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이야기] 내가 남한에서 책을 못 읽는 이유

서울-이현주, 김태산, 문성휘 xallsl@rfa.org
2011-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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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관악구에서 열린 '2011 관악 북페스티벌'에서 시민들이 책 읽기 플래시몹에 참여하고 있다.
서울 관악구에서 열린 '2011 관악 북페스티벌'에서 시민들이 책 읽기 플래시몹에 참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여러분, 안녕하세요. <내가 사는 이야기> 진행에 이현줍니다. <내가 사는 이야기>는 평양 무역일꾼, 김태산 씨와 자강도 공무원, 문성휘 씨가 남한 땅에 정착해 살아가는 진솔한 모습을 전합니다.

남한 정부의 탈북자 지원 정책도 세월 따라 많이 바뀌었습니다. 최근 개정된 탈북자 지원 정책의 기본은 ‘정착 노력을 하는 사람에게 지원금을 더 지급한다’ 입니다. 직업을 갖기 위해 자격증을 따거나 교육을 많이 받으면 장려금을 주고 또 직장을 자주 옮기지 않고 꾸준히 다니면 장려금을 줍니다.

“취업을 위한 공부를 한다면 오히려 학원들에게 돈을 주면서 배워주잖아요? 탈북자들은 먹고살 걱정 말고 일단 뭘 좀 빨리 배우라는 얘기예요.”

장려금까지 지원해가며 배움을 독려하는 것, 바꿔 말하면 배우지 않으면 정착할 수 없다는 얘기이기도 합니다.

<내가 사는 이야기> 오늘 ‘살며 배우며’ 두 번째 시간입니다.

문성휘 : 북한에 있을 때 김일성이 한 말이 있거든요? 혁명가는 일생 책을 놓지 말아야한다. 근데 북한이 말하는 혁명가들이 놓지 말아야하는 책이라는 것을 보면 몽땅 김일성의 교시, 김정일 말씀, 주체사상 이런 거예요. 실상, 이런 걸 빼면 그다지 읽을 만한 책도 없고요. 결과적으로 일생동안 자기들이 한 말을 계속 반복해 읽으라는 거죠.

김태산 : 사실 나는 정말 어릴 때부터 책읽기를 진짜 좋아했어요. 근데 정말 읽을 만한 책이 없는 거예요. 사람이란 게 책이 좋다고 기계 공학을 계속 앉아서 계속 읽을 순 없는 거잖아요? 문학 작품 같은 게 읽고 싶은데 너무 없으니까 북쪽에서는 문 선생 말대로 정말 무슨 김일성의 혁명사 소설 이런 게 하나 척 나오면 너 본 다음 나 보자, 난리지요. 근데 여기 와보니까 없는 것보다 많은 게 못한 것 같아요. 너무 책이 많으니까 어느 걸 읽어야 할 지 모르겠어요. 그러니까 또 책을 읽게 안 되는 것이 이 땅입니다. 연애 소설도 많고 아짜 아짜한 옛날 소설도 많고 그런데 참 이상하게 안 읽게 되요.

문성휘 : 북한에서는 책이 한 달에 정말 딱 두세 권 나오거든요. 그것도 부수가 제한돼서 나와요. 그러니까 책방에 아는 사람이 있으면 사업을 해가지고 나오는 족족 읽으면서 이 세상에 있는 책을 다 읽었다 하죠.

진행자 : 남쪽에는 책이 많기도 하지만 읽을거리가 너무 많아서 그런 게 아닐까요? 신문만 해도 몇 개이며 신문 하나에 20면이 넘습니다. 텔레비전도 많고 컴퓨터도 있고...

문성휘 : 그러니까 남쪽에 와서 책을 읽은 게 손가락으로 꼽아도 열권이 안 된다니까요.

김태산 : 열권이 뭐야 나는 두 권도 되는 것 같지 않아요.

진행자 : 아, 좀 읽으십시오! 어쨌든 선택의 폭이 너무 많아서 헷갈리는 게 책 읽기 뿐이 아니죠. 공부도 너무 많아서 뭘 해야 할 지 헷갈립니다. 그래서 탈북자들 나오면 막 이것저것 배워보시던데요?

문성휘 : 사실, 우리 탈북자 같은 건 더 많은 혜택이 있어요. 취업을 위한 공부를 한다면 오히려 학원들에게 돈을 주면서 배워주잖아요? 그 장려금이 원래 한국 사람의 경우엔 한 달에 11만원인데 탈북자들의 경우엔 37만 원 정도입니다. 거의 350달러 되죠? 탈북자들은 먹고살 걱정 말고 일단 뭘 좀 빨리 배우라는 얘기예요. 이렇게 학원을 한 달에 3 군데 다닐 수 있습니다. 기회가 많은 거죠. 지금 솔직히 대학생 등록금이 장난이 아니잖아요?

김태산 : 만 35살 이하는 대학 등록금 다 면제해주죠. 지금 문 선생 얘기한대로 자격증 취득하면서 2000 달러 주고 직업 훈련 장려금이라고 해서 500 시간 교육 받으면 120만원, 1200시간 교육 받으면 240만원 주고... 사실, 대단한 거예요.

진행자 : 왜 주느냐? 남한 사회에 빨리 정착하라는 얘기죠. 바꿔 말하면 배우지 않으면 정착 힘들다는 얘기이기도 합니다. 사실 북쪽에서 공부한 것들이 정작 남쪽 사회에서는 쓸모없는 것들이 많습니다.

문성휘 : 거의 못 사용했어요. 합동신문 과정에서 두꺼운 종이를 주면서 대학을 졸업했다는데 김일성 주의와 주제사상을 한번 써봐라 하더라고요. 그때는 정말 사기나게(신이나게) 썼죠. 근데 지금은 다 까먹었어요. 북한에서는 진짜 그걸 세계에서 제일 최고의 철학이라고 하면서 열심히 공부했는데 한국에 와보니 그걸 아무데도 쓸데없어요. 솔직히 주제사상이라는 게 외부 세계와의 관계를 완전히 포기해버린 ‘나’라는 고립된 개인을 고찰한 주관관념론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이것을 일체 모르고 유물론에서도 가장 최고의 철학을 공부한다고 했는데 여기 와서는 솔직히 철학이라고 내세우기도 힘들어요.

김태산 : 북한에서 교육 받고 나와서 남쪽에서 써 먹는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 집에도 하나 있잖아요? (웃음) 우리 집사람은 북쪽에서 영어 공부를 하고 와서 영어 학원을 운영하는데 이렇게 북쪽에서도 어학공부를 한 사람들은 남쪽에서 써 먹을 수 있어요. 영어, 중국어, 노어 다 써 먹을 수 있는데 그 외에 거의 없다고 봐야죠.

진행자 : 기술은 거의 못 써먹는다고 봐야겠죠?

김태산 : 사실 교육에 있어서 북쪽, 남쪽 교육의 질적 비교는 힘들어요. 사실 배운 사람 개인의 문제가 크죠. 북한에서도 1+1=2 라는 것은 같은데 어떻게 배웠느냐가 문제 아닌가요?

진행자 : 북쪽에서 교육의 질이 나쁘다 교육을 못 쓴다는 얘기가 아니라 아예 교육을 못 받는 게 문제 아닙니까? ‘고난의 행군’ 시기에는 정말 학교를 못 다닌 학생들이 많잖아요? 탈북 청년들 중에 그때 탈북해서 남쪽에 온 친구들은 기초 학력이 아예 없으니 남한에 와서 공부를 하면서도 정말 힘들어하거든요.

김태산 : 사실, 그게 제일 문제네요.

문성휘 : 근데 얘들은 빨리 배웁니다. 우리 딸아이가 저희가 들어온 다음, 2년 뒤에 데려왔는데 북한에서 4년 동안 공부를 전혀 못 했어요. 그리고 공부를 한 기간에도 대충 학교에 이름만 걸어놓고 다녔다고 해요. 그래서 남쪽에서는 영어 자모부터 다 처음 배웠는데 지금은 영어를 능숙하게는 못해도 자막 없이 미국 영화를 보면서 뭐라고 하는지 저희에게 설명 정도는 해줘요. 이 정도면 상당히 빠르죠...

진행자 : 요즘 대학교 다니는 탈북 청년들이 참 많은데요. 좋은 일이죠. 앞으로 이런 친구들이 해야 할 일이 많은 것 같아요.

문성휘 : 맞아요. 여기서 배운 토대와 경험으로 갖고 북한에 들어가서 저기 사람을 배워주고 아마 이 친구들이 우리 민족의 화해의 다리가 될 거예요.

김태산 : 우리 탈북자들도 자기 자식들 잘 교육 시키고 자기도 열심히 공부해서 우리 고향을 일떠세우는데 한몫을 해야겠지 않겠어요?

탈북자 중 남쪽에 들어와 학교를 다니는 학생이 최근 5년 사이 3.5배로 증가했습니다. 2011년 9월 통계를 보면 탈북 학생의 숫자가 1,681명이나 된다고 하는데요. 학교를 중간에 그만 두는 비율도 한국 학생들에 비해 5배나 높았지만 이 비율도 요즘엔 좀 내려가는 추세랍니다.

남쪽 사회는 경험을 얻었고 탈북 학생들은 좀 더 노력하고 있다는 얘기 같습니다.

그런데 학생들만 공부를 하는 건 아니죠. 김태산, 문성휘 씨 같이 북쪽에서 교육 받고 경험 많이 쌓은 성인들도 공부를 해야 합니다.

탈북자들에게 남한 사회는 큰 학교, 남한 사회에게 탈북자 역시 열심히 공부해야할 대상입니다. 그리고 이 학습의 성적표는 언젠가 우리가 함께 할 때 확인이 가능할 텐데요. 이 성적표가 좋아야 우리의 미래가 탄탄하겠죠? 열심히 노력해야겠습니다.

<내가 사는 이야기> 살며 공부하며 두 번째 시간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이현주였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안녕히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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