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10년 차이] 북한이란 사막의 오아시스

서울-박소연 xallsl@rfa.org
2023.04.24
[우리는 10년 차이] 북한이란 사막의 오아시스 북한 조선중앙TV가 지난 2015년 방영한 7부작 연속극(드라마) '방탄벽'.
/연합뉴스

“안녕하세요, 함경북도 무산 출신으로 올해 정착 10년 차인 박소연입니다

“양강도 혜산 출신으로 이제 막 한국에 정착한 이해연입니다

 

 10년 차이로 남한에 입국한 탈북민 선후배가 전해드리는 남한 정착 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박소연 : 북한에서 공식적으로 운영하는 텔레비전 통로가 지금은 몇 개 정도 돼요?

 

이해연 : 제가 있을 때는 조선중앙방송 채널 한 개밖에 없었어요. 보도 시간도 8시로 정해져 있고요.

 

박소연 : 그 시간이 되면빠빠빠빰빰빰빰라는 곡과 함께 오늘의 보도 시간이라고 나오죠. 너무 많이 들어서 지긋지긋해요.

 

이해연 : 보도가 끝나면 정확히 날씨가 나오죠.

 

박소연 : 최근 북한 텔레비전 연속극은 어떻게 많이 좀 나옵니까?

 

이해연 : 남한만큼은 아닌 거 같습니다. 새로 나오긴 하지만 남한만큼 많이 나오진 않습니다. 대신 화질은 옛날보다 많이 좋아졌어요. 예전에는 방송하다가 찍찍 소리가 나거나 갑자기 사라지기도 하고 그랬었는데 최근에는 화질이 많이 좋아졌어요.

 

박소연 : 과거엔 개성이나 황해도 지방에는 세 개 정도 통로를 볼 수가 있지만, 양강도나 함경북도 같은 데는 한 개 통로 밖에 못 봤어요.

 

이해연 : 사실 국경 지역은 더 많이 볼 수는 있잖아요. 북한 통로뿐 아니라 중국 방송도 여러 개 나오니까요. 물론 국가에서 보라고 허락은 안 하고 TV 채널을 움직이지 못하게 고정시켰고 몰래 보다가 단속원에게 들키면 난리가 났었죠. (웃음) 선배님은 시간까지 정확히 기억하고 계시네요. 지금도 여전히 똑같죠. 달라진 것은 지금은 USB가 있어서 웬만하면 조선중앙방송은 잘 안 보고요. 저장한 영화나 남한 드라마뿐만 아니라 중국 영화 등을 보죠. 항상 USB를 두 개를 만들어 놔요. 그중 한 개는 모란봉 로고가 찍힌, 북한에서 공식적으로 허가한 영상물이고, 다른 한 개는 금지된 것들을 저장해 놓고 봤죠. 보다가 혹여 누가 들어오잖아요? 그럼 불법 USB를 얼른 뽑고, 모란봉 USB를 얼른 넣는 거죠. 이게 다 수년간 쌓은 노하우입니다. (웃음)

 

박소연 : 맞아요. 북한에서는 항상 양다리를 해야 하는 거예요. 그런데 최근 북한에도 북한 내부인트라넷으로 시청할 수 있는 OTT 채널이 생겼다고 하던데요? 2021 5월 평양 영화기술사에서 개설한 OTT 채널 '생활의 벗'이 지금 인기가 엄청 높아지고 있다고 보도가 나오던데?

 

이해연 : 인트라넷은 북한내부에서만 시청이 가능하잖아요. 남한처럼 전 세계의 모든 콘텐츠를 다 볼 수는 없지만, 그래도 국내에서 돌아가는 정보를 알 수 있다는 게 그나마 큰 혁신으로 보입니다.

 

박소연 : 남한에서 이 기사를 보면서생활의 벗안에 콘텐츠가 몇 개나 있겠나 생각했어요. 북한 영화 빤하지 않습니까? 그래도 북한 주민들 입장에서는 정말 획기적일 것 같아요. 대단한 환경의 변화이지만, 한편으론 북한에 컴퓨터가 있는 가정이 과연 얼마나 될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이해연 : 옛날에는 거의 없었지만 제가 탈북하기 전에는 한 학급 인원이 30명이라면 그 중 한 10명 정도, 그러니까 3분의 1 정도는 컴퓨터를 사용하고 있었어요.

 

박소연 : 엄청 늘었네요! 만약에 볼만한 영상이 많다면 북한 사람들 입장에서는 오아시스 같을 것 같습니다. 왜냐면, 외부 드라마들을 볼 때마다 우리가 숨을 죽이며 봤잖아요. 그리고 항상 영화를 보면서도 재미가 아닌 공포를 느꼈던 거 같아요. 나는 지금 이 남한 영화를 봐서 행복한데, 이게 만약 들키게 되면 감방에 가야하고 가족은 어떻게 될까... 이런 불안감이 있었단 말이에요.

 

이해연 : 그런데 이런 영화, 드라마는 남한 사람들보다 오히려 북한 사람들이 더 많이 보고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저희가 북한에서 드라마를 많이 봤잖아요? 그런데 제가 남한에 와서 북한에서 본 드라마 내용을 얘기하면 오히려 남한 사람들은 모르거나 안 본 경우가 많아요.

 

박소연 : 남한 사람들은 약간드라마를 많이 보면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더라고요. 그 시간에 자기 계발을 한다거나그게 더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물론 사람마다 좀 다를 수는 있지만요이건 남한과 북한 생활상이 달라서 그럽니다. 우선 북한에서는 기술이나 회사를 다니고 싶어도 있어야 다니죠. 그냥 눈을 뜨자마자 눈곱 떼고 장마당에 가야하고, 안전원이 단속하면 보따리를 지고 들어와야 하고, 남한보다 사람들이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요. 두 번째 이유는, 북한 주민들이 한국 드라마를 많이 보는 게 숨통이에요. 꽉 조인 세상에서 당에서 하라는 것만 하니까 심장이나 모든 것들이 터지기 직전입니다. 결국 엄한 규율 속에서 한국 드라마를 보는 순간이 숨을 돌릴 수 있는 유일한 낙인 거죠. 솔직히 우리가 남한 드라마가 재미도 없고 공감이 안 되면 안 보겠죠. 북한 사람들 되게 철저한 거 아시죠? 공산주의자들은 결과를 놓고 따진다는 말을 많이 하잖아요. (웃음)

 

이해연 : 북한에서는 하루하루 살아가기가 너무 힘들죠. 그 고통 속에서 좋아하는 거를 할 수 있는 여지가 있어야 하는 데 없잖아요. 그나마 남한 드라마를 보면서 낙을 좀 느끼는데 그 작은 행복마저도 뺏어 가는 것을 보면서,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정말 이해할 수 없어요. 남한 드라마 내용이 북한을 반대하고 욕하고 이런 거 아니잖아요. 일상적인 내용인데도 드라마를 봤다고 잔인하게 사람을 죽이는 것은 정말 이해가 안 됩니다.

 

박소연 : 자신감이 없는 거죠. 왜냐면, 한국 드라마를 보면서 주민들의 의식이 변해가고 그래서 북한 정권에 대한 불만을 가질까 봐 그렇게 겁을 먹은 거죠.

 

이해연 : 북한에 있을 때는 몰랐어요. 비록 그 안에서 살지만 내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은 북한을 벗어나서야 알게 되었어요. 수많은 핵무기를 만드는 돈이면 인민들에게 쌀을 공급해 여유롭게 살게 해 주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들의 마음은 이렇게 간절한데 북한 당국은 그렇게 안 하고 있죠.

 

박소연 : 자본주의 나라는 우윳값이 조금만 올라도 국가가 뭘 하고 있냐며 데모하는데, 북한에서는 안 그러잖아요. 나라가 어려우니 허리띠를 조이라면 조이고, 애국미를 내라면 죽을 먹으면서도 군말 없이 내면서 그렇게 살아왔어요. 그런 인민들한테 숨통을 트일 수 있는 작은 여유마저 북한 당국이 허용하지 않는다는 게 너무 안타깝습니다.

 

이해연 : 허용하면 나라가 무너질 가능성이 있어서 통제하는 거 아닐까요?

 

박소연 : 맞아요. 해연 씨와 저는 불과 10년 전에는 평범한 북한 주민이었잖아요. 그렇지만 지금에 와서 우리는 그런 상황 상황들을 보고 안타까워하죠. 우리 같은 일반 사람들도 알 수 있는데, 북한 당국이야 당연히 알죠. 알면서도 그러는 거예요. 중요한 것은 북한 당국이 목숨을 위협하면서까지 드라마를 못 보게 법으로 제정했지만 그래도 북한 주민들은 그 위에 있어요. OTT 이야기를 하다 보니 영화나 드라마 한 편, 마음 놓고 보지 못하는 북한 주민들의 생각에 마음이 아픕니다. 그렇지만 분명 어떻게든 방법을 찾을 북한 주민들에게, 우리 청취자들에게 요즘 남한에서 화제가 되는 작품을 추천해 주면 어떨까요?

 

이해연 : 너무 많지만, 그중에서도 하나를 고른다면 저는 '카지노'라는 드라마를 추천하고 싶습니다. ‘카지노는 게임을 하는 장소인데요. 북한에서 주패 같은 카드로 하는 게임이나 기계로 하는 게임장을 말합니다. 북한의 오락장 같은 곳이에요. 이 드라마가 북한 주민들 취향에 잘 맞을 것 같아서 추천하고 싶어요.

 

박소연 : 저는 신성한 이혼이라는 드라마 추천합니다. 북한에서 이혼이란 말은 굉장히 부정적인 단어인데요. 요즘 남한에서 '신성한 이혼'이라는 드라마가 시청률 1위에요. TV에서 실시간으로 방영이 되고 있고 OTT 채널에서 다시 볼 수가 있어요. 사실 제가 북한에서 이혼했던 사람이잖아요. 북한에서는 이혼했다는 이유만으로 항상 죄인처럼 머리를 못 들고 살았어요. 이 드라마를 추천하는 이유는 북한 주민들에게 이혼을 권하는 게 아니라… (웃음) 한번 결혼했다고 상대에게 맞으면서 살 이유는 없잖아요. 사랑이 없는 결혼 생활이라면 제대로 끝내는 것도 삶의 지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북한 남성들, 특히 과거 아버지 세대들 술만 마시면 어떻게 하죠?

 

이해연 : 많이 때리죠. 막 술주정 부리고 너무 싫어요.

 

박소연 : 맞아요. 이런 것들도 다 이혼 사유가 될 수 있다는 걸 북한 남성들이 드라마를 통해 좀 알았으면 좋겠고 그래서 이 드라마를 추천하고 싶어요. 서로를 사랑하는 게 얼마나 중요하고, 이혼은 가정을 깨는 아픈 상처라는 것을 알게 됐으면 좋겠습니다.

 

이해연 : 서로를 생각해 주고 사랑해 주면 좋겠습니다.

 

박소연 : 저희가 오늘 해연 씨랑 OTT라는 플랫폼 얘기를 하면서 드라마 얘기를 장대하게 했잖아요. 우리는 이 방송을 마치고도 5분 후면 OTT 안에 있는 많은 드라마를 볼 수 있는 세상에서 살고 있어요. 그러나 우리 북한 주민들은 다양한 한국 드라마를 마음 놓고 볼 수가 없다는 게 안타깝지만요, 그래도 지혜롭게 안전하게 보시길 바라면서 오늘 방송을 마치려고 합니다. 함께 해주신 청취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해연 씨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지금까지 탈북 선후배가 나누는 남한 정착 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진행에 박소연, 이해연, 제작에 서울 지국이었습니다.

 

박소연, 에디터 이현주, 웹팀 김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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