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석을 되살리려는 노동당 대회

주성하-탈북자, 동아일보 기자
2015-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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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9일 조선 노동당 창건 70돌을 축하하는 공훈국가합창단과 모란봉악단의 합동공연이 열리고 있다.
지난달 19일 조선 노동당 창건 70돌을 축하하는 공훈국가합창단과 모란봉악단의 합동공연이 열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내년 5월에 노동당 제7차 당대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어떤 생각이 드셨습니까. 저는 그 말을 듣고는 역시 인민들을 숨 쉴 틈 안주기 위해 별짓 다하는구나 하는 생각부터 들었습니다.

사실 이번에 노동당 창건 70주년을 쇤 다음에 제가 가만히 생각해보니 내년에는 정주년이 걸리는 것이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아이고, 내년에는 좀 들볶이지 않고 편히 지내나 이런 생각에 반가웠습니다. 제가 13년째 서울에 살긴 해도 아직까지 여전히 여러분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습관이 남아있습니다. 별 일 없으면 다행이구나 싶고, 무슨 명분 만들어 사람들을 들볶으면 같이 화가 나고 그럽니다.

내후년도 김일성 김정일 생일 105돌과 75돌이 각각 걸리긴 하지만 정주년은 아닌 꺾어지는 해이니 크게 들볶이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그러면 2018년쯤에 가서야 공화국 창건 70돌을 쇤다고 좀 못살게 굴 것 같았는데, 그래도 어딥니까. 한 2년은 비교적 조용히 보낼 줄 알았는데, 내년 5월에 7차 당대회라니요. 보나마나 또 이제 노동당 창건 행사를 하느라 진이 빠진 인민들을 “제7차 노동당 대회를 자랑찬 성과로 맞이하자” 이러면서 채찍질하겠군요.

하긴 그런 것이 없다면 북한 체제가 어떻게 지탱하겠습니까. 수십 년 그렇게 살다보니 무슨 행사를 계기로 주민들 내모는 것 말고는 체제를 유지하는 방법 자체를 아예 모를 수밖에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어쨌든 당대회를 36년 만에 한다니 궁금하긴 합니다. 저는 북한이 당대회를 하는 법을 잊어버린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보통 당대회는 노동당 창건일을 맞아 열어왔는데 생뚱맞게 5월에 연다고 하니 무슨 급한 일이 있나 이런 생각도 듭니다.

앞서 6차 당 대회가 36년 전의 일이라 많은 분들은 그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잘 모를 것 같습니다. 그때 물정을 모르는 14살쯤 되던 소년이 지금은 50살이 됐을 것이고, 6차 당대회 내용을 기억할 만한 사람들은 다 은퇴를 했을 겁니다. 이제는 기억도 가물가물하겠죠.

그런데 북한 당국이 친절하게 앞선 당대회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려줄 것 같지도 않습니다. 불리한 것은 다 숨기겠죠. 그래서 오늘 제가 6차 당대회에선 어떤 내용이 결정됐고 지금 그 안건들이 어떻게 집행됐는지 몇 가지만 말씀드릴까 합니다.

흔히 남쪽에서 북한을 연구하는 사람들 속에선 6차 당대회를 김정일이 공식적으로 후계자로 결정된 대회라고 알고 있습니다. 맞는 이야기입니다. 그게 핵심이었죠. 그 대회를 통해 김정일에게 권력세습이 공식적으로 마무리됐습니다.

6차 당대회는 1980년 10월 10일에서 14일까지 닷새 동안 열렸는데, 14일에 열린 중앙지도기관 선거에서 김일성은 당 중앙위원회 총비서로 추대되었고 김정일은 정치국 상무위원, 당 중앙 비서, 군사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습니다. 사실상 당시 38살에 불과한 김정일에게 권력을 다 물려준 것입니다.

물론 김정일은 1973년 중앙당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선출되면서 사실상 후계자로 확정됐습니다. 하지만 아직 나이가 어리고 인민들 앞에 내세울 아무런 업적도 없는 상황에서 시간이 더 필요로 했습니다. 1970년대 김정일은 김일성과 공동으로 나라를 통치하긴 했지만 김일성의 힘이 더 우세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6차 당대회 이후 김정일의 권력은 군사부문을 제외하고는 김일성보다도 더 능가하게 되였고 실질적으로 북한의 통치자가 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과거 전례를 놓고 볼 때 이번 7차 당대회에선 김정은을 노동당 총비서로 임명하는 절차가 있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전망해봅니다. 언제까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란 이상한 감투를 쓰고 북한을 통치하겠습니까. 더불어서 상무위원과 정치국 위원들도 새로 뽑겠죠. 벌써 노동당에선 간부들끼리 상무위원과 정치국 위원으로 뽑히기 위한 물밑싸움이 치열할 것 같습니다.

6차 당대회의 또 다른 주요 의제는 당 규약 개정이었는데, 조선로동당의 유일한 지도이념이 맑스레닌주의에서 주체사상으로 바뀌었습니다. 또 ‘전국적 범위에서의 민족해방 인민민주주의 혁명 및 북반부의 사회주의 완전승리라는 당면목표와 온 사회의 주체사상화 및 공산주의건설’이라는 최종 목표가 채택됐습니다.

이건 참 웃긴 이야기죠. 김정일이 공산주의가 뭔지 모르겠다고 없애라고 한 것이 1990년대 말이고, 지금 북한은 사회주의사회인지 독재사회인지, 봉건사회인지 또는 군사독재사회인지 그것 자체도 규정하기 애매한 상태인데 말입니다. 북반부 사회주의 완전승리는 또 뭔 말입니까. 지금 놓고 보면 완전 승리가 아니라 완전 패배했죠.

그렇지만 앞선 당 대회에서 그렇게 규정했으니까 이 규약은 지금까지 효력이 있는 노동당 규약인 셈입니다. 그럼 이게 뭡니까. 노동당은 이미 소멸돼 사라진 목표를 수십년 넘게 부둥켜안고 있는 사실상 당이라고 보기에도 이상한 집단인 셈입니다. 그러니 내년 당대회에서 당규약도 새롭게 고쳐야 할 필요성이 있을 겁니다.

그래도 옛날에는 당 대회라도 했습니다. 원래는 7차 당대회를 5년 뒤인 1985년에 열기로 했지만 김일성이 사회주의경제건설 10대 목표를 달성한 다음에 연다고 미루다가 지금까지 미뤄져 왔지요. 김일성은 그래도 당의 형식만큼은 유지하려 했지만 김정일 시절에는 시끄러운지 당 대회를 열 생각도 없었습니다. 어차피 자기 맘대로 좌지우지하는데 대회 따윈 필요도 없었겠죠. 이게 무슨 당입니까.

김정은이 사실상 사멸된 노동당을 다시 살리려 하는 가 본데 이젠 늦었죠. 노동당이 지금 노동계급을 위한 당이 맞긴 합니까. 다시 당 대회를 열거들랑 이제는 제대로 현실을 반영해 노동당이란 이름 자체를 바꿔야 하지 않을까요. 김정은꺼니까 김정은당이라고 하던지 아니면 조선독재당이라고 하는 건 어떨까요.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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