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독난민 이야기 - 베를린 장벽 붕괴와 독일 통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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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 주간기획 동독난민 이야기, 오늘은 마지막 시간으로 베를린 장벽이 마침내 붕괴되고 독일이 통일됐던 사정을 소개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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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 군터 샤보스키(Gunter Schabowski)가 동독 사람들의 자유 이주를 발표하자 1989년 11월 11일 수많은 시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국경수비대는 장벽을 허물어 통로를 만들고 있다. - AFP PHOTO

동독은 같은 공산주의 국가인 폴란드, 체코슬로바키아와 동쪽 국경을 맞대고 있었습니다. 체코슬로바키아의 바로 남쪽에는 역시 공산주의 국가인 헝가리가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동독 난민들은 이 나라들을 통해 서독으로 탈출하기도 했지만 그 수는 별로 많지 않았습니다.

역사적으로 오랫동안 독일의 침입을 받아온 이들 나라가 동독 난민들에게 호의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또 국경을 몰래 넘으려는 동독 사람들을 붙잡아 돌려보내기로 동독정부와 협정을 맺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80년대말부터 사정이 크게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1985년 소련 공산당 서기장으로 등극한 고르바쵸프가 개혁개방 정책을 표방하자 동유럽에도 개혁개방과 민주화 바람이 불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1989년 봄 헝가리와 폴란드는 공산당 일당 독재를 끝내고 복수 정당제를 도입했습니다.

사회주의 계획경제는 자본주의식 시장경제로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헝가리는 여기서 더 나아가 동유럽 공산주의와 서유럽 자본주의 사이에 쳐진 이른바 ‘철의 장막’을 걷어버리기로 했습니다. 오스트리아와의 국경지대에 쳐 놓은 철조망을 1989년 5월 걷어버린 겁니다. 미국 조지워싱턴 대학의 호프 해리슨 (Hope Harrison) 교수의 말입니다.

Hope Harrison: 헝가리의 국경개방은 호른 외무장관의 주도로 이뤄졌는데요, 새 정권의 인도주의적인 성격을 알리기 위해 그랬던 겁니다. 물론 동독 정부가 강력하게 반발했죠. 그래서 헝가리도 잠시 멈칫거리면서 국경을 다시 봉쇄했습니다. 그렇지만 결국 89년 11월에 가서는 국경을 완전히 개방한다고 공식선언하고 말았습니다.

헝가리가 국경을 개방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동독 난민들이 몰려들었습니다. 1989년 8월에는 동독 난민 6백명이 한꺼번에 헝가리를 통해 오스트리아로 탈출했습니다. 그 뒤를 이어 수만명의 동독 난민들이 계속 헝가리를 탈출해 오스트리아를 거쳐 서독으로 갔습니다.

체코슬로바키아와 폴란드에서는 동독 여행객들이 서독 대사관으로 몰려 들아가 서독으로 보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수천명의 난민들이 몰려들자 서독 대사관은 그야말로 야영장이 돼 버렸습니다. 서독정부는 외교적인 노력 끝에 이들 난민을 무사히 서독으로 데려왔습니다.

이런 틈을 타 동독에서는 개혁을 요구하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커졌습니다. 특히 라이프찌히에서는 9월부터 매주 월요일마다 시위가 이어졌는데 시간이 갈수록 시위규모가 걷잡을 수 없이 커져 갔습니다. 상황이 급박해져 갔지만 소련은 서독과의 관계를 손상시켜가면서까지 동독의 정치안정을 돕지 않겠다고 밝혔습니다. 다급해진 동독 정권은 10월 호네커 총서기를 퇴임시키면서까지 민심을 수습하기 위해 안간힘을 쏟았습니다.

그러나 동독 국민들은 자유로운 여행을 허가해달라는 요구를 굽히지 않았습니다. 결국 11월 9일 사회당 정치국원들이 모두 사퇴하고 여행규제를 완화한 새 법이 발표됐습니다. 그러나 이날 발표가 베를린 장벽을 붕괴시키는 도화선이 될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호프 해리슨 (Hope Harrison) 교수의 설명입니다.

Hope Harrison: 군터 샤보스키 정치국원이 기자회견에서 새로 바뀐 여행법을 발표했는데요, 샤보스키 자신부터가 자세한 내용을 잘 몰랐습니다. 새 법이 언제부터 시행되는지도 몰랐으니까요. 기자들이 언제부터냐고 물으니까 서류를 뒤적이다가 지금 당장부터라고 말하고 말았습니다.

원래는 그 다음날부터였거든요. 그리고 여행규제가 완화된 거였지 완전히 없어진 건 아니었는데, 이 부분을 분명하게 말하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마치 이제부터는 여행허가를 받지 않아도 되는 거처럼 들렸던 거죠. 게다가 서독 지역인 서베를린으로도 자유롭게 여행해도 된다고 말했습니다.

샤보스키의 기자회견을 텔레비전으로 지켜보던 동독 사람들은 30년동안 동서베를린을 가로막았던 베를린장벽으로 몰려갔습니다. 동독이 국경을 개방했다는 소식이 이미 전세계에 전해진 뒤였습니다. 국경수비대는 수천 수만명이 구름처럼 몰려들자 그 기세에 눌려 결국 검문소를 열어줬습니다.

동독과 서독 사람들은 베를린 장벽위에서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환호성을 올렸습니다. 30년동안 동서냉전의 상징물로 여겨졌던 베를린 장벽은 결국 89년 11월 철거됐습니다. 물론 서베를린으로 넘어가는 동독난민의 물결을 막는 장벽도 함께 무너졌습니다. 그리고 동독은 이듬해인 90년 서독에 흡수 통일됐고, 동독난민 문제도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습니다.

주간기획 “독일난민 이야기”. 오늘은 그 마지막 시간으로 베를린 장벽이 마침내 붕괴되고 독일이 통일됐던 사정을 소개해드렸습니다.

김연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