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하의 서울살이] 2012년 격변의 해를 앞두고

주성하∙ 탈북자, 동아일보 기자
2011-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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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nk_new_resolution-305.jpg 올해 초 북한 최대 철강생산기지인 김책제철연합기업소에서 '자력갱생' 구호를 외치며 노동자들이 궐기모임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내일이면 벌써 설날입니다. 새해를 축하합니다. 해가 바뀌면 아이들은 한살 더 먹는다고 좋아 죽는데, 30대만 돼도 벌써 내가 나이 한살 더 먹는구나, 이러면서 착잡합니다. 남쪽엔 이런 말이 있습니다. 10대엔 세월이 시속 10㎞로 지나가고, 20대엔 20㎞, 30대엔 30㎞... 이렇게 지나가다가 70, 80대엔 시속 70~80㎞로 순식간에 쉭쉭 지나간다고요. 맞는 말 같네요. 저만 봐도 설날이 되면 벌써 또 한살 먹나, 정말 세월도 빠르다 이러고 있습니다. 어제도 오늘 같고, 오늘도 어제 같고 그 와중에 세월만 흘러갑니다.

하지만 이번 설은 그냥 무심코 지나가는 다른 설날과는 좀 다른 특별한 설날이 될 것 같습니다. 여러분에게는 이번 설이 김정은의 나라에서 맞는 아주 특별한 설이 되겠죠. 물론 여러분은 아직 실감이 나지 않으실 겁니다. 긴긴 열흘간의 고된 장례를 다 마치고 이자 겨우 혼신하다시피 하루를 쉬었을 뿐인데 이제 내년에는 새해 벽두부터 또 유훈관철 투쟁이라는 어느 해보다 고된 노동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얼마나 들볶이겠습니까. 참 안됐습니다.

새해는 한반도에서 매우 중요한 전기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여러분들도 내년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궁금하시죠. 저도 기대와 희망이 큽니다. 내일 신년공동사설이 어떻게 나올지 벌써 그것부터 궁금합니다. 물론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혹시 압니까. 김정은이 텔레비에 나와서 신년사를 직접 읽을지도 모르죠. 내용도 설날 아침이 되면 어제도 오늘 같고, 오늘도 어제 같던 공동사설과는 다르겠죠. “지난 한해는 강성대국 건설에서 획기적인 전진을 이룩한 한해였다” 이러고 시작해선 무슨 성과 무슨 성과 쭉 자랑하던, 마치 그것만 보면 무슨 천국을 건설해도 옛날에 벌써 건설했을 것 같은 그런 공동사설 말입니다.

워낙 북한 신문이 거짓말을 많이 하다 보니 이런 유모아도 있습니다. 어떤 기자가 100세 장수 노인을 찾아가 “할아버지 건강하신 비결이 있습니까?”하고 물으니 노인이 “수령님과 장군님 은덕 속에 이밥에 고기국 먹고 화려한 기와집에서 근심 걱정 없으니 이렇게 오래오래 살지요”하고 대답하더랍니다. 그러자 기자가 “그럼 지금도 티비도 보고 신문도 읽으시겠습니다”하니 노인이 “내사 티비와 신문을 보지 않으면 이밥에 고기국 먹으며 기와집에 사는 걸 어떻게 알겠소”하고 대답하더랍니다. 이해되셨습니까. 티비와 신문이 떠드는 내용과 현실이 판이하게 다름을 풍자한 이야기입니다.

올해 역시 유훈이니 뭐니 그런 내용이 위주를 이루고 있고 대다수가 특별한 내용은 없을 걸로 보이지만 제가 궁금한 것은 2012년에 강성대국의 대문을 여니 어쩌니 하던 대국민 거짓말을 어떻게 둘러댈까, 유훈통치를 몇 해나 하겠다고 할까 하는 것들입니다. 아마 “장군님 서거로 강성대국 건설에 차질이 생겼다”는 식으로 핑계를 만들 거 같기는 합니다만, 사실상 비상계엄령이나 마찬가지인 유훈통치는 오래 끌면 여러분들이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지금부터 쌀값이 정신없이 올라가는 것을 보면 내년 봄을 제대로 넘길지 벌써부터 걱정이 됩니다. 강성대국은커녕 고난의 행군이 다시 시작될지 모르겠습니다.

2012년은 남쪽에도 격변의 한해가 될 것 같습니다. 4월에 국회의원 선거가, 12월엔 대통령 선거가 있습니다. 4월 총선에서 한나라당이 이기냐, 민주당이 이기냐에 따라 향후 대통령 선거의 향방이 결정될 겁니다. 북한 당국도 아주 긴장해서 이번 총선 지켜볼 것입니다. 햇볕정책 주장하는 민주당이 돼야 대규모 지원을 받을 수 있겠으니 말입니다. 예전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는 북한이 연초에 그해 한국에서 지원받을 예상 지원액수를 다 포함시켜서 예산을 짜곤 했습니다. 그때는 그냥 달라면 다 주던 때였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 들어 그게 안 되니 분통이 터져서 천안함, 연평도와 같은 공격을 마구 벌인 것이죠.

2012년에도 북한은 민주당 당선시키려고 별짓 다 하겠죠. 하지만 이제는 북쪽이 어떤 꿍꿍이를 하던지 간에 이제는 남쪽에서 먹혀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역효과를 낳을 때도 많습니다. 북에서 봄에 굶어죽는 사람들이 많아진다, 그래서 김정은에 대한 실망이 커진다 이러면 북에서 남쪽을 대상으로 군사적 도발을 할 유혹에 빠지겠죠. 사람들의 주의를 딴 데 돌리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런데 이런 도발을 하면 쌀이 갈 가능성이 희박해지니 여러분들만 고생을 하게 되는 겁니다.

올해 남쪽에 민주당이 아닌 한나라당이 재집권한다고 해도 남북관계는 이명박 정부 때보다는 훨씬 좋아질 것입니다. 이명박 정권에선 북쪽도 괴로웠지만 그렇다고 남쪽도 편했던 것이 아니고 서로 진하게 피 봤죠. 이젠 햇볕정책도 해보고 강경정책도 다 해봤으니 다음 정권은 그 중간쯤 되는 정책을 펼 것이라는 확신이 듭니다. 김정은도 체제를 빨리 굳히기 위해선 가장 중요하게 쌀부터 풀어야 한다는 점을 알고 있을 겁니다. 남과 북의 이해관계가 요렇게 착 들어맞으니 2013년 여름쯤이면 북한 장마당에 한국쌀이 많이 풀릴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은 내년 한 해 어떻게든 잘 버티는 것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이 방송 듣고 계시는 분들은 어느 정도 생활수준이 있을 것이라 생각되는데, 가까운 이웃이 굶주리면 쌀을 좀 나눠먹으면서 함께 어려운 시기 극복하시길 부탁드립니다. 사람 목숨이라는 것이 한번 죽으면 돌이킬 수 있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새해에는 북쪽에서 슬픈 소식이 아닌 기쁜 소식이 많이 들리길 바라고 또 청취자 여러분들의 모든 가정에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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