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알고 봐야 재밌다] 피라미드 게임, 지능형 학교폭력의 도래
2024.04.16
[기자] 한국 드라마의 이모저모를 알려드리는 시간, “드라마 알고 봐야 재밌다” 서울에 있는 문화평론가인 중원대 김헌식 교수와 함께합니다. 이 시간 진행에 박수영입니다.
이번 시간에는 티빙 자체 제작 한국 드라마 ‘피라미드 게임’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2024년 2월 공개된 최신작인데요. 특히 한국 인기 아이돌 장원영의 언니 장다아, 예능 프로그램에서 이름을 알린 신슬기, 아이돌 보나로 활동했던 김지연 배우가 출연해 방송 전부터 이목을 끌었습니다. 드라마 ‘피라미드 게임’은 백연여고 2학년 5반에서 한 달에 한 번 진행되는 비밀투표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 비밀투표로 A부터 F까지 반의 서열을 정하고, 가장 낮은 등급인 F로 정해지면 합법적인 왕따를 당하게 되는 건데요. 우선 드라마 내용 살펴보기에 앞서 예고편부터 함께 들어볼까요?
이 반은 이상하다. 우리 반은 매달 마지막 주 목요일 게임을 하나 해. 표를 많이 받은 순으로 A부터 D까지 각자 등급이 정해질 거야. 이건 이퀄 반 안에서의 서열이야. 무슨 이딴 게임이 있어? 너도 F라고? 피라미드 게임을 없애자. 이 게임은 체계가 완벽하지 않아. 배신당할지도 모른다는 압박, 초조, 공포 100% 먹혀. 내가 뭘 잘못했어! 꼬우면 네가 등급이 높아지던가! 질서를 무너뜨릴 거야. 수지야, 조금만 참아. 네 잘못이 아니야. 왜 이딴 게임을 하는 걸까. 처음부터 이상했는데…괜찮아? 넌 이 게임을 왜 해? 잘못하면 얻는 것보다 잃을 게 많은 거 아니야? 게임은 계속된다. 쭉~ 반을 바꾸자고 했잖아. 널 판단하는 건 내가 아니야. 게임이지. 난 그럼 그냥 피라미드를 쳐부술게.
[기자] 오늘도 김헌식 교수님 모셨습니다. 함께 예고편 듣고 왔는데요. 예고편부터 심상치 않은 ‘피라미드 게임’의 줄거리는 어떻게 되나요?
[김헌식] 백연 여자고등학교 2학년 5반에서 벌어지는 특이한 서열 게임을 다루고 있는데요. 아버지 직업 탓에 어렸을 때부터 자주 전학을 다녔던 성수지라는 학생이 주인공입니다. 전학을 많이 다니니까 친구를 새롭게 사귀는 것은 일도 아닌데요. 성수지는 잦은 이사와 전학으로 사회생활과 눈치가 굉장히 빠른데, 이번에는 처음으로 여고로 전학을 왔습니다. 백연여고 2학년 5반은 본관에서 유일하게 떨어져 있는 으리으리한 신축 건물인 별관에 위치하고 있어요. 다른 학교와 다를 것 없어 보이는 여학생들이 모여 있는 2학년 5반인데 왠지 모를 긴장감이 도는 분위기를 느끼게 됩니다. 무엇보다도 들어보지 못한 ‘피라미드 게임’이라는 것을 처음 접하게 됩니다. 학생들이 매일 한 번씩 비밀투표로 왕따를 뽑는데 그 결과로 가해자, 피해자, 방관자가 만들어지는데요. 처음에는 F등급인 학생 (명자은)을 만나게 되는데, 그다음 비밀투표에서 0표를 받은 수지가 F등급으로 확정되게 되면서 다른 아이들의 지독한 괴롭힘이 시작됩니다. 수지는 ‘기껏해야 졸업까지 1년 반’이라며 애써 참아보려고 했지만 예상보다 (왕따 생활이) 너무 지옥 같았기 때문에 여기에서 벗어나려는 생각이 들게 되고 그 벗어나는 과정이 바로 드라마의 줄거리가 되겠습니다.
[기자] 주인공인 성수지는 성격이 굉장히 냉소적이고 상황판단이 빠른데요. 수지가 백연여고 2학년 5반으로 전학 왔을 때부터 냉소적인 성격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성수지] ‘전학이라면 질릴 만큼 다녔다. (과거를 회상하며) 안녕? 난 서울에서 왔고, (이름은) 성수지야. 반가워. 잘 지내보자. 반에 스며드는 것쯤 장기 자랑 같은 거다.’
[성수지] 성수지야. 전학 많이 다녀봤는데 여고는 처음이라. 잘 부탁해.
[기자] 수지는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끼는데요.
[성수지] ‘뭐야. 왜들 이래?’
[임주형/백연여고 2학년 5반 담임교사] 저기 빈 자리 보이지? 가서 앉으면 되고. 너희들은 전학생 잘 배려해 주고.
[성수지] ‘뭐지 이 분위기? 됐어. 어차피 반에선 두 부류만 피하면 돼. 찐따 그리고 일진.’
[기자] 성수지는 짝꿍인 명자은을 일진이라고 생각하며 거리를 두려 하는데요. 체육 시간에 일방적으로 반 아이들에게 한껏 두들겨 맞은 짝꿍 명자은에게 성수지는 의아해하며 몰래 충고 해줍니다.
[성수지] 신고해. 무서우면 전학 가서 피하는 방법도 있고. 뭐든 그렇게 잠자코 당하는 것보단 낫지 않을까? 오래됐지? 아, 이건 3자가 떠는 오지랖인 것 같다. 선생님 심부름 온 거야. 내가 이런 줄 알 거 아니야. 고3만 돼도 방금 그런 짓 절반쯤은 줄어들 거야. 반도 갈릴 거고 그러다 보면 졸업 그럼…아, 미안. 이것도 제3자라 할 수 있는 말이네. 그냥 이거나 줄게.
[기자] 수지는 대일밴드를 건넵니다.
[명자은] 오늘 무슨 요일이야?
[성수지] 어? 목요일?
[명자은] 너 빨리 교실로 가. 빨리.
[기자] 명자은은 피라미드 게임 투표가 진행되는 목요일인 걸 눈치채고 성수지를 서둘러 교실로 보내는데요. 투표 진행 결과 수지는 가장 낮은 등급인 F가 되고 맙니다. 이 투표가 드라마 전반에 걸쳐 핵심 요소로 등장하는 만큼 투표 진행 방식을 정확히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은데요. 투표는 어떻게 진행되고, 어떤 규칙이 있나요?
[김헌식] 그냥 종이에 써서 투표하는 것이 아닙니다. 앱(애플리케이션)을 만들었습니다. 지능형 손전화기 즉, 스마트폰으로 들어가서 앱을 실행시켜 투표를 하게 되어 있고요. 많은 표를 받은 사람 순으로 적게 받은 사람까지 쭉 자동 집계가 됩니다. A등급부터 F등급까지 결정되는데, 성수지에게 주어진 등급이 F였죠. 성수지는 자신이 F등급이 되자 피라미드 게임의 문제점을 인식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게임의 빈틈을 찾아내기 시작을 하는데요. ‘F등급을 없애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D등급끼리 동맹을 맺고 서로에게 폭력을 휘두르지 않고도 함께 이길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시작합니다. 특히 (성수지의) 첫 번째 (설득) 대상이 바로 명자은이었는데요. 기권 표로 만년 F등급을 벗어나고 있지 못하는 명자은과 표를 교환해서 D 등급으로 올라가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하지만 명자은은 “자기 대신 타인을 F등급으로 만드는 짓은 하지 않겠다”라면서 거절하게 되죠. (성수지는) 그 뒤에도 계속 명자은을 찾아가서 협력을 요청하게 되는데 두 번째 투표가 열리는 날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오죠. 명자은과의 표 교환으로 한 표를 예상했던 성수지는 5표를 받으면서 C등급으로 올라가게 됩니다. 다큐멘터리 감독이 꿈인 성수지는 등급에 따라서 반 아이들의 심리가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치밀하게 관찰하고 게임의 규칙을 거스르면서 깰 수 있는 방안을 모색을 하는 것이 드라마 내용이 되겠습니다.
[기자] 네, 피라미드 게임의 허점을 찾는 심리 게임 드라마라고 하니까 벌써 기대가 되는데요. 그럼 잠시 드라마의 배경음악 듣고 돌아와서 내용 계속 살펴보겠습니다.
(피라미드 게임 OST)
[기자] 다시 드라마 얘기로 돌아와 보겠습니다. 지난번에 살펴본 ‘소년시대’도 오늘 살펴볼 작품과 마찬가지로 학교폭력을 다룬 내용이었는데요. 다만 ‘소년시대’는 1980년대의 충청도를 배경으로 하고 있고, ‘피라미드 게임’은 현대를 배경으로 설정하고 있습니다. 이 두 작품을 비교하면 과거와 현재의 학교폭력 변화를 살펴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드라마를 통해 1980년대로부터 약 40년이 지난 현재의 학교폭력을 비교해 보면 어떻게 다른가요?
[김헌식] 일단 첫 번째 특징은 디지털화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코로나19를 겪게 되면서 인터넷 특히 스마트폰의 의존도가 굉장히 높아졌는데요. (이로 인해 생긴 학교폭력의 형태를) 사이버 학교폭력이라고 합니다. 2022년에 푸른나무재단에서 발표한 학교폭력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사이버 폭력의 증가가 31.6%로 나타났습니다. 사이버폭력도 물리적인 공간에서 학교폭력의 유형과 비슷했습니다. 다양한 언어폭력, 집단 따돌림, 금품 갈취 등이 일어났고요. 채팅이 폭력과 연결되는 경우가 상당히 많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1980년대를 배경으로 한 충청도 스타일의 학교폭력은 물리적으로 때리고 괴롭히는 것이 중심이었다면, 피라미드 게임처럼 인터넷 애플리케이션, 게시판, SNS 사회관계망 서비스를 통해서 괴롭히는 일이 많아졌다는 점이 특징이고요. 또 한편으로 다른 특징은 놀이를 표방해서, 겉으로는 폭력이 아닌 것처럼 보이면서 사실 그 안에서 학교 폭력이 자행되는 경우가 생겨나고 있다는 겁니다. ‘피라미드 게임’에서도 학교 선생님들이 보기에는 놀이같이 가볍게 장난치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정신적인, 육체적인 괴롭힘이었던 점이 옛날과는 다르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기자] 드라마에서 나온 학교 폭력의 행동 양상들이 실제와 유사했던 건가요?
[김헌식] 실제 ‘피라미드 게임’이라는 앱을 통해서 (학교폭력을) 하는 사례는 없겠죠. 다만 이는 하나의 (학교폭력) 놀이화를 응용한 것이기 때문에 드라마는 ‘인터넷을 통해서 학교폭력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과 ‘놀이 형식으로 동급생들을 괴롭게 한다는 점’에 착안해서 피라미드 게임을 만들어냈는데요. 사실 피라미드 게임은 보상 게임입니다. 원래는 투표해서 착한 학생부터 그렇지 않은 학생까지 줄을 세워서 착한 학생들을 중심으로 상점을 주거나 선물을 주고, 만약 낮은 등급이 나오게 되면 청소를 시킨다든지 궂은 일을 시켰었는데요. 다 결합해서 학교 폭력 문제를 다루는 드라마가 된 것입니다.
[기자] 그런데 ‘피라미드 게임’은 단순히 학교폭력만을 다룬 드라마가 아니라고요?
[김헌식] 네, 그렇습니다. 일종의 인기투표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A∙B∙C∙D등급에 따라서 차별하고 멸시하는 폭력의 시스템을 투표로 정하고 그것을 강화하면서 가해자∙피해자∙방관자들을 폭력에 물들게 만듭니다. 그래서 학폭 소재를 다룬 작품 중에서 굉장히 지능적이고 교활한 괴롭힘과 급 내에 계급 계층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봤을 때 서열 전쟁이라는 색다른 장르로 눈길을 잡았습니다. ‘합법적 왕따’를 피하고자 몸부림치는 치열한 심리전을 통해서 ‘사회의 축소판’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사회 현상까지도 생각해 볼 수 있는 작품이 되겠습니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라고 하는 학교폭력 소설이라든지, 무인도에서 떨어진 소년들이 점차 권력과 폭력에 길든다는 고전 <파리대왕>을 연상시키는 작품이 됐습니다.
[기자] 교수님,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김헌식] 네, 다음 시간에 뵙겠습니다.
[기자] 드라마 알고 봐야 재밌다, 오늘은 드라마 ‘피라미드 게임’의 줄거리와 설정 살펴봤습니다. 다음 이 시간에는 드라마가 담고 있는 남한 사회에 대한 비판적 메시지 살펴보겠습니다.
워싱턴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박수영입니다.
에디터 이진서, 웹담당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