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순희의 성공시대] 딸기로 찾은 내 인생 (2)

서울-김인선 kimi@rfa.org
2024.04.04
[마순희의 성공시대] 딸기로 찾은 내 인생 (2) 충남 논산시민공원 일대 축제장이 딸기를 맛보러 온 관광객들로 붐비고 있다.
/연합

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김인선입니다. 탈북민이 생각하는 성공은 어떤 것일까요? 이 시간에는 남한에서 살아가는 탈북민들의성공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탈북민들의 국민 엄마,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마순희: . 안녕하세요.

 

김인선: 오늘은 지난 시간에 이어서 황수정 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볼게요.

 

마순희: . 황수정 씨는 2003년에 한국에 입국해서 경상도 진주 지역에 터를 잡았는데요. 처음엔 심신이 미약해서 경제활동을 하지 않고 병원을 오가는 정도의 최소 외출만 하는 정도로 지냈습니다. 그러다가 지역 자원봉사자들의 따뜻한 손길을 접하게 되었고, 점차 활기를 찾았습니다. 함께 봉사활동을 하면서 마음이 치유됐다는 수정 씨였습니다. 황수정 씨는 자신이 받기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베풀 줄도 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고, 또 자신과 비슷한 아픔을 갖고 있는 다른 탈북민들을 돕고 싶다는 마음에 같은 지역에 사는 탈북민들을 모아 봉사단체를 만들었습니다.

 

수정 씨는 봉사활동을 하면서 본격적인 경제활동도 시작했는데요. 버려진 물웅덩이가 있는 땅을 싼 값에 사서 화훼농장을 운영하는 일이었습니다. 화훼농장을 운영하면서 돈도 제법 모았습니다. 수정 씨는 농사를 짓고 싶어서 진주 지방에서 많이 하고 있는 딸기농사를 시작했는데요. 화훼농장을 운영한지 8년 만의 일이었습니다. 그동안 중국에 있던 남편을 국제결혼으로 한국으로 올 수 있게 했고, 북한의 두 딸도 한국으로 데려왔습니다. 수정 씨는 남편과 함께 딸기농사를 지으며 터를 잡아 나갔습니다. 열심히 살고 있는 부부의 모습은 지역주민들에게 화제가 되었고, 경남농업기술센터에서 기술 지도를 받아서 새로운 개념의 딸기 재배 온실(하우스)을 건설하게 되었습니다.

 

김인선: 다른 작물에 비해서 딸기농사가 수익성이 좋다고 들었어요. 그런데도 모두가 딸기농사를 짓지 않는다는 건 분명한 이유가 있겠지요. 물론 지역이나 기후에 따른 특성도 있겠지만, 고도의 기술력이 필요하거나 위험 요소가 크거나 노동 강도가 굉장히 세기 때문이 아닐까 싶은데요. 수정 씨도 딸기농사를 시작할 때 이런 상황을 고려했을까요?

 

마순희: . 수정 씨도 처음에는 딸기농사가 수익성이 높다는 말을 믿고 시작한 것은 사실이었습니다. 화훼농장을 수월하게 운영했던 경험이 있기에 농사 일에도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딸기농사는 수정 씨의 예상보다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수익성이 높은 것만큼 자금을 많이 들여서 설비도 개조해야 했고, 새로운 품종을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기술적인 문제도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처음에는 기술적인 문제로 시행착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수정 씨는 전문가의 적극적이고 세심한 기술 지도를 받으면서 마주한 어려움을 하나씩 풀어나갔습니다. 딸기농원은 나날이 자리를 잡아 나갔고 처음에 세 동이었던 딸기 재배 온실(하우스) 10년이 지난 지금은 11동으로 늘어났습니다. 120여 세대의 딸기농가들 중에서도 1-2위를 차지하는 오늘의 쾌거를 이룰 수 있었다고 합니다.

 

김인선: 딸기는 굉장히 무른 과일이라서 수확할 때는 물론 과실 선별할 때, 그리고 포장할 때도 많은 주의가 필요합니다. 작업을 빨리 할 수 없는 품목인 거죠. 그래서 제때 판매하려면 많은 인력이 동원돼야 하는데요. 인건비가 문제입니다. 수정 씨는 이런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을까요?

 

마순희: , 맞습니다. 저도 요즘 딸기를 사다 먹으면서 많이 느끼거든요. 아무리 싱싱한 딸기라도 얼마 못 가서 상하고 말더라고요. 하지만 수정 씨네 딸기농장에서는 그런 걱정을 거의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수정 씨네 딸기농장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빨간 딸기를 거의 볼 수 없을 정도라고 하는데요. 익기 전에 미리 수확을 하는 겁니다. 대부분 동남아 여러 나라로 수출이 되기 때문에 유통기간을 고려해서 미리 수확해서 포장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딸기를 재배하는 온실이 늘면서 직원도 채용했습니다. 세 명의 종업원을 고용한 진주지역에서는 손꼽히는 딸기농장으로 성장한 것입니다.

 

김인선: 요즘 딸기 수확철이라 수정 씨가 많이 바쁘겠어요.

 

마순희: . 맞습니다. 대략 5월까지 딸기 수확이 계속된다고 하는데요. 그 이후에도 수정 씨는 나머지 빈 시간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답니다. 그 공간에 시금치를 비롯한 남새를 심는다는데요. 수정 씨의 딸기 재배 온실(하우스) 1년 내내 가동을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습니다. 내년 농사의 종묘를 심는 일도 함께 하기 때문에 눈코 뜰 새가 없이 바쁘다는 수정 씨입니다. 요즘 같은 농번기엔 농촌에 일손이 딸려서 어려움을 겪는 농가들이 적지 않지만 수정 씨네 농장은 정기적으로 근무하는 직원들도 있고 또 일손이 딸릴 때면 따님들도 가끔 와서 도와주기도 해서 큰 어려움은 없다고 하더라고요.

 

딸기농사만 하는 것이 아니라 딸기 수확의 공간을 이용한 상추나 여러 남새들도 재배하고 있기에 여가 시간도 없이 바쁘게 지내지만 수정 씨는 딸기농장에서 일하는 게 행복하다고 하는데요. 딱 한 가지 아쉬운 점이 바로 그렇게 열심히 했던 봉사활동에 참여를 잘 못한다는 점입니다. 농장 직원들의 생계까지 책임지는 위치에 있다 보니 일에 더 매진할 수밖에 없다며 아쉬움을 달래는 수정 씨인데요. 봉사활동에 참여를 못 하는 대신 활동하는 분들을 위한 후원으로 사랑의 마음을 대신하고 있습니다.

 

김인선: 탈북민들이 한국에 정착하면서 거주지를 배정받을 때 농촌보다는 도시, 특히 서울 지역을 선호하는데요. 뒤늦게 귀농을 고민하는 탈북민들도 늘고 있습니다. 도시에서의 경쟁적인 삶에 지쳤기 때문이라는데요. 딸기농장을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수정 씨에게 도움 받으려는 분들도 여럿 있을 것 같은데 어떤가요?

 

마순희: , 탈북민들의 정착을 도와주는 남북하나재단 영농지원사업의 일환으로 딸기농장 견학, 그리고 알음알음으로 여러 탈북민들이 수정 씨네 농장을 찾고 있습니다. 하지만 모두가 귀농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다른 영농사업들도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딸기농장의 경우 자금이 많이 들어가는 것이기에 초기 투자비용 문제로 선뜻 시작하기는 어렵다고 하더라고요. 수정 씨도 8년 정도 화훼농장을 하면서 자금을 모은 후에야 시작할 수 있었던 일이었습니다. 수정 씨는 딸기농사에 왕초보였던 자신에게 아낌없이 기술을 전수해 주고 시설을 하나하나 갖추어 나갈 수 있게 도와 준 경남농업기술센터 분들의 고마움을 잊지 않고 있기에 딸기 농원에 관심을 두고 시작해 보려는 분들에게는 선배로서 조언을 아끼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수정 씨가 딸기농장 사장으로서, 또 선배로서 다양한 활동과 지원을 지속하는 이유는 바람이 있기 때문이라는데요. 언젠가 수정 씨의 고향인 추운 함경북도 지역에서도 따스한 온실 농장에서 고전 옛말 속에서나 들어 보았던 겨울딸기를 키워 맛보이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수정 씨는 오늘도 열심히 농장을 경영하면서 하나하나 기술을 익히고 경험을 쌓아가고 있습니다.

 

김인선: 딸기농장 사장님으로, 탈북 선배로 수정 씨는 오늘 이 순간도 바쁘실 거 같은데요. 그래도 북한에서 데려온 딸들과 오붓하게 보낼 시간은 있으시겠죠?

 

마순희: . 어렵게 다시 만난 딸들도 모두 잘 지내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수정 씨는 그저 세 딸의 행복만을 바라고 있을 뿐이라고 하는데요. 맏딸은 대학을 졸업하고 공인중개사로, 둘째딸은 간호대학을 졸업한 후 어엿한 간호사로, 그리고 막내딸은 북경대학을 졸업하고 중국에서 교사로 근무하고 있다고 하니 수정 씨가 시름을 놓았다고 자부심을 가질 만 합니다. 수정 씨에게 딸기농사는 단순히 생계를 위한 수단이 아니라고 합니다. 매일매일 싱싱하게 자라는 딸기 재배온실 안의 모습을 보면서 생의 희열을 느끼고 보람을 찾는다는 수정 씨인데요. 정년퇴직이 없는 딸기농장의 경영자로서 사랑하는 자녀들과 함께 앞으로도 행복한 나날을 보내기를 진심으로 바라면서 늘 응원하겠습니다. 황수정 씨 파이팅입니다!

 

김인선: 고향 함경북도에서 호동에서 재배한 겨울딸기를 선보이고 싶다는 수정 씨의 바람이 기억에 남는데요. 언젠가 현실로 이루어질 수 있겠죠? 마순희의 성공시대, 오늘은 여기서 인사드립니다. 함께 해주신 마순희 선생님, 감사합니다.

 

마순희: . 감사합니다.

 

김인선: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

 

에디터 이예진, 웹팀 이경하

댓글 달기

아래 양식으로 댓글을 작성해 주십시오. Comments are modera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