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방의 진보는 한국 진보와 달라

장진성∙탈북 작가
2014.05.13
david alton 305 데이비드 앨튼 영국 상원의원이 2009년 2월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북한 인권 토론회에 참석해 ‘장벽 대신 다리를 놓아야-북한의 도전’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하고 있다.
RFA PHOTO-이수경

2012년 7월 13일 천 년의 역사를 가진 영국 남부 지방도시 다팅턴에 있는 귀족의 성지에서 세계적인 칼럼리스트, 작가, 기자, 영화 감독들과 시민들이 초청된 문학축제가 열렸다.

BBC방송의 유명 아나운서 리지아 이크발이 사회를 보는 그 모임의 시 낭송자로 내가 지명됐다. 그날 시 낭송이 끝나고 인권 주제로 방송 녹화가 진행됐는데 어느 아프리카 작가가 북한이 세계 최악의 인권 탄압국이라는 나의 발언에 거칠게 항의를 했다. 자기 나라 인권이 더 극심하다면서 말이다. 나도, 객석의 사람들도 모두가 당황했다. 사회를 보던 리지아 이크발은 두 손을 들어 보이고 나서 나에게 설명을 부탁했다.

나는 “아프리카 인권도 물론 심각하다. 그러나 아프리카는 국가 간 전쟁이나 지역과 종교분쟁, 정권 부패에 의한 무질서와 혼란이 낳은 빈곤이고 인권유린이다. 그에 비해 북한은 정권 주도의 치밀하고 조직적인 독재에 의해 인권 유린이다. 사실 조직적인 독재가 더 지독하다. 북한의 김씨 일가는 그렇게 정치 수용소를 만들고 그 속에서 3대 세습을 하고 있다”고 말하자 객석에서 박수로 호응해 주었다.

그날 축제 손님들 중에는 세계 12위권 안에 드는 정치저널지 《뉴 레프트 리뷰-마르크스저널》의 대표 타리크 알리도 있었다. 파키스탄 출신인 타리크 알리는 저술가, 소설가, 역사가로 서방세계에 잘 알려져 있다. 마르크스-레닌주의를 고집하는 세계적인 좌파운동의 대부 로도 유명하다. 그는 베트남 전쟁, 이라크 전쟁,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반대한 평화주의자, 특히 9•11테러를 미 제국주의의 붕괴로 보는 철저한 반미주의자이기도 하다.

한국에 번역된 그의 주요 저서로는 《근본주의의 충돌》(이토), 《1968》(삼인), 《술탄 살라딘》(미래인), 《석류나무 그늘 아래》(미래인) 등이 있어 한국 내에서도 그를 추종하는 진보세력들이 꽤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 그가 내 손을 잡고 장시간 북한을 방문했을 때를 이야기하며 김일성에 대한 증오를 피력했다.

“김일성, 김정일은 고약한 사람이다. 자신들의 신격화를 위해 역사적 사실은 감추고 주체사상에 대해서만 요란하게 광고한다. 주체사상은 사실 외국이 무서워서 만든 것이다. 역사까지 기만하는 그런 권력자에 대한 증오로 솔직히 나는 김일성을 만난 자리에서 테러하고 싶은 충동까지 들었다. 그래서 나는 훗날 미국 럼스펠드의 보좌관에게 ‘북한을 넘어뜨리도록 왜 남한을 도와주지 않느냐’고 북한에 대한 결정적 조치를 주문하기도 했었다.” 내가 “당신은 진보주의자인데, 왜 사회주의 북한을 미워하느냐”고 묻자, 그는 화난 듯한 억양으로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진보주의자니까. 정상적 진보라면 북한 같은 독재를 증오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 뿐만이 아니었다. 서방에서 북한과의 대화를 주장하는 의원들도 같은 주장을 하는 남한 의원들과 본질적으로 다르다. 그들은 대화를 위해 인권을 양보하지 않는다. 인권과 대화를 같이 병행하려는 사람들이다. 그런 원칙 외교가 오히려 북한의 입장에서 봤을 때는 더 고압적이다. 그 원칙외교의 중심에는 영국 상원의원 데이비드 알턴이 있다. 그는 서방과 북한을 잇는 정치인으로 통한다. 북한 최고인민회의 부위원장인 최태복을 영국으로 초청한 것도 알턴이었다.

그런 그가 나를 영국 국회로 초청했다. 그 자리에서 나는 “북한과의 외교적, 합법적 관계를 통한 인권해결 방식은 북한의 거짓을 합법적으로 키워주는 꼴”이라며 남북 관계를 사례로 2시간 동안 설명했다. 이에 깊이 공감한 데이비드 알턴은 앞으로 북한 인권 문제를 다루는 효과적인 방식에 대한 지원과 공조를 부탁했다. 그는 자리를 옮겨 얼마 전 평양을 방문했던 인도적 구호 단체의 설립자이며 상원의원인 바로네스 콕스를 소개하기도 했다. 데이비드 알턴은 내가 서울로 돌아온 이후에는 자신의 홈페이지에 사진과 함께 링크까지 걸어 소개했다. 그동안 서방과 북한을 이어왔던 유명 정치인의 입장에서 평양에 전혀 다른 메시지를 공개적으로 던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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