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중석의 북한생각] 북한 외교관 수난사
2024.09.20
세계적으로 외교관은 많은 젊은이들이 선망하는 직업입니다. 다른 나라에 파견되어 상대국과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 걸친 외교 현안을 교섭하는 임무를 지닌 외교관은 한 나라의 정부를 대표한다는 위상에 걸맞게 주재국으로부터 외교특권을 부여 받는 등 특별대우를 받습니다. 외국에 상주하면서 자기 나라의 국가이익을 위해 일한다는 자부심이 강한 외교관은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엘리트 공무원으로 대접을 받습니다. 북한에서도 외교관은 많은 사람들이 선망하는 직업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여행의 자유가 없어 평생 한 번도 외국에 나갈 기회가 없는 일반 주민 입장에서 보면 공식적으로 외국에 거주하면서 일할 수 있는 외교관은 부러움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북한의 외교관은 그 숫자도 적은데다 국제사회에서 비정상 불량국가로 낙인 찍힌 나라의 외교관이라는 제약 속에 국제외교무대에서 이단아 취급을 받고 있습니다. 북한 외교관은 또 겉보기와 달리 당국의 엄청난 압박과 감시 속에서 본국에 바쳐야 할 상납금과 불법자금 마련에 시달리는 독재권력의 하수인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같은 압박과 감시, 숙청 그리고 박봉에 의한 생활고 때문에 해외공관 근무중 탈북해 한국이나 제 3국에 정착하는 북한 외교관들이 줄을 잇고 있습니다.
다른 나라 외교관처럼 신분보장은 고사하고 억지와 생떼 쓰기로 대표되는 북한의 막무가내식 외교정책을 관철시키지 못할 경우, 교섭 실패의 모든 책임을 뒤집어 쓰고 숙청당할 수 있다는 위기감에 하루하루를 초긴장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김정은 체제가 들어선 이후 엘리트층인 외교관의 탈북이 김정일 집권 시기보다 두 배 이상 늘어난 것이 이 같은 현실을 반영한다고 탈북 외교관들은 주장합니다.
우리 기억에 남아있는 탈북 외교관은 고영환 콩고 북한대사관 1등서기관(1991년 탈북), 현성일 잠비아 북한대사관 3등서기관(1996년 탈북), 장승길 주이집트 북한대사(1997년 탈북, 미국 망명), 김동수 이탈리아 북한대표부 3등서기관(1998년 탈북), 홍순경 태국 북한대사관 참사(1999년 탈북), 한진명 베트남 북한대사관 3등서기관(2015년 탈북) 등이 있습니다. 북한 엘리트 외교관 탈북 중 가장 관심을 모았던 것은 태영호 주 영국 북한대사관 공사가 2016년 탈북해 한국에 정착한 사건입니다. 태영호 공사는 한국 정착 후 한국 국회의원에 당선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통해 북한 정권의 실상을 알리는데 기여했습니다. 태영호 공사의 탈북은 곧이어 조성길 이탈리아 북한대사관 대사대리(2019년) 류현우 쿠웨이트 북한대사관 대사대리(2019년) 리일규 쿠바 북한대사관 참사(2023년) 등 고위급 외교관의 탈북으로 이어졌습니다. 이 외에도 신변안전과 북한에 남은 가족의 안전을 위해 탈북 사실을 밝히지 않은 외교관이 여러 명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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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외교관들은 본국에 상납금을 보내기 위해 외교특권을 이용해 전자제품, 마약, 술, 담배 등 돈이 되는 것이라면 닥치는 대로 밀수를 감행했습니다. 이렇게 벌어들인 외화는 소위 ‘충성자금’이란 명목으로 중앙당에 흡수되었으며 북한 당국은 이 자금을 고스란히 핵과 미사일 개발에 투입해온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북한 외교관들의 무분별한 밀수 행위는 국제사회의 지탄을 받게 되었고 밀수 행위가 적발되어 추방당한 북한 외교관도 부지기수입니다.
북한은 외교관을 해외에 파견할 때 자녀 중 한 명을 볼모로 잡아 북한에 남아있도록 강요합니다. 가족단위 탈북을 막기 위해서 입니다. 탈북 외교관들은 어린 자식을 평양에 남겨두고 해외 근무지로 가야하는 외교관 가족이 떠나는 날 공항에서 눈물바다가 되는 비참한 현실을 고발하고 있습니다. 세상 어느 나라에서 외교관을 파견하면서 어린 자식을 볼모로 잡아두고 가족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나라가 있을까요? 북한이 이처럼 외교관을 파견하면서 악랄한 수법을 쓰는 것은 해외에 나간 외교관들은 탈북할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입니다. 외교관들은 외부 정세에 관한 교육을 충분히 받아서 누구보다 북한의 상황 변화를 민감하게 감지하고 있습니다. 북한에 미래가 없다는 판단이 서면 북한 내부에 비해 감시가 덜한 환경을 이용해 대한민국 등 외국 대사관의 도움을 받아 탈북을 감행하는 것입니다.
최근 엘리트 탈북민 6명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의 핵심 계층 구성원들 사이에서 체제에 대한 반감이 상당하다. 김정은 체제는 미래가 없다고 느끼는 것”이라고 입을 모았습니다. 이들은 자식만큼은 나와 부모님처럼 살게 하기 싫었다. 아직 용기를 내지 못했지만 북한 외교관들중에 우리와 같은 생각을 하는 동료가 많다고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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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양성원, 웹편집 한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