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당 돋보기] 장마당의 젊은 남성들과 깐드레 파는 아바이들
2024.11.29
안녕하세요? 이예진입니다. 고양이 뿔 빼고 모든 게 다 있다는 북한의 장마당, 그런 장마당에서 파는 물건 하나만 봐도 북한 경제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엿볼 수 있다고 하는데요. 북한에만 있는 물건부터 북한에도 있지만 그 의미가 다른 물건까지, 고양이 뿔 빼고 장마당에 있는 모든 물건을 들여다 봅니다. <장마당 돋보기>, 북한 경제 전문가 손혜민 기자와 함께 합니다. 안녕하세요?
손혜민 기자: 안녕하세요?
진행자: 북한에서 1980년대 이후 태어나 당국의 배급 체계가 무너진 뒤 고난의 행군을 겪고, 장마당을 통해 스스로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해온 ‘미공급 세대’ 젊은이들을 한국에선 ‘장마당 세대’라고 부르는데요. 여성 상인들이 주를 이루던 장마당에 최근 젊은 남성, 장마당 세대들이 빠르게 유입되고 있다고 합니다. 손 기자, 먼저 이 젊은이들은 어떤 물건을 주로 판매하고 있습니까?
손혜민 기자: 한마디로 말씀드리면, 거의 독점적이고 경쟁력을 갖춘 상품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오토바이, 자전거 등인데요. 종합시장에서 여성들이 옷이나 식품 등 소비재를 판다면, 젊은 남성들의 장사 물품은 이동수단 설비의 일종으로 분류되는 겁니다. 장사 위치와 공간 부지도 다른데요. 여성들의 장사는 종합시장 안에 있는 매대이고, 부지도 보통 너비 70-80cm에 길이 150cm정도거든요. 그러나 젊은 남성들의 오토바이와 자전거 장사는 종합시장 밖에 있고, 부지도 종합시장 매대 보다 5배 이상 넓습니다. 오토바이 10대 정도 세워 놓자 해도 큰 부지가 필요하지 않나요.
이 때문에 젊은 남성들은 장마당 입구 넓은 공터에서 장사를 합니다. 물론 장마당 입구로 들어가는 길거리 양쪽에 음식 장사가 진을 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토바이 장사는 장마당 입구 한쪽 넓은 공터에서 장사를 하므로 길거리에 비좁게 앉아 있는 음식 장사꾼보다 사람들의 시선을 확실하게 끌죠.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린다면, 장마당 입구 길거리에 앉아 있는 음식 장사꾼들은 시장관리소가 공식 허가한 매대가 아닙니다.
공식 매대와 비공식 매대의 차이는 지방정부 산하 시장관리소에 자리세를 주고 장사 부지를 샀냐는 차입니다. 돈을 내고 산 장사 매대가 개인 부동산 자산으로 인식되어 임대되거나 매매되는 이유도 이 때문이죠. 단, 전국적으로 남성과 여성의 장사 활동을 양적으로 비교할 정도는 아니지만, 장마당 시대 태어난 남성들이 시장경제 주체로 나섰다는 점을 주목해야 합니다.
진행자: 이들의 시장 경제 참여로 장마당이 더 활성화되지 않을까 싶은데요. 미공급 세대 젊은 남성들이 장마당에 뛰어들면서 북한 사회에 새롭게 생긴 변화 같은 게 있을까요?
손혜민 기자: 다방면으로 접근한다면 변화는 많습니다. 우선 장마당 경제가 성별 분업으로 구조화되고 있는 건데요. 앞서 잠깐 말씀드렸지만, 북한 시장에서 소비재와 서비스시장은 대부분 여성들이 주체로 참여하지만, 오토바이나 자전거, 시멘트나 모래 등 설비와 생산재를 유통하거나 판매하는 시장에는 젊은 남성들이 주체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또 화물운송 시장에도 젊은 남성들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배경은 젊은 여성들이 해외 인력으로 송출되면서 눈이 높아진 것으로도 설명할 수 있습니다. 외국에 나갔다가 자본주의 시장을 배우고 온 여성들이 북한으로 귀국하여 결혼해야 하는 나이가 되는데, 장사할 줄 모르는 제대군인 총각은 안 보거든요. 요즘 북한 지방도시에서 노총각이 증가하는 것과 맥락이 이어집니다. 남자다운 남자로 인식되지 못하니 세상물정 파악한 제대군인 청년들이 발빠르게 장사에 나서는 겁니다.
진행자: 북한 사회적 현상이 만들어낸 결과 같네요. 그럼 이들 젊은 남성들이 등장하기 전까지 장마당에는 거의 여성 상인들만 있었던 겁니까?
손혜민 기자: 그렇습니다. 이미 알려진 것처럼 북한 전역에 자리잡고 있는 시장은 1990년대 경제난으로 생겨난 게 아닙니까. 먹고 살기 위한 생계 장터가 여성들의 장사로 아래로부터 태동한 것인데요. 그러면 왜 가두여성들만 장사에 나서게 되었는지가 중요합니다. 당시 북한 당국은 사회주의 기반이 무너지는 현실에 대응하기 위해 역사상 처음으로 비사행위를 전문 통제하는 비사그루빠를 조직했는데요. 비사행위에는 무직과 황색바람 등이 해당되었습니다. 여기서 무직은 계획경제 산하 국영공장에서 일하는 남성들을 대상으로 합니다. 물론 공장기업소에 여성들도 일하지만, 북한의 산업은 중공업 규모가 압도적이므로 여성은 결혼하면 자동으로 가두여성이 됩니다.
결국 사회주의를 지키겠다며 당국이 남성들을 국영 공장에 묶어 놓다 보니 북한의 장마당은 비공식 노력인 여성들의 경제활동 공간으로 부각된 겁니다. 2003년 장마당이 공식 합법화되면서 남성의 위상이 하락된 배경인데요. 남성은 국영공장에서 무보수 노동자로 일하고, 여성은 장마당에서 수익을 창출하는 상인으로 성별 직업군이 뚜렷해졌기 때문이죠. 정권 초기부터 남성을 가장으로 내세워 여성을 종속시켰던 가부장적인 ‘사회주의 대가정’이 무너진 겁니다.
진행자: 최근 북한에서 사회적 문제로 부각되고 있는 이혼 문제가 커진 이유도 거기에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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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혜민 기자: 맞습니다. 아내가 종일 장사하다 집에 오면 지치고 힘듭니다. 등짐으로 장사물품을 지고 장마당에 나갔다고 퇴근할 때 다시 등짐으로 지고 들어오거든요. 그러면 공장에서 일찍 퇴근한 남편이 아궁이에 불이라도 지펴야 할게 아닙니까. 그런데 남자의 입장에서는 수십년 동안 유지되어 왔던 가장의 위상을 놓기 쉽지 않죠. 결국 가사노동은 여자의 몫으로 인식하고 집안 일을 돕지 않으니 가정불화가 일어납니다. 그래도 아내의 장사를 돕고 있는 남편들이 늘어나는 추세지만, 아직은 남편이 ‘불편’으로 회자되는 사례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특히 2019년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된 이후 북한 당국은 사회주의 경제를 복원한다며 장마당 통제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환율 급등으로 물가 불안정이 지속되고 있어 여성들의 장사가 더 힘든데요. 가정의 생계가 힘들다 보니 아내와 남편이 힘을 합치는 긍정적인 사례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를 테면 중년 남성들이 젊은 남성들처럼 장마당에서 장사는 못해도, 아내가 하고 있는 밀주 장사를 돕거나 가사노동을 돕는 건데요. 그러면 아내는 남편이 자기의 장사를 도와 준 대가를 임금으로 계산해 준다고 해서 놀랐습니다. 보통 이런 남성들은 공장에 돈을 내고 장사 활동을 허가 받은 8.3노동자들입니다.
진행자: 결국은 먹고 살기 위해서지만, 가부장적인 줄만 알았던 북한 남성들도 시대에 맞게 변화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네요.
손혜민 기자: 그렇습니다. 장마당이 진전하며 여성성의 분화도 주목되지만, 남성성의 분화 역시 주목해야 합니다. 공장을 퇴직한 60대 아바이가 팔고 있는 물품과 장사 공간은 젊은 남성들이나 중년 남성들과는 또 다릅니다. 북한에서는 노인을 아바이라고 하는데요. 장마당이 생겼을 때 장사를 시작한 아바이는 많지 않았습니다. 2000년대 종합시장이 공식화되면서 장사하는 아바이가 나오기 시작했는데, 종합시장 매대에서 가장 구석진 매대에서 장사했죠. 시장관리소에 돈을 주고 매대를 살 수 있는 돈이 없었으니까요.
시장관리소 입장에서는 구석진 매대에는 여성들이 안 가니까, 그 매대를 공석으로 내버려 두는 것보다 아바이들에게 무료 임대해 장사를 하도록 하고, 장세를 받는 게 유리했습니다. 이로써 아바이들은 밑천이 안 드는 깐드레를 만들어 팔았는데요. 깐드레는 등잔을 말합니다. 빈 깡통 맥주를 사들여 그 안에 심지를 꽂은 상품이에요. 주민용 전기가 공급되지 않으니 잘 팔렸습니다. 그러자 점점 ‘자기 입을 건사하는 아바이’들이 뜨기 시작하면서 간부로 퇴직한 아바이들도 장마당 직업에 눈길 돌렸습니다.
종합시장마다 상인들의 물품을 보관해주는 보관소, 장마당을 찾는 사람들이 타고 온 자전거를 보관해주고 시간당 돈을 받는 자전거 보관소가 운영되고 있거든요. 이 직업에 간부 퇴직자들이 인맥을 통해 등용되어 월급을 받는 겁니다. 그러니 어떻게 되겠습니까. 집에서 할 일 없이 담배나 피우는 아바이들이 천덕꾸러기가 될 게 아닙니까. 이들도 무슨 장사든 해야 했죠.
북한 주민들의 대중 이동 수단은 자전거입니다. 비포장도로가 대부분이니 자전거 타이어가 자주 구멍이 나는데요. 이들의 수요에 대응한 것이 자전거 수리공 아바이들입니다. 하루종일 도로나 골목에 앉아 한 명의 손님만 있어도 밥 한끼 벌이는 됩니다. 물 그릇과 펌프, 고무풀 등을 나란히 놓고 자전거를 수리하는 아바이들이 이렇게 등장한 겁니다. 앞으로 북한 장마당이 어떻게 진화할지 지켜봐야 할 대목입니다.
오늘 소식은 여기까지입니다. 함께해 주신 손혜민 기자 감사합니다.
<장마당 돋보기> 지금까지 이예진이었습니다.
에디터 양성원, 웹편집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