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의 일본인 친구

김주원∙ 탈북자
2020-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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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고(故)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전속 요리사였던 일본인 후지모토 겐지.
북한의 고(故)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전속 요리사였던 일본인 후지모토 겐지.
사진-연합뉴스 제공

북녘 동포 여러분, 김정은은 유년시절, 엄마인 고영희가 김정일의 정실부인이 아닌 이성욕구를 위한 동거녀였기에 초대소들에 숨어서 살다보니 외부와 단절된 채 외롭게 생활했다는 사실은 지난시간들에 말씀드렸습니다. 오늘은 그렇게 외롭던 김정은에게 친구가 되어준 일본인 요리사 후지모토 겐지에 대해 얘기해 드리려고 합니다.

비록 나이는 아버지벌 정도로 차이났지만 김정일의 전속 일본음식 요리사로 일했던 후지모토 겐지가 김정은 형제가 살고 있던 초대소들에 자주 드나들면서 김정은에게는 후지모토 겐지가 반가운 친구로 여겨졌습니다.

북한당국의 초청으로 평양 평천구역에 위치한 안산관에서 일본요리사로 일하게 된 후지모토 겐지가 처음으로 북한에 입국한 시기는 그가 35살 나던 1982년 8월이었습니다. 아내와 가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북한에 간 그는 안산관에서 당시 일본에서 귀국한 재포들과 평양의 무역일꾼들, 방북한 외국인들에게 일본요리를 만들어 제공했습니다.

후지모토 겐지가 당시 가장 많이 만든 일본요리는 스시라고 하는 일본식 생선회밥과 (한국에서는 초밥이라고도 합니다), 사시미였습니다. 재포들이 안산관에서 후지모토가 만든 일본음식을 먹고 소문을 내면서 손님들이 더 많이 찾아와 달러와 일본 엔 등 외화로 음식들을 사먹었는데 당시 한 귀국자는 매일 식당에 여러 사람들을 데리고 와서 음식을 사먹기도 했습니다.

후지모토 겐지는 자기의 저서 ‘김정일의 요리사’에서 이 재포여성에 대해 “이름은 성미였고 억만장자였다. 혼자 한 달에 250만 엔의 매출을 올리기도 했다”고 회고하였습니다. 250만 엔은 달러로 약 2만 4천 달러가 됩니다.

당시 외화식당인 안산관에서는 일본생선회밥(초밥) 1인분이 일본돈 3천 엔이었습니다. 약 30 달러가 되는 돈이었으니 일반인들은 먹을 엄두를 낼 수 없었습니다. 소문이 재포, 무역일군, 심지어 중앙당 간부들에게까지 퍼지면서 어느덧 김정일의 귀에도 들어갔습니다.

후지모토 겐지가 북한에 간지 2달이 지난 1982년 10월 21일, 안산관 지배인이 후지모토 겐지를 불러 20~30명이 먹을 수 있는 일본음식 재료를 준비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얼마 후 벤츠 3대가 안산관에 당도했고 요리사인 후지모토 겐지와 봉사원 7명이 함께 차를 타고 원산초대소에 갔습니다. 봉사원들로는 일본여성 3명과 타이(태국)여성 4명이었습니다. 이 여성들은 일본과 타이에서 납치되어 안산관에서 매춘과 접대업에 종사하던 여성들이었습니다.

당시 북한에서 저도 ‘안산관에 가면 서방나라들과 동남아시아에서 여성들이 봉사자로 근무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당시 ‘외국인들이 조선에 가면 경치구경과 요리는 좋은데 즐길 수 있는 여자가 없다’고 해 김정일의 비준을 받아 안산관에 처음으로 외국부자들의 이성욕구를 만족시킬 수 있는 외국여성들을 데려왔다는 소문이 나돌았습니다.

후지모토 겐지는 새벽 2시쯤 되어, ㄷ자형으로 된 대형식탁에 스물 두명의 사람들이 앉아있는 장소에 가서 일본음식을 그들이 보는 앞에서 직접 만들어 제공했고 함께 간 외국인 접대원 여성들이 봉사를 했습니다.

후지모토 겐지는 이들 중에 김정일이 있다는 것을 처음에는 몰랐습니다. 김정일이 그날 가장 맛있게 먹었던 일본요리는 다랑어 뱃살회(참치 배부위 사시미)였습니다. 김정일이 직접 후지모토 겐지에게 이것이 무엇인가고 물었고 그가 일본말로 ‘마구로노 토로데스’라고 대답하자 전담 일본어통역사인 중앙당 38호실 임상종이 김정일에게 ‘다랑어의 뱃살 부분’이라고 통역해 주었습니다.

통역사가 ‘친애하는 지도자동지’라는 호칭을 하는 것을 보고서야 그가 김정일임을 알게 된 후지모토 겐지는 그때부터 긴장해졌다고 자기의 저서에서 고백했습니다. 김정일은 그날 다랑어 뱃살을 여러 번 더 청해 먹었고 다른 고위간부들도 저마다 갖가지 일본요리들을 곱빼기(추가)로 청해서 먹었습니다.

새벽 2시부터 시작된 밤 파티는 새벽 7시까지 5시간동안 이어졌고 그날 후지모토 겐지는 수고비로 일본돈 5만 엔을 받았습니다. 약 5백 달러가 되는 액수였습니다.

그로부터 열흘쯤 지나서 다시 연락이 왔습니다.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벤츠를 보내왔는데, 이번에는 목적지가 원산초대소가 아니었습니다. 벤츠는 온통 담으로 둘러싸인 평양 시내를 달리더니 어느 낯선 지역으로 들어갔습니다. 호위사령부 무장군인들에 의해 외부와 단절된 이곳은 김정일이 밤파티를 자주 즐기군 하던 ‘8번 연회장’이라 불리는 곳이었습니다.

그날도 20여 명의 고위간부들이 김정일과 함께 일본요리에 술 한 병값이 몇 백 달러를 하는 서양술(양주)을 즐기고 만수대예술단과 피바다가극단 등 배우들을 불러 노래도 듣고 무용도 보면서 밤파티를 즐겼습니다.

그날에는 김정일이 한시간 반쯤 지나 실컷 먹고나서 불룩 나온 배를 내밀며 일본요리사인 후지모토 겐지에게 다가와 “수고했어”라는 말을 하면서 돈봉투를 직접 주었는데 던져주다싶이한 돈봉투가 바닥에 떨어졌습니다. 황급히 통역사가 돈을 주어서 후지모토 겐지에게 주었으나 그는 모욕감을 느끼고 팽개치듯이 던져주는 돈을 받는 것이 자존심이 걸려 그 자리를 박차고 나왔습니다.

그 일이 있고 나서 일주일 후에 다시 김정일의 부름을 받고 밤파티에 참석해 일본요리를 만들어 제공하였는데 그날에는 김정일이 직접 와서 “요전에는 내가 실례를 한 것 같구먼. 용서하게나”하며 사과했습니다. 그 이후에도 자주 밤파티에 불려가서 음식을 만들었는데 그때마다 김정일이 직접 봉투에 든 일본돈 5만 엔을 주곤했는데 항상 손에 꼭 쥐어주곤 했습니다.

후지모토 겐지는 1987년부터는 고려호텔 지하식당에서 일본요리사로 근무하면서 자주 김정일의 밤파티에 불려가 일본음식을 만들어 제공했습니다. 후지모토 겐지는 자기의 저서에서 1988년 1월부터는 한 달에 3번 정도, 결국 10일에 한번씩은 김정일이 먹는 일본요리를 만들었고 먹고 나서는 주패치기 일종인 바카라를 함께 하곤 했습니다.

1988년에 김정일의 전속요리사로 된 후지모토 겐지에게 김정일은 V280형 벤츠를 선물로 주었습니다. 이렇듯 김정일은 일본요리사를 전속요리사로 두고 자주 일본음식을 먹었고 초대소들에 불러들여 재포출신인 김정은의 생모 고영희와 김정은 형제를 위해 일본음식을 만들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김정은 형제와 함께 연도 만들어 띄우고, 일본어도 배워주기도 하면서 자주 함께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는 어린 김정은에게 일본 도쿄에 있는 대형철탑인 도쿄타워를 그려주기도 했고 8살 생일날인 1992년 1월 8일에는 원산초대소에서 음식도 해주고 함께 놀아주기도 했습니다.

2012년 7월에 김정일과 후지모토 겐지가 만나 감격적으로 포옹한 사진이 현재 인터넷상에서 볼 수 있습니다.

어릴 적 외롭던 김정은에게 친구가 되어준 후지모토 겐지는 김정일에 이어 여전히 김정은에게도 일본인 친구로 대우를 받고 있습니다. 당시 김정은은 후지모토 겐지에게 “어릴 때부터 함께 놀았던 일들을 기억하고 있고 고마웠다. 앞으로는 언제든지 조선에 와도 좋다”고 말했고 지금은 평양에서 일본음식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탈북민 김주원이었습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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