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동북공정 네 번째 순서에서는 한국사의 뿌리인 고조선이 중국 민족에서 비롯됐다는 동북공정의 주장과 이에 대한 한국 학자의 반론을 중심으로 알아봤습니다. 오늘 순서에서는 간도영유권 논란에 대해서 알아봅니다.
간도문제는 앞서 살펴본 고조선, 고구려, 발해등 조선 고대사에 대한 논쟁이 아니라 18세기 초에 설정된 중국 청나라와 이씨 조선간의 국경 영토 소유권에 대한 분쟁입니다. 간도라는 땅은 백두산 북쪽, 현재 중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에 해당하는 지역입니다. 간도는 원래 여진족이라고도 불리는 만주족의 거주지였는데 고구려가 이 지역으로 확장하면서 고구려 영토가 됐고 고구려가 망한 뒤에는 발해의 땅이었습니다. 발해가 망한 뒤에는 다시 만주족들이 주로 살아왔습니다.
그러다가 17세기 초에 청나라를 세운 만주족들이 중국 본토로 이주하면서 간도를 조선족이나 다른 유민들이 들어가 살지 못하도록 하기위해 ‘봉금지’로 설정했습니다. 즉 이 지역을 ‘봉’해서 타 주민들의 유입을 ‘금지’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청나라의 '봉금' 선포에도 불구하고 조선 사람들은 간도에 들어가 개간 개척하며 살기 시작하면서 청 나라 주민들과 다투는 일이 잦게 됐습니다. 이에따라 청나라는 1712년 백두산에 정계비를 세우고 그 비에 조선과의 국경선을 기록했습니다. 조선과 청나라 사이에 있는 간도의 어정쩡한 국경으로 분쟁이 잦은 문제를 해결하려는 청국의 조처였습니다.
이 백두산 정계비에 새겨진 기록에 따르면 국경을 "서쪽으로는 압록강, 동쪽으로는 토문강으로 하여 이 분수령에 비를 세운다" 라고 돼있습니다. 그런데 이 기록상의 '토문강' 때문에 청과 조선간의 국경분쟁은 또 다시 일게 됐고 3백년이 지난 현재에도 중국과 한국은 아직도 이 문제를 완전하게 매듭짓지 못하고 있습니다. 당시 청나라는 '토문강'은 두만강과 같은 것이라고 주장했고 조선은 '토문강'은 백두산 천지에서 발원해 송화강으로 다시 합류하는 '토문강' 그 자체를 지칭한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조선의 주장대로라면 토문강 아래와 두만강 위 사이에 있는 땅, 즉, 간도는 조선 땅이 되는 것입니다.
근래, 중국의 동북공정이 간도와 관련해 내 놓은 '청대 압록강 유역의 봉금과 개발연구'에 따르면 백두산 지역에서 발원하는 압록강과 두만강은 청나라 바로 이전의 명나라 왕조 중기 이후부터 중국과 조선의 국경 강이 되었으며, 청나라 통치민족인 여진, 만주족이 거주한 지역은 당연히 중국의 영토라는 주장입니다.
하지만 중국의 근, 현대사를 전공한 한국 포항공과대학교의 박선영 교수는 여진족과 만주족을 중국인으로 당연시한 동북공정의 시각은 중국 공산당이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을 건립한 이후 모든 소수민족을 중국화 하기 위한 논리를 만들기 위한 것이라고 비판합니다. 중국 중원 왕조인 명나라 한족이 17세기 중엽 청나라 만주족에 점령돼 망할 때까지 반.만주를 외치며 끝까지 명의 신하임을 주장했었는데 이제 와서는 만주족이 중국인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역설적인 것이 아닐 수 없다는 말입니다.
박 교수는 또, 명조 중기 이후에 명나라와 조선이 국경조약을 맺어 압록강과 두만강을 국경강으로 삼은 적이 없다고 말합니다. 박 교수는 러시아 학자 멜리호프의 동북지역 만주족에 관한 저서에서도 명조와 청조때의 국경이 요동반도 위쪽에 나타나 있다는 것을 그 근거의 하나로 제시합니다. 또 그는 한국내 대부분의 학자들과 마찬가지로 두만강이 백두산지역에서 발원하고 있다는 동북공정의 주장 역시 억지 주장이라고 일축합니다.
박선영: 간도문제가 시끄러운게 결국은 토문강이냐 두만강이냐의 문제인데, 실질적으로 토문강과 두만강은 다르다. 중국이 우겨서 될 일이 아니라 현장이 다르다. 중국은 그걸 안다. 수십킬로미터 떨어져 있기 때문에 같을 수가 없다. 아주 쉽게 판단하는 방법은 중국 [백두산에] 가면 두만강 수원이라는 표지까지 달아놨다. 이 지역은 백두산 정계비와는 관계가 없는 지역이다. 천지 아래 백두산 정계비가 있었는데 지금 중국이 말하는 두만강 수원은 거기서 수십킬로미터 아래에 있다.
하지만 중국측 주장을 지지하는 한국 학자와 전문가들도 있습니다. 지리학 박사며 동국대학교 사범대학 교수인 김주환씨와 교육학 박사며 한국땅 이름학회 회장인 이형석씨는 백두산 정계비를 세울 당시에 조선의 숙종왕 조정에서는 정계비에 기록된 토문강은 청나라 관리가 당초 두만강으로 잘못 알고 기록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조선 스스로 1년에 걸쳐 정계비에서 두만강 상류까지 경계를 표시하기 위해 석퇴와 목책으로 잇는 공사를 벌였다고 주장합니다.
이형석: 그것은 우리가 두만강으로 알고 있는데 물줄기가 두만강으로 가지 않고 송화강으로 간 것을 우리 인부들이 발견하고는 이를 숙종에게 알려서 두만강쪽으로 이어서 공사를 한 것이다.
이형석씨는 이 같은 사실은 조선 500년 역사서인 조선왕조실록과 조선 후기 최고의 과학적인 지도인 ‘대동여지도’에도 석퇴 목책 경계가 기록돼 있는 데서도 알 수 있다고 말합니다. 한국정부의 입장은 ‘간도는 현재 한국의 영토가 아니기 때문에 지금 당장 대응하기는 어렵고 한반도 통일 이후에 논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는 것입니다.
하지만 북한 정부로서는 간도는 이미 조선의 땅이 아닙니다. 지난 1962년 중국과 조중변계조약, 즉 국경조약을 맺고 압록강과 두만강 그리고 백두산 천지를 둘로 가르는 선을 국경으로 합의했기 때문입니다.
기획보도 동북공정, 다음 순서에서는 동북공정에 대한 북한의 반응과 입장을 살펴봅니다.
워싱턴-전수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