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현우의 블랙北스] ‘교통사고 사망’ 북 엘리트들 ‘암살설’ 진위는?

서울-목용재 moky@rfa.org
2024.12.04
[류현우의 블랙北스] ‘교통사고 사망’ 북 엘리트들 ‘암살설’ 진위는? 지난 2015년 김양건 교통사고로 숨진 북한 노동당 비서 겸 통일전선부장. 사진은 2014년 10월 4일 인천 아시안게임 폐막식에 참석하는 북한 김양건 당 통일전선부장 겸 대남담당 비서가 인천 오크우드호텔에 들어서는 모습.
/연합뉴스

안녕하세요. 류현우의 블랙북스, 진행을 맡은 목용재입니다. 지난 시간에는 북한의 교통 상황 전반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한국에서는 북한의 교통량이 많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북한에서 발생하는 교통체증, 교통사고 등에 대해 의아하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북한 고위급 인사들이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었다는 보도가 나오면 의도적인 암살설이 제기되곤 했는데요. 오늘은 이와 관련해 류현우 전 쿠웨이트 주재 북한 대사대리께서 말씀해주시겠습니다.

 

[진행자] 과거 보도를 보면 북한의 고위 인사들이 교통사고로 숨지는 경우가 종종 있었죠? 이에 대해 정리해 주시죠.

 

[류현우] 교통사고로 사망한 고위 간부들이 여러 명입니다. 김용순, 리제강, 김양건 등 간부들이 교통사고로 사망했고 부상을 당한 고위 간부들도 여러 명 됩니다. 제가 리제강의 교통사고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2010 6월 김정일이 부른 파티에 참가한 고위 간부들이 파티가 끝난 새벽 1시 귀가를 위해 자동차에 분승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간부들은 방향별로 버스에 탄 후 집체적으로 집으로 향했는데 리제강과 몇몇 간부들은 자리가 좁다면서 승용차를 타고 떠나겠다고 고집을 부렸습니다. 그래서 리제강을 비롯해서 김경옥 당시 노동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 김창섭 당시 국가보위성 정치국장 등 3명이 승용차에 올랐습니다. 당시 승용차가 동명왕릉이 있는 쪽을 지났는데 그쪽은 도로에 가로등도 없고 또 반사도료도 쓰지 않아 저녁에는 새카만 곳입니다. 그런데 이 승용차를 운전한 운전수가 갓난아이 아버지였습니다. 나의 경험을 놓고 보면 갓난아이를 키울 때가 제일 힘들었거든요. 다들 육아를 해보았으니 알겠지만 갓난아이는 2시간에 한 번씩 깨어나 모유를 먹고 자거든요. 그러니 엄마가 피곤한 것은 더 말할 나위 없고 아빠도 덩달아 함께 일어나니 같이 피곤하거든요. 이때 동원되는 운전수들은 모두 김정일의 경호부대인 974군부대 군관들입니다. 그러니 운전수들은 항시 대기상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새벽 1시라 도로가 너무 조용하고 불도 없으니 깜빡 졸음이 몰려왔던 모양입니다. 자기도 모르게, ‘아차하는 순간에 차가 도로를 이탈해서 아름드리 나무를 들이받았습니다. 리제강은 운전수와 대각선 뒤 방향에 있는 간부좌석에 앉았는데 나무를 들이받고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뒷문이 열리면서 튕겨 나가 문과 나무를 들이받으며 연이어 뇌진탕을 입었습니다. 두개골이 박살 났고 그 자리에서 리제강과 운전수가 즉사했습니다. 다행히 김경옥과 김창섭은 안전벨트를 하고 있어 차안에서 밖으로 튕겨 나가지 않았고 대신 둘 다 허리가 만신창이가 되어 큰 수술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김경옥과 김창섭은 운이 좋게 살았습니다. 제가 일일이 다 나열할 수는 없지만 교통사고로 사망한 간부들이 여러 명 됩니다.

 

[진행자] 고위급 간부들은 본인들이 직접 운전하는 경우는 없는 건가요?

 

[류현우] 간부들이 직접 운전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술에 취한 간부들이 교통사고를 내고 일반인을 깔아 죽인 사고도 있습니다. 지금 노동당 중앙위원회 선전비서 리일환은 평양시당 선전비서로 근무할 때 술을 만취되도록 마시고 운전을 하다가 횡단보도를 걷는 여성을 깔았습니다. 그 여성은 다음 날 뇌진탕에, 간파열로 병원에서 사망했고 그 사건으로 리일환은 당처벌을 받고 지방에서 노동혁명화를 거쳤습니다. 대부분 간부들의 승용차는 운전수들이 맡아 운전하는데 리일환은 자신이 차를 운전할 줄 안다면서 가끔 본인이 운전하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그는 청년동맹 출신 간부이기 때문에 똘마니 대장을 해서인지 여물지 못했다는 비판도 많이 받았다고 합니다. 그는 사고를 냈던 당시 운전수에게 들어가라고 말하고는 자기가 차를 몰고 친구와 함께 취하도록 술을 마셨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사고를 냈습니다.

 

[진행자] 북한에서 이런 교통사고가 발생하는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으로 보십니까?

 

[류현우] 북한에는 대부분 저녁에 교통사고가 많이 발생합니다. 우선 시내 도로에 가로등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시간만 되면 전기절약 차원에서 가로등을 모두 끕니다. 그리고 한국처럼 도로에 차선 발광도료를 쓰거나 차선에 박혀 있는 반사용 유리알도 없습니다. 그러니 저녁에 고속도로에 나가면 안 됩니다. 사고가 날 수 있으니까요. 게다가 도로상태가 매우 나쁩니다. 오죽하면 지난 2018 4.27회담 때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가 문재인 당시 한국 대통령에게 우리 나라는 도로가 나쁘니 비행기로 오는 편이 나을 것이라고 이야기했겠습니까. 북한은 도로가 너무 한심하거든요. 평양-남포 고속도로에 움푹 패인 곳이 엄청 많습니다. 그러니 고속도로라고 하지만 시속 60Km이상의 속력을 내기 어렵거든요. 빠른 속도로 달리다가 정황이 발생하면 제어를 할 수 없을 정도로 도로상태가 매우 나쁩니다. 오히려 토사도로가 더 좋습니다. 이런 교통조건에서는 아무리 운전수가 있다해도 교통사고가 발생할 수 있는 확률이 높습니다. 저의 장인도 교통사고로 대퇴가 부러져 수술을 받은 적이 있는데 토사도로인 외통길에서 빠른 속도로 달려오는 군부대 자동차와 충돌해 사고가 났었거든요. 오히려 자동차가 많지 않으니 경각심이 무뎌 진 것도 있고 도로상태가 나쁘기 때문에 지방에서도 교통사고가 많이 납니다. 제가 장인어른의 차를 운전하는 운전기사에게 물어보았더니 지방출장을 갔다 올 때마다 지옥에 갔다 오는 기분이라고 합니다. 함흥, 청진과 같은 북부지역에 출장을 갈 때에는 평양-원산고속도로를 타고 원산까지 갔다가 거기서 하루 쉬고 또 동해안선을 따라 올라갑니다. 도로가 변변한 곳이 하나도 없기 때문에 교통사고가 날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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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자] 일각에서는 교통사고로 숨진 북한 고위인사들이 암살당한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됩니다. 이에 대해선 어떻게 보시나요?

 

[류현우] 그것은 북한 사회의 정치 문화를 잘 모르기 때문에 하는 이야기라고 봅니다. 폐쇄적인 북한에서 굳이 교통사고로 위장하면서 암살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쥐도 새도 모르게 독약을 먹여 암살한 후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사망했다고 의학감정서를 발표하면 그만인데요. 간부들은 대부분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렇게 죽을 확률도 높거든요. 그리고 폐쇄적인 북한에서 그걸 누가 확인하며 또 확인했다고 하면 어떻게 증명하겠습니까. 우선 아무리 악명 높은 국가보위성도 고위 간부를 암살하려면 김정은의 허락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그리고 북한에서 간부들이 타는 벤츠 등 수입차를 구입하자면 몇 만 달러를 지출해야 합니다. 더욱이 벤츠는 김정은이 간부들에게 선물로 하사하는 공무용 차입니다. 귀한 외화를 쓰면서 수입한 벤츠를 꼭 폐차로 만들면서까지 암살해야 할까요. 이왕 암살하려는 사람의 목숨 값과 벤츠 값을 비교하면 어느 쪽이 더 손해가 나겠는지 견적이 나오지 않습니까. 북한에서는 사람의 목숨이 파리 목숨이거든요. 고모부 장성택, 형 김정남을 비롯해서 제 혈육까지 죽이는 독재자 김정은이 사람 목숨을 귀하게 여길까요? 제가 생각해봐도 암살하자고 마음만 먹으면 다른 방법도 너무나 많습니다. 그리고 북한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와는 달리 모든 것이 통제되는 나라입니다. 한국처럼 언론의 자유나 표현의 자유가 없기 때문에 내밀하고 중요한 내용의 정보는 기사에 나오지도 않습니다.

 

[진행자] 북한에서 고위급이 교통사고를 당하면 북 내부에서 암살당한 것이라는 등의 이야기가 나올까요? 내부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류현우] 우선 북한은 언론이 통제되는 나라입니다. 모든 출판, 언론 매체들이 김정은의 비준이 있어야만 내용을 보도할 수 있습니다. 교통사고가 있었다는 소식이 퍼지기 시작하면 1주일 내에 전국 각지로 퍼져갑니다. 그런데 암살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북한에서는 암살은 당의 통일과 단결, 사회적 단합에 나쁜 영향을 주는 사건으로 간주됩니다. 또한 북한 사회에 암살이 있다는 것은 김정은에 대한 암살도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사회적 불안정 요소를 지칭하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대부분 교통 사고 사망을 암살로 생각하는 사람은 매우 드뭅니다. 한국에 오니 교통사고로 암살됐다는 뉴스가 많아 저도 놀랐습니다. 그러나 제가 알고 있는 간부들의 사망은 분명히 교통사고로 인한 것이었습니다.

 

[진행자] 결국 북한의 교통 관련 기반 시설이 열악한 것이 북한 고위급 인사들의 사망에 가장 큰 원인이라는 말씀이시군요. 여기에 안전운전 의식이 부족한 점도 한몫 한 것으로 보입니다. 류현우의 블랙북스, 다음 이시간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대사님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에디터 양성원, 웹편집 김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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