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진아주메의 남한 이야기] 추석에 탈북민 위로한 노래
2024.09.25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청진아주메의 남한생활 이야기 이 시간 진행에 박수영입니다. 북한에서는 대학 출판사에서 일하던 여성이 남한에서는 간호조무사가 되어 생명을 돌보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남한에 정착한 지는 어느덧 10년이 넘었는데요. 이순희 씨가 남한에서 겪은 생활밀착형 일화들 함께 들어봅니다.
기자: 이순희 씨 안녕하세요.
이순희: 네, 안녕하세요.
기자: 지난주는 민족 대명절 추석이었습니다. 이순희 씨는 15년 전만 해도 북한에서 추석을 보내셨지만, 탈북 이후 쭉 남한에서 추석을 보내고 계시는데요. 추석에 대한 생각도 남다를 것 같아요. 어떠신가요?
이순희: 맞아요. 해마다 찾아오는 추석 명절 역시 올해도 어김없이 돌아왔네요. 역시 우리는 한 민족임을 알 수 있는 것이 추석 제사상을 차린다던가, 조상님 묘 벌초를 하는 풍속은 예나 지금이나, 남이나 북이나 다 비슷한 것 같아요. 제가 벌써 남한에 온 지 15년이 훌쩍 넘었는데요. 해마다 추석이 오면 고향과 부모 형제 생각이 유난히 더 나는 것은 어쩔 수 없어요. 남북한이 아직도 분단돼 있고 왕래도 금지하고 있어서 돌아가신 부모님 산소에 절 한 번 못 해 드리고, 술 한 잔 부어 드리지 못해서 마음이 아프죠.
기자: 탈북 후 남한에서 처음으로 추석을 보낼 때도 기억나는지요?
이순희: 물론 (기억) 나죠. 제가 2009년 8월에 대한민국에 입국해서 그해 9월에 추석을 맞았어요. 하나원에 있을 때 첫 추석을 맞았거든요. 그러니까 그 추억이 정말 남달라요. 그때 하나원에서 송편도 해주고 제사를 지낼 수 있는 사람은 지내라고 제사상도 차려줬어요. 그리고 여러 단체에서도 방문했어요. 노래하는 가수도 오고 운동회도 열었는데요. 달리기도 하고 공 던지기도 하고 술래잡기도 하면서 놀았는데, 레크리에이션 강사분이 재미나게 해줘서 고향 생각을 다 없어지게 하는 거예요. 그리고 남한의 유명한 가수가 노래를 불렀는데 ‘힘이 들 땐 하늘을 봐 나는 항상 혼자가 아니야.’ 그 노래를 불러주는데 너무나도 마음에 안겨와서 우리에게 그 노래를 가르쳐 주니 함께 울었던 기억이 나요. 여러 사람들이 와서 (하나원 탈북민들을) 기쁘게 해주려고, 고향 생각이 나지 않게 해주려고 애쓰던 그 기억이 아직도 생생해요.
기자: 올해 추석은 유난히 더워서 “이제 추석은 여름 명절이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는데요. 유난히도 더웠던 올해 추석에는 어떻게 보내셨나요?
이순희: 추석에 에어컨을 틀고 음식을 만들어보기는 올해가 처음이에요. 이때까지 추석 명절에는 제가 자진해서 근무를 섰거든요. 가만히 집에 있으면 고향 생각도 나서 오히려 나가서 어르신들과 함께 이야기도 나누고 면회 오는 보호자들 분들 안내하면 외로움이 다 없어지고 북적북적한 게 오히려 더 좋더라고요. 그런데 올해는 저보고 “그냥 집에서 쉬세요. 제가 근무 설게요” 하고 원장님께서 대신 근무 서셨어요. 그래서 제가 집에서 3일 동안 놀았는데 그러다 보니 오래간만에 제가 음식을 여러 가지 많이 했어요. (음식을) 많이 했는데 먹을 사람이 저 혼자밖에 없는 거예요. 그런데 추석 오후에 이북 5도에서 저와 자매결연을 맺어준 80세가 넘은 어르신으로부터 “너 어떻게 지내니” 연락이 왔더라고요. 그래서 어르신과 만든 음식을 같이 나누면서 고향 이야기도 하며 지냈어요.
기자: 남한에서 추석을 지내는 모습이 북한과 좀 다를 텐데요. 비교하자면 어떤가요?
이순희: 남한에서는 추석 공휴일이 길어서 해외여행을 많이 가요. 북한에서는 추석날 하루만 쉬는데, 남한에서는 추석 전후 날까지 3일을 쉬거든요. 적어도 고향에 내려갔다 오려면 최소 3일은 필요하죠. 그런데 올해는 공교롭게도 토요일과 일요일 다음 날이 추석 전날이어서 연달아 5일간 쉴 수 있게 됐어요. 여기에 연차 2일을 더 신청하면 9일이나 쉴 수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특히 젊은 사람들은 고향 집에 방문하는 것도 좋지만 이 기회를 틈타 해외여행을 떠나는 사람이 올해 많았어요.
기자: 올 추석 연휴에 동남아나 일본 등 해외여행을 가기 위해 인천공항을 찾는 사람들로 붐볐는데요. 명절에 인천공항을 이용하는 승객 수가 역대 최대로 예상됐죠?
이순희: 제 주변에도 해외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우리 직장에도 한 분은 온 가족이 같이 동남아 여행을 간다고 해요. 또 한 친구는 가족과 같이 일본 여행을 간다고 하고요. 또 자녀가 있는 가정도 많은데, 공부해야 하는 학생들도 추석 때는 다 놀거든요. 이때가 아니면 학생들을 데리고 여행 가기 쉽지 않아요. 하루 인천공항을 평균 20만 명이나 찾는다니, 정말 많이 (여행을) 떠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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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추석을 맞아 가족들끼리 선물을 교환하기도 하지만, 회사에서도 종종 추석 선물을 보내주곤 하는데요. 이순희 씨께서도 추석 선물을 받으셨나요?
이순희: 그럼요. 우리 직장에서는 올해 추석에 흑홍삼 진액을 한 박스씩 주는 거예요. 저 같은 경우에는 북한에서 왔다고 각종 사회단체에서 더 각별히 신경을 써줘요.
기자: 어떤 방법으로 추석에 탈북민들을 각별히 신경을 써주나요?
이순희: 북한 이탈 주민들만 다니는 교회가 대구시에 따로 있어요. 그 교회에서 탈북민들한테 햇찹쌀(을 줬어요.) 북한에서는 햅쌀로 떡을 만들고 밥을 해서 산소에 가는 걸 어떻게 아셨는지 햅쌀을 주시더라고요. 그다음에 세탁 세제 같은 생활용품도 주고, 한 끼 음식도 대접하고, 화장지도 주고요. 제가 다니는 교회에서는 우체국 택배 상자에다가 남한에서 추석에 먹는 송편을 가득 보내왔더라고요. 포도, 샤인 머스캣 큰 한 송이 등 아이고, 말 다 못 하겠어요. 통조림, 우유 등 (추석 선물을) 다 꺼내서 세보려니까 셀 수가 없더라고요. 그렇게 많이 줬더라고요. 참 고맙죠.
기자: 남한에서 추석 선물을 주고받을 때 대표적인 상품으로는 어떤 게 있나요?
이순희: 금방 상하지 않는 식재료나 생필품을 많이 선물하는 것 같아요. 제가 받은 것처럼 식용유나 통조림 세트를 주로 선물하는데요. 여기저기서 비슷한 제품을 받는 경우도 많아서 추석이 지나면 이 식재료들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 고민이 되기도 해요. 한가위답게 먹을 것이 넘쳐나서 하는 생각이니 행복한 고민이 따로 없죠. 샴푸나 린스, 비누, 치약 같은 생필품을 챙겨주기도 하는데요. 추석에 한 번 받고 나면 다음 추석이 올 때까지 다 못 쓰는 경우도 많아요. 그래서 옆집이나 아는 분들께 나눠주기도 하거든요. 이럴 때는 고향 생각이 많이 나요. ‘이번 추석에도 북한 동포, 형제들은 부모님 산소에 가져갈 제사상에 놓을 걸 마련하기 위해서 얼마나 애를 태웠을까’하는 생각도 했고요. 언젠가는 추석 선물을 가득 차에 싣고 우리 고향에 있는 부모님 산소로 갈 날이 있기를 바랍니다.
기자: 네, 저도 얼른 그날이 오면 좋겠네요. 이순희 씨,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이순희: 여러분 다음 시간에 뵐게요.
기자: 청진아주메의 남한생활 이야기, 오늘은 한국 대구에 있는 이순희 씨를 전화로 연결해 남한에서 추석 보내는 풍경에 대해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워싱턴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박수영입니다.
에디터 이진서, 웹편집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