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서울] 10년의 마음, 10년의 손길 (1)
2024.10.01
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일교차가 큰 계절 가을이 되면서 피로감이 더해지고 자칫 감기에 걸리기도 쉽습니다. 이럴 때 꾸준한 운동과 고른 영양을 하면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 누구나 잘 알지만 실천하기 쉽지 않습니다. 공부도, 살까기도 뭐든 짧은 기간은 가능해도 꾸준히 지속하는 게 어려운데요.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고 자발적으로 누군가를 돕는 봉사활동도 마찬가집니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닌데 그 일을 10년 넘게 이어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유니시드 회원들인데요. 유니시드는 ‘통일’이라는 뜻의 영어단어 unification과 ‘씨앗’을 의미하는 영어단어 seed가 합쳐진 말로 ‘통일의 씨앗’이라는 의미입니다. ‘유니시드’ 회원들이 10년의 손길을 돌아보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그 현장 <여기는 서울>에서 담아봅니다.
[현장음] 축하 무대 - 아코디언 연주 소리
서울 서초구의 한 건물 지하 1층에 100여 명의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유니시드 10주년을 축하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인데요. 갓난아기를 안고 있는 젊은 부부부터 연인, 학생, 어르신들 등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함께합니다.
[인터뷰 모음] 유니시드 10주년 축하드립니다. 앞으로도 꾸준히 유니시드 번창했으면 좋겠어요. / 에스더 대표님 너무너무 수고하셨고 화이팅입니다.
10주년 기념행사가 진행되는 곳은 여러 개의 탁자만 놓인 공간으로 특별한 무대가 있는 것도 아니고 음향 장비가 잘 갖추어 진 곳도 아닌데요. 평범해 보이는 이 공간에 ‘유니시드’라는 글자로 가득 찬 현수막과 사람들이 이 자리를 특별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유니시드’는 2014년 탈북 대학생 4명으로 시작한 ‘통일 봉사단'인데요. 자신들이 받은 장학금으로 한 달에 한 번 서울역 노숙인들에게 도시락을 나눠준 것이 봉사의 시작이었습니다. 점차 참여하는 학생들이 늘었고 남한 청년들도 참여하게 되면서 2016년부터는 남북 청년들이 함께 활동하는 봉사단체로 거듭났습니다.
또 시간이 갈수록 봉사활동의 영역이 나눔 사업부터 문화 사업, 장학 사업, 교육 사업, 인권 사업까지 확대됐는데요. 바로 이런 10년의 역사가 모여 오늘의 ‘유니시드’가 됐습니다.
[현장음-류진범] 문화 사업을 담당하고 있는 문화 사업팀장 류진범입니다. 저희가 문화 사업을 처음에 준비를 하게 된 게 남과 북에 있는 청년들이 함께 만나서 도시락을 봉사하고 얘기를 하다 보니까 서로의 차이가 있는 겁니다. 근데 그 차이는, 아시겠지만 살아온 배경이 다르고 경험이 다르고 배웠던 것들이 달라서 생긴 차이라고 생각해서 이 차이를 좁힐 수 있는 방법이 뭘까? 차이라는 것이 그냥 다름인데 우리는 차이라는 것 때문에 누군가는 틀린 것 같고 누군가는 맞은 것처럼 느껴지는 이 문화를 바꾸자고 의견을 모았습니다. 서로 간의 차이와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문화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공예도 하고 함께 배우기도 하고요, 함께 생활하면서 서로 간의 차이를 좁히는 역할을 하게 되었고요. 서로 교제하고 다름도 인정하고 서로 소통하고 이야기하는 관계를 맺어가는 프로그램들도 봉사와 같이 진행하고 있습니다.
남북 청년들은 함께 활동하며 통일에 대한 자신들만의 정의를 내리게 됐습니다. 통일은 ‘서로 간의 거리를 좁히는 것’이라고 말이죠. 사실 ‘거리를 좁혀가는 것’은 ‘상대방을 이해한다’는 말과 다르지 않은데요, 봉사 현장에서 배운 교훈이라고 합니다. 유니시드 대표, 엄에스더 씨의 설명입니다.
[현장음-엄에스더] 나눔 사업은 저희가 북한 음식으로 먼저 시작했었어요. 그런데 저희에게나 특별한 것이지 노숙인 분들한테 북한 음식이 특별한 음식은 아니더라고요. 그래서 남북이 같이 먹는 한식으로 나누니까 너무 좋아하시는 거예요. 하지만 코로나 때는 한식을 만들어서 나눌 수 없어서 쪽방촌에 잡채랑 반찬을 나눴었어요. 그러다가 작년부터는 과일 도시락을 만들어서 나누고 있는데 다들 너무 좋아하세요.
밥과 반찬으로 구성된 도시락은 보관이 어렵다는 단점이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노숙인들이나 독거어르신들의 경우 과일을 먹을 기회가 많지 않아 과일 도시락으로 바꿨다는데요. 이미 다른 봉사단체에서도 도시락 나눔을 많이 하기 때문에 내릴 수 있는 결론이었습니다. 이렇게 한 달에 한 번씩, 도시락을 나누는 봉사는 10년 넘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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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시드’의 활동은 사회관계망 서비스를 통해 빠르게 확산되면서 참여하는 사람이 많아졌습니다. 청년들이 도시락을 만들 수 있는 주방을 선뜻 내어주는 곳, 정기적으로 후원을 해주겠다는 개인과 단체가 생겼고 이런 도움으로 장학 사업까지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현장음-엄에스더] 저희가 1년에 한 번 혹은 모금이 많이 되면은 1년에 두 번 장학금을 지원하고 있어요. 어떤 분이 20만 원씩 후원 하시겠다고 해서 학생 두 명에게 (장학금을) 2018년부터 주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해마다 5명 이상에게 (장학금을) 주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어느덧 40명 가까이 되는 친구들이 받고 있어요. 그런데 (장학 사업을) 하다 보니까 많은 친구들한테 기회를 주는 것도 좋지만 한 친구한테 꾸준히 지원해주는 것도 좋겠다 싶어서 3년 전부터 한 친구가 3년씩 장학금을 받아 갈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장학금을 주는 방식은 물론이고 장학금을 받을 대상을 선발하는 데서도 본인들만의 방식이 있습니다.
[현장음-엄에스더] ‘유니시드’에서는 장학생 선출이 좀 다른 게 있는데요. 제가 대학 4년 내내 장학금을 받았는데 성적 장학금이나 경제적인 어려움에 대한 장학금은 있는데 사회 공익을 실천하면서 사는 친구들에게 주는 장학금은 없더라고요. 그래서 유니시드가 그걸 해보고 싶었어요. 이 사회에 일원으로서 그렇게 꿈을 갖고 살아가는 친구, 공익을 열심히 실천하며 살아가는 친구들한테 장학금을 주기 시작했습니다.
봉사활동에 참여하고 싶어도 학과 공부 외의 시간엔 부업을 통해 생활비를 벌어야 했던 탈북 청년들에게도 장학금이 주어졌습니다. 이런 장학제도 덕분에 꾸준히 봉사활동을 할 수 있었다는데요. 행사장에서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이제는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인이 됐다는 이윤서(가명) 씨입니다.
[인터뷰] 그때는 대학생이었는데 지금은 직장인이 돼서 조금씩 제가 할 수 있는 만큼 후원을 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유니시드 초창기에 도시락 나눔도 하고 대학교 (재학) 기간 한 4-5년 정도 활동해 왔는데 한결같은 마음으로 노숙자분들이랑 어르신들한테 나눔 하는 거 보면서 남한에서 사는 동안, 아니 제 다음 세대에도 계속 여기에 지원할 수 있는 삶을 살고 싶어요. 그래서 ‘유니시드’가 지금 하는 일이 앞으로도 꾸준히 번창했으면 좋겠어요. 후원자의 한 명으로서 꾸준히 응원하겠습니다.
최근에는 중국에 있는 탈북민 자녀에게도 장학금을 지원하기 시작했는데요, 이 밖에도 미국에 있는 원어민과 인터넷 화상으로 연결해 영어 회화를 공부하는 등의 교육 사업, 그리고 올해 새롭게 시작한 인권 사업에 대해 소개합니다.
[현장음] 안녕하세요 인권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최유림입니다. 인권 사업은 올해부터 시작하게 되었고 탈북하신 분들의 스토리를 담아서 영상을 제작하고 있습니다. 영상을 촬영하게 되면서 탈북민들은 북한에서 겪었던 것들이 인권 침해라는 것들을 깨닫게 되고 치유의 시간을 갖게 됩니다. 이 영상을 일반 대중들에게 공유하면서 일반 한국 사람들, 외국 사람들은 (북한 내) 일상에서 겪는 인권 침해가 어떤 것인지 알게 되고 그걸 알게 됨으로써 (북한인권에) 조금 더 관심을 갖게 되는 것들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Closing Music-
이제 행사는 10년 동안 사업을 할 수 있게 도와준 사람들에게 감사를 전하는 시간으로 이어집니다. 시끌벅적한 자축 파티 대신 함께 모여 10년을 돌아보고 서로에게 수고했다, 고생했다, 앞으로 더 잘해보자고 다짐하는 자리. 행사장엔 훈훈한 기운이 가득한데요, 못다 한 이야기는 다음 시간에 이어가겠습니다. <여기는 서울>, 김인선이었습니다.
에디터 이현주, 웹편집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