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씨 일가의 실체] 김정일의 중앙당 축소 의도

장진성∙탈북 작가
2012.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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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il_talk_central_officials-305.jpg 중대군인들의 공연을 관람한 후 고 김정일이 김정은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 등 간부들에게 말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오늘 이 시간에는 중앙당 3호 청사 해체와 관련하여 말씀 드리겠습니다. 중앙당 3호 청사는 당 소속 대남공작부서 밀집 구역을 뜻합니다. 1호 청사는 평양시 중구 역 창광동에 위치한 김일성, 김정일의 당 사무실을, 2호 청사는 당 정치, 행정부서들이, 3호 청사는 평양시 모란봉구역 전승동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최근 탈북한 중앙당재정경리부 소속 탈북자의 증언에 의하면 김정일이 중앙당 축소 차원에서 3호 청사를 해체했다고 합니다. 김정일이 그 결심을 하게 된 계기는 46연락소 사건 때문이라고 합니다. 46연락소는 당 작전 부 소속으로서 전문 해외첩보 영화들을 번역 연구하여 작전부 전략에 응용하는 부서입니다.

2006년도에 이 46연락소 연구원들이 남포에 내려가 음식점에서 중앙당 신분을 들먹이며 외상을 하려고 하자 사장이 돈을 내라고 하는 과정에 폭행이 일어났고, 이 신고가 그대로 김정일에게 보고됐다고 합니다. 그 외에도 대남공작부서 소속 연락소 부원들이 공권력을 남용하는 사례들이 많아 사회적으로 비난이 거셌습니다. 그들은 원래 음지에 숨어있던 사람들인데 물자공급이 제대로 되지 않자 이렇게 양지로 나오면서 사건들이 많이 터지게 된 것입니다. 한마디로 연락소 직원들이 중앙당 행세를 하는 사건이 많이 발생하자 김정일은 "별것들이 중앙당 신분을 추락시킨다."며 아예 연락소 신분증에서 중앙당을 삭제하도록 했습니다.

이후 김정일은 2007년에 "중앙당이 비대해졌다. 중앙당은 할 일만 해야지 모든 걸 다 하겠다는 생각을 버리라."면서 중앙당 축소를 지시했다고 합니다. 이는 김정은의 안정적인 후계를 열어주기 위해 그 동안 북한을 집권해 왔던 중앙당의 절대적 권위를 인위적으로 축소하려는 김정일이 의도로 풀이됩니다. 이렇듯 김정일의 지시로 중앙당 축소가 본격화되면서 2009년에는 과장급 이상 간부들 100명이 다른 기관으로 옮겨졌다고 합니다. 과장급 100명이면 거기에 붙은 부원이나 부서들도 상당합니다. 하여 당 대남공작부서 이전도 그 연장선에서 이루어졌는데 가장 큰 이유는 당 대남공작부서들이 중앙당 소속으로 돼 있어 적화통일을 당 차원에서 추진한다는 대외 시각을 많이 의식한 것 같습니다. 김정일은 우선 나이든 중앙당 간부들을 대담하게 명예 퇴직시키도록 했습니다. 계응태, 한성룡, 전병호도 이 시점에 퇴직됐습니다. 김일성 때부터 당비서로 있던 사람들은 현재 김국태와 김기남만이 남았습니다.

김정일 지시로 중앙당 간부들이 과거에는 담당제로 돼 있었는데 이후 겸직제로 바뀌면서 많은 인력을 축소하게 된 것입니다. 중앙당 축소는 2007년 인민무력 부와의 마찰도 중대 이유가 되었습니다. 군이 이제는 선군 정치 시대인 것만큼 김정일의 건강도 군이 책임져야 한다며 기초과학원을 가져가려 했습니다. 이를 중앙당 담당부서가 결사적으로 막았습니다. 사실 군의 주 목적은 기초과학원이 갖고 있는 '대성담배공장' 수출 판매권 획득을 위한 것이라는 여론이 많았다고 합니다. '대성담배공장'은 김 씨 일가를 위한 담배연구 차원에서 기초과학원에서 운영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 공장은 현재 싱가포르와 합영하는데 싱가포르 생산 제품으로 세계에 수출하고 있습니다. 주요 브랜드는 크라벤 (craven) 입니다.

사실 담배는 북한의 수출품종 중 많은 외화를 벌게 하는 것입니다. 북한 시장 내에서도 외국담배에 대한 수요가 높습니다. 북한 군은 이런 담배공장을 갖고 싶었던 것입니다. 결국 김정일은 군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중앙당이 비대해지다 못해 이제는 담배생산도 하는가 고 발끈하면서 군에 주도록 했고, 나중엔 국방위원회로 기초과학원을 옮기도록 했습니다. 현재 중앙당 3호 청사는 청사개념보다 부서개념으로 바뀌면서 아예 해체됐다고 합니다. 오극렬이가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임명되면서 작전 부에 물자를 공급하던 회사나 공급소들은 국방위원회로 넘어가 국방위원회 산하 성산무역회사 소속이 됐다고 합니다.

또한 남파공작원들을 담당해보던 131연락소나 128연락소들과 같은 기본 공작부서들도 인민무력 부 정찰총국으로 편입됐다고 합니다. 작전 부 통신장비 담당 144연락소와 같이 대남공작에 필요한 장비를 연구 개발하던 연락소들은 국방위원회 직속 제3자연과학원에 들어갔고, 심지어는 작전부의 핵심이라고 하는 각 "방향조"들도 군 정찰총국으로 소속됐다고 합니다. ‘방향조’란 작전 부 내부 용어입니다. 북한의 일반 주민들은 청진연락소, 해주연락소, 이렇게 부르는데 사실 그 연락소들의 사명은 유사시 남한 교란 전을 위해 각자 자기 침투지역들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작전부 내부 용어로 "방향조"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전북 방향조", "부산 방향조" 이런 식으로 말입니다. 대외 연락 부는 기구를 해체하거나 분산시키지 않고 통채로 내각 직속으로 들어갔습니다. 비록 행정적 종속은 내각이지만 이전에 하던 사업들을 그대로 하고 있어 여전히 당 소속이었던 과거의 권위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김정일은 당 대남공작부서의 핵심인 해외첩보부서 당35호실과 통전부는 그대로 당 소속으로 두었다고 합니다.

특히 통전부는 남한 내 종교인사나 거물급 인물들을 상대하고 관리해야 하기 때문에 종전의 당적 지도권한과 권위를 그대로 인정하여 중앙당 부서로 내버려 두었다고 합니다. 김정일의 이런 조치는 과거 김일성으로부터 후계 업무를 넘겨받을 당시 군에서 당으로 대남공작부서 권한을 가져가던 것과 비슷합니다. 북한에서 대남정책은 내부의 적을 숙청하기 위한 이념무기로도 활용됩니다. 김정일은 김정은의 국방위원회 권한을 위해 북한의 전통적인 권력기관인 당을 부분적으로 축소시키는 것으로 후계 발판의 길을 열어주려 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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