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싶은 얼굴] 대뉴욕지구 이북 5도민 연합회 차헨리 회장

워싱턴-이현기 leeh@rfa.org
2011-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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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대뉴욕지구이북5도민연합회 가을 야유회에 참석한 회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지난해 대뉴욕지구이북5도민연합회 가을 야유회에 참석한 회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대뉴욕지구이북5도민연합회 제공
미국 뉴욕에 사는 실향민들의 단체인 ‘대뉴욕지구 이북 5도민연합회’는 올해 1.5세대로 교체돼 젊은 실향민 단체를 만들었으며 가장 큰 사업은 실향민의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있어 주위의 칭송을 받고 있습니다.

자유아시아방송의 보고 싶은 얼굴 오늘은 대뉴욕지구 이북 5도민연합회 차헨리 회장으로부터 이 연합회의 이모저모를 알아봅니다.

대뉴욕지구 이북 5도민 연합회가 이제 세대 교체되어 조금 젊어졌는데 소감을 들려주시지요?

: 지금까지는 대부분 연령층이 80대에서 회장직을 맡으셨습니다. 그러나 올해 들어서 60대로 바뀌어서 감회가 깊습니다. 정말 회장직을 감당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도 받았고요. 모든 것은 우리 5도민회 선배들의 노고가 있기 때문에, 선배들이 하신 일들을 표본으로 삼아 중점을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또한, 젊은 사람들이 일을 맡아 무언가 획기적인 발전에도 힘을 쏟을 것입니다.

대뉴욕지구 이북 5도민 연합회가 펼칠 올해 주요사업을 소개해 주세요?

: 저희 대뉴욕지구 5도민회의 주요사업은 본국 5 도청에 방문단 행사가 제일 크고요. 그다음에 연합회 주관으로 두 번의 야유회가 있으며 주로 회원 간의 화합을 하는 것이고요. 그리고 나아가서는 우리 연합회에 많은 회원들이 참여하는 것을 바라고 있습니다. 현재 뉴욕만 해도 몇만 명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참여하시는 분들은 1,000명에서 1,500여 명 정도밖에 안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회원들이 더 참여하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대뉴욕지구 이북 5도민 연합회에서는 뉴욕지역을 중심으로 실향민 다큐멘터리 제작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 다큐멘터리 제작을 시작하게 된 동기는 회원 중에 나이가 많으신 황 선생이 계시는 데 그분을 처음 만났을 때는 말을 잘하셨고, 그분의 말씀이 참 좋다. 이런 분의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진짜 기록으로 남기려고 마음먹고 전화를 드렸는데, 그분이 얼마 안 된 기간이었는데 불구하고 말 하시는 데 힘들어하면서 병원에 다니셔서 촬영하는데 협조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굉장히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 당시 빨리 결정해서 녹화를 해야 했는데 하는 생각을 가졌고, 이제는 이래서는 안 되겠다. 빨리 시작을 해야겠다고 생각을 하고 그때부터 매주 한 두 분씩 촬영을 하고 있습니다.

이 다큐멘터리는 어떻게 활용하게 됩니까?

: 지금 현재는 다큐멘터리 내용이 빛을 보지 못할 겁니다. 그러나 먼 훗날 우리 후손들에게 우리 어르신들의 이야기가 살아 숨 쉰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 제 뜻입니다. 이것은 도민들 모두의 뜻일 겁니다. 그래서 제작을 시작했습니다.

지금까지 실향민들의 이야기를 촬영하시면서 기억되는 이야기 있는지요?

: 촬영하면서 제일 마음이 아팠던 것은 뉴욕 뉴저지를 연결하는 조지 워싱턴 브리지 건설의 노무자로 고생하다 돌아가신 한 실향민의 이야기를 들었는데, 조지 워싱턴 다리 밑 허드슨 강물만큼 눈물을 흘렸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저도 눈물을 많이 흘렸습니다. 그런데 그분들이 아무 이름도 없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발굴하신 분이 장철우 목사님이십니다. 장 목사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알게 됐는데 너무나 감명 깊고 보람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나이 드신 실향민들의 자랑이 있으면 들려주세요?

: 제가 너무너무 행운이라는 것은 지금 90세가 넘으신 분들이 도와주고 계세요. 90세가 넘었다고 해서 일을 부탁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분들이 어떻게 일을 하겠나 생각을 하고 우리 젊은 세대가 빨리 들어와서 일해야겠다고 생각했었는데, 90세가 넘으신 분이 저를 도와주시는데 저희 회원들의 뉴스레터(소식)를 맡아 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정말 감사할 따름입니다.

1.5세 실향민으로서의 바람은?

: 실향민들의 제일 바람은 아직도 통일이 제일 먼저겠지요. 그다음이 가족들을 만나는 것 그리고 내 고향을 밟는 것, 그 세 가지가 주목적 아니겠습니까? 저도 마찬가지로 우리 고향땅을 밟는 게 소원인데 그게 이뤄지지 않으니까? 가장 안타까울 따름이지요.

고향에 대한 이야기가 있으면 들려주세요?

: 고향에 대해 뚜렷한 것을 모르고 제가 고향에 대해 뿌리가 없어서 (아버님께서 625 때 전사하시고 어머님께서 저희 남매를 키우느라 고생만 하셨기 때문에 이야기를 들을 수 없었고) 그래서 도민회에 들어온 것은 바로 우리 뿌리를 알아보자 그래서 한국에 초청돼서 나가면 아버지 세대분들을 만날 수 있지 않겠냐! 하는 조그만 마음도 가졌습니다. 그래서 고국방문에서 아버지에 대해 알기 위해서 갔는데 선천에 고향을 둔 분들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에 허무하게 다녀왔던 것 같아요. 그 이후 지금도 고향에 대한 애착이 많아서 고향 분들을 만나면 반갑고 그래요. 그러나 고향 뿌리 찾기가 참 어렵더라고요.

고향에 가시면 하고 싶은 일 들이 많으실텐데요?

: 저희 고향엔 가보지 않았지만, 평안북도 선천군이라고 들었습니다. 아버님께서 살던 집을 보고 싶어요. 고향이 어떻게 생겼는지 어떤 곳인지, 그러나 부모님 말씀은 동내에서 제일 큰 집이었기 때문에 제일 먼저 숙청됐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배타고 고향을 떠나왔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집 앞에 큰 연못이 있어서 어머님께서 연못에서 밥을 지었다는 이야기를 해 주셨는데 그래서 우리 집 앞에는 큰 연못이 있었구나 하는 생각도 갖고 있지 가보지 않았으니까 참 안타깝죠.

자유아시아방송의 보고 싶은 얼굴 오늘은 대뉴욕지구이북5도민연합회 차헨리 회장으로부터 이 연합회의 이모저모를 알아봤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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