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10년 차이] 내 소중한 11평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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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함경북도 무산 출신으로 올해 정착 10년 차인 박소연입니다”

“양강도 혜산 출신으로 이제 막 한국에 정착한 이해연입니다”

10년 차이로 남한에 입국한 탈북민 선후배가 전해드리는 남한 정착 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박소연 : 해연 씨는 지금 어떤 집에서 살고 있어요?

이해연 : 임대 아파트죠. 남한에는 임대 아파트도 종류가 다양합니다. 국민 임대, 영구 임대 등 공공임대아파트가 있는데요, 제가 살고 있는 집은 국민 임대입니다.

박소연 : 임대는 물건으로 말하면 자기 물건을 남에게 빌려주는 것을 말합니다. 북한에서는 잘 들어보지 못했던 단어죠?

이해연 : 네, 북한에서는 잘 안 썼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말하자면 저는 집을 빌려 쓰는 임차인인 거죠. 집의 주인은 국가에서 운영하는 LH 공사이고요.

박소연 : 저 역시 현재는 국민 임대 아파트에서 살고 있지만 저는 정착 초기에는 영구 임대 아파트에서 살았거든요. 저보다 수준이 높은데요? (웃음)

이해연 : 요즘은 영구 임대 아파트가 거의나 없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보통 영구 임대는 오래전에 지은 아파트들이라 많이 낡긴 했더라고요. 국민 임대는 새집들이 많고요.

박소연 : 11년 전에는 탈북민이 혼자 왔을 경우, 거의 영구 임대 아파트를 받았어요. 영구 임대 아파트는 평수가 작은 편입니다. 제가 하나원 퇴소 후에 처음 받았던 영구 임대아파트가 한국 평수로 11평이었어요. 근데 해연 씨, 남한 평수하고 북한 평수가 다르다는 사실 아세요?

이해연 : 진짜 그렇더라고요. 정착 초기에는 몰랐지만 지금은 알고 있어요. 남한의 1평은 북한 평수보다 3배나 크던데요?

박소연 : 알고 있구나… 맞아요. 북한은 1제곱미터를 한 평으로 치지만 남한에는 3.3제곱미터를 한 평으로 부릅니다. 쉽게 이해하자면 남한에서 10평은 북한에서 30평 정도입니다. 그러니까 남한에서 11평 집은 북한 기준으로는 작은 집이 아니거든요. 그런데도 처음에는 너무 남한 드라마 속 좋은 집을 상상해서 그런지 집이 너무 작았어요. 부엌도 좁고 화장실도 아담했어요. 작은 방에 거실이 있고 엉덩이만 한 베란다도 있었어요. (웃음) 솔직히 혼자 사는 데는 아무 불편이 없었지만, 큰 기대를 갖고 있으니 작게 보였죠. 해연 씨는 지금 몇 평에서 살고 있어요? 보증금과 월세도 궁금해요.

이해연 : 17평에서 살고 있어요. 보증금은 국가가 지원해 주는데요, 달러로 계산하면 약 1만 2천달러입니다. 매달 월세도 137달러 정도 나가요.

박소연 : 17평이면 북한 기준으로 54평이네요. 지금 해연 씨가 보증금 1만 2천 달러를 국가에서 지원해 준다고 하셨는데, 보충 설명하자면 이 보증금이 바로 탈북민들을 위한 사회 정착금으로 지급되는 겁니다. 이후에 다른 명목으로 자격증을 따거나 하면 정착금이 추가로 지급되지만 아파트 보증금이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하고요. 10년 전에는 국가로부터 지원받는 보증금이 1만 달러 정도였는데 해마다 물가에 따라 사회정착금이 조정되면서 보증금 지원 금액도 올라갔습니다. 또 10년 전에는 1인 가족이면 무조건 11평~13평 영구 임대 아파트를 배정해 주었는데 지금은 혼자 살아도 해연 씨처럼 17평에서 살 수 있으니… 좋아졌네요!

이해연 : 저는 처음엔 영구 임대가 뭔지 국민 임대가 뭔지 몰랐어요. 그냥 배정해줘서 들어갔는데요, 요즘은 영구 임대가 거의 안 나와서 국민 임대로 들어가게 된 것이라고 하더라고요. 선배님은 남한에 빨리 오셔서 작은 집을 받으셨네요. (웃음)

박소연 : '빠른 놈도 살고 늦은 놈도 산다'는 말이 있어요! 남한에는 국가가 국민들에게 빌려주는 다양한 임대 아파트가 있어요. 그 시초인 영구임대 아파트는 1989년에 짓기 시작했다니까 벌써 34년된 아파트도 있는 것이죠. 영구 임대는 거의 사라졌고 최근 짓는 임대 아파트는 국민 임대 로 평수도 영구 임대보다 크게 설계됐어요. 아마 17 평이 제일 작을 거예요. 영구 임대 아파트는 오래된 아파트라 보증금, 임대료, 관리비가 모두 눅어요. 영구 임대는 기초생활수급자 같은 저소득층, 국가유공자, 장애인을 비롯한 사회적으로 국가가 배려를 해야 하는 사람들이 오랫동안 아주 적은 돈을 내고 살 수 있는 아파트입니다. 국가적으로 배려하는 대상에 탈북민도 포함되는 것이죠. 반면 국민 임대는 보증금, 임대료, 관리비가 영구 임대에 비해 약간 높고요 평수도 넓고 새로 지은 아파트라 주변 환경도 좋아요. 임대 아파트는 2년에 한 번씩 거주 재계약을 하는데요, 국민임대 아파트는 수입이 남한 국민 평균 소득을 넘거나 2,000cc가 넘는 고급 자동차를 소유하거나 재산이 한국 돈으로 2억 9천만 원을 넘기면 자동 탈락됩니다. 일반적으로 탈북민들은 나이가 들어서 한국에 오신 분들이 많아 대부분 임대 아파트에서 오랫동안 사는 편입니다.

이해연 : 선배는 처음에 영구 임대에서 사시다가 지금은 국민 임대로 옮기셨잖아요. 여러 조건으로 보면 영구 임대가 좋은데 왜 옮기셨어요?

박소연 : 영구 임대 아파트에 살 때 탈북민 선배가 '너는 이 아파트에서 뿌리를 내려라. 그래야 돈 모은다'고 말해줬어요. 11평 아파트이지만 북한 당 간부 아파트보다 훨씬 나아요. 24시간 전기 들어오지, 더운물 찬물도 정상적으로 공급됐어요. 그런데 나중에 아들이 탈북해 함께 살게 되면서 남한 학교에 다니까 문제가 생기더라고요. 아들 기준에서는 집이 작고 부끄러웠던 것 같습니다. 친구들을 데려오지 않았어요. 그래서 아들 때문에 4년을 살다가 국민임대 아파트를 신청했어요. 임대 아파트는 신청한다고 바로 나오지 않아요. 이사 가고자 하는 지역에 임대 아파트 건설 등으로 빈자리가 나왔다는 공고가 나와야 신청이 가능한데, 10세대가 나왔다면 신청자가 몇 백 명이나 되니 서류 심사를 통과하고 또 추첨에 당첨돼야 집을 받을 수 있어요. 저는 9개월 만에 선정됐다는 통보를 받고 그다음에 다시 6개월을 기다린 뒤 국민 임대 아파트로 들어갔어요. 11평에서 23평으로 이사했는데 아들이 그때야 친구들을 집에 데려오더라고요.

이해연 : 그랬군요. 11평 영구임대아파트에서 23평 국민임대아파트에 이사하면 보증금이나 관리비도 차이가 크지 않아요?

박소연 : 해연 씨, 왜 갑자기 남의 집 보증금과 관리비가 궁금해졌어요? (웃음)

이해연 : 선배님이 큰 집에 사시는 게 부러워서요! (웃음) 저도 이사 가고 싶습니다!

박소연 : 지금 살고 있는 국민 임대 아파트 보증금은 한국 돈으로 6,700만 원, 달러로 6만 달러가 넘어요. 관리비는 한 달에 300달러 정도 됩니다. 영구 임대 아파트보다 거의 세 배 정도 비싸지만 좋은 환경에서 생활을 하려면 그만한 투자는 해야 하는 것 같아요.

이해연 : 아드님은 이사 가고 아주 좋아했다고 하셨는데요, 선배님은 어떠셨어요?

박소연 : 북한에는 이사하거나 새 옷이 생기면 아이들이 좋아한다는 말이 있어요. 사실은 어른인 제가 더 좋아했어요. 이사를 앞두고 집 청소를 하러 갔는데 가구가 없는 상태라 집이 너무 커 보였어요. 북한식으로 세수수건을 물에 빨아서 엉덩이를 하늘로 올리고 바닥을 닦으면서 '와, 이렇게 큰 아파트를 어떻게 관리하면서 살까?' 걱정했어요. 베란다는 거짓말을 조금 보태서 원래 살던 영구 임대 아파트만 한 크기였어요. 그때는 그렇게 설레고 좋았는데 막상 7년을 살다 보니 지금은 더 큰 집으로 가고 싶습니다. (웃음)

이해연 : 무슨 느낌인지 알 것 같아요. 제가 지금 살고 있는 17평 아파트는 혼자 살기엔 꽤 큰 집이고 구조도 괜찮아요. 북한에 비하면 거의 운동장과 같은 크기인데도 살다 보니 더 큰 집이 제 눈에 보이는 거예요. 인간의 욕심이 끝이 없는 것 같습니다. 남한은 누구나 자기 집을 쉽게 살 수 있는 형편이 못 되잖아요. 그만큼 집 가격도 비싸고요. 탈북민들뿐 아니라 남한분들도 천천히 내 집 마련을 합니다. 처음엔 월세로 살다가 돈을 모아서 전세로 옮기고 그다음엔 아파트 분양받아 대출을 보태 자기 집을 마련해요. 거의 이런 공식을 따르는 것 같습니다.

박소연 : 맞아요. 남한 분들과 만나서 얘기하다 보면, 그분들도 처음에는 지하 단칸방에서 농짝 하나 매고 신혼살림 차렸다가, 지금은 아파트에서 사는데 그 기간이 30~40년이 걸린 사람들이 많아요. 탈북민들의 경우, 처음에는 나라에서 마련해준 영구 임대 아파트에서 살다가 보증금이 좀 더 모아서 국민 임대 아파트로 갔다가 종잣돈을 마련하면 아파트 분양을 받은 후, 대출받아서 비로소 내 집을 마련합니다. 내 집 마련이라는 결과물은 같은데, 거기까지 가는 과정은 남한 분들보다 탈북민들이 더 쉬운 것 같아요.

이해연 : 탈북민들은 남한에 정착하기 시작하면서부터 국가로부터 배정받은 임대아파트에서 관리비도 적게 내면서 시작하는데요, 그것만으로도 벌써 돈을 절약해 모을 수 있는 환경이 되는 거죠.

박소연 : 몇 년 전에 북한에서 금방 나온 탈북민 남자분을 우연히 만난 적이 있어요. 놀랍게도 그분은 북한에서 이미 남한에 오면 임대 아파트를 준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거예요. 해연 씨는 북한에 있을 때 알았어요?

이해연 : 아니요. 전혀 몰랐습니다.

박소연 : 북한에서 우리는 탈북민들이 남한에 와서 어떤 집에서 사는지 전혀 몰랐어요. 그런데 이분은 이 정보를 보위원에게 들었다고 해요. 처음에는 선 듯 믿어지지 않았지만 사연을 듣고 나서 이해했어요. 북한이 재입북자들을 내세워서 탈북민들이 남한에서 인간 이하의 천대를 받고 있다고 선전하잖아요? 어느 날 보위원이 동별로 주민들을 '반간첩투쟁 전람관'에 모아놓고 '남한에는 반역자들이 가게 되면, 산 중턱에 있는 낡은 아파트를 빌려준다. 그나마 빌려주는데 곰팡이도 피어있고, 비싼 월세를 내며 살게 된다'라고 말했답니다. 그걸 듣고 있던 주민들은 '아파트를 빌려주는 게 어디야! 남한에 가야겠다'… 이렇게 생각했답니다. (웃음) 결국 보위원이 북한 주민들한테 탈북 동기를 제공해 준 셈입니다.

이해연 : 남한으로 오는 과정에도 임대 아파트에 대해 내용은 전혀 몰랐어요. 남한에 정착한 친척들도 하나원을 퇴소하면 국가에서 집을 준다고 말할 뿐 임대 아파트가 뭔지는 자세하게 말을 안 해주잖아요…

국민 임대, 영구 임대… 부르는 말이 복잡하죠? 여기에 아파트 청약, 청약 순위, 중도금, 중도금 대출 등등 아파트를 사려면 눈이 팽팽 돌아갑니다. 그런데… 이 복잡한 과정을 넘은 탈북민들이 한두 명이 아닌데요, 그렇게 만드는 동력은 ’내 이름으로 된 번듯한 집 한 채’ 일 겁니다. 그 의미가 우리에겐 그냥 집 한 채보다는 훨씬 큰데요, 그 얘기는 다음 시간에 이어가겠습니다.

지금까지 탈북 선후배가 나누는 남한 정착 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진행에 박소연, 이해연, 제작에 서울 지국이었습니다.

에디터 이현주,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