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순희의 성공시대] 독서로 터득한 남한살이의 지혜 (2)

0:00 / 0:00

UPDATED 11/04/2024 KST 18:00

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탈북민이 생각하는 성공은 어떤 것일까요? 이 시간에는 남한에서 살아가는 탈북민들의 ‘성공’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탈북민들의 국민 엄마,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마순희: 네. 안녕하세요.

김인선: 네. 오늘은 지난 시간에 이어서 김예림 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볼게요. 비행기를 타고 한국에 입국했던 분이셨죠?

마순희: 네, 맞습니다. 김예림 씨는 브로커를 통해 세 번째 시도 끝에 한국에 입국했는데요. 브로커들은 동생을 중국에 담보로 놔두고 예림 씨만 먼저 한국에 가는 것을 조건으로 걸었습니다. 그래야 예림 씨가 브로커 비용을 빨리 보낼 테니까요. 예림 씨와 동생은 그 조건을 수락했고 중국인 신분의 위조여권으로 한국남자에게 국제결혼 하러 가는 신부로 위장하고 비행기를 탈 수 있었습니다. 2002년 8월 한국에 입국한 예림 씨는 스스로 탈북민임을 밝혔습니다. 하루라도 빨리 브로커 비용을 갚고 동생을 데려와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기에 예림 씨는 탈북민 초기정착 교육기관인 하나원에서 진행하는 다양한 교육을 적극적으로 받는 것은 물론이고 하나원 내에 구비된 한국 생활에 필요한 다양한 책들을 모조리 읽었습니다. 예림 씨는 하나원에서 교육해주는 강사들의 말도 빠짐없이 다 듣고 실천했고, 탈북민들을 보호조치하는 국정원 조사관의 말도 그대로 믿고 따랐습니다. 그때 담당조사관이 '한국에서 눈과 귀와 코가 막히지 않으려면 컴퓨터를 배워야 하고 발이 막히지 않으려면 운전부터 배워야 한다'고 했다는데요. 예림 씨는 그 말을 그대로 따랐습니다. 하나원을 나오자마자 형편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컴퓨터와 운전부터 배웠던 것입니다.

김인선: 운전면허증을 따려면 필기시험을 거쳐 실기시험까지 통과해야 하는데요. 생각보다 쉽지도 않고 교육비도 꽤 들어요.

마순희: 맞습니다. 필기시험 공부에 필요한 문제집 가격은 7.4달러, 한국 돈으로 만 원 정도 했는데요. 예림 씨는 그 돈을 아끼기 위해 동네의 쓰레기 분리수거장에서 주운 문제집으로 공부했습니다. 그 결과 이론 시험은 80점으로 통과했지만, 다음 실기시험 준비가 있었습니다. 도로주행 시험을 보려면 운전 연수를 해야 하는데, 그 비용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30만원, 220달러가 넘는 금액이었습니다. 다행히도 면허증을 따려고 노력하는 예림 씨의 모습을 보고 담당 형사님이 감복하면서 저렴한 가격으로 운전 연수를 받을 수 있는 곳을 소개해 주었고, 예림 씨는 저렴한 비용으로 실기시험까지 합격할 수 있었습니다. 예림 씨는 식당 일, 24시간 운영하는 상점에서 부업하는 일까지 쉬는 날 없이 일을 하면서 컴퓨터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김인선: 컴퓨터를 다룰 줄 알면 취업에 굉장히 유리하거든요. 게다가 예림 씨는 북한에서 회계 관련된 일을 했었잖아요?

마순희: 네. 예림 씨는 북한에서 부기로 5년 정도 근무했는데요. 하지만 그 경험은 한국에서는 무용지물이었습니다. 북한에서는 수기로 업무를 했다면 한국에서는 모든 게 전산화였습니다. 남북의 회계 체계가 완전히 달랐기 때문에 예림 씨는 경력이 전혀 없는 사람들과 다를 바 없는 처지가 됐고, 처음부터 다시 회계 관련 공부를 해야 했습니다. 예림 씨는 먼저 컴퓨터 학원에 등록하고, 기초부터 차근차근 배우면서 다양한 실무를 경험했습니다. 컴퓨터 공부를 하면서 기본 지식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한국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과 어깨를 맞추며 살고 싶어서 대학에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교육과정 역시 남북의 차이가 있었지만 북한에서 전문대학을 나왔던 예림 씨였기에 대입 준비가 가능했고, 탈북민 특별전형으로 서울의 한 대학 복지학과에 입학했습니다.

<관련 기사>

[마순희의 성공시대] 탈북 선배의 조언 (1)Opens in new window ]

[마순희의 성공시대] 탈북 선배의 조언 (2)Opens in new window ]

김인선: 복지학과의 특성상 시설에 나가서 실습수업까지 해야 졸업도 가능하고 자격증 취득도 할 수 있잖아요?

마순희: 맞습니다. 예림 씨 역시 현장 실습까지 마쳤고 대학을 졸업한 후에는 장애인 시설에 입사했습니다. 장애인 시설에서 2010년부터 2012년까지 2년 동안 근무한 후 예림 씨는 더 큰 무대로 진출했는데요. 북한에서의 회계 경력과 남한에서 습득한 컴퓨터 자격증, 그리고 사회복지 관련 자격증들과 시설 복지사로서의 경력까지 모두 인정받으면서 경기도청 공무원으로 채용됐습니다. 지금까지 들으셔서 아시겠지만 예림 씨는 1분 1초도 헛되게 쓰지 않는 분입니다. 그 덕분에 한국에 정착한 지 1년이 조금 넘어 중국에 있던 동생을 한국에 데려올 수 있었는데요. 브로커 비용은 그동안 일해서 모은 돈과 초기 정착지원금으로 받은 돈으로 마련했습니다. 동생이 무사히 한국에 와서 잘 정착했기에 예림 씨는 마음 편히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고 공부에만 전념할 수 있었습니다.

김인선: 대학 진학부터 졸업, 그리고 취업까지! 엄청난 노력을 하신 건 알지만, 정말 실패 하나 없이 한 번에 쭉쭉 진행된 건가요?

마순희: 그렇다고만 볼 순 없는데요. 사실 예림 씨의 첫 직장이 장애인 시설이 아니었습니다. 졸업 후 곧바로 취업된 곳은 경기도의 한 하나센터였는데요. 탈북민들이 거주지역에서 잘 생활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곳이 하나센터이다 보니 탈북민이면서 사회복지를 전공하는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예림 씨가 그 자격 요건을 모두 갖추었기에 졸업하자마자 채용이 되었는데 1년 만에 예림 씨는 사표를 쓰고 제 발로 나왔다고 합니다. 운 좋게도 대학졸업 후 곧바로 취업이 되긴 했는데, 일을 하면서 예림 씨 스스로 생각이 많아졌기 때문입니다. 당시 열심히 일했음에도 무엇인가 부족하다는 생각을 털어버릴 수가 없었다고 하더라고요. 뭔가 부족함은 느껴지는데 그 부족함이 무엇인지 도저히 모르겠고, 자신보다 더 적합한 사람이 그 자리에 오는 게 옳다는 생각 뿐이었습니다. 예림 씨는 스스로 물러나야겠다고 마음 먹고 사표를 제출했습니다. 사표 쓰고 나와서 예림 씨가 다음으로 취직한 곳은 장애인복지시설 '사랑의 집'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예림 씨는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중 가장 중요한 깨달음은 남한에 온 후 7-8년 동안을 너무 숨 가쁘게 앞만 보고 달려왔다는 것이었습니다.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들을 돌보면서 사회복지사의 업무에 전념하던 예림 씨는 2년 후 경기도청 채용 공지를 접했고, 시험을 거쳐 통일기반 조성담당관실 공무원으로 당당히 합격했습니다. 5년 동안만 근무가 보장된 계약직 공무원으로 탈북민 상담을 통해 정착을 지원하는 일을 담당했는데요. 예림 씨는 그 어느 때보다도 만족감과 사명감으로 일했습니다. 본인의 경험을 살려 탈북민들의 대학진학 부문을 중점적으로 진행했고 2014년부터 3년간 48명의 탈북민들을 대학에 진학시켰을 만큼 예림 씨의 활동은 빛을 발했습니다. 경기도청과 5년간의 계약이 끝난 후 예림 씨는 다시 한 번 이직의 기회가 찾아왔는데요. 공채를 통해 다른 지역의 공무원이 됐고현재까지 근무하고 있습니다.

김인선: 취업도 쉽지 않지만 취업만큼 어려운 게 이직일 겁니다. 그런데 예림 씨는 취업도 이직도 어렵지 않게 해냈어요. 비결이 뭘까요?

마순희: 네. 예림 씨는 스스로를 '돌솥'같은 사람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냄비처럼 팔랑팔랑 끓지 않고 우직하게 한 곳을 보고 나아가기 때문이랍니다. 또 지금도 한 달에 열두 권 정도의 책을 읽는다고 해요. 다양한 책을 읽으면서 관련 분야의 지식을 쌓을 수 있었다면서 오늘의 자신이 있기까지는 독서의 힘이 크다고 이야기하는 예림 씨입니다. 정년퇴임 후에는 사회복지시설을 직접 운영하는 것이 꿈이기에 지금도 책을 손에서 놓지 않고 공부 중이라는데요. 남한 사회를 경험해 보니 확실한 목적을 눈앞에 두고 준비하고 노력하면 반드시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예림 씨이기에 그녀의 꿈도 반드시 이루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인선: 주변의 조언을 잘 듣고 실천하기, 그리고 독서! 이 두 가지가 예림 씨의 삶을 특별하고 멋지게 만들어 주는 비결이었네요. 오늘도 성공시대 주인공을 통해 한 수 배우면서 마순희의 성공시대 여기서 인사드립니다. 함께 해주신 마순희 선생님, 감사합니다.

마순희: 네. 감사합니다.

김인선: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

에디터 이예진 웹편집 김상일

*바로잡습니다: 김 씨의 현재 근무지와 관련해 그의 신변 보호를 위해 표현을 일부 수정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