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는 지금] 한국전쟁, 캐나다 노병들의 희생과 유산

0:00 / 0:00

캐나다의 수도 오타와의 국립전쟁기념탑과 기타 캐나다 주요도시들에서는 지난주 한국전쟁 정전 7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열렸습니다. 이번 시간에는 캐나다의 참전용사를 기억하는 한국전쟁과 그들의 희생에 대해 전해드립니다.

지난 26일 캐나다의 수도 오타와에 있는 전쟁 기념탑에는 40여명의 캐나다 한국전 참전 노병들이 모였습니다. 캐나다 정부가 해마다 여는 한국전쟁 정전 기념행사에 참여하기 위해서입니다.

오타와 한인 초등학교 학생들이 부르는 아리랑 노래와 함께 전쟁 기념 메달을 단 노병들은 70여년전 한국전쟁에서 먼저간 전우들을 추억하며 기념비에 헌화했습니다.

이 행사에 참가한 참전용사 윌리암 블랙씨는 올해는 40여명의 노병들이 이 행사에 참가했으나 내년에는 아마도 20여명이 될지도 모른다며 한국전쟁에 참가했던 전쟁 노병들이 남긴 유산을 이어갈 청년들이 필요하다고 전했습니다.

한국전쟁이 일어났을 때 유엔은 미국을 포함해 22개 유엔국의 195만 7천여명의 군인들을 한국땅에 파병했는데요. 이중에서 캐나다는 2만 6천 여명의 군인들을 파병했습니다. 이 숫자는 미국, 영국 다음으로 많으며 인구대비로 볼 때 가장 많은 군인을 파병한 것이 됩니다.

전쟁이 발발한 직후 캐나다는 구축함 3척을 처음으로 보낸데 이어 공중전에 경험이 있는 비행사 22명을 선발해 미공군에 파견했고 지상군은 총 10대 대대가 파견되었습니다.

이렇게 육, 해, 공군을 모두 신속하게 한국전에 투입한 캐나다는 당시 다른 유엔 회원국들의 한국전 파병을 적극적으로 동참하게 하는데 선도적 역할을 했습니다.

캐나다군이 주도적으로 참가한 가평전투는 유엔이 진행한 전투 중에서 가장 성공적인 전투로 평가 받았으며 가평전투에 참가한 최초의 지상군 부대 프린세스 패트리샤 캐나다 경보병 연대는 유명합니다.

캐나다 지상군은 가평전투 이외에도 355고지 전투, 고왕산 전투 등 수십건의 중요 작전을 성공적으로 치뤄냈는데요. 또한 캐나다 해군은 미 병력소송선 엄호를 시작으로 주로 서해안에서 활동했으며 해안진지 포격, 해안도시 방어, 항공모함 호위, 유격대활동 지원, 피난민 구호활동 등을 했습니다.

캐나다 공군은 주로 수송을 담당했는데 전쟁이 끝난 다음 1954년까지 남아서 왕복 수송작전을 비롯해 1만 3천여명의 병력과 전쟁물자 우편물을 한국전쟁에 실어나르는 임무를 담당했습니다.

전쟁노병 빈센트 커트니씨는 1952년 판문점 일대에서 벌어졌던 제 2차 후크전투를 생생히 기억하고 있는데요. 미군이 중국군의 공격을 받고 고지를 빼앗긴 후 영국군이 반격을 위해 보내졌고 다시 여기에 캐나다 군이 투입되었습니다. 치열한 전투속에 한시간도 되지 않아 10명의 군인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하지만 전쟁에는 항상 참혹한 순간만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1952년 6월 임진강 이북지역을 지키던 소대장 클로드씨는 할아버지, 어린이 등 3대가 모인 것으로 보이는 한 피난민 가족 12명이 새벽 시간에 부대진지에 들어온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이들이 식량이 있는 집으로 가고 싶어한다는 것을 통역사로부터 전해 듣고 아침식사를 대접하고 집까지 부대원을 붙여 무사히 보내주었습니다. 그들의 눈에 서렸던 고마움의 눈물을 보는 것은 매우 감동적인 경험이었다고 클로드씨는 전했습니다.

지금까지 캐나다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장소연입니다.

에디터 이진서, 웹담당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