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10년 차이] ‘흑백요리사’를 북한에서 본다면?
2024.11.11
“안녕하세요, 함경북도 무산 출신으로 올해 남한 정착 10년 차인 박소연입니다”
“양강도 혜산 출신으로 이제 막 한국에 정착한 이해연입니다”
10년 차이로 남한에 입국한 탈북민 선후배가 전해드리는 남한 정착 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박소연 : 해연 씨 안녕하세요. 얼마 전에 넷플릭스에 공개된 ‘흑백 요리사’라는 한국 요리 프로그램이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혹시 보셨어요?
이해연 : 저도 한 회도 안 빼고 다 보았습니다.
박소연 : 이 프로그램은 텔레비전 통로(채널)에서 나오는 방송이 아니라 인터넷 기반의 동영상 공급 서비스를 구독해야 볼 수 있어요. 즉 북한에서는 볼 수 없다는 얘기인데요, 그래서 오늘, 여러분께도 ‘흑백 요리사’, 저희가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INS-흑백요리사 예고
이해연 : 이 프로그램은 총 100명의 요리사가 경연을 통해 우승자를 가르는 일종의 경연 대회로, 20명은 이미 이름 난 유명 요리사들, 나머지 80명은 무명의 요리사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 외에 2명의 심사위원이 있는데, 1명은 남한에서 ‘요리’하면 바로 떠오르는 얼굴, 백종원 씨와 ‘파인다이닝’이라고 고급 서양식 코스 요리를 하는 안성재 쉐프입니다. ‘흑백 요리사’는 요리사들이 내놓은 요리를 평가하는 경연 과정을 예능으로 풀어서 보여주는 프로그램인데요, 요리 경연이 이렇게 흥미진진할 수 있나 싶었습니다.
박소연 : 흑백, 결국 하얀색과 검은색이잖아요? 요즘 남한에는 부잣집에 태어나면 금수저,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면 흙수저… 이렇게 자조적으로 구분하는 게 약간 유행인데요, 요리 프로그램도 그런 식으로 구분하더라고요. 말하자면 이름난 20명의 요리사는 요리 금수저이고 무명 요리사들은 요리 흙수저인 셈이죠.
그렇지만 유명 요리사들에게 절대 밀리지 않는 무명 요리사들, 팽팽한 경쟁 속에서 심사를 하는 백종원 씨의 구수한 충정도 사투까지 더해지며 정말 재밌는 프로그램이 만들어진 것인데요. 아까 해연 씨가 안성재 심사위원을 쉐프라고 불렀잖아요. 남한에서는 요리사를 서양식으로 ‘쉐프’라고도 부릅니다. 요리 실력을 자랑하는 100명의 요리사들과 유명한 심사위원들의 칭찬과 혹평이 이어지면서 그야말로 치열한 ‘요리 전쟁’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이해연 : 처음엔 제목에 ‘요리 전쟁’이라는 말이 붙어서 좀 당황했는데요. 얼마나 치열하게 경쟁하는지 저도 모르게 이게 요리하는 예능 프로그램인지 아니면 무슨 추격 영화인지 모를 정도로 집중하게 됩니다. 첫 회 한번 봐볼까 시작했다가 밤을 새웠다니까요… (웃음)
박소연 : 이게 총 12편이던데… 그걸 한 번에? (웃음) 해연 씨는 이 프로그램에서 어떤 장면이 제일 기억에 남아요?
이해연 : 다 재미있게 봤지만 그중에서 남한에서 유명한, 키도 크고 잘생긴 최연석 쉐프가 등장하는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웃음) 최연석 쉐프가 만든 요리는 '봉골레 파스타'라고 이탈리아식 국수 요리인데요, 조개가 들어가는 단순한 요리예요. 그분이 파스타를 만들게 된 계기가 인상적이었어요. 어렸을 때 요리를 배우려고 외국에 나갔는데 제일 신병(초보)이니까 할 일도 없고 막막했다고 합니다. 취직한 식당에서 다른 사람들은 각자 자기 역할이 있어서 열심히 하는데 혼자서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몰라 난감한데 마침 배가 너무 고팠다고 해요. 어쩔 수 없이 그냥 참고 있었는데, 어떤 선배님이 주방 뒤쪽으로 불러내더니 김이 모락모락 나는 그 파스타를 만들어 주었다고 합니다. 한 입 먹었는데 지금까지 먹었던 그 어떤 파스타보다 제일 맛있었데요. 그 순간에 봉골레 파스타를 세계에서 최고로 맛있게 만드는 세프가 꼭 돼야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합니다. 남한에서는 흔하게 어느 이탈리아 식당에서도 먹을 수 있는 파스타에 이런 사연이 있다니… 요리로 이런 감동을 받을 수 있다는 것도 생소한 경험이었습니다.
박소연 : 북한 같으면 내가 왜 밥을 좋아하냐고 물으면 단순히 배고프니까 라는 단순한 대답이 나옵니다. 남한에서는 음식 하나에도 정말 깊은 의미를 부여하잖아요. 그래서 ‘흑백 요리사’도 많은 사람이 좋아했던 것 같아요. 저는 개인적으로 이 방송에서 준우승한 '에드워드 리'라는 쉐프가 인상에 남습니다. 이분은 어릴 때 미국으로 이민 가서, 요리사가 돼서 식당을 운영하고 있어요. 이번 프로그램에서 두부로 요리를 만들었는데 백종원 쉐프가 심사하면서 완전히 닭 다리 같다며 탄성을 지르는 거예요. 그만큼 쫄깃쫄깃하게 만들었다는 거죠. 저는 그분이 만든 음식을 직접 맛보지는 못했지만 심사위원이 설명을 들으며 과연 어떤 맛일까? 궁금했고… 또 자신이 만든 요리를 앞에 놓고 이민자로서의 자신의 삶을 얘기하는 장면을 보면서 함께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해연 : 선배님, 갑자기 든 생각인데 혹시 북한에도 ‘흑백 요리사’처럼 요리 경연프로그램이 있을까요?
박소연 : 북한에도 전국 요리 경연 대회가 있었어요. 처음에는 도별로 하다가 마지막에는 중앙대회까지 치르는 방식으로 진행됐는데요, 대표적으로 양강도를 대표해 출전한 압록각 면옥 요리사가 중앙경연까지 올라가서 4등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해연 : 생각해 보니 저도 어릴 때 TV에서 봤던 기억이 납니다!
박소연 : 고향에 살 때 TV에서 개성 요리사가 만두를 빚는 요리 경연 방송을 봤던 기억이 납니다. 화면을 보니 만두를 아주 작게 빚더라고요. 그런데 함경도나 양강도 같은 경우에는 주먹만 하게 빚잖아요? 엄마가 방송을 보면서 '야 저거 먹고 언제 배를 채우겠니?' 그랬던 기억이 나요.
이해연 : ‘흑백 요리사’에서 하는 요리들을 보면 재료는 한국 재료지만 완성된 요리를 보면 서양식, 일본식 등 다른 여러 나라의 요리법을 사용해서 만든 거잖아요. 북한에서는 사실 우리식 요리라고 해서 만두, 냉면 등이 전부이죠.
박소연 : 그게 큰 차이인 것 같습니다. 북한에는 고정관념이 있어서 ‘무’로 김치 만든다고 해도 만들 수 있는 품목들이 몇 개 안 되죠. 그런데 남한 사람들은 매우 창의적입니다. 계란 하나를 가지고도 자기만의 독특한 개성을 살려서 다양한 음식을 만들어요. 이게 남북이 좀 다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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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연 : 맞아요. 사실 북한에도 중국 음식도 있고 일본 음식도 있거든요. 강도 식당(개인 식당) 같은 데 가면 이런 음식들이 분명히 있어요. 그런데 국가가 주체하는 요리 경연 대회에는 무조건 전통 북한식 음식만 나갈 수 있어요. 한국처럼 여러 나라 음식들을 다양하게 만들면 정말 좋을 텐데, 북한은 딱 정해져 있는 경우가 많고 그걸 바꾸는 게 쉽지 않아요. 저도 지금까지는 요리라고 하면 그냥 맛있으면 되고 배부르면 된다는 인식이 있었어요. 요리 한 가지를 해도 의미와 가치를 담고 거기에다 요리가 주는 행복까지 더해서 진심을 다해 준비하는 흑백 요리사들의 모습을 보면서 음식을 대하는 인식이 좀 달라짐을 느꼈어요.
박소연 : 그리고 북한에서는 일단 대결이라고 하면 이를 물고 악을 써서라도 반드시 상대를 이기는 게 대결이라고 생각해요. ‘흑백 요리사’에서 요리사들의 대결 장면을 보면서 승패에 상관없이 이분들은 요리에 정말 최선을 다해 진심을 쏟아붓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어요. 그래서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지 않았나 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해연 씨, 이번 ‘흑백 요리사’에 탈북민 요리사가 참가하신 거 아세요?
이해연 : 네, 알아요. 정말 자랑스러웠어요. 근데 느낌은 완전히 남한 사람 같았어요. 소개를 안 했으면 북한 사람인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우승은 못 했지만 북한을 대표하는 한 사람으로서 그런 대회에 나갔다는 것 자체가 뿌듯했습니다.
박소연 : 프로그램에 출연한 요리사들은 사전 심사를 통해 선정된 분들로 실력으로 100인에 든 사람들이잖아요. 그 속에 탈북민 출신 요리사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분 좋죠.
탈북민 출신 요리사 이름은 김원준, 외모는 남한에서 젊음의 거리라 불리는 홍대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MZ세대 젊은 청년입니다. 이분이 준비한 요리는 북한 두부밥과 비슷한 요리로 아쉽게 예선에서 탈락했어요. 아무래도 북한식 음식이라 생소하고 맛도 대중적이지 못했을 것 같아요. 이분은 현재 서울 마포에서 양푼 김치찌개 식당을 운영하는데 손님이 정말 많다고 합니다. 고객들이 좋아하는 맛을 내기 위해 하루에 열일곱 시간을 일하고 김치와 돼지고기도 제일 좋은 걸 쓴대요. 해연 씨, 한국에 와서 김치찌개 먹어본 적 있어요?
이해연 : 그럼요. 좋아해서 집에서도 자주 해 먹어요.
박소연 : 저도 북한에서 몸에서 시큼한 냄새가 날 할 정도로 김치가 들어간 찌개를 많이 먹었는데 남한의 김치찌개는 좀 다르죠?
이해연 : 아무래도 다르죠. 북한에는 ‘김치찌개’라고 정확히 이름을 정한 음식은 없어요. 엄마들이 밥하기 싫으면 남아 있는 반찬들을 한 데 넣어서 끓여서 먹곤 했었는데, 그 안에 김치도 넣고 두부가 들어가면 두부찌개 혹은 두부국이라고 했지 ‘김치찌개’란 말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박소연 : 저희 엄마도 두부에 남은 반찬을 넣고 김치를 막 썰어 넣어 찌개를 끓이지만 남한의 김치찌개처럼 돼지고기가 들어가지 않았어요. 그래서 아빠들이 '야 이게 돼지 밥이냐, 또 이것저것 막 넣었구나' 그랬죠. (웃음) 그런데 남한은 확실히 고기라든지 다른 양념을 많이 넣잖아요. 그래서 북한식 김치찌개보다는 맛과 질이 훨씬 더 높아요.
이해연 : 남한에 오신 북한분들은 주로 고향에서 즐겨 먹던 만두나 순대, 냉면 같은 음식을 많이 하잖아요? 그런데 이번에 ‘흑백 요리사’에 출연한 분은 북한 음식이라는 고정관념을 벗어나 남한 사람들이 즐겨 찾는 음식으로 식당을 하는데요, 앞으로 외국 음식 등 다양한 요리를 하는 북한 출신 요리사들을 많이 만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클로징] 탈북민들은 남한에 살면서 인조고기밥, 두부밥, 녹마국수, 언감자떡을 비롯한 고향음식을 아무 때나 맛볼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탈북민들이 운영하는 북한 전문 음식점이 전국에 퍼져있기 때문인데요. 요즘에는 한국에서 요리를 배운 젊은 탈북민 출신 요리사들이 북한식 요리에서 벗어나 서양 요리 등 다양한 식당을 운영하는 추세입니다. 젊은 탈북민 요리사들은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요? 이 얘기는 다음 시간에 이어갈게요.
지금까지 탈북 선후배가 나누는 남한 정착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진행에 박소연, 이해연, 제작에 서울 지국이었습니다.
에디터 이현주, 웹편집 이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