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알고 봐야 재밌다] 사랑의 불시착, 북한에서 놀란 남한 사랑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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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 ] 한국 드라마의 이모저모를 알려드리는 시간, "드라마 알고 봐야 재밌다" 문화평론가인 동아방송예술대 김헌식 교수와 함께합니다. 이 시간 진행에 박수영입니다.

지난 시간에 이어 세계적인 열풍을 일으켰던 북한 배경 한국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을 살펴볼 건데요. 문화창고와 스튜디오 드래곤에서 제작해 넷플릭스와 한국 방송 채널 tvN을 통해 방영됐죠.

드라마는 한국 대기업 재벌가의 막내딸인 윤세리가 무동력 비행체인 패러글라이딩을 타던 중 돌풍을 만나 북한에 떨어졌고 근방을 살펴보던 리정혁 대위와 만나며 시작됩니다.

그런데 리정혁 대위가 이끄는 부대 중 일원인 김주먹 중위가 한국 드라마의 열렬한 애청자로 나옵니다. 특히 최지우와 권상우 주연이었던 ‘천국의 계단’을 정말 좋아하는데요.

[ 김주먹 / 중급 병사 ] ( 윤세리에게 ) 동무 , 긴히 토의할 얘기가 있습니다 . 그거이 말이 된다고 생각합니까 ? 막판에 권상우랑 최지우가 잘되는 것은… ( 한숨 ) , 좋습니다 . 그런데 애먼 신현준이가 죽어야 합니까 ?

[ 윤세리 ] , 천국의 계단 . 너는 일을 갖고 자꾸 사람을 귀찮게 하니 ? 내가 보기엔 시점에서 신현준이가 죽는 맞아 .

[ 김주먹 / 중급 병사 ] 아이 , , 뭐가 맞습니까 ? 평생을 최지우만 바라봤던 신현준이가 도대체 .

[ 윤세리 ] 계속 살았어봐라 , 자기가 좋아하던 여자가 다른 남자랑 사는 꼴밖에 보겠니 ? 그걸 생각해야지 .

[ 김주먹 / 중급 병사 ] 그래도 진짜 죽이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

[ 윤세리 ] 내가 죽였니 ? 내가 죽였어 ? 이거 집착이야 . 여자들이 이런 되게 싫어해 .

[ 정만복 / 도감청실 소속 상위 ] ( 둘의 대화를 엿듣고 받아 적으며 ) 지난 집착 이거이 말이야 .

[ 기자 ] 김주먹 중위가 한국 드라마를 많이 봤던 만큼 윤세리와 부대원들 사이에서도 통역사 역할을 톡톡히 해냅니다. 듣다 보니 '천국의 계단' 드라마 내용도 궁금해집니다. 교수님, 천국의 계단은 어떤 드라마인가요?

[ 김헌식 ] 천국의 계단은 2023년 12월 3일부터 2004년 2월 5일까지 SBS 드라마로 방영됐습니다. 배우는 권상우, 최지우, 신현준, 김태희 등 당대 유명한 배우가 출연했고요. 평균 시청률이 40%를 넘는 굉장한 화제작이었습니다. 천국의 계단은 금지된 사랑,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얽힌 네 명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요. 사랑하는 사이인데 두 사람이 만약에 친남매라면 어떻게 될까요? 친남매면 연인으로 사랑하면 안 되잖아요? 그런 미묘한 감정선이 있는데요. 중요한 것은 탈북한 분들한테 "당신이 보았던 한국 드라마 가운데 가장 인상 깊었던 드라마가 뭐냐"고 질문을 던졌더니 과거에는 거의 빠지지 않고 천국의 계단이라는 드라마를 꼽았던 적이 있습니다. 2010년대 중후반까지만 해도 대대적으로 한국 드라마가 북한에 유통됐기 때문에 많은 북한 주민들이 봤던 드라마입니다.

[ 기자 ] 또 한편, 김주먹 중위가 "한국 드라마에서는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남녀주인공이 입을 맞춘다"는 얘기도 하는데요.

[ 김주먹 / 중급 병사 ] 남조선 드라마에도 이런 장면 많이 나옵니다 . 누가 따라붙거나 숨어있다가 들킬 급박한 상황이 되면 남자 , 여자가 별안간 끌어안든지 입을 맞춥니다 . 그거이 위기를 가까스로 넘기는 남조선만의 방법이디요 .

[ 금은동 / 초급 병사 ] 그러면 위기를 넘긴 다음에는 어떻게 됩니까 ?

[ 김주먹 / 중급 병사 ] 이야 . 드라마가 한층 재미있어지지 . 사람은 약속이나 듯이 밤을 함께 보내거든 .

[ 기자 ] 이 말은 어떤 맥락에서 나온 건가요?

[ 김헌식 ] 예전 한국 드라마에서 종종 불량배나 불한당에게 쫓기던 남자 주인공이 여자 주인공의 입을 맞추면서 위기를 모면하는 단골 장면이 있었는데요. 이 장면이 빈번하게 나왔는데, 모르는 여성인데도 불구하고 끌어안거나 입을 맞추는 장면입니다. 이렇게 하면 얼굴을 가릴 수 있고 또 남녀가 사랑을 나누는 상황이기 때문에 빤히 쳐다볼 수가 없는 민망한 상황이 되죠. 그러면 찾던 이들이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게 되면서 위기를 피할 수 있다는 거죠. 다만 서로 호감이 있는 경우에나 가능한 것이지 요즘에는 문제가 됩니다. 현실에서는 성폭력, 성범죄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낭만적으로만 볼 수 없습니다.

[ 기자 ] 윤세리가 작은 어선을 타고 탈출하는 '빠다치기' 작전으로 북한을 떠나기 전에 그동안 도와준 부대원들에게 상장과 상품을 준비하는데요.

[ 윤세리 ] , 지금부터 상장 수여식을 할까 .

[ 표치수 / 특무상사 ] , 니가 장군님이니 ? 니가 뭔데 상장을 수여하고 말고…

[ 윤세리 ] 먼저 1 상이에요 . 금은동 ! 너는 친절상이지 . '위 군인 금은동은 본인 ( 윤세리 ) 가장 편하고 순수하게 대해주었기에 상을 수여합니다 . ' 상품은 고를 있어 . 통일 버전과 즉시 수령 버전이 있는데 . 통일 버전은 1 억이야 . 그리고 즉시 수령 버전은 옥수수 말이야 .

[ 김주먹 / 중급 병사 ] ( 속삭이며 ) 1 . 1 .

[ 금은동 / 초급 병사 ] 강냉이 하겠습니다 .

[ 기자 ] 금은동 병사는 상품 1억 원을 거절하고 옥수수 한 말을 택합니다. 아무래도 1억 원의 가치를 잘 모르기 때문이겠죠. 그럼 1억 원은 옥수수로 치면 얼마나 되는 양인가요?

[ 김헌식 ] 심청전에서 심청이가 공양미 300석에 팔려 가는데요. 300석을 오늘날 원화 그러니까 한국 돈으로 계산하면은 1억 4,400만 원입니다. 즉 1억 원은 공양미 약 300석에 해당되는 것이죠. 그리고 옥수수 한 접은 옥수수 100개인데요. 한국에서 옥수수 1650접, 즉 옥수수 16만 5000개가 1억 800만 원에 팔린 적이 있습니다. 북한에서는 지난달에 신의주와 혜산 시장에서 거래된 옥수수 1kg당 가격이 각각 한화로 3000 원과 3100원이었기 때문에 이런 점을 따져보면 엄청난 비용이라는 것을 알 수 있고요. 국내에서 한 달간 여행을 할 경우에 250만 원이 들기 때문에 3년 3개월을 여행할 수 있고, 200만 원이 드는 동남아 여행은 50번, 600만 원이 드는 유럽 여행은 16번이나 할 수 있는 금액이 바로 1억 원이 되겠습니다.

[ 기자 ] 그럼 금은동 병사가 1억 원의 가치만 알았다면 옥수수 한 말을 선택하지 않았을 텐데 참 아쉽게 된 거네요.

[ 김헌식 ] 네, 옥수수 16만 5천 개를 가질 수가 있었던 겁니다.

[ 기자 ] 네, 그럼 잠시 사랑의 불시착 드라마의 배경음악 듣고 올까요?

( 사랑의 불시착 OST)

[ 기자 ] 다시 사랑의 불시착 극 내용을 돌아와 보겠습니다. 엉뚱하게 북한에 떨어지게 된 윤세리가 남한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여러모로 리정혁 대위로부터 도움을 받는데요. 챙겨주는 리정혁에게 고맙다면서 어느 날 '손가락 하트'를 선물합니다. 그러니까 엄지와 검지 손가락을 집게 모양으로 만들어서 비스듬히 교차해 하트를 만드는 건데요. 이게 어떤 의미죠?

[ 김헌식 ] '하트'라는 것은 서양에서 오긴 했는데 심장을 뜻하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내 심장을 당신에게 주고 싶다'라는 뜻이죠. 그만큼 열렬한 사랑의 표시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윤세리가 아무에게나 손가락 하트를 날리는 모습에 배신감을 느낀 리정혁 즉, 현빈의 모습이 보여지면서 "동무는 심장이 여러 개요?"라고 약간 투정을 부리며 방으로 들어가서 시청자에게 웃음을 줬는데요. 엄지와 검지를 교차해서 만드는 손가락 하트는 한국에서 만들었기 때문에 K-하트라고 불립니다. 다른 나라에는 쓰지 않고 한국에서만 이걸 썼는데 2013년 봄부터 손가락 하트가 인터넷상에 퍼졌고 연예인들과 방송에서 폭발적으로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한국에서 외국의 하트라고 하는 상징을 받아들인 후 개조해 세계로 또 수출한 사례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 기자 ] 남북한의 다른 문화를 엿볼 수 있다는 점도 드라마의 관전 요소 중 하나인 것 같습니다. 특히 리정혁과 윤세리가 평양에 가기 위해 기차를 탔다가 정전으로 10시간 정차하는 상황이 발생해 남한에서 온 윤세리는 크게 당황하는데요. 남한에서도 기차가 10시간씩 정차하는 경우가 있을까요?

[ 김헌식 ] 남한에서 기차가 10시간씩 정차하는 일은 없습니다. 특히 드라마에서는 기차가 정차하는 동안 모닥불을 피우고 옥수수를 구워 먹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실제로 북한 이탈 주민들은 "전기가 부족해서 정전으로 기차가 멈추는 일이 비일비재해서 한겨울에는 열을 보름씩 멈춰 서 있기도 하고 굶어 죽는 사람도 생기기도 한다"는 얘기를 하면서 사실이라고 증언하기도 했습니다. 남한에서는 이 장면이 굉장히 낭만적으로 보여졌는데 북한 주민들 입장에서는 괴로운 현실이라고 볼 수 있는데요. 결론적으로는 남한에는 기차가 이렇게 서는 경우는 없습니다.

[ 기자 ] 반대로 북한과 달리 남한에만 있는 문화도 드라마를 통해 알 수 있는데요. 한국에서는 첫눈이 오면 사랑하는 연인 사이끼리 혹은 사귀기 전 단계인 사람들끼리 만나는 게 어느새 일상이 됐죠.

[ 윤세리 ] 이거 첫눈 아닌가 ? 났네 , 났어 . 첫눈 같이 보면 사랑 이뤄진다잖아 . 그런 얘기 들어봤어요 ? 서울은 첫눈 오면 통신망 다운되고 난리 난다고요 . 타는 애들끼리 약속 잡느라고 . ? 첫눈 같이 보면 사랑이 이뤄지니까 . 그런데 우린 이뤄지면 되잖아 ? 난리 나지 .

[ 리정혁 ] 그렇지 . 큰일이군 .

[ 윤세리 ] 큰일이라고 ? ? ?

[ 리정혁 ] 미안하지만 혹시 병이 있소 ? 기쁨슬픔증 같은 .

[ 기자 ] 그런데 이 중에 윤세리가 언급한 "썸 탄다"라는 표현이 "사귄다"와는 어떻게 다른 거죠?

[ 김헌식 ] '썸을 탄다'는 것은 본격적으로 사귀기 전 단계입니다. 상대방이 나한테 마음이 있는지 없는지 약간 혼동스러운 단계기도 하고요. 또 먼저 사귀자는 말을 하지 못하고 알듯말듯한 행동을 하는 단계입니다. 밀고 당기기라고 해서 '밀당'이라는 말도 쓰이는데, 밀당보다는 약간 낮은 단계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또 '첫눈이 내리기 전까지 봉숭아 물이 빠지지 않으면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말도 있는데, 사실 겨울까지 봉숭아 물이 빠지지 않을 가능성은 낮기 때문에 오히려 그대로 남아 있으면 뭔가 의미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사랑이 이루어진다고 얘기하는 것이고요. '첫눈을 같이 맞으면 사랑이 이루어진다더라'는 말도 있는데 첫눈 올 때 좋아하는 사랑이랑 있으면 이어진다는 의미겠죠. 무조건 첫눈을 같이 보면 사랑이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사전에 썸을 탄다면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겁니다. 그래서 첫눈이 올 쯤에 데이트를 하자는 것 자체가 상대방이 나한테 마음이 있는지를 떠보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점에서 첫눈은 굉장히 남한에서는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 기자 ] 김헌식 교수님,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 김헌식 ] 네, 다음 시간에 뵙겠습니다.

[ 기자 ] 드라마 알고 봐야 재밌다, 오늘은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에서 소개된 남북의 다른 애정표현에 관해 살펴봤습니다. 다음 시간에도 사랑의 불시착과 함께 돌아오겠습니다.

참여 김헌식, 진행 박수영, 에디터 이진서, 웹담당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