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현우의 블랙北스] 김정은 생일 공식화하지 않는 이유
2025.01.01
안녕하세요. 류현우의 블랙북스, 진행을 맡은 목용재입니다. 2025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올해에도 건강하시고 뜻하는 바 이루시길 간절히 바라겠습니다. 2025년 새해 첫 이야기는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와 그의 어머니인 고용희에 대한 내용입니다. 지난해 김정은에 대한 우상화가 강화된 만큼 새해에도 이 같은 행보가 이어질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는데요. 이에 대한 전망과 함께 김정은의 친모인 고용희와 관련된 숨겨진 이야기도 오늘과 다음주 방송까지 두차례에 걸쳐 나누어 전해드리겠습니다. 새해 첫날, 류현우 전 쿠웨이트 주재 북한 대사대리 나오셨습니다.
[진행자] 김정은이 지난해 보인 행보 중에 주목된 것은 ‘두 국가 선언’이었습니다. 통일을 지향해 오던 남북 모두 이로 인해 상당한 혼란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지난해를 돌아봤을 때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류현우]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김정은이 직접 남북관계를 적대적인 ‘국가 대 국가’ 관계로 공식화한 건 처음이었습니다. 사실 남과 북은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에서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로 합의했는데 이것을 일방적으로 폐기한 것입니다. 김정은은 그 이유를 한국의 ‘대북 적대시정책’에서 찾았습니다. 김정은은 “흡수통일, 체제통일을 국책으로 정한 대한민국 것들과는 언제 가도 통일이 성사될 수 없다”며 “외세와 야합해 정권 붕괴와 흡수통일의 기회만을 노리는 족속들을 화해와 통일의 상대로 여기는 것은 더 이상 우리가 범하지 말아야 할 착오”라고 못박았습니다. 게다가 2024년 1월에 열린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0차 회의 시정연설에서 김정은은 “우리 공화국의 민족력사에서 통일, 화해, 동족이라는 개념 자체를 완전히 제거해 버려야 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진행자] 통일 개념을 없애야 한다는 것은 사실 김일성, 김정일 등 선대의 유훈에 정면으로 맞서는 행보라고 볼 수 있지 않습니까. 이를 김정은에 대한 우상화 강화의 일환으로 봐야할까요?
[류현우] 사실 통일을 지운다는 것은 세습을 통해 권력을 이어받은 김정은이 선대 수령의 노선과 존재를 지우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김일성이 한국전쟁을 일으킨 본질도 결국 무력으로 남북을 통일하려던 것이 아니었습니까? 김정은은 2024년 한 해 동안 평양시 통일거리에 있는 조국통일3대헌장기념탑을 철거했고, 개성공단과 금강산의 남측 시설들을 없애고 있으며 최근에는 남북을 잇는 경의선·동해선 철도, 도로를 폭파했습니다. 조국통일3대헌장기념탑을 철거했다는 것은 김일성의 통일 업적을 부정한 것입니다. 그리고 개성공단, 금강산관광사업, 남북 철도·도로 연결사업은 지난 2000년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이 정상회담을 해서 이룬 남북협력사업입니다. 따라서 이를 폭파한 것은 김정일의 업적에 대한 전면 부정이 되기도 합니다. 김정은은 선대수령의 존재를 지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김정은이 27세의 어린 나이에 최고지도자 자리를 이어받을 수 있었던 것은 조부 김일성에서 시작된 이른바 ‘백두혈통’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김정은이 최근 선대를 부정함으로써 정통성의 근간을 스스로 훼손하는 모순적인 상황이 발생하고 있는 것입니다. 선대에 대한 부정의 가장 최근 사례는 김일성을 기리는 ‘주체 연호’가 사라진 것입니다. 주체 연호는 북한의 각종 공식 문건이나 대외적으로 발표하는 성명, 담화 등에서도 모습을 감췄습니다. 북한이 2024년부터 김일성의 생일인 ‘태양절’이라는 표현을 적극적으로 사용하지 않는 것도 동일한 맥락에서 이해되는 부분입니다. 문제는 이런 행보가 북한 사회에 뿌리내릴 수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북한에서 영도자가 갖춰야 할 제일 가는 품성은 ‘수령에 대한 충실성’입니다. 선대에 대한 충실성을 가장 완벽하게 체현한 후계자는 자식만이 될 수 있다는 것으로 해서 지금까지 수령에 대한 후계자는 김 씨 일가 외에는 누구도 되지 못했습니다. 북한 주민들도 그동안 세습의 논리에 세뇌되다 보니 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래서 선대 수령에 대한 지우기는 북한 주민들로서는 선뜻 수용하기 어려운 문제로 볼 수 있습니다. 2025년에도 김정은은 홀로서기를 계속하며 자신과 선대와의 차별화를 위해 선대 수령의 업적을 슬그머니 지우는 한편 자기를 우상화하는 작업을 계속 강화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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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자]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의 생일이 1월 8일로 알려져 있는데, 이를 기념하는 움직임은 지금까지는 특별히 포착된 바가 없습니다. 김정은이 올해부터 김일성이나 김정일의 생일처럼 자신의 생일을 명절 수준으로 올려 기념할 것으로 보십니까?
[류현우] 김정은이 지난 2024년 1월 8일에 만 40세가 되었습니다. 솔직히 말해 남북한 통틀어, 40세면 아직 정치계에서는 어린 나이로 취급합니다. 김정은이 아무리 홀로서기를 하며 선대의 반열에 나란히 서겠다고 해도 현재 시점에서는 김일성이나 김정일의 생일만큼 국가의 대명절 수준으로 올려 기념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북한에는 서열, 나이, 성별 등 위계 질서와 충군, 효도와 같은 봉건적이고 가부장적인 유교 문화가 지배적입니다. 현재 북한의 당과 국가, 군대의 간부들은 모두 나이가 50대 후반부터 70대, 80대입니다. 그런데 영도자의 나이가 40세에 불과하다고 하면 많은 간부들과 주민들이 그를 어린 아이 취급하죠. 그러면 영도자의 권위와 위신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래서 김정은이 자기의 혁명 역사를 학교에서 가르쳐 주라고 하면서도 자기 생일을 밝히지 못하고 있습니다. 김정은이 생년월일을 공개하는 순간 자기의 권위와 위신이 땅바닥으로 추락하게 된다는 것을 모르지는 않습니다.
[진행자] 일단 김정은의 생일을 태양절이나 광명성절 수준으로 격을 올리려면 정리해야 할 것이 많을 것으로 보입니다. 김정일의 경우 생일을 김일성의 생년 1912년의 마지막 숫자를 맞춰 1942년생으로 밝힌 바 있습니다. 김정은은 1984년생으로 알려져 있는데, 생년의 끝자리를 선대와 맞출 가능성이 있을까요?
[류현우] 지금 국제사회에 밝혀진 김정은의 생년월일은 1984년 1월 8일입니다. 이 날짜는 김정은이 스위스에서 유학생활을 할 때 그가 다니던 학교 문서와 같은 반 학생들의 증언, 그리고 미국에 망명한 김정은의 이모 고용숙을 통해 확인됐습니다. 북한에서 김정은의 생일은 아직도 공개되지 않고 있습니다. 저는 2009년 5월에 장인어른을 통해 김정은이 1984년생이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당시 장인어른은 제2차 핵실험 성공을 기념하는 파티에 참가했는데 거기에 김정일이 아들 김정은을 데리고 나왔다고 합니다. 행사가 끝난 후 집에 돌아온 장인어른과 이야기를 하다가 제가 김정은의 나이를 물어보았습니다. 그 때 장인어른이 “대장동지 나이는 25살”이라고 이야기하더군요. 장인어른이 말하는 대장동지가 바로 김정은이었습니다. 이미 2009년 2월부터 북한의 고위 간부들은 김정은을 가리켜 ‘대장동지’라고 불렀습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놀라기도 하고 어이가 없었습니다. 2009년이면 북한에서 김정은을 후계자로 만들기 위한 작업이 활발할 때였습니다. 아무리 김정일의 아들이라고 해도 25살짜리 애송이를 국가 지도자로 만든다는 것이 어처구니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또 그의 나이를 공개하면 북한 주민들이 어떻게 받아들일까 하는 의문도 생겼습니다. 저도 수용하기 어려운데 북한 주민들이 과연 25세 애송이를 후계자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가족끼리 세습을 한다고 해도,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도대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국호가 적절한가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한마디로 김정은이 자기 생년월일을 공개하면 수령의 권위가 추락됩니다. 이런 조건에서 아직은 선대와 생년의 뒷자리를 맞출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봅니다.
[진행자] 김정은이 공개활동을 하면서 배우자인 리설주를 동행시켰을 당시 한국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이를 상당히 주목했는데요. 리설주가 처음 등장했을 때 북한 고위급이나 간부들, 엘리트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류현우] 매우 신선했습니다. 사실 김일성 시대 때에는 간부들이 부인과 함께 공식 행사에 참가한 사례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김정일이 후계자로 된 후부터 간부들이 공식 행사에 부인들과 동석하는 사례가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아마도 여자관계가 너무 복잡했던 김정일이 있는 자리에 부인과 동석하는 것이 큰 리스크나 혹은 부담으로 작용했을 겁니다. 김정일은 자기 아내인 고용희도 한 번도 외부에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인지 북한 간부들에게 리설주의 등장은 상당히 파격적이었습니다. 물론 고용희는 파티나 공식 행사에는 참석하기도 했습니다. 단지 외부에 공개되는 기록영화나 사진에 없었을 뿐입니다. 리설주가 처음 등장한 것은 2012년 7월 모란봉악단 공연관람 때였습니다. 그때 김정은과 함께 등장했고 처음 TV를 통해 중계되었습니다. 그후 김정은과 리설주는 계속 동행하며 공식행사에 참석했습니다. 특히 2012년 3.8 부녀절 경축 은하수음악회에 참석한 모든 간부들이 다 부인들과 동석했었습니다. 당시 저의 장인어른과 장모가 함께 부부동반으로 행사에 참석했었습니다. 행사에 부부동반으로 참석해 보기는 1980년 이후 처음이라고 말씀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그만큼 리설주의 등장이 매우 충격적이었습니다.
[진행자] 네. 대사님 잘 들었습니다. 새해 첫 블랙북스,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의 우상화가 과연 올해 어느 수준까지 진행될 것인지에 대한 전망을 들어봤는데요. 다음 시간에는 김정은의 친모, 고용희에 대한 숨겨진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류현우의 블랙북스, 다음 시간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대사님 감사합니다.
에디터 이현주, 웹편집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