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의 직업:재봉사/미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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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이진서 leej@rfa.org

남한의 직업, 이 시간에는 북한에서는 재봉사 또는 의상 설계사로 불리는 미싱사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탈북여성: 북한에는 공장에 동력식이 있긴 하지만 발로 하는 동력식을 썼거든요. 그런데 여기는 전기에 꼽아 쓰는거라 엄청 빨라요.

남한생활이 12년이 되는 탈북여성 조연지씨는 평일에는 특별한 일이 없으면 9시부터 6시까지 미싱, 재봉틀 앞에 앉습니다. 조년지씨는 북한에서는 자신을 재봉사 또는 설계사로 불렀는지 남한에서는 직업 명칭만 달라졌다며 북한에서의 직업 체계에 대해 설명합니다.

조연지: 북에서 정식 명칭이 설계사로 나가요. 재단사라고도 표현을 하고요. 우리는 급수가 있어요. 고급 1부터 6급까지 있어요. 국가적인 공인된 것으로 월급도 있어요. 미싱이 6급까지 설계가 3급까지 있어요.

남한에서는 경제성장이 급속도로 이뤄진 지난 1960대부터 70년대 가난한 시골에서 배우지 못하고 도시로 상경한 처녀들이 의류생산업체 등에서 많이 일했었습니다. 남한의 섬유산업의 최고조인 지난 1989년에는 의류 단일 품목의 수출이 89억6000만 달러에 달했습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의류생산 제조업체 공장들이 인건비가 싼 중국으로 많이 진출하면서 전반적으로 남한의 의류.재봉업계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조연지씨가 만드는 것은 의류가 아니고 섬유로 만드는 기념품입니다.

조연지: 우리는 전통 조각무희를 만들고 있어요. 전통 조각 무희, 가방, 삼베, 모시 이런걸로 다양하게 만들어 내는 겁니다. 외국 사람들이 뭘 사갈 때는 전통적인걸 사가잖아요. 일본 사람들 미국 가려는 사람들이 많이 사가더라고요.

조연지씨는 미싱일을 하면서 매일 기념품과 공예품을 만들지만 밥상을 덮어 놓는 조각무늬 밥상보의 경우는 북한에서는 거져줘도 안 가져가겠는데 남한 사람들은 큰 상보 하나에 40만원(400달러)를 내고 사간다면서 남한생활 1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자기 가게를 할 엄두는 못내고 있습니다.

조연지: 월급 받고 해요. 제가 가게를 하나 차릴려고 해도 판로도 그렇고 불안정할까봐 안하고 있어요.

남한에서 미싱사가 월평균 얼마를 받는지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그 이유는 남편이 재단을 하고, 부인이 재봉을 하는 가내 수공업 형태가 많으며 그 연수와 기술에 따라 임금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기자가 최근 여러 구직 광고를 통해 알 수 있었던 것은 경력 2-5년 되는 미싱사가 월 100만원(1100달러) 그리고 신입인 경우는 70만 원 정도 받는 다는 것이었습니다. 또 시간급으로 받을 경우 3500원(4달러)정도의 보수가 지급됐습니다.

여느 다른 직업들과 비교를 했을 때 상당히 적은 보수였습니다. 그래서인지 조연지씨는 당장 들어오는 수입만을 생각한다면 미싱일을 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조연지: 급하게 생각하지 않으면 잘 배워두면 이게 기술이잖아요. 세탁소 같은 것을 차릴 수도 있잖아요. 내가 미싱을 할 줄 알면 유리해요. 세탁도 하면서 내가 직접 수선도 해주는 거예요. 그러니까 기술이기 때문에 길게 봤을 때는 좋더라고요. 만약에 내가 식당가서 일한다 하면 나이 들어서는 못하잖아요.

미싱사와 관련해 현재 개성공단에는 북측 노동자 13,000명 남한진출 기업에서 일하고 있고 이중에는 의류업체, 섬유.봉제 기업 등에서 일하는 사람만도 수 백 명에 이릅니다. 이들 북측 노동자들이 받는 월급은 1인당 월 평균 임금인 60달러이지만 북한 당국은 북한 지정 환율로 계산한 다음 북한 돈 6,000-7,000원을 노동자들에게 지급하고 있습니다.

남한에서 미싱사가 되는 방법은 자기가 사는 동네 복지관에 봉제 시간이 있는지 문의를 하는 길이 있습니다. 보통 봉제는 재봉틀, 미싱 다루는 법부터 실제 천에다 박음질을 하는 법, 소매 다루는 법 등을 2-3개월 과정으로 배우게 되며 사설 문화센터나 사설 학원을 통할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