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하의 서울살이] 남한의 노숙자와 북한의 꽃제비

주성하∙ 탈북자, 동아일보 기자
2010.10.15
orphan_child_nk-305.jpg 중국에서 선교사가 운영하는 보육원에서 보살피고 있는 북한 고아.
PHOTO courtesy of HAN-SCHNEIDER INTERNATIONAL
사랑하는 북녘 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얼마 전 제 지인이 이런 말을 하더군요. 방송에서 북쪽은 계속 비판하는데 남쪽은 너무 좋게만 평가하는 것 아니냐, 북쪽 사람들이 들으면 정부에서 지시를 받아서 의도적으로 남쪽을 홍보하는 줄 알겠다. 이렇게 말입니다.

정말 그랬나요? 제가 벌써 방송을 시작한지 1년이 되는데 여기 방송국에서 한 번도 방송 내용에 대해 저에게 이래라 저래라 한 적이 없습니다. 아마 북에서는 어느 개인이 대남방송에 나와 마음대로 자기 할 소리 하는 것 상상도 못하실 테죠. 그런데 여기는 개인의 자유가 그만큼 인정된다는 것이죠. 제가 대북방송에 나와 남한 정권을 비판해도 잡혀가지 않지만 북에다 남쪽 정부를 비판해서 뭐하겠습니까. 할 일이 있으면 기사를 쓰거나 직접 청와대 앞에 가서 시위하면 되죠.

저는 지금까지 최대한 객관적으로 남쪽과 북쪽을 비교해서 있는 사실 그대로만을 전달하려고 노력해왔습니다. 실제로 북쪽보단 남쪽이 훨씬 나은 세상임은 분명합니다. 한국이 실질 소득이 3만 딸라 가까이 돼서 실질적인 경제생활 수준으로는 현재 세계에서 22번째이고, 북쪽에서 그렇게 선망하는 일본하고도 거의 수준이 같아졌다는 보도가 며칠 전에도 나왔습니다.

그렇긴 해도 그래도 남쪽도 안 좋은 측면이 있는 거 아니냐 하실 수 있는데 아무리 잘 살아도 고쳐나가야 할 점들이 아직은 많습니다. 북에선 남조선을 비판할 때 빈부격차가 매우 심해 호화빌딩 뒤에 가면 거지들이 득실거린다, 또 자살률과 교통사고 사망자가 세계 최고다 이런 식으로 비판을 많이 합니다. 전혀 근거 없는 소리는 아닙니다. 자살률은 세계 최고까진 아니라도 세 손가락 안에는 들어가고 교통사고 사망률도 세계 6위라고 합니다. 어쨌든 매우 높은 것은 사실인데 이런 것까지 말하면 길어지니 다음으로 미루고 오늘은 남조선에 득실득실 하다는 거지에 대해 말씀드릴까 합니다.

작년 9월에 조선중앙방송에서 ‘위기의 남조선, 비참한 민생’이라는 10분짜리 방송을 방영한 적이 있죠. 제가 쭉 보니깐 완전히 조작된 것은 아니고, 여기서 가장 비참한 사람들의 모습만 골라서 방영한 것이었습니다. 남조선엔 노숙자가 전국적으로 4300명 정도 있는데 인구로 따지면 만 명당 한명이 조금 안되는 셈입니다. 북쪽 인구를 대입시켜 보면 전국적으로 꽃제비가 2000명 있는 것과 비슷한 비율인데 어떻습니까. 전국적으론 고사하고 큰 도시마다 꽃제비가 2000명은 훌쩍 넘지 않을까요.

남한의 노숙자는 대부분 빌어먹기 좋은 서울에 있는데 4300명 중 3500명가량이 서울에 있습니다. 제가 일하는 곳이 서울의 중심부인데 여기도 지하철에 내려가다 보면 때가 잔뜩 묻은 옷을 입은 어떤 노숙자가 “한 푼만 한 푼만”하고 소리치는 광경을 목격할 수 있습니다. 6년째 같은 사람인데 아마 여기가 이 사람의 활동구역인가 봅니다. 북쪽이라면 혁명의 수도에 꽃제비가 있다고 당장 잡아서 추방시킬 텐데 말입니다.

서울역 앞에만 노숙자가 한 200명 정도 있습니다. 예전에 남조선에 가면 한강다리 밑에 거지들이 득실득실 하다고 북에서 선전해서 예전에 온 탈북자들은 그 말이 진짜인지 보려고 일부러 한강다리를 찾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한강 다리 밑에는 거지들이 없습니다. 빌어먹으려 해도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곳에서 빌어먹어야죠.

사실 한국의 경제력으로 볼 때 노숙자 수천 명을 없애려고 하면 얼마든지 없앨 수는 있지만 문제는 돈을 지원한다고 해서 노숙자를 완전히 없애긴 힘들다는데 있습니다. 일자리를 얻어 몇 달 만에 노숙생활을 청산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신 갑자기 빚을 잔뜩 지고 새로 노숙자로 전락하는 사람들도 생겨납니다. 가장 큰 문제는 아무런 의욕도 없이 술에 중독된 사람들이죠. 이런 사람들은 국가에서 잘 곳을 마련해주어도 다시 도망쳐 나옵니다. 여기는 노숙자에게 각종 사회단체, 교회 이런 곳에서 먹을 것도 주고 잘 곳도 마련해 줍니다. 그러니 굶어죽을 염려는 거의 없지요.

북에도 꽃제비 수용소가 있긴 하지만 거기 가면 너무 배고파서 또 도망쳐 나오지 않습니까. 그런 것을 보면 거지도 잘 사는 나라에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 법도 합니다. 하지만 사회의 가장 밑바닥에서 생존의 사투를 벌이는 그 사람들을 놓고서도 거지도 남쪽이 우월하다고 말하는 것은 잔인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남쪽도 분명 모든 사람들에게 천국은 아닙니다. 하지만 노숙자들이 몇 천 명 있다고 해서 북조선 보다 못한 사회인 것도 절대 아닙니다. 꽃제비들이 넘쳐나는 북조선이 남조선엔 노숙자들이 많다고 손가락질하는 건 말이 안되죠.

남쪽의 노숙자는 어른들이 대다수입니다. 하지만 북조선의 꽃제비는 부모의 보호를 받아야 할 어린 아이들이 대다수입니다. 왜 그럴까요. 최소한 어린이는 보호해줄 수 있는 제도와 그것조차 할 수 없는 제도의 차이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국가라면 어른은 빌어먹게 해도 아이들은 빌어먹다가 얼어 죽게 만들진 말아야죠. 북쪽 입장에선 부끄럽긴 하겠지만 그래도 남쪽에 손을 벌려서라도 고아원만큼은 전국 각지에서 제대로 운영했으면 좋겠습니다. 고아원을 투명하게만 운영하겠다고 하면 아마 남쪽에서 필요한 식량과 물품은 얼마든지 대줄 수 있을 겁니다.

또 추운 겨울이 닥쳐옵니다. 석탄재 속에 파고들어가 잠을 자던 꽃제비 아이들이 눈에 밟히는군요. 올 겨울 엄동설한은 어떻게 이겨낼지. 서울에서 걱정밖에 할 수 없는 것이 너무 마음이 아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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