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하의 서울살이] 공정한 사회와 북한

주성하∙ 탈북자, 동아일보 기자
2010.10.01
fair_society_campaign-305.jpg 지난달 27일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 길거리 캠페인에서 모델들이 '고용상의 차별을 해소하는 것이 공정한 사회를 위한 첫걸음'이라는 주제로 거리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사랑하는 북녘 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당 대표자회도 끝났겠다. 이제부턴 회의도 부쩍 늘고 충성의 모임 이런 것을 맨날 하느라 바쁘겠군요. 북에 있을 때 자다 깨나도 좔좔 외울 정도로 귀 아프게 들었던 말이 있습니다. 뭔가 하니 “우리 인민은 대를 이어 수령복, 장군복을 누리고 있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인민”이라는 말이죠.

어떻습니까. 노동신문에 공개된 27살짜리 김정은 대장의 얼굴을 보니 수령복과 장군복 참 잘 누리고 있다는 말이 실감이 나십니까. 이제부턴 밤마다 전기도 안 오는 새까만 선전실에 촛불을 켜놓고 모여 앉아 김정은 장군의 하해와 같은 은덕을 노래하며 늙어가야 하겠군요. 덕분에 저는 28일부터 시작해 숱한 관련 기사를 동아일보 지면에 쏟아내느라 요새 정신이 하나도 없습니다. 여러분도 요 며칠은 김정은에 대한 이야기는 질리도록 많이 들었을 것 같아 오늘은 딴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요새 후계자 문제가 주요 화두인 북쪽과 달리 남쪽에선 공정한 사회라는 말이 주요 화두로 떠올랐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8.15 경축사에서 2년 반 남은 집권 후반기 국정 과제로 공정한 사회를 만들겠다고 말했습니다.

공정한 사회라는 것은 누구에게나 출발과 과정에서 공평한 기회를 주되 결과에 대해서는 스스로 책임을 지는 사회라는 뜻인데 쉽게 말하면 부모를 잘 만났다고 해서 빽으로 잘 나가면 안된다 이런 말이 되겠습니다.

북조선이야 더 말해 무엇하겠습니까만은 여기 남쪽도 부모 잘 만나서 잘 나가는 사람들 지금까지 정말 많았습니다.

재벌집 아들로 태어나면 그 자식도 재벌이 세습되는 거고, 권력층 자식들도 아버지가 권세가 있을 때 몰래 깔아둔 돈을 갖고 자식들이 풍청 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지금까지 불평등한 일이 참 많다보니 일반 주민들이 느끼는 불만도 큽니다. 요즘은 인터넷이 발달해서 서울에 앉아있는 사람과 부산에 있는 사람도 즉시 소통이 가능합니다. 그러니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 전국적으로 뭉쳐 힘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공정한 사회 발언을 한지 며칠 안 돼 공교롭게도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 딸 특채 사건이라는 것이 보도됐습니다.

외교통상부 장관이면 북으로 치면 외무상인 셈인데, 30대 중반의 딸이 하나 있었습니다. 외국에서 유학도 했고 실력도 어느 정도 있습니다. 그래서 외교부 부하직원들이 장관에게 아첨을 하느라 신입직원을 뽑을 때 장관 딸이라고 봐줬습니다. 북으로 치면 박의춘 외무상의 자식을 외무성에 뽑은 것과 마찬가지인 셈이죠. 사실 북에선 이런 것 당연한 일이 아닙니까. 아니, 오히려 외무상쯤 되면 자식은 외무부가 아니라 당연히 중앙당에 뽑혀 일하게 만들겠죠.

그런데 북에서 썩어빠진 자본주의라고 선전하는 여기 남조선에선 장관 자식이 빽을 좀 쓰면 그건 큰일이 날 일입니다.

그 사실이 한 언론에 보도되자 사람들이 분노했습니다. 마침 며칠 전에 대통령도 말했겠다, 이게 공정한 사회냐 하고 들고 일어났죠. 동아일보의 1면 제목도 “이게 공정한 사회냐” 이랬습니다.

아버지가 권세를 갖고 있다고 해서 자식까지 물려주면 절대 안되죠. 그래서 결국 유명환 장관은 사표를 쓰고 장관 자리에서 물러났습니다.

북조선은 한번 물러나도 몇 년 지나면 다시 슬그머니 복직되는 경우가 있지만 여기선 한번 불미스런 일로 장관에서 물러나면 다시 공직에 못 오릅니다.

요새 남쪽에 유행하는 유행어가 바로 ‘이게 공정사회냐’하는 말입니다.

아직 남쪽도 고쳐야 할 점이 정말 많습니다. 일부 현상이긴 하지만 아직도 뒷구석에선 안면이 통하고 뇌물이 통합니다. 물론 적발되면 처벌을 받습니다. 그런데 안면과 뇌물은 북에선 당연한 일이고 적발하려는 사람도 없지요. 검열하는 사람들이 더 큰 도둑인데 누가 누굴 잡겠습니까.

남조선은 북조선 사람이 와서 보면 정말 깨끗하다고 감탄할 만한 사회입니다. 제가 북에서 살다가 중국에 와보니 “야, 중국은 북조선보다 한 10배는 깨끗한 사회이구나” 하고 감탄했습니다. 그런데 다시 남쪽에 와보니 “남쪽은 또 중국보다도 10배는 깨끗하구나” 하고 느껴지는 것입니다.

여기 남쪽 기준을 가져다 북조선 간부들에게 접하면 위에서 아래까지 아마 단 한명도 그 자리에 붙어있지 못합니다. 북에선 남쪽 같으면 사형이나 종신형에 처했을 패륜 범죄자들도 버젓이 간부를 하고 있습니다.

한 가지 실례로 최룡해 같은 경우도 이번에 도당책임비서를 하다가 중앙당 비서로 올라갔던데, 여러분 예전에 최룡해 무슨 짓 했는지 다 아시죠. 전국에서 고운 여자 뽑아다 달러 던져 주고 이빨 뽑아 변태 짓을 한 그런 사람이 비서라니, 역시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은 법입니다.

정작 당사자는 뗑뗑 거리며 승진하는데, 이빨 뽑히고 농락당한 처녀들은 머리를 빡빡 깎여서 수성 25호 관리소에 들어가서 어린 경비대들에게 농락당하며 종신형을 살고 있습니다.

최룡해가 시키니깐 어쩔 수 없이 따라 한 사람들도 다 관리소에 가거나 혁명화로 지방에 추방됐는데, 정작 장본인은 아버지 잘 만난 덕에 별짓을 해도 끄떡없습니다. 최룡해 보고 이 말을 하면 아마 “야, 왜 나보고 그러니, 정은이에 비하면 난 아무것도 아니다” 하면서 억울해 할지도 모르겠네요. 말하고 보니 정말 한숨만 나오는군요. 북조선은 언제면 공정한 사회가 될 수 있을까요. 저는 정말 하루 빨리 그날을 보고 싶습니다.
댓글 달기

아래 양식으로 댓글을 작성해 주십시오. Comments are modera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