묘소를 자주 찾아가지도 못하고, 그 통에 관리도 미루어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반면 계급사회인 북한에서 간부들의 묘비는 일반인과 크게 다릅니다. 우선 목재묘비가 아니라 돌로 새겨지게 됩니다. 간부들의 돌 묘비는 중앙당 산하 건설을 담당한 재정경리부 소속 8국에서 전담합니다. 여기에서는 간부들과 장례를 ‘기관장’, ‘국가장’ 급으로 진행한 고인들의 묘비만을 돌 가공하는 일을 합니다. 기관장 급 이상부터는 반드시 지도자의 비준을 받는 대상임으로 북한의 애국열사로 지정되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북한 묘비의 최고등급 특징 중 첫째는 돌이고, 둘째는 기본적인 정보 외 고인을 찬미하는 문구가 새겨지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고인이나 유족의 자유로 선택되는 돌이나 해석되는 문구도 아닙니다. 돌의 크기는 반드시 당의 묘비관리 원칙의 요구대로여야 하며 문구 또한 고인의 유언이나 유족의 소원이 아닌 당에서 지정해 준 내용이어야만 합니다. 그 내용들은 주로 김씨 일가에게 평생 충성했다는 것들입니다. 죽음조차도 공개매체로써 체제선전에 이용하는 북한 정권의 의도를 읽을 수 있습니다.

묘비명이란 인간이 죽으며 세상에 남기고 싶은 마지막 말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유언마저 조작되거나, 강제로 새겨진다면 죽은 자의 일생을 통째로 부정하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그러나 북한은 개인의 역사를 너무도 쉽게 왜곡합니다. 사회주의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지니고 죽었어도 묘비명에는 ‘김정일 장군의 뜻을 받들어 사회주의 건설에 이 한 몸 바치다’로 기록될 수 있는 것입니다. 죽음 앞에서 비로소 한마디라도 남기고 싶은 유언의 자유마저 박탈당하며, 개인의 일생이 아무렇지도 않게 조작되는 곳이 바로 북한인 것입니다.

얼마 전, 인터넷에서 아일랜드의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의 묘비명이 굉장히 화제가 된 바 있습니다.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지” 평온한 한담 같으면서도 덧없는 인간사를 한마디로 솔직하게 이야기한 그의 소탈한 모습을 볼 수 있는 문구입니다.

지난 4월 15일 노동신문은 김정은이 금수 산 태양궁전을 방문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신격화를 위해 수많은 혈세를 낭비하며 김 씨 일가의 시체를 미라로 보관 관리하는 것도 모자라 정권이 기념할 만한 날이면 그 미라를 방문하도록 주민들에게 미라정치를 강요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김일성, 김정일의 거대한 묘비에는 이렇게 큼직하게 쓰여있습니다. “금수 산 태양궁전”이라고 말입니다. 김씨 일가는 죽어서도 그렇듯 궁전에서 저승의 낙을 누리는 반면 주민들은 살아서도 지옥에서 신음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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