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국가들의 외국 침공 (2)

워싱턴-한덕인 hand@rfa.org
2020.07.07
mongolia_soldiers_b 1930년대 몽골 병사들.
/AP

앵커: 공산주의 역사 이야기, 기대와 좌절. '공산주의'의 사전적 의미는 '사유재산제도를 부정하고 공유재산제도를 실현해 빈부의 격차를 없애는 사상'을 말합니다.

특히 오늘날 공산주의는 하나의 정치세력으로서 활동하는 현대 공산주의, 즉 마르크스-레닌주의를 가리키고 있는데요. 공산주의의 종주국인 소련이 무너지고, 동유럽의 공산국가들마저 몰락하면서 현재 남아있는 공산국가들의 현실과 미래도 암울합니다.

매주 이 시간에는 러시아 출신 안드레이 란코프 (Andrei Lankov) 국민대 교수와 함께 공산주의 역사를 되돌아보고 그 미래도 조명해봅니 다. 진행에 한덕인 기자입니다.

기자: 란코프 교수님, 지난 시간엔 세계평화를 주장한 소련공산당이 실제로는 자신의 영향권으로 간주한 이웃나라들을 해방시키겠다는 명목 아래 침공했던 사례들을 살펴봤습니다. 1917년 혁명이후, 소련 공산당은 몇 년만에 러시아제국의 옛날 영토를 거의 다 회복했습니다. 그런데 당시에 뽈스카(폴란드), 발틱3국 등 몇몇 나라는 소련군대의 힘이 충분하지 못해 공산화하는 데 실패했습니다. 이후 소련공산당은 이들 나라에 대한 야심을 포기했나요?

란코프 교수: 아닙니다. 1920년대 소련은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초강대국 소련이 아니었습니다. 매우 가난하고 낙후된 나라였습니다. 그 때문에 유럽 혁명, 즉 유럽진출에 대한 꿈을 꾸기는 했지만, 사실상 아무것도 못했습니다. 당시에 기본 초점은 유럽보단 아시아였습니다.

기자: 소련공산당은 아시아에서 어떤 목적이 있었을까요?

란코프 교수: 이 입장에서 소련도 다른 강대국과 별 차이가 없습니다. 영토확장과 국력확대를 꿈꾸었습니다. 흥미롭게도 1920년대 소련의 대아시아 정책을 보면, 1917년 혁명 이전 러시아제국이 실시했던 정책과 아주 비슷합니다. 러시아국내에서 공산당이 정권을 잡은 것을 모르는 사람이 1920년대 소련의 대외정책만 보았다면, 아직 짜르(차르)가 통치하고 있다고 생각할 정도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대외정책을 결정하는 것은 사상보다 국가이익, 지역의 지리와 경제, 도로구조 등입니다.

기자: 그렇다면 소련공산당은 아시아에서 도로나 철도, 자원에 관심이 많았나요?

란코프 교수: 네 그렇습니다. 바로 그 때문에 소련은 1920년대 두 개의 대규모 군사작전을 했습니다. 그 중에 하나는 몽골혁명화입니다. 1911년 중국 신해혁명 이전에 몽골은 중국의 속국이었습니다. 하지만 1911년 독립을 선언했습니다. 제정러시아는 몽골의 독립소식을 좋은 소식으로 보았습니다. 왜냐하면 이 넓은 지역으로 진출할 수도 있고, 중국과의 국경을 남쪽으로 움직일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1917년 혁명 이후에도 공산당의 정책은 아무 차이가 없었습니다.

기자: 교수님, 1920년대 소련공산당은 세계인민해방과 민족해방을 주장하고 있지만, 사실상 제국주의 국가와 차이가 없어 보이는데요.

란코프 교수: 그렇습니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소련 지도부도 당시에 이 사실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들은 몽골을 장악하고 몽골에 친소 위성정권을 설치하기로 결정했을 때, 이것을 몽골 인민들의 해방을 위한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래도 공식적인 선전과 무관하게 1921년에 소련군대는 몽골 초원으로 진입하고, 위성정권을 만들었습니다.

기자: 교수님, 소련은 몽골에서 하나의 위성국가를 만드는 데 성공했습니다. 소련인들은 다음에 어디로 갔을까요?

란코프 교수: 1920년대말 소련은 중국 동북3성, 즉 만주에서 제정러시아가 얻었던 각종 특권들을 지키기 위해 싸웠습니다. 이것은 동만주 철도 사건입니다. 동만주철도는 1900년대초 부설되었는데, 대표적인 제국주의 사업입니다. 당시에 러시아뿐만 아니라 영국 프랑스 독일 모두 비슷한 철도 사업을 많이 했습니다. 동만주철도는 만주에서 핵심 철도가 되었는데, 철도 연선은 공식적으로 중국땅이기는 하지만 러시아가 통제합니다. 사실상 식민지입니다. 물론 1917년 혁명까지 레닌을 비롯한 공산주의자들은 동만주철도가 중국을 약탈하는 야만적인 정책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혁명 이후에 소련은 제정러시아의 특권을 포기할 마음이 사라졌습니다.

기자: 소련은 사실상 제국주의 국가인 것 같아 보이는데 어째서 1920-30년대 아시아 사람들은 소련이나 공산주의에 호감이 많았을까요?

란코프 교수: 당시에 소련은 제국주의를 많이 비난했습니다. 제국주의국가가 철도건설을 명분으로 식민지를 만들 때 많이 비난했지만, 소련 자신이 했을 때 합법적인 국가이익 보호라고 주장했습니다. 물론 중국사람들은 소련이 여전히 자기 영토에서 특권이 있는 데 불만이 있었습니다. 1920년대말 만주를 통치한 장학량(장쉐량)이라는 군벌은 동만주 철도 국유화를 시도했습니다.

기자: 어느정도 이것은1956년 수에즈운하 국유화와 비슷하지 않습니까? 당시에 애급정부는 영국과 프랑스가 소유한 수에즈운하를 몰수하고 국유화했습니다.

란코프 교수: 네 그렇습니다. 1956년에 소련은 애급정부의 조치를 많이 지지했고, 영국과 프랑스가 수에즈운하 탈환을 시도하자 제국주의자들의 만행이라고 열심히 비난했습니다. 하지만 1920년대말 소련은 만주에서 동만주철도를 지키기 위해서 열심히 싸웠습니다.

기자: 결국 어떻게 되었을까요? 소련군대가 이겼나요?

란코프 교수: 소련이 승리했습니다. 당시의 중국군대는 오합지졸입니다. 또 소련군대는 무기도 최신이었습니다. 결국 장학량 만주 군벌은 잠깐동안 소련과 싸우다가 후퇴했고, 동만주 철도는 계속 소련 소유입니다.

기자: 1920년대 소련은 동아시아에서 제국주의적 활동을 많이 했는데요. 1930-40년대에는 어떤 일을 했을까요?

란코프 교수: 제일 중요한 것은 발틱3국의 합병입니다. 즉,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에스토니아의 합병입니다. 소련이 처음부터 굳게 믿은 것은, 옛날 제정러시아 국토라면 무조건 소련국토가 되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발틱3국은 20년동안 독립국가였습니다. 하지만 1940년 유럽이 많이 혼란스 러웠을 때를 틈타, 소련군대는 이 지역을 침공했습니다. 소련은 이 지역에서 혁명을 일으킨다고 주장했는데, 이 지역에선 공산당원도 없고, 공산당을 지지하는 폭동도 없었습니다. 이들 지역은 1940년에 소련영토가 되었고, 이것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반동분자로 체포되고 멀고먼 시베리아로 추방되었습니다.

기자: 그렇다면 소련은 옛날 제정러시아 국토를 되찾는 데, 북한의 김일성식으로 이야기하자면 “국토완정”에 성공했을까요?

란코프 교수: 아닙니다. 큰 실패가 있었습니다. 이 실패는 핀란드입니다. 핀란드는 1918년에 독립선언을 했습니다. 소련은 1939년에 핀란드를 공격했습니다.

기자: 발틱3국처럼 합병할 생각이 있었을까요?

란코프 교수: 네, 아마 그렇다고 생각됩니다. 흥미롭게도 소련은 당시에 핀란드 정권 즉 핀란드 민주공화국을 설치하기까지 했습니다. 물론 핀란드 민주공화국은 소련군대가 점령한 남방핀란드에 설치되었습니다. 하지만 핀란드군대는 너무 잘 싸웠고, 결국 소련군대는 핀란드 점령에 실패했습니다. 그 때문에 핀란드는 독립을 지키는 데 성공했습니다.

기자: 과거 소련이나 다른 공산주의국가들의 역사를 살펴보면 그들이 이웃나라를 공격했던 사례가 많은 것 같습니다.

란코프 교수: 네 그렇습니다. 그들은 이 입장에서 기타국가와 별 차이가 없습니다. 처음에 진짜 사상을 믿었을 때도 잠깐 있었고, 나중까지 혁명이나 해방을 운운했지만, 사실상 목적은 국가이익 뿐입니다. 공산주의자들도 혁명사상보다 국가이익이 더 중요했습니다.

기자: 네 란코프 교수님, 오늘 말씀 감사드립니다.

러시아 출신의 안드레이 란코프 한국 국민대 교수와 함께 알아본 공산주의 역사 이야기, 오늘 순서 여기까지입니다

댓글 달기

아래 양식으로 댓글을 작성해 주십시오. Comments are modera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