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하의 서울살이] 남과 북의 연애생활

주성하∙ 탈북자, 동아일보 기자
2010.11.05
sweetHeart-305.jpg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의 한 쌍의 연인.
사진-연합뉴스 제공
사랑하는 북녘 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북쪽의 매서운 겨울은 사랑을 나누는 연인들에게도 참으로 고통스러운 계절입니다. 젊은 혈기에 추위가 뭐 대수냐 하는 말도 있지만, 아무리 혈기가 왕성해도 추위 앞에선 장사가 없습니다. 어디 조용한 곳에서 둘이 이야기를 나눌 장소가 거의 없다보니 밤에 야외에서 부들부들 떨면서 기껏 한두 시간 만나고 헤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좀 따듯한 곳에 찾아 들어가면 그런 곳엔 꼭 사람들의 왕래가 많지요. 그러다 들키면 금방 아무개와 아무개가 좋아한다고 소문나니 그것도 방법은 아닙니다. 평양처럼 대도시는 그나마 건물도 많고 하니 좀 낫습니다. 연인들이 가장 즐겨 만나는 곳은 지하철 안이죠. 사람들이 막 붐비니 둘이 마주서서 이야기해도 그렇게 유심히 쳐다보지도 않을뿐더러 땅속 깊은 곳이라 춥지도 않습니다.

여기 남쪽도 겨울은 연인들에게 그리 반가운 계절은 아닙니다. 밖을 마음대로 활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여기는 연인들이 갈 곳이 많습니다. 널린 것이 극장, 영화관이고, 커피숍이나 쇼핑센터, 심지어 대학에서도 아무 곳에 들어가 만나도 누가 뭐라고 하지 않습니다. 방금 말씀드린 곳은 다른 사람들도 다 가는 공공장소이고, 은밀하게 만나려면 호텔이나 모텔 같은 곳에 가기도 합니다. 호텔이란 말은 아시겠지만 모텔이란 말은 생소하실 겁니다. 그냥 호텔보다는 급이 떨어지는 여관 개념으로 보시면 되는데 그래도 남쪽 모텔의 절반 이상은 방안 시설이 고려호텔보다 훨씬 낫습니다. 대형 티비가 있고, 인터넷도 있고 하다보니 요즘엔 젊은이들 속에서 모텔방 하나 잡아서 거기서 하루 종일 시간 때우는 흐름도 생겨나고 있습니다.

여기는 북쪽에 비해 연애에 대해서 상당히 개방적입니다. 제가 한국에 와서 놀란 것이 대학생들이 만나서 연애했다가 헤어졌다 하는 것은 너무나 흔한 일이라는 겁니다. 아니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제가 대학생들이라고 찍은 것은 여긴 20살에 고등학교를 졸업해서 졸업생의 80% 이상이 다 대학에 가기 때문이죠. 여기엔 소개팅 문화라는 것이 있는데, 얼굴도 잘 모르는 남자 몇 명과 여자 몇 명이 시간과 장소를 정해서 자연스럽게 만나서 이야기하다가, 그러다가 그중에 마음에 드는 사람과 눈이 맞으면 좋아하고 그러는 겁니다. 저는 나이가 들어 한국에 오다보니 소개팅이라는 것을 해보진 못했지만 아무튼 북쪽 사람들이 적응하기엔 시간이 꽤 걸릴 문화인 것은 사실입니다.

여기는 남녀의 만나는 범위도 북에 비해 광범위합니다. 인터넷, 휴대전화가 널리 보급돼 있고 교통이 매우 좋다보니 전혀 모르는,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사람과도 쉽게 만날 수 있습니다. 서울에선 집이 서로 100리 넘게 떨어져 있는 남녀도 매일 만나서 연애하고 헤어져 집에 갈 수 있습니다. 중간지점에서 만나면 밤 12시 넘어 까지 운행하는 전철타고 집에 돌아가는데 한 시간 정도 걸릴 겁니다. 서울과 부산을 오가면서 연애하는 것은 별로 놀라운 일도 아닙니다. 그래봤자 서울에서 부산까지 고속열차로 2시간 정도 걸리니 매일은 못해도 마음만 먹으면 네가 오고, 내가 가고 하면서 얼마든지 연애할 수 있습니다.

이에 비하면 북에선 연애 범위가 매우 협소합니다. 평양과 라진, 이런 건 상상도 못하고 집이 몇 십리만 떨어져도 연애하기 정말 힘듭니다. 그러니 연인관계는 대개는 같은 대학이나 직장, 또는 같은 마을에서 맺어지는 경우가 많고 그렇지 않은 경우라 해도 선을 한두 번 보고 연애라는 낭만을 추구할 사이도 없이 덜컥 결혼해 버리죠. 그리고 워낙 보수적인 분위기다보니 한번 누구와 누구 좋아했다고 소문이 자자하게 나면 거의 결혼을 해야 하는 분위기고 그렇지 않으면 손가락질 받기 십상입니다. 특히 이럴 때는 여성의 피해가 큰데 남자들과 한두 번 만났다 헤어졌다고 하면 바람기가 있는 여자로 인식돼 거의 매장되는 분위기입니다. 제가 대학 다닐 때는 약혼녀와 헤어졌다고 전 재학생이 모인 사상투쟁회에 올라가 비판받는 일들도 있었습니다.

여기 남쪽에선 요샌 결혼 전에 대여섯 명과 만나 연애하다 헤어지는 것은 거의 기본인 것 같습니다. 제가 보기엔 연애도 제대로 못하는 북쪽이나, 만남과 이별이 너무 쉬운 남쪽이나 어느 것이 좋다고 말하긴 그렇습니다. 이런 것에 딱 맞는 성구가 ‘과불유급’인데 이는 남는 것이나 모자란 것이나 거기서 거기라는 뜻이죠. 그렇지만 제 생각에는 연애나 사랑 같은 남녀 간의 문제를 국가가 나서서 단속하고 처벌하는 것은 현명하지 못한 일이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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