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하의 서울살이] 신묘년 새해에 북녘 동포에게 드리는 인사

주성하∙ 탈북자, 동아일보 기자
2010-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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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p_tv-305.jpg 12월 20일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연평도 사격훈련과 관련한 TV뉴스속보를 시청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사랑하는 북녘 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2011년 새해를 축하합니다. 올해는 육십간지 중 28번째 해에 해당하는 신묘년입니다. 매울 신자에 토끼 묘-뜻 그대로 풀이하면 매운 토끼해가 됩니다. 그래서 그런지 어떤 점쟁이들은 올해가 토끼가 이빨을 드러내는 해로 각종 사건사고가 많을 것이라고 합니다. 2010년은 경인년 호랑이해였습니다. 호랑이해엔 풍파가 많이 일어나는데, 60년 전인 경인년이 바로 전쟁이 터진 1950년이었고 신묘년은 1951년으로 치열한 전투가 계속 이어졌습니다.

2010년은 전쟁까진 아니지만 한반도 긴장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진 해였습니다. 북한이 잠수함을 몰래 내려 보내서 기습공격을 하는 바람에 1200톤급 대형 군함인 천안함이 침몰해 승조원 46명이 사망했습니다. 이런 행동은 사실 전쟁선포나 다름없는 것인데도 남쪽에선 와글와글 들끓을 뿐 전쟁하자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남쪽 사람들 전쟁을 두려워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다 잘 사니깐 그런 겁니다. 전쟁이 나면 최종 승자는 한국군이 되겠지만 대신에 잃을 것이 너무 많습니다. 인명손실은 물론, 국토가 황폐화되면 공장 기업소가 이미 고철더미로 변한 북쪽은 잃는 것이 거의 없지만 세계적 수준의 기업들이 즐비한 남쪽은 수 백조 딸라가 넘는 손해를 보게 됩니다. 기업만 그렇습니까. 한국의 각 가정들은 대체로 몇 십만 딸라의 재산을 갖고 있는데 이것도 무사치 못합니다. 부자와 거지가 싸우면 부자가 잃을 것이 많은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니 부자는 웬만하면 싸우려 하지 않죠.

북한 당국은 이런 남쪽의 약점을 이용해 점점 대담해져서 11월에는 연평도 섬마을에 포격을 가했고 군인 2명과 주민 2명이 희생됐습니다. 이것도 사실 전쟁선포나 다름없는 행동인데도 남쪽은 정말 전쟁이라도 날까봐 제대로 대처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부자든 거지든 상관없이 자꾸 매 맞으면 앞뒤를 가리지 않고 이성을 잃고 눈이 홱 돌아갈 때가 있습니다. 벌써 두 번씩이나 얻어맞고 변변히 대처하지 못했으니 남쪽에선 전쟁을 각오하더라도 한번 해보자는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정부는 이런 여론을 업고 내년에는 강경책을 밀고나갈 태세입니다. 한번만 더 맞으면 정말 화끈하게 보복하겠다고 벼릅니다. 북쪽도 가만있지는 않을 것이니 올해 역시 남북 관계는 팽팽한 기 싸움이 계속될 전망입니다.

국제정치에서는 이런 형국을 치킨게임을 벌인다고 묘사합니다. 치킨게임은 1950년대 미국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담력을 겨루는 시합인데, 두 차량이 마주보면서 달려오다가 먼저 조향륜을 꺾는 사람이 지는 게임입니다. 둘 다 안 꺾으면 어떻겠습니까. 꽝 하고 충돌해 둘 다 죽던지 아니면 둘 다 부상당하든지 하는 것입니다.

제가 북에서 김대를 다닐 때 중앙당 강연과장이 대학에 자주 와서 체육관에 학생들 모아놓고 강연을 했습니다. 그때 그 사람이 치킨게임이란 말을 언급하면서 미국과 남조선은 겁쟁이어서 우리 장군님의 담력을 절대 이길 수 없다고 선전했습니다. 북조선은 지금도 치킨게임에서 자신들이 무조건 승자가 된다고 장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너무 장담할 필요는 없습니다. 왜냐면 남한은 전쟁이 나서 대통령이 사망하면 다른 대통령을 또 뽑으면 되지만 북한은 그렇게 할 수 없는 사회라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남쪽은 전쟁나면 목표가 분명하니깐 여기저기 쓸데없는 힘을 쏟을 필요가 없습니다.

북쪽 사람들 입장에선 그냥 전쟁이 나는 것이 편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살기 힘들어서 불평할 때면 “전쟁이나 콱 나라”고 하지 않습니까. 보위부에 잡혀가지 않고도 불만 마음껏 말할 수 있는 말이 그 말이니까요.

그 말 속에는 전쟁이 나서 이기든, 지든 빨리 이 지긋지긋한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욕망이 숨겨져 있습니다. 그런데 현실은 안 그렇거든요. 전쟁난다는 핑계를 내걸고 맨날 준전시니 전투동원태세니 하면서 들볶으면서 못살게 구는 것, 그게 60년 넘게 통치해온 비법입니다. 예전 남한도 독재시절엔 쩍하면 북괴가 쳐들어온다면서 반대파들 잡아다 탄압하고 주민들이 정부에 대한 불평도 못하게 총칼로 다스렸습니다. 민주화가 돼서도 한동안은 선거 때마다 위기를 조성하면 표가 보수당에 쏟아지는 등 재미를 봤는데, 요새는 하도 학습이 돼서 남쪽 사람들도 속지 않습니다.

북쪽도 요새 보면 위기가 닥쳐온다는 소리가 전혀 먹혀들지 않는다고 합니다. 아무리 당에서 준전시하고 어쩌고 해도 사람들이 “하겠으면 하고 말겠으면 말고 우린 눈치껏 하는 척 하면서 장마당에서 돈이나 많이 벌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오히려 요새는 남쪽 사람들보다 북쪽 사람들이 만사태평입니다. 남쪽은 신문, 방송, 인터넷 등 온갖 언론이 하도 발달해서 무슨 일이 터졌다면 관련 뉴스가 며칠 내내 홍수처럼 쏟아져 나오지만 북쪽은 신문도 못 보지, 정전돼 텔레비도 못 보지 그러니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도 모르고, 사건이 발생해서 며칠 돼야 소문으로 전해 듣고는 “아~그런 일이 있었구나”하는 정도니 말입니다.

새해에도 누가 뭐라고 하던 신경 쓰지 마시고, 열심히 먹고 사는 일에 매진하시기 바랍니다. 살아 있어야 좋은 날도 보는 겁니다. 새해에는 모든 가정들의 살림살이가 올해보다 훨씬 더 많이 펴이시길 바랍니다. 개인적으론 잘 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집안에 병이 없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새해에는 모두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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