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10년 차이] 북한 임산부는 ‘사진’ 태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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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함경북도 무산 출신으로 올해 남한 정착 10년 차인 박소연입니다”

“양강도 혜산 출신으로 이제 막 한국에 정착한 이해연입니다”

10년 차이로 남한에 입국한 탈북민 선후배가 전해드리는 남한정착 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박소연 : 며칠 전 동사무소에 갔는데 게시판에서 '임산부를 위한 무료 태교' 신청 홍보물을 봤어요. 그걸 보면서 새삼 남한은 참 아이 낳기 좋은 환경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북한에도 태교가 있긴 하지만 방식이 좀 다릅니다. 1990년대에는 임산부가 영화배우 달력에 있는 인민배우 오미란을 보면, 고운 딸을 낳는다고 했어요.

이해연 : 맞아요! 임산부 집에 가보면 침대 뒤쪽이나 앞쪽에 엄청 잘생긴 애기 사진을 걸어놓은 걸 자주 봤습니다. 그걸 보면 잘생긴 아들을 낳는다고 했어요. (웃음)

박소연 : 딱히 '태교'라고 생각 안 했지만 한국 노래를 많이 들었어요. 그때는 한국 노래인 줄 모르고 그냥 중국 연변 노래로 알고 들었지만, 배 안의 아이를 위해 예쁜 사진도 보고 즐거운 음악을 듣기 위해 노력했죠. 그러나 이렇게 할 수 있는 임산부들은 그나마 북한에서 잘사는 집 여성들입니다. 대부분의 북한 임산부들은 임신해도 시장에서 무거운 배낭이나 포대를 메고이고 다녔어요.

이해연 : 살아가는 환경이 다르다 보니 북한 엄마들의 태교는 여유가 있는 집들에서만 꿈꿀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남한은 태교뿐 아니라 임산부들이 주마다 받는 검사도 북한과 다릅니다. 정보 차원에서 한번 알려드려 볼게요. 임신 주수마다 정기검진이 정해지고 검진 항목도 매번 다릅니다. 10주 이내에는 임신 초기 검사로 혈액검사, 풍진 검사, 소변검사, 자궁경부암 검사, 균 검사 같은 것들을 하구요. 12주~18주까지는 일반 초음파 검사를 통해 아기가 잘 자라고 있는지 확인합니다. 15주~20주 차에는 기형아 검사를 하는데요. 방법은 양수검사 또는 혈액검사입니다. 혈액 검사는 산모의 혈액 검사를 통해 태아의 건강을 확인하는데, 혈액 검사의 결과에 따라 양수를 빼내 검사하는 양수 검사도 실시합니다. 특히 24주~28주에는 아기의 손가락이나 척추 발가락 개수를 확인하는 입체 초음파 검사가 있고, 34~36주에는 자연분만이 어려우면 제왕절개수술에 필요한 말기 검사가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37주~39주에는 아기의 정상적인 움직임을 확인하는 태동 검사가 있습니다.

박소연 : 해연 씨가 방송을 위해 많은 준비를 해오셨네요. (웃음) 그런데 무슨 얘기인지 잘 모르죠? 설명 중에 기형아 검사가 있다고 했는데 사실 저는 한국에서 아이를 낳아본 적은 없지만 기형아 검사를 하는군요. 엄마들의 막연한 불안을 어느 정도 해소시켜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해연 : 네, 북한은 임산부를 위한 검진이나 시설이 열악해 정기적인 검사를 받기 어렵습니다.

박소연 : 그리고 혜연 씨, 남한에는 산모가 출산하면 의사나 간호사가 '손가락 5개 발가락 5개 정상입니다', 알려주더라고요. 처음엔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손가락 5개 발가락 5개를 갖고 나오는 게 정상인데 왜 굳이 알려주는지 궁금했어요. 북한은 병원에서 출산해도 아기 성별과 몸무게만 알려줍니다. 확실히 남한은 모든 것에서 섬세하고 구체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해연 : 북한은 아이를 출산하면 발가락이 5개든 6개든, 그거는 후에 생각할 일이고 성별에 집착을 많이 해요. 출산을 앞두고 의사에게 성별을 물어보면 선뜻 알려주지 않습니다. 의사에게 부탁도 하고 고급 담배도 뇌물로 주면 성별을 알려주는 경우도 있습니다.

박소연 : 저희 때는 임산부의 자태를 보고 성별을 판단했어요. 임산부의 배가 볼록하면 여자아이고, 배가 좀 뭉툭하면 남자라고 말했어요. 산부인과 의사가 의료 기구를 산모의 배에 대고 진찰하다가 태동을 심하게 느끼면 남아라고 하고…(웃음)

이해연 : 맞아요. 그리고 임산부가 먹는 음식을 보고 딸이다, 아들이다 그러죠.

박소연 : 제가 출산 전에 사과를 많이 먹더니 시부모님들이 무조건 딸이라고 해서 솔직히 출산 전까지 쭉 바늘방석에 앉은 것 같았어요. 왜냐면, 제가 딸 부잣집 딸인데 시집가서 또 딸을 낳으면... 북한도 남존여비 대단하잖아요. 일단 처음에는 미워도 고와도 아들을 낳아야 돼요.

이해연 : 사실 그것도 옛날 얘긴 것 같아요. 지금은 오히려 딸을 좀 더 원해요. 북한 남자들은 보수도 받지 못하고 맨날 나랏일만 하지만 여자들은 경제적으로 많은 활동을 하는 편이잖아요. 그래서 딸을 많이 선호하는 것 같습니다.

박소연 : 남한도 옛날에는 남존여비 사상이 강해 아들을 선호하는 분위기였다고 해요. 성별을 미리 알고 선택적으로 아들만 출산하는 가정들이 많아서 병원에서 성별을 미리 알려주지 않다가 2009년부터 법원 판결에 따라 지금은 성별을 산모와 가족에게 미리 알려주고 있습니다.

이해연 : 남한도 북한과 비슷했네요. 남한 여성들이 아기 성별을 미리 알고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도 신기하지만, 임신한 제 친구가 영양제 약을 먹는 게 더 신기합니다. 매달 주기적으로 검사를 받으면서 병원에서 약을 엄청 많이 타오더라고요. 도대체 무슨 약이냐고 물어봤더니 끼마다 먹는 약이 다 다르고 특히 엽산이나 철분제는 무조건 먹는다고 해요. 엽산은 세포를 생성해 아기가 건강하게 자랄 수 있고 철분제는 산모의 빈혈 증상을 막아준다고 합니다. 추가로 오메가3, 종합비타민, 임산부 유산균까지 가지 수가 다양했어요.

박소연 : 임산부들이 먹는 영양제도 북한과 많이 다른 것 같아요. 돈이 있는 집들은 종합비타민 B12 알약과 주사를 맞습니다. 보통은 임산부는 누가 뭐래도 밥만 잘 먹으면 아이에게 좋은 양양분이 전달된다고 인식했어요. 제가 출산할 당시가 1990년대 후반인데 그때는 임신 8개월 차에 임산부가 페니실린·마이신을 맞으면 태아가 강한 면역력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했어요. 많은 임산부들이 아프지도 않은데 일부러 항생제 주사를 맞았던 기억이 납니다.

이해연 : 지금은 태아를 위해 임산부가 항생제를 맞는 문화는 거의 보지 못했어요. 대신 북한 여성들은 임신하면 남한 여성들처럼 살이 찌는 게 아니라 엄청 말라보입니다. 배만 나오고 거의 피골이 상접하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아요. 이렇게 남북은 임신과 출산을 앞둔 전 과정만 봐도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다르지만 출산하는 과정 역시 너무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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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연 : 남한은 애를 낳기 전에 병원에 예약을 하더라고요. 남한 분들은 거의 다 병원에서 태어나지만 북한은 거의 다 집에서 출생해요. 저도 처음에는 남한 여성들은 거의 다 제왕절개 수술을 통해 출산하는 줄 알았거든요. 알고 보니 남한은 자연 분만도 병원에서 하더라고요! 간혹 가정집에서 출산해도 병원에 와야 하는데 갓 출생한 아기는 여러 가지 검사를 받아야 합니다. 남한과 북한의 출산 문화를 비교하려면 딱 30년 차이를 두고 보면 정답이 나옵니다.

이해연 : 북한은 거의 집에서 출산해요. 저도 집에서 태어났거든요. 어릴 때 동생이 태어날 무렵인데 주변에서 빨리 의사 선생님을 데려오라고 해서 진료소로 땀 흘리며 뛰어갔어요. 의사에게 엄마가 엄청 아픈데 당장 아기가 나올 것 같다고 했더니 구럭지(천가방)에 이것저것 넣으시더니 빨리 가자고 했어요. 의사가 멘 구럭지에서 철컥철컥 쇳소리가 났던 기억이 나요. 집에서 출산하다 보니 밥상을 산대로 이용했어요. 산모는 뜨뜻한 방에서 아이를 낳아야 한다며 불을 때서 방을 덥히고 물을 끓여 가위도 소독하던 모습도 눈에 선합니다.

박소연 : 공감합니다. 막내 동생이 여름에 태어났는데 출산 전날 저녁부터 엄마가 배가 아파 고함을 질렀어요. 창문은 담요로 가리고 온 인민반 사람들이 우리 집에 모여 엄마의 출산을 도와줬어요. 다음 날 새벽 4시쯤에 산파 할머니가 '아들이다'라고 소리를 치는 바람에 옆집에서 자다가 깨났어요. 방금 출산한 엄마는 퉁퉁 부은 얼굴로 환하게 웃고 계셨어요. 아들을 낳았다는 행복감과 다시는 남편에게 구박을 받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 때문에 출산의 고통도 느끼지 못하신 것 같았습니다. (웃음)

[클로징] 남한여성들은 출산 후에도 무겁게 아이를 등에 업고 다니지 않아도 되고 추운 겨울 압록강에서 꽁꽁 언 기저귀를 빨지 않아도 됩니다. 유모차, 일회용 기저귀를 비롯해 남한에는 아이를 키우는데 필요한 육아용품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뿐인 줄 아세요. 출산 후에도 오직 산모의 건강을 위한 휴양소도 있는데요, 이름하여 ‘산후조리원’! 그래도 남한의 출산율은 올라갈 줄 모릅니다. 왜 그럴까요? 그 얘기는 다음시간에 이어갈게요.

지금까지 탈북 선후배가 나누는 남한 정착 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진행에 박소연, 이해연, 제작에 서울 지국이었습니다.

에디터 이현주, 웹편집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