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하의 서울살이] 북한판 백청강이 나오는 날을 그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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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남쪽 MBC라는 방송사를 여러분들도 다 알고 계실겁니다. 이 MBC가 최근에 전국적으로 일반인을 대상으로 가수왕을 뽑는 프로를 진행했습니다. 이런 프로하게 되면 전국에서 노래 좀 부른다는 사람들은 기대를 품고 한번쯤 다 와서 시험 봅니다. 1등은 30만 딸라와 고급 차도 주긴 하지만 사실 돈보다는 일약 전국적인 유명인사가 되는 것이 더 큰 매력입니다.

요즘 이런 프로엔 전국적으로 200만 명이 지원한다고 합니다. 5000만 명 중 200만 명이나 일부러 시간 내 와서 심사위원 앞에서 노래 부르는 것 보면 참 인기 좋은 프로입니다. 그렇지만 200만 명 중에 한 명으로 뽑힌다는 것은 그야말로 벼락 맞아 죽을 확률이죠. 대부분이 군별, 도별로 진행하는 1, 2차에서 다 떨어지고 불과 몇 십 명만 살아남아서 최종 TV에 출연합니다. 매주 다시 이 몇 십 명 중에서 한두 명씩 탈락되는데 방송사는 이 과정을 중계하면서 시청률을 올립니다. 시장경제 사회에선 시청률이 높으면 그만큼 광고비를 많이 받습니다. 인기 프로는 앞뒤로 광고 십 몇 분씩 방영하는 대가로 받는 광고비만 50만 딸라 넘습니다. 재미있는 프로나 드라마 만들면 시청자들은 재미있는 것을 봐서 좋고, 방송사는 돈 많이 벌어 좋고, 기업은 자기 제품 홍보를 잘하니 결국 누이 좋고 매부 좋고 처남까지 좋은 셈입니다.

아무튼 그 가수 뽑는 프로에서 지난달 28일 최종 우승자가 나왔습니다. 충격적인 것은 우승자가 다름 아닌 백청강이라는 21살짜리 중국 조선족 청년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사실 제게는 이 사실이 무척 충격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여기 한국에선 지금까지 한마디로 조선족을 깔보고 무시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200만 명 정도 되는 조선족은 대다수가 일제시대 정든 고향을 떠나 만주에 정착한 사람들의 후손입니다. 독립을 위해 제일 피를 많이 바친 사람들도 사실 조선족들일 겁니다.

그렇지만 지금 그들은 법상으로는 엄연히 중국 공민입니다. 말은 우리말을 하지만 중국 호구와 신분증을 갖고 있고 중국 학교에서 중국 역사를 배웠습니다. 사회주의 국가 중국에서 사는 조선족은 남쪽에선 오랫동안 잊혀진 존재였습니다. 그러다가 1992년 중국과 한국이 대사급 외교관계를 맺으면서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외교관계를 맺은 이후로 조선족들이 동족의 국가인 한국에 돈을 벌기 위해 몰려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렇지만 말만 같다 뿐이지 서로 다른 제도에서 살던 사람들이 얼마나 다른 것이 많겠습니까. 지금 조선족 200만 명 중에 40만 명이나 한국에 와있는데 한국에 오는 조선족들이 늘어날수록 양쪽의 갈등은 점점 커졌습니다. 연변에 가보면 한국 와서 돈 벌고 간 사람들이 매우 많습니다. 연변 조선족들은 한국에서 벌어간 돈으로 먹고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데 중국 전체적으로 볼 때 반한 감정이 제일 높은 곳 중 하나가 바로 연변입니다. 연변 사람들은 한국에서 돈을 벌면서 받았던 차별을 기억하면서 한국 사람들은 조선족을 무시하고 깔본다고 싫어합니다. 반면 한국 사람들은 조선족들이 성격도 과격하고 사기도 잘 친다는 등등의 이유로 싫어합니다. 물론 한국인 중에는 사람을 차별하는 사람보다 차별하지 않는 좋은 사람이 훨씬 많고 조선족 중에도 선량하고 양심적인 사람들이 훨씬 많습니다. 그렇지만 사람이란 열 번 잘 대접받아도 한번 무시당하면 그 한번이 기억에 강하게 남습니다.

이런 분위기에서 조선족 청년 백청강이 한국의 가수왕에 과감히 도전한 것은 참 큰 용기입니다. 그렇지만 과연 우승할까 하는 의문도 많았던 것이 사실입니다. 돈 벌려 한국에 와 있는 백청강의 부모들 자체가 "되지도 않을 것 괜히 차비 팔며 오지 말라. 아무리 잘해도 차별 받을 것이다"고 말렸답니다. 그런데 덜컥 1등이 됐습니다. 노래도 경쟁자를 압도할 만큼 더 잘한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전문 가수로 구성된 심사위원들은 한국인 경쟁자에게 더 높은 점수를 주었지만 일반 사람들이 전화투표를 통해 백청강에게 점수를 몰아주는 바람에 종합점수에서 그가 우승했습니다.

이걸 보면서 저는 한국 사회의 포용력이 정말 많이 커졌다는 것을 느끼면서 뭉클했습니다. 사실 북에서 온 탈북자는 지난기간 조선족보다 더 큰 편견에 시달렸습니다. 그래서 탈북자들은 어디 가서 말투가 이상하다고 뭐라 하면 조선족이라고 둘러대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탈북자보단 차라리 조선족이라는 편이 더 나았기 때문이죠.

그렇지만 탈북자에 대한 한국 사람들의 태도도 최근 들어 많이 바뀌고 있는 것이 피부로 느껴집니다. 많은 탈북자들도 이제는 당당히 북에서 왔다고 밝힙니다. 배타성과 차별이 아직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없어져 가고는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에 와서 당당히 1등을 차지한 백청강은 조선족 사회에서 영웅으로 떠올랐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한국을 욕하던 많은 연변 조선족들은 한국 사회를 다시 보게 됐습니다.

저는 이것이 남의 일 같지 않습니다. 앞으로 남북이 통일되면 남쪽 사람과 북쪽 사람들이 한국인과 조선족이 그랬던 것과 마찬가지로 처음에는 똑같은 반목과 갈등에 시달릴 것입니다. 그렇지만 저는 어느 순간에는 용기 있는 북한판 백청강이 꼭 등장하게 될 것이고, 그런 과정을 통해 남과 북은 서로를 다시 보고 이해하고 접근해갈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그런 날이 펼쳐질 미래가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끼며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