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기획 “동독난민 이야기” - 라이너 슈베르트의 동독 난민 탈출 돕기 (3)

2005-07-21
이메일
댓글
Share
인쇄

올해 60살의 라이너 슈베르트 (Rainer Schubert)씨는 서베를린 토박이입니다. 1963년 어느 날 슈베르트씨의 어릴 적 친구 한 명이 서독 정부의 도움으로 동베를린에서 무사히 빠져나왔습니다.

이 친구는 슈베르트씨에게 찾아가 동베를린에 남아 있는 친구 두 명을 탈출시키자고 제안했습니다. 이들을 차에 태워 무사히 탈출시키는데 성공한 슈베르트씨는 동독에서 탈출을 꿈꾸는 사람들을 계속해서 돕기로 결심했습니다.

이십대 초반의 청년 슈베르트는 그 뒤 12년 동안 100명이 넘는 사람들을 동독에서 탈출시켰습니다.

언론이라고 크게 써 놓은 표시판을 차에 달고 갔습니다. 동독 당국은 심리를 간파한 거죠. 이들은 기자들을 아주 조심스럽게 대했습니다.

1974년 어느 날 슈베르트씨는 라이프찌히에 살던 일흔 다섯살의 노인을 탈출시키기로 했습니다. 1972년에 동서독간에 체결된 통행 협정에 따라서 서독사람들은 지정된 통행도로를 이용해 차를 타고 동독을 방문할 수 있었습니다.

동독에 들어선 슈베르트씨는 라이프찌히에서 통행도로를 빠져나갔습니다. 원래 통행협정상으로는 통행도로를 함부로 벗어나지 못하게 돼 있었지만, 슈베르트씨에게는 미리 준비해둔 계획이 있었습니다.

Schubert: We had a big press sign on the car. You must know the psychology of the Eastern authority. They are very careful about journalist.

언론이라고 크게 써 놓은 표시판을 차에 달고 갔습니다. 동독 당국은 심리를 간파한 거죠. 이들은 기자들을 아주 조심스럽게 대했습니다. 당시 저는 서독 통신사에서 기자생활을 하고 있었는데요, 동독 당국은 서독기자들하고 괜한 마찰을 빚어서 문제가 커지는 걸 싫어했습니다. 그래서 언론이란 표시판을 보고는 우리를 그냥 보내준 겁니다.

그래도 항상 조심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일단 라이프찌히에서 노인을 차에 태운 뒤에는 들어올 때와는 다른 길로 통행도로에 들어갔습니다. 같은 길로 들락거리면 혹시라도 의심을 받을 수 있었으니까요.

통행도로에 다시 들어오기 전에 슈베르트씨에게는 웃지 못할 일이 생겼습니다. 남의 눈에 띄지 않는 숲속에서 노인이 차 뒷좌석에서 나와 짐칸으로 숨으려던 순간이었습니다. 어디선가 젊은 남자가 나타나 슈베르트씨 일행에게 다가왔습니다.

슈베르트씨는 이 남자를 어떻게 할까 잠시 망설였습니다. 그냥 보내주면 분명히 경찰에 신고를 할 테고, 붙잡아서 끌고 가면 동독사람을 납치했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Schubert: We arrested him and we found his identity card of Stasi. He was a Stasi man.

일단 그 사람을 붙잡았습니다. 신분증을 뺏어보니 동독 국가보위부 소속이었습니다. 숲속을 우연히 지나가다가 우리를 발견했다고 하더군요. 이 사람을 숲속 깊이 끌고 가서 나무에 묶어 놓았습니다. 손목에는 수갑을 채워 놓았습니다.

그리고 서독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한 다음에 동베를린에 있는 동독 국가보위부 본부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라이프찌히 숲속에 당신네 보위부 요원 한명이 묶여 있을테니까 데려가라고 일러줬죠.

통행도로를 따라 동독 국경을 빠져나오는 데는 큰 문제가 없었습니다. 동서독 통행협정에 따라 동독 경찰은 특별히 의심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서독 사람들의 차를 검문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전에는 국경 검문소를 통과할 때마다 차 뒷좌석과 짐칸을 샅샅이 조사받아야 했지만, 통행협정이 체결된 다음에는 신분증과 여권만 검사받으면 됐습니다.

서독에 도착한 일흔 다섯 살의 동독 노인은 뒤셀도르프에 살던 한 할머니를 찾아갔습니다. 이 두 사람은 2차대전이 끝나갈 무렵 헤어진 뒤 소식이 끊긴 채 살아왔습니다. 할머니는 그 뒤 30년 동안 노인을 기다리며 살았습니다.

30년만에 다시 만난 애인의 얼굴에는 어느새 주름이 가득했습니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은 동서독 분단의 장벽과 세월의 장벽을 모두 넘어 칠십대의 나이에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김연호기자

하고 싶은 말 (0)
Share
원본 사이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