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10년 차이로 남한에 입국한 선후배가 전해드리는 남한 정착 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저는 함경북도 무산 출신으로 올해 정착 10년 차 박소연이고요, 양강도 혜산 출신으로 이제 막 한국에 정착한 이해연 씨와 함께합니다.
INS : <우리는 10년 차이>, 이모와 사장님
박소연 : 해연 씨, 안녕하세요?
이해연 : 네, 안녕하세요.
박소연 : 항상 부르는 이름인데 오늘은 '해연 씨'라고 부르는 게 새삼스럽네요.
이해연 : '씨'를 붙여서 이름을 부르는 게 적응이 안 됩니다. (웃음) 북한에서는 그렇게 안 부르잖아요. 'ㅇㅇ 님' 이렇게 부르는 것도 적응이 어렵고요. 저는 또 '선배님'이라고 부르잖아요. 이 말도 처음에 부르기가 얼마나 어색했는지… 그런데 지금은 적응이 돼서 괜찮네요. (웃음)
박소연 : 북한에서는 'ㅇㅇ 씨'라고 거의 안 부르죠. 우리가 한국 드라마를 이불 속에서 몰래 보잖아요. 한국 드라마에선 '혜교 씨, 태희 씨' 이렇게 불려요. 그걸 시장에서 서로 흉내 내며 '드라마 보더니 남조선 사람이 다 됐구나' 하면서 몰래 주고받던 호칭인데 말이죠. 이제는 자유롭게 누구누구 씨 이렇게 부르면서도 새삼스럽게 어색하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이해연 : 저도요. 처음에 왔을 때는 어디를 가든지 'ㅇㅇㅇ 고객님' 하고 이름 뒤에 항상 '님'자를 붙여서 부르면 그렇게 부담스러웠어요.
박소연 : 남한에 온 탈북민들이 해연 씨처럼 다 똑같이 말해요. 남한에 와서 이름 뒤에 꼭 '님'자를 붙여 주니까 그럴 때마다 대우받는다는 느낌도 있다고…
북한에선 죄를 짓고 심판받는 이에게 붙이는 어미 ‘者’
왜 하필 탈북者인가?
박소연 : 또 우리를 부르는 색다른 호칭도 있죠.
이해연 : 네, '탈북민', '새터민', '탈북자' 등 호칭이 너무 다양합니다. 뭐가 맞는지 모르겠어요.
박소연 : 제가 남한에 막 왔을 때는 사회적으로 탈북자라고 부르더라고요. 그래서 처음에는 왜 하필 이름 뒤에 '者'자가 붙을까 싫더라고요. 북한에서는 뭔가 죄를 짓고 심판을 받는 사람들에게 주로 붙이는데요, '혁명의 배신자', '민족의 반역자' 이럴 때 뒤에 '자'자가 붙잖아요! 우리는 그게 싫어서 여기에 왔는데 여기에서도 또 '자'자가 붙고 더구나 앞에 '탈'자가 또 붙어있고요…
이해연: 탈북했으니까 앞에 '탈'자가 붙는 건 인정을 해야겠죠. 그래도 뒤에 '자'자가 붙으니까 듣기가 거북하더라고요. 하지만 공공기관에 가보면 따로 법률 용어로는 '북한이탈주민' 이렇게 부르는데요. 저는 오히려 그 호칭이 괜찮았어요.
박소연 : 사실 남한에서는 '자'자를 붙이는 게 그렇게 부정적인 의미가 아니에요. 그런데 북한에서는 이 말이 부정적으로 많이 쓰이다 보니까... 탈북민들도 해연 씨나 저처럼 '왜 내가?'라는 생각을 하는 것 같아요.
이해연 : 그런 오해를 하게 되죠.
박소연 : 그래서 순화된 호칭으로 바꾸자는 의견에 따라 다양한 이름이 나왔어요. '탈북민', '새터민', '북향민', '북한이탈주민' 등이죠. 이제는 뉴스나 공공기관에 가도 대부분 탈북민으로 호칭하니 듣기 좋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호칭에 관한 이야기가 이왕 나왔으니까 남과 북의 호칭에 관한 얘기를 해볼까요? 가정에서 부르는 호칭도 진짜 달라요, 아세요?
가족 간의 남북의 호칭도 차이가 커
특히 이질감이 드는 호칭은 ‘이모’
왜 모든 나이 든 여성을 ‘이모’라 부르는가? 대한민국은 다 사장님만 있나?
이해연 : 제가 처음 남한에 와서 제일 의아했던 게 '이모'라는 호칭이었습니다. 원래 북한에서는 엄마의 동생을 지칭할 때 사용하는 말이잖아요. 그런데 남한에서는 엄마의 언니에게도 이모라고 하고 심지어 식당에서 일하시는 분에게도 '이모님'이라고 부르는 게 신기했습니다.
박소연 : 저도 금방 왔을 때… 북한 말로 생판 모를 때, 식당에 갔는데 손님들이 식당에서 일하는 분들에게 '이모님 여기 물 좀 갖다주세요. 맥주 한 병 갖다주세요.' 이러는 거예요. 그래서 '이모가 운영하는 식당인가?' 생각했어요. (웃음) 그런데 알고 보니까 그냥 자연스럽게 부르는 호칭이라고 하더라고요. 우리는 친척이 아닌 사람을 이모라고 하지 않잖아요?
이해연 : 그렇죠. 저는 처음에 이모라는 말이 나가지 않아서 '사장님'이라고 불렀어요. 사장님이 아닌 걸 알면서도 그냥 '사장님 단무지 좀 주세요'라고 했죠. 사실 우리에게는 사장님이라는 말도 낯설잖아요. 사장님도 남한에서는 그냥 부르지만 북한에서 정말 대단한 사람이죠.
박소연 : 말하지만 어느 기업 지배인쯤 되죠.
이해연 : 북한에서는 큰 갑부들만 부를 수 있는 호칭인데 여기에서는 다 사장님이라고 부르더라고요. 그래서 '대한민국은 다 사장님만 있나' 라고 생각했어요.
가족 간의 호칭도 표를 만들어야 할 정도
북한에선 엄마의 언니는 ‘큰엄마’
‘형부’라는 호칭은 없어
박소연 : '이모'라는 말도 북한에선 엄마 동생을 '이모'라고 하잖아요. 그리고 엄마의 언니는 '큰엄마'라고 하죠. 그런데 남한은 엄마의 언니도 이모라고 부르더라고! 그리고 이뿐만 아니라, 북한에서는 보통 언니의 남편을 '아저씨'라고 부르잖아요. 그런데 남한은 다르잖아요.
이해연 : 형부라고 하죠.
박소연 : 그렇죠!
이해연 : 저는 처음엔 서로가 호칭이 너무 달라서 따로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박소연 : 정말로 해야 해요. 또 다른 호칭 중에 남편의 동생이 있잖아요. 북한에서는 어떻게 부르죠?
이해연 : '시동생이나 삼촌'이라고 부르죠. '적은이'이라고도 하고요.
박소연 : 맞아요. 그런데 남한에는 도련님이라고도 하더라고요, 저는 처음에 춘향전의 도련님인가 생각했어요.
이해연 : 옛날 시대도 아니고 도련님은 또 뭐죠? (웃음)
박소연 : 또 우리가 사돈을 부를 때 북한에서는 부인 쪽의 부모를 '가시 아버지, 가시 엄마'라 부르잖아요. 그런데 남한은 다르게 부르더라고요
이해연 : '장인, 장모'라고 부르던데요. 이 말도 너무 낯설었어요. 정말 호칭들 하나하나가 너무 새로워서 종이에다 써놓고 일일이 배워야 할 것 같습니다.
남한에서 가장 듣기 좋았던 호칭은 ‘아빠’
집안에서 가장 어려웠던 ‘아버지’
살아계실 때 살갑게 ‘아빠’라고 불러보고 싶어
박소연 : 우리가 북한에 있을 때 매일 백 번도 넘게 부르는 호칭이 있잖아요. 아버지하고 어머니.
이해연 : 맞아요. 아버지를 나는 항상 아버지라고 불렀었는데 여기 남한에서는 '아빠'라고 부르더라고요.
박소연 : 그러게요. 처음에 들을 때 '야, 왜 저렇게 버릇이 없을까? 아버지라고 불러야 맞는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결혼해서도 아빠라고 부르더라고요.
이해연 :저도 처음에는 조금 오글거리는 느낌이 있어서 그 말에 적응이 안 됐어요. 사람이 몸에 밴 습관이 있어서 하루아침에 말을 바꿀 수 없어서 그렇게 느끼지 않았나 싶어요.
박소연 : 저도 공감하는 게 북한에서는 초등학교 때부터 공산주의 도덕을 가르쳐주잖아요. 부모님들에 대해서 '아버지, 어머니'라고 반드시 존칭어를 써야 한다고 가르치죠. 일곱 살, 여덟 살 때부터 배우기 때문에 '아빠'라고 하게 되면 반말하는 것같이 느껴졌어요. 그런데 남한에 와서 이제 십 년을 살면서 보니까… '아빠, 엄마'라는 말만큼 친근한 표현이 없네요. 우리가 살면서 가장 가까운 사람이 누구예요? 이 말이 얼마나 부모를 가깝게, 허물없게 느끼게 하는 말인지 모르겠어요.
이해연 : 북한에서는 아버지는 집안의 가장이기 때문에 좀 어렵게 대하잖아요. 그런데 여기 남한에서는 자녀들에게 아빠가 완전 친구예요. 그 모습이 참 좋아 보였습니다.
박소연 : 저도 해연 씨하고 똑같은 마음인데 남한에 와서 드라마를 봤는데 아빠가 딸에게 '야, 너 답답하고 힘들지, 저녁에 아빠랑 술 한잔할래?' 이러면서 아빠하고 딸이 맞술을 하는 거예요. 십 년 전엔 버릇없이 어떻게 아버지하고 맞술을 할 수 있을까 생각했겠는데…
이해연 : 저는 북한에서 아빠랑 맞술 해봤어요.(웃음) 북한에 살 때 맥주를 같이 마시면서 아빠도 내가 좀 컸다고 당신의 속마음을 얘기하시고 저도 제 속사정을 얘기하는 자리가 되더라고요. 오기 전에 그런 시간이 있었다는 게 정말 감사하네요…
해연 씨가 정말 부러워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저는 한 번도 아버지와 술 잔을 부딪쳐보지 못 했고 ‘아빠’라고 다정하게 불러보지 못했네요. 항상 존경하고 사랑하는 아버지였지만 조금은 어려웠고 그래서 약간 거리가 있었는데, 지금 와서는 조금 후회도 됩니다.
생각보다 많이~ 다른 남북의 호칭 얘기, 다음 시간에도 이어가겠습니다.
지금까지 탈북 선후배가 나누는 남한 정착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진행에 박소연, 이해연, 제작에 서울 지국이었습니다.
박소연, 에디터 이현주,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