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을 자유롭게 나는 새가 되고 싶어 (1)

토론토-장소연 xallsl@rfa.org
2018-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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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홍구박사의 손녀 원영화씨가 보관하고 있는 애국열사릉에 묻힌 원홍구박사를 추모하는 가족들의 사진이 실린 북한잡지.
원홍구박사의 손녀 원영화씨가 보관하고 있는 애국열사릉에 묻힌 원홍구박사를 추모하는 가족들의 사진이 실린 북한잡지.
RFA PHOTO/장소연

캐나다에서 관심이 높아가는 북한의 인권문제와 그 활동소식을 전하는 캐나다는 지금, 캐나다 토론토에서 장소연 기자가 전합니다.

원영화: 그러니까 그때가 1948년도 8월달, 이것도 우리엄마는 잘 기억하지 못하는데, 넘어올때 깜깜한 밤에 등에 업혀서 생각나는 것은 반딧불이 너무 많이 빤짝빤작하는 것이 내머리속에 박혀 있어요.

캐나다 토론토 시에 살고 있는 올해 72의 원영화씨는 3살때 엄마등에 업혀서 38선을 넘던 기억이 아직도 있습니다.

캐나다의 한인교포들속에는 북한에 고향을 둔 실향민들과 그들의 후손들이 비교적 많이 있는데요. 그중의 한사람인 원영화씨의 남과 북, 그리고 이곳 캐나다에 흩어져 살고 있는 그의 이산가족들의 삶은 좀 남다릅니다.

원영화씨의 할아버지 원홍구씨는 북한의 조류학을 대표하는 생물학박사이며 그의 넷째아들이며 원영화씨의 삼촌인 원병오씨는 남한 조류학계의 박사로 알려져 있는데요. 남북한을 서로 갈수 없는 이들을 대신해 이들이 연구하고 사랑한 새들이 남북을 오가며 소식을 전해준 영화와 같은 신기한 이야기가 전해져 전세계를 놀라게 한 적이 있습니다.

평안북도 삭주에서 태어난 원홍구박사는 일찌기 수원농림학교를 나오면서 식물학, 박물학, 동물학 등 여러 연구와 교육에 종사하다 일제강점시기였던 1929년부터 10여년간을 한반도 전역을 답사하면서 기록되지 않았던 조류를 채집하고 분류해 조선조류목록을 발표하면서 조선의 권위있는 조류학자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원홍구박사를 만나는 김일성 자료 사진.
원홍구박사를 만나는 김일성 자료 사진. RFA PHOTO/장소연

하지만 그러한 그의 탄탄한 삶과 가족도 한반도의 분단과 전쟁으로 인해 수난을 겪게 되었는데요.

6.25전쟁이 일어나기 전인 1948년에 원홍구박사는 둘째 며느리와 손녀를 남쪽에 있는 그의 친정으로 보내게 됩니다. 일찌기 만주에서 쥐로 인해 발생하는 페스트 병을 연구하다 사망한 둘째아들로 인해 혼자서 살고 있는 며느리가 안쓰러워 친정에 보낸것입니다. 이때 보낸 그 손녀가 바로 지금 캐나다에 살고 있는 원영화씨입니다. 이때 원영화씨의 친오빠와 언니는 그때 북한에 할아버지와 남게 됩니다.

이어 일어난 전쟁으로 원홍구박사는 곧 남아있는 다른 세아들을 피신차 남쪽으로 보내게 되는데요.

이렇게 잠시 다녀온다고 했던 것이 그렇게 오랜 헤어짐이 될줄은 당시는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습니다.

원영화씨가 보관하고 있는 원홍구박사가 발표한 조선조류지자료.
원영화씨가 보관하고 있는 원홍구박사가 발표한 조선조류지자료. RFA PHOTO/장소연

아버지 원홍구박사는 “조선조류지”, “조선조류의 분포와 그 경제적 의의 ” 등 한반도의 동식물의 연구를 집대성한 10여권의 저서들을 발표했습니다. 김일성의 인정도 받은 그는 김일성으로부터 과학연구에 이용할수 있는 승용차과 사냥개를 선물로 받았으며 생물학과학원 원장의 직위와 과학원 후보원사, 최고 인민회의 대의원칭호, 노력훈장을 비롯한 많은 영예를 받았습니다.

한편 남한에 내려온 그의 막내아들 원병오씨는 전쟁기간동안 육군 포병장교로 복무했고 전쟁이 끝난후에는 경희대학교 생물학과를 거쳐 일본에서 생물학 박사학위를 받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원병오씨는 박정희로부터 생물학연구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데요. 전쟁시기 박정희가 군장으로 있던 3군단 포병단장의 전속부관이었던 인연으로 원병오씨는 박정희로부터 2억여원의 자연보전기금을 타내 한국 자연보전협회설립에 이바지하게 됩니다.

이렇게 갈라진 남북한의 최고 지도자로부터 새 박사로 인정을 받은 부자의 소식을 전해준 것은 한 마리의 작은 철새였습니다.

1965년 여름 평양 만수대 근처 숲에서 북방 쇠찌르레기 한마리를 잡아 관찰하던 원홍구박사는 새의 다리에 추적용 알루미니움 가락지가 끼여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외국학회에 이 인식표를 단 사람을 추적하던 원홍구박사는 이 쇠찌르러기에게 인식표 가락지를 날려보낸 사람이 자신의 아들의 이름과 같은 사람임을 알게 되었고 그 한자이름을 알아본 결과 바로 자신의 아들임을 확인하게 됩니다. 이 기적과 같은 소식을 아들에게 알리고 싶었던 아버지는 삐라를 만들어 남쪽으로 날려보냅니다.

원영화: 그때 재미있는 사건이 이북에서 할아버지가 삐라를 바람이 불때 남쪽으로 내려보낸거예요. 날라서 떨어진 것이 광주인데, 할아버지가 아들에게 보낸 편지를 이북에서 날려 보낸 것이 마침 내 손에 들어왔어요. 그 내용인즉은 “내아들 병오 보아라”.

할아버지가 바람에 남쪽으로 날려보낸 편지가 손녀의 손에 들어오고 그를 거쳐 바로 아들에게 전달된 것입니다.

한 폭의 영화와 같은 이야기, 원영화씨의 이산가족 이야기는 다음시간에도 계속됩니다.

지금까지 캐나다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장소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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