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세상, 행복한 인생: 철도원 김행균씨

2006-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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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삶을 꿈꾸며 어려운 현실에 무릎 꿇지 않고 열심히 살아가는 남한 사람들의 이야기, 또 남한에 정착한 탈북자들을 도와주는 사람들의 이야기주간기획 '아름다운 세상, 행복한 인생' 입니다. 오늘은 철도원 김행균씨의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2003년 7월25일 오전 서울 영등포역 내에서 무섭게 달려오는 열차에 어린아이가 빨려 드는 순간, 한 철도원이 자신도 모르게 몸을 날렸습니다. 아이는 기적처럼 목숨을 건졌지만 철도원 김행균씨는 진입하는 열차를 미처 피하지 못하고 선로에 떨어지면서 정신을 잃었습니다. 병윈에서 의식을 찾았을 때야 비로소 김행균씨는 자신의 왼쪽 다리가 잘려져 나간 것을 알았습니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남한의 온 국민들은 김씨의 선행을 칭찬하고 완쾌를 빌면서 그를 ‘아름다운 철도원’이라고 불렀습니다. 노무현 대통령도 한해를 빛낸 자랑스런 한국인 가운데 한사람으로 김행균씨를 청와대로 초청했습니다. 노대통령은 김씨와 같은 사람들을 이 세상의 귀한 밑천이라며 격려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 : 거듭 깨우칩니다. 여러분 같은 분들이 우리 세상에 제일 큰 밑천입니다.

김행균씨는 남한언론에서 자신보다 훌륭한 사람이 더 많다며 초청자체를 불편해 했습니다.

김행균씨 : 제가 그 자리에 꼭 참석할 수 있는 사람인지 다시 한번 뒤돌아 봤구요, 저 또한 많이 배우고 왔습니다.

김행균씨는 기관차에 치었을 때 왼쪽 발목을 절단했지만 왼쪽 다리가 오른쪽 보다 10cm 나 짧아 걷거나 설 수 없어 심각한 고민 끝에 왼쪽무릎아래 10cm 만 남겨놓고 나머지를 잘라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의족을 달고 오른발 발등 반을 잘라낸 발은 특수화를 신어 양발의 균형을 잡았습니다.

한편 사고 후 3년이 지난 지금 김행균씨는 당시의 어려움을 이겨내고 철도 공무원으로 힘차게 살고 있습니다. 김씨는 그러나 의족과 특수화를 신고 남들처럼 걸을 수 있을때 까지 힘든 고비를 넘겼다고 자유아시아방송과의 전화통화에서 말했습니다.

김행균씨 : 처음에는 상당히 힘들고 도저히 걸을 수 있을까 의심도 가고,,.

약해지는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 김행균씨는 자신을 더 혹독하게 다루었다고 말했습니다. 김씨는 1년간의 병원생활을 접고 끈질긴 노력으로 걷는 재활훈련을 받아내고 2004년 10월에는 아테네올림픽 성화봉송주자로 코스를 완주했고 2005년 12월에는 다른 장애자 9명과 함께 5천8백여 미터 높이의 킬리만자로 등반까지 나섰습니다.

이들을 도와주기 위해 산행에 따라나섰던 이들은 5천 미터 정도에서 모두 포기 했지만 김씨를 비롯한 장애인들은 오히려 5천6백 미터 정상 가까이 까지 올랐습니다.

김행균씨 : 산소가 희박한 가운데서 하루에 고도 1000m 씩을 높이다 보니까 상당히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저뿐만 아니라 모든 장애인들이 생각보다 열심히 최선을 다해 오르는 것을 보고 힘이 났습니다.

철도원직을 천직으로 생각한다며 다시 철도원으로 복직한 김행균씨는 북한을 탈출해 제3국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탈북자들에 대해 각별히 관심을 갖고 있다며 절대로 용기를 잃지 말아달라는 부탁을 했습니다.

김행균씨 : 탈북자들이 중국에서 힘들게 생활하시는 과정 그리고 한국으로 들어오는 과정에서도 힘든 거,, 생활하는 게 모두 힘들고 의료혜택도 못 받고,, 사실 너무나 힘든 과정을 겪고 있는데 일단 용기를 잃지 말라는 말씀은 해드리고 싶습니다. 현 상황이 어렵더라도 용기마저 잃어버리면 사실 모든 희망이 없어지는 거 같아요. 용기를 잃지 않으면 언젠가는 광명이 펼쳐질 거 같아요.

이장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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